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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씨남정기

김만중 지음 | -
사씨남정기

김만중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사씨(사정옥): 사급사의 딸로 여승이 지녀야 할 부덕(婦德)과 미모를 지닌 인고(忍苦)의 여인. 여승 묘혜의 중매로 유연수와 혼인한다. 대를 이을 자식을 낳지 못하자 첩으로 교씨를 데려오지만 교씨에 의해 모략을 당하고 고통을 겪는다. 그러나 천우신조로 목숨을 구하고 유씨 집안으로 돌아가 집안을 다시 안정시킨다.

유연수: 개국공신 유기의 후손이며 유희의 아들. 어려서는 영민했으나 교씨와 동청 등에 의해 총명함이 가리워진다. 첩으로 들어온 교씨와 문객 동청에게 속아 사씨를 유씨 집안에서 몰아내고 교씨를 본처로 삼는다. 동청과 간신 엄숭의 간계로 모함을 받아 유배를 당한다. 후에 교씨와 동청의 계략을 알게되면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는다.

교씨(교채란): 사씨가 자식을 낳지 못하자 유연수의 첩으로 들어오는 여인. 마음이 교활하고 간악하여 사씨를 내쫓고 본처가 되려고 한다. 유씨 집안에 문객으로 들어온 동청과 결탁하여 사씨를 내쫓고 유연수의 본처가 된 후 유연수마저 누명을 씌워 귀양보낸다. 동청과 사통하면서 유씨 집안의 재물을 가로채나 후에 철저히 응징된다.

동청: 유씨 집안에 문객으로 들어오는 간악한 인물. 교씨와 정을 통하면서 모의하여 갖은 모략으로 사씨를 유씨 집안에서 내쫓는다. 간신 엄숭과 결탁하여 유연수마저 억울한 누명 씌워 내쫓는다. 그러나 후에 임금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엄숭: 유연수의 아버지 유희와 대립하는 인물이며 간신. 동청에게 뇌물을 받고 유연수에게 무고한 죄를 씌워 박탈관직하고 귀양보낸다. 후에 임금이 총명을 되찾자 관직에서 물러난다.

묘혜: 우화암의 승려로 유연수와 사씨를 중매하는 인물. 사씨에게 관음화상를 가져다가 관음찬을 받고 유연수와 혼인을 이루게 한다. 사씨가 교씨의 모략으로 남행하여 죽게 되었을 때 수월암에서 기다리다가 사씨의 목숨을 구해준다. 또한 유연수가 위급하여 물에 빠져 죽으려 할 때도 유연수의 목숨을 구해준다. 후에 사씨와 유연수가 극적으로 상봉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원조자가 된다.



유연수와 사씨의 혼인



유한림(劉翰林)이 육례(六禮)를 갖추어 친히 신부를 맞이하였다. 사소저(謝小姐) 위의(威儀)의 성대함과 예도(禮度)의 아름다움을 두고, 당시 진신(縉紳, ‘홀을 꽂은 사람’이라는 말로 널리 고관을 뜻함)들 사이에서는 부러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명나라 가정(명나라 제11대 황제 세종(世宗 1522~1566)의 연호)연간 북경의 순천부에 유희라는 사대부가 있었다. 그는 엄숭과 뜻이 맞지 않자 “늙고 병이 들었다”는 구실로 벼슬에서 물러날 것을 청했다. 천자는 유희의 치사를 허락하면서 그에게 태자소사(태자를 보충하여 이끌었던 사부의 일원)의 직함을 주어 그를 존경했다.

유희에게는 누이가 한 사람 있었는데 일찍이 두강의 아내가 됐다가 지아비를 잃고 혼자 살고 있었다. 누이인 두부인에 대한 유희의 애정은 돈독했다.

유희는 나이 사십이 지나서 처음으로 아들 유연수를 낳았는데 어머니인 최씨는 일찍 죽고 말았다. 유연수가 성장하자 용모가 관옥(冠玉)같았으며 열네 살 때 향시에서 일등으로 합격하고 열다섯 살 때는 문과에 급제했다.

