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생전
박지원 지음 | -
허생전
박지원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허생(許生): 주인공. 비범한 능력과 기인다운 풍모를 지니고 운명론을 믿는 비판적 지식인. 과감하게 현실을 개혁하고 이상향을 세우려는 인물.
변씨(卞氏): 허생이 재산을 모으도록 돈을 빌려준다. 허생과 이완의 접촉을 주선한다. 넓은 도량을 지닌 상인이지만 역시 삶의 의미를 재물에서 찾는 속물적 근성도 있는 인물.
이완(李浣): 허생의 비판 대상. 당시 어영대장으로 당대의 무능한 사대부를 상징한다. 북벌론의 핵심인물. 무기력하고 보수적인 관리다.
아내의 바가지 등쌀에 못 이겨 가출하는 허생
처는 왈칵 성을 내며 소리쳤다. “밤낮으로 글만 읽더니 기껏 ‘어떻게 하겠소?’ 소리만 배웠단 말씀이오? 장인바치 일도 못 한다, 장사도 못 한다면, 도둑질이라도 못 하시나요?” 허생은 읽던 책을 덮어놓고 일어나면서, “아깝다. 내가 당초 글읽기로 십 년을 기약했는데, 이제 칠 년인걸…….”하고 휙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허생은 묵적골에 살았다. 곧장 남산 밑에 닿으면, 우물 위에 오래 된 은행나무가 서 있고, 은행나무를 향하여 사립문이 열렸는데, 두어 칸 초가는 비바람을 막지 못할 정도다. 그러나 허생은 글읽기만 좋아하고, 그의 처가 남의 바느질품을 팔아서 입에 풀칠을 했다. 하루는 그 처가 몹시 배가 고파서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평생 과거를 보지 않으니, 글을 읽어 무엇합니까?” 허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 독서를 다하지 못했소.” “그럼 장사는 못 하시나요?” “장사는 밑천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소?” 처는 왈칵 성을 내며 소리쳤다. “밤낮으로 글만 읽더니 기껏 ‘어떻게 하겠소?’ 소리만 배웠단 말씀이오? 장인바치 일도 못 한다, 장사도 못 한다면, 도둑질이라도 못 하시나요?” “아깝다. 내가 당초 글읽기로 십 년을 기약했는데, 이제 칠 년인걸…….”
허생은 읽던 책을 덮어놓고 일어나 휙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허생은 거리에 서로 알 만한 사람이 없었다. 바로 운종가(雲從街, 종로 네거리)로 나가서 시중의 사람을 붙들고 물었다. “누가 서울 성중에서 제일 부자요?” 변씨라고 일러주는 이가 있어서, 허생이 곧 변씨의 집을 찾아갔다. 허생은 변씨를 보고는 예의를 갖추어 절하고 말했다. “내가 집이 가난한데 뭘 좀 해 보려고 하니 만 냥을 꾸어 주시오.” “그러시오.” 변씨는 별말 없이 당장 만 냥을 내주었다. 허생은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가버렸다. 변씨의 자식과 손님들이 허생을 보니 거지였다. 실 띠의 술이 빠져 너덜너덜하고, 갖신의 뒷굽이 자빠졌으며, 쭈그러진 갓에 허름한 도포를 걸치고, 코에서 맑은 콧물이 흘렀다. 허생이 나가자, 모두들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저이를 아시나요?” “모르지.” “아니, 평생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만 냥을 그냥 내던져 버리고 성명도 묻지 않으시다니, 대체 무슨 영문인가요?”
“이건 너희들이 알 바 아니다. 대체로 남에게 무엇을 빌리러 오는 사람은 으레 자기 뜻을 대단히 선전하고, 신용을 자랑하면서도 비굴한 빛이 얼굴에 나타나고, 말을 중언부언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저 객은 형색은 허술하지만, 말이 간단하고, 눈을 오만하게 뜨며,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재물이 없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해보겠다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닐 것이매, 나 또한 그를 시험해보려는 것이다. 안 주면 모르되, 이왕 만 냥을 주는 바에 성명은 물어 무엇을 하겠느냐?”
매점매석으로 나라의 돈을 긁어모으는 허생
허생이 과일을 몽땅 쓸었기 때문에 온 나라가 잔치나 제사를 못 지낼 형편에 이르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허생에게 두 배의 값으로 과일을 팔았던 상인들이 도리어 열 배의 값을 주고 사가게 되었다. 허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만 냥으로 온갖 과일의 값을 좌우했으니, 우리나라의 형편을 알 만하구나.”