유연수가 급제하자 유희는 훌륭한 며느리를 얻으려는 생각으로 두부인과 함께 성안의 여러 매파들을 불러놓고 어진 처녀를 물색했다. 주파라는 매파가 신성현의 사급사(황제의 정사를 좌우에서 보좌하던 관료)의 딸 사정옥이 어질고 덕성이 있음을 칭찬한다. 이에 두부인이 우화암 승려 묘희에게 시켜 남해관음 화상 아래 사정옥의 글솜씨를 알기 위해 찬(讚)을 써오게 한다.

묘희는 사급사의 집으로 가 사정옥을 보고 그 자태에 감탄한다. 묘희가 사정옥에게 남해관음 화상아래 글을 지어줄 것을 요구하자 사정옥은 재주가 없다고 거절한다. 묘희의 거듭되는 부탁으로 사정옥은 남해관음 화상 아래 글을 짓기 시작했다. 사정옥은 손을 씻고 향불을 피웠다. 이윽고 붓을 들어 관음대사찬 백이십팔 자를 지어 작은 해서체로 족자 위에 써 넣었다. 묘희는 매우 기뻐하며 족자를 가지고 유희의 집으로 돌아갔다.

유희와 두부인이 그 족자를 보고 사정옥의 재주와 덕성과 견식을 칭찬하며 며느리 삼기를 원했다. 유희는 매파를 시켜 사급사의 집에 의향을 물었다. 그러나 사정옥은 ‘유씨 집안이 자신의 덕을 칭찬하기보다는 자신의 색을 칭찬하고, 부귀함만을 자랑하면서 아버지의 성덕(盛德)에 대해서는 칭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혼인을 거절한다.

유희는 매파를 통해 사정옥이 유연수와의 혼인을 거절한 이유를 듣고 이튿날 친히 신성으로 가 현령을 만났다. 현령에게 사급사댁과 청혼하는 문제를 이야기하며 사급사댁을 방문하여 ‘사급사의 청명(淸明)함을 흠모하며 사정옥이 부덕(婦德)을 갖추었다고 들었다’라고 전할 것을 부탁한다. 이튿날 현령은 사급사댁으로 가서 유희의 말을 전한다. 사급사의 부인은 유모로부터 그 이야기를 듣고 유연수와 사정옥의 혼인을 허락한다. 유희가 길일을 택해 혼인을 시키자 사정옥의 위엄스러운 태도와 예법의 아름다움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했다.

유희는 사씨에게 부도(婦道)가 무엇인지를 묻자 사씨는 ‘지아비가 허물이 있을 때라면 간언하는 것이 옳다’라고 말한다. 유희는 사씨를 칭찬하고 훌륭한 거울과 옥환 한 쌍을 주었다. 사씨는 효성과 정성으로 시부모를 모시고 아랫사람들을 대했다.



첩으로 영입된 교씨가 사악한 마음으로 사씨를 모함

그들이 성혼한지 또한 십 년 가까이 흘러갔다. 그러나 아직 자녀가 없었다. 사씨는 마음속으로 몹시 근심하면서 홀로 생각하였다. ‘체질이 허약하여 자녀를 생육할 수 없는가 보다.’ 사씨가 조용히 한림에게 첩을 두라고 권고하였다.

그럭저럭 서너 해가 흘렀다. 유희가 병을 얻어 자리에 누웠다. 사씨와 유연수가 정성을 다해 간호했으나 유희는 유연수와 사씨에게 집안을 잘 다스릴 것을 유언하고 죽는다. 사씨와 유연수는 매우 슬퍼한다. 일월은 유수와 같아 유연수가 관직에 나아갔다. 유연수는 자주 소(疏, 임금에게 올리는 글)를 올려 조정의 득실을 논했다. 그런데 엄승상(엄숭)이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여러 해가 지나도록 관직은 올라가지 않았다.

그 무렵 유연수 부부는 나이가 스물세 살이었다. 그들이 성혼한지도 또한 십 년 가까이 흘러갔다. 하지만 자녀가 없었다. 사씨는 마음속으로 몹시 근심하면서 유연수에게 첩을 둘 것을 권고했다. 두부인이 그 말을 듣고 첩을 두는 것은 집안의 환난의 근본이라며 반대한다. 그러자 사씨는 아직 자녀를 두지 못한 일은 옛날 법도에 따르면 내침을 당할 것이며, 부녀자들이 투기하는 습속은 본받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사씨는 매파를 통해 교씨를 천거받는다. 교씨는 하간부 사람으로 성은 교요 이름 채란이다. 원래 사족(士族)으로서 부모가 일찍 죽었으므로 언니와 의지하며 살았다. 나이는 열여섯 살이며 항상 말하기를 ‘집안이 쇠하였으니 가난한 선비의 아내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재상의 첩이 되는 편이 좋겠어’라고 했다. 사씨는 곧 교씨를 첩으로 맞아들인다.

유연수는 교씨가 거처하는 집에 이름을 붙여 백자당이라 했다. 그리고 시비 납매 등 네 사람에게 명하여 시중을 들게 했다. 집안의 하인들은 교씨를 일컬어 교낭자라 불렀다. 교씨는 총명하고 말을 잘하고 남의 마음을 잘 사로잡는 여자였다. 유연수의 뜻을 능히 받아들었으며 더욱이 사씨를 잘 섬겼다. 그러므로 집안 사람들이 그녀를 칭찬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후 반 년도 채 지나기 전에 교씨는 임신을 했다. 유연수와 사씨가 매우 기뻐했다. 그런데 교씨는 남자아이를 생산하지 못할까 두려워했다. 그래서 유명한 점쟁이 십낭자를 불러 여자아이를 남자아이로 바꾸는 신술을 쓰게 했다. 십낭자는 부적과 기괴한 물건들을 많이 만들어 교씨가 거처하는 방의 이부자리 속에 숨겨놓았다. 그후 달이 차자 교씨는 과연 남자아이를 낳았다. 유연수와 사씨는 기쁨을 이길 수가 없었다. 교씨가 아들을 낳은 후로 유연수는 교씨를 더욱 후하게 대접했다. 아이의 이름은 장주라고 불렀다. 사씨와 사씨의 사랑이 끝없음도 피차 다를 바가 없었다.

저물어가는 가을 삼월의 어느날이었다. 교씨는 거문고를 타고 시를 읊었다. 교씨가 거문고로 탄 것은 당나라때의 예상우의곡(당 현종이 꿈에 천상의 월궁에 가서 그 곳의 노래와 춤을 보고 난후 지은 것)이었다. 사씨는 그 곡조가 사람의 마음을 화평하게 하기보다는 어지럽게하고 노래한 시 역시 좋지 않다고 하며 그 곡조를 부르지 말라고 타일렀다. 교씨는 크게 부끄러워하며 머뭇거리다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그날 저녁 유연수가 서원에서 집으로 돌아가 백자당으로 갔다. 하지만 술에 취하여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교씨에게 명하여 노래를 부르게 했다. 그러나 교씨는 그 명을 따르지 않고 눈물을 펑펑 흘렀다. 유연수가 그 까닭을 묻자 교씨는 사씨가 자신에게 ‘상공께서 너를 취하신 까닭은 단지 후사를 위한 것일 따름이었다. 집안에 미색이 부족한 때문이 아니었어. 그런데 너는 밤낮으로 얼굴이나 다독거렸지. 또한 듣자하니 음란한 음악으로 장부의 심지를 고혹하게 하여 죽은 시아버지의 가풍을 무너뜨리고 있다 하더구나. 이는 죽어 마땅한 죄이다. 네가 만일 이후로도 행실을 고치지 않으면 내 비록 힘은 없으나 아직도 여태후가 척부인(한나라 고조에게 총애를 받던 여인. 왕후 여태후는 그녀를 시기하다가 고조가 죽은 후, 그 눈과 귀를 뽑고 수족을 자른 뒤에 측간에 넣어놓고 인체라고 부르게 하였음. 인체는 ‘인간돼지’라는 뜻)의 손발을 자르던 칼과 벙어리로 만들던 약을 가지고 있느니라. 앞으로 각별히 삼가하라’고 했다고 말한다. 유연수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의아한 마음으로 교씨의 말이 실정보다 지나친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교씨를 위로한다. 교씨는 끝내 마음을 풀지 않은 채 다만 유연수에게 사례하는 척했다.



동청과 함께 사씨를 모함하여 내쫓고 드디어 정실이 되는 교씨

교씨는 부인이 동청을 미워한다는 말을 들었다. 또한 평소 한림이 동청을 신임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교씨는 동청을 한패로 만들어 외원(外援)으로 삼고자 하였다. 이에 남몰래 납매로 하여금 동청과 사통(私通)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자주 일을 꾸몄다. 이십낭은 교씨를 도와 남자를 고혹하는 방술을 행하게 하였다. 그로부터 한림은 점점 교씨에게 빠져들어 정신과 생각이 이전과 판이하게 달라졌다.

어느날 교씨의 시비 납매가 사씨가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교씨에게 전한다. 교씨는 사씨가 아들을 낳으면 자신의 신세가 좋지 않을 것을 생각하여 납매와 함께 은밀하게 음모를 꾸민다. 마침내 낙태하게 만드는 약을 사서 사씨가 복용하는 약 속에 몰래 섞어 놓았다. 그렇지만 사씨는 그 약을 마시자마자 문득 구역질을 하며 그대로 토해버렸다. 그 계책도 성공할 수 없었다.

사씨는 달이 차자 과연 남자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골격이 비상하고 얼굴이 뛰어났다. 유연수는 크게 기뻐하여 아이의 이름을 인아라고 했다. 인아가 자라자 유연수는 아이가 돌아가신 아버지 유희를 닮았다고 하여 인아를 더욱 사랑했다. 교씨는 위기감을 느끼고 십낭자를 불러 계교를 꾸미기로 한다. 그들은 한 마음이 되어 간악한 음모와 사특한 계교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 기미가 워낙 은밀했다. 누구도 그것을 눈치채는 사람이 없었다.

어느날 이부에 사는 석낭중이 편지로 동청이라는 사람을 소개하면서 유씨 가문의 문하에 둘 것을 부탁한다. 동청은 원래 사족의 자제였다. 부모가 일찍 죽자 악동들을 따라 다니며 장기 두고 술이나 마셨다. 집안의 재산을 탕진하여 돌아갈 곳이 없어 벼슬아치들에게 의탁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뛰어난 재주가 몇 가지 있었는데 첫째는 아름다운 용모요, 둘째는 교묘한 말솜씨요, 셋째는 잘 쓰는 글씨였다. 사대부들이 그를 처음 만나면 사랑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조금만 함께 지낼 것 같으면 자제를 꾀여 불의를 저질렀다. 그 때문에 가는 곳마다 용납을 받을 수가 없었다. 유연수는 문하에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을 구하던 중 동청을 서기로 삼는다. 동청은 매사에 문득 유연수의 뜻을 잘 맞추었다. 그러므로 유연수는 그를 크게 신임했다. 그의 말이라면 따르지 않는 것이 없었다.

교씨는 사씨가 동청을 미워한다는 말을 들었다. 또한 평소 유연수가 동청을 신임한다는 사실도 잘 알았다. 그러므로 교씨는 동청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자 남몰래 자신의 시비 납매로 하여금 동청과 사통(私通)하게 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일을 자주 꾸몄다. 또한 이십낭은 교씨를 도와 남자를 고혹하는 방술을 행하게 했다. 그로부터 유연수는 점점 교씨에게 빠져들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교씨는 십낭자와 동청과 함께 사씨를 모함할 계책을 세운다. 동청은 사씨의 필체를 모방하여 교씨와 아들 장주가 잘못되기를 비는 방자를 써서 부엌에 흘리는 계획을 실행하기로 한다. 그러면서 교씨와 동청은 사통하고 드디어 장주가 감기에 걸리자 납매가 그 글씨를 부엌에서 주워온 것처럼 하여 유연수에게 보인다. 유연수는 그 글을 읽고 얼굴이 흙빛이 되어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유연수는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가 그 글을 불에 넣어버렸다. 유연수는 저주하는 글을 보고 난 후로 내심 그 글씨가 사씨의 필적과 같다고 믿었다. 마침내 사씨를 의심하는 마음이 크게 일어났다. 그렇지만 또한 난처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염려했다. 이에 그 글을 불에 넣어 그 자취를 없애게 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유연수는 사씨에 대한 정이 갑자기 떨어졌다. 다만 참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따름이었다.

그럴 때 신성현의 사급사댁에서 어머님의 병이 위급하니 세상을 떠나기 전에 빨리 와달라는 편지가 사씨 앞으로 왔다. 사씨는 남편의 승낙을 받고 교씨를 불러 집안일을 부탁한 다음 곧 본가로 떠났다. 유연수도 여가를 타서 곧 문병을 가 약물을 올렸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면서 병세는 점점 위중했다. 이 무렵 산서․산동․하남 지방이 여러 해 동안 계속해서 흉년이 들었다. 백성들은 사방으로 이리저리 흩어졌다. 천자가 근심하여 세 명의 신하에게 명하여 세 방면으로 나가 백성들의 고통을 보살피게 했다. 유연수는 산동지방으로 나가 그곳 민생을 돌보았다.

이렇게 사씨가 본가로 가고 유연수마저 집을 떠나니 교씨는 동청과 부부간처럼 지내면서 다시 사씨를 모해할 계교를 꾸몄다. 동청의 계교에 따라 교씨는 자신의 심복인 납매를 시켜 그의 사촌동생인 사씨의 시녀 설매를 금은패물로 매수한다. 설매를 통하여 사씨의 패물상자 속에서 지난날 사씨가 시아버지 유희에게서 받은 옥지환을 몰래 훔쳐내도록 했다. 동청은 이 옥지환을 자신의 친구 중에서 심복하는 냉진이라는 불량한 자에게 주어 유연수에게 의혹을 자아내도록 사건을 꾸미게 된다.

그 무렵 유연수는 산동지방에 도착해 민간의 물정을 살피기 위해 어느 객점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곳에서 장진이라는 미소년을 만나 함께 술을 마시고 잠을 잤다. 아침에 유연수는 소년의 옷고름에 한개의 옥지환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그 옥환이 자신의 집안의 물건임을 알고서 어디서 구했는가를 물었다. 소년은 예전에 사귀던 여인이 준 물건이라고 말하고 처연히 슬퍼했다.

유연수는 반년만에 집으로 돌아와 사씨에게 옥지환이 있는가 하는 것부터 알아보았다. 사씨는 시비를 시켜 상자를 가져다가 패물함을 열어보게 했다. 다른 보물은 다 있었으나 옥지환만 보이지 않았다. 유연수는 사씨의 행적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두부인이 유연수에게 집안의 악인이 옥지환을 훔쳐내 사씨를 모함하는 것이라며 사씨를 두둔한다. 유연수는 혹시 시녀들이 훔쳐내지 않았나 하여 형구를 갖추어놓고 그들을 엄하게 문초하였으나 밝혀낼 수가 없었다. 사씨는 오명을 씻을 길이 없었다. 초가에 거적을 깔고 죄인으로 자처했다. 교씨는 그를 매우 통쾌하게 여겼다.

그 무렵 두부인은 사씨를 위하여 옥환 소식을 두루 탐문했다. 그러나 소식을 알 길이 없었다. 얼마후에 두부인의 아들 두억이 과거에 급제하여 장사의 추관(지방에서 형벌을 관장하던 관원)이 됐다. 아들을 따라 두부인이 떠나자 교씨와 동청은 사씨를 없앨 흉계를 짜내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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