허생은 만 냥을 입수하자, 자기 집에 들르지도 않고 바로 안성으로 내려갔다. 안성은 경기도, 충청도 사람들이 마주치는 곳이요, 삼남(三南)의 길목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대추, 밤, 감, 배, 석류, 귤, 유자 등속의 과일을 모조리 두 배의 값으로 사들였다. 허생이 과일을 몽땅 쓸었기 때문에 온 나라가 잔치나 제사를 못 지낼 형편에 이르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허생에게 두 배의 값으로 과일을 팔았던 상인들이 도리어 열 배의 값을 주고 사가게 되었다. 허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만 냥으로 온갖 과일의 값을 좌우했으니, 우리 나라의 형편을 알 만하구나.” 그는 다시 칼, 호미, 포목 따위를 가지고 제주도에 건너가서 말총을 죄다 사들이면서 말했다. “몇 해 지나면 나라 안의 사람들이 머리를 싸매지 못할 것이다.”
허생이 이렇게 말하고 얼마 안 가서 과연 망건 값이 열 배로 뛰어올랐다. 허생은 늙은 사공을 만나 말을 물었다. “바다 밖에 혹시 사람이 살 만한 빈 섬이 없던가?” “있습지요. 언젠가 풍파를 만나 서쪽으로 줄곧 사흘 동안을 흘러가서 어떤 빈 섬에 닿았습지요. 아마 사문(沙門)(동남아시아의 어느 곳)과 장기(長崎, 일본 나가사키)의 중간쯤 될 겁니다. 꽃과 나무는 제멋대로 무성하여 과일 열매가 절로 익고, 짐승들이 떼지어 놀며, 물고기들이 사람을 보고도 놀라지 않습디다.” 그는 대단히 기뻐하며 말했다. “자네가 만약 나를 그곳에 데려다준다면 함께 부귀를 누릴 걸세.”
사공이 그러기로 승낙했다. 드디어 바람을 타고 동남쪽으로 가서 그 섬에 이르렀다. 허생은 높은 곳에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보고 실망해 말했다. “땅이 천 리도 못되니 무엇을 해 보겠는가? 토지가 비옥하고 물이 좋으니 단지 부가옹(富家翁, 부잣집 늙은 주인)은 좋아하겠구나.” “텅 빈 섬에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대체 누구와 더불어 사신단 말씀이오?” 사공이 물었다. “덕이 있으면 사람이 절로 모인다네. 덕이 없을까 두렵지, 사람이 없는 것이야 근심할 것이 있겠나?”
이때, 변산에 수천의 도적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각 지방에서 군사를 징발하여 수색했으나 좀처럼 잡히지 않았고, 도적들도 감히 나가 활동을 못해서 배고프고 곤란한 판이었다. 허생이 도적들의 산채를 찾아가서 우두머리를 달래었다. “천 명이 천 냥을 빼앗아 와서 나누면 하나 앞에 얼마씩 돌아가겠나?” “일 인당 한 냥이지요.” “모두 아내가 있나?” “없소.” “논밭은 있나?” 도적들이 어이없어 웃었다. “땅이 있고 처자식이 있는 놈이 무엇 때문에 괴롭게 도둑이 된단 말이오?” “정말 그렇다면, 왜 아내를 얻고, 집을 짓고, 소를 사서 논밭을 갈고 지내려 하지 않는가? 그럼 도둑놈 소리도 안 듣고 살면서, 집에는 부부의 낙이 있을 것이요, 돌아다녀도 잡힐까 걱정을 않고, 넉넉함도 누릴 텐데.” “아니, 왜 바라지 않겠소? 다만 돈이 없어 못 할 뿐이지요.”허생은 웃으며 말했다. “도둑질을 하면서 어찌 돈을 걱정할까? 내가 능히 너희들을 위해서 마련할 수 있다. 내일 바다에 나와 보라. 붉은 깃발을 단 것이 모두 돈을 싫은 배이니, 마음대로 가져가라.” 허생이 도적들과 언약하고 내려가자, 도적들은 모두 그를 미친놈이라고 비웃었다. 이튿날, 도적들이 바닷가에 나가보았더니, 과연 허생이 돈 삼십만 냥을 싣고 왔다. 모두들 크게 놀라서 허생 앞에 줄지어 절했다. “오직 장군의 명령을 따르겠소이다.” “너희들, 힘껏 짊어지고 가거라.” 이에, 도적들이 다투어 돈을 짊어졌으나, 한 사람이 백 냥 이상을 지지 못했다.
“너희들, 힘이 한껏 백 냥도 못 지면서 무슨 도둑질을 하겠느냐? 인제 너희들이 양민이 되려고 해도, 이름이 도둑의 장부에 올랐으니, 갈 곳이 없다. 내가 여기서 너희들을 기다릴 것이니, 한 사람이 백 냥씩 가지고 가서 여자 하나, 소 한 필을 거느리고 오너라.”
허생의 말에 도적들은 모두 좋다고 흩어졌다. 허생은 몸소 이천 명이 1년 먹을 양식을 준비하고 기다렸다. 도적들이 빠짐없이 모두 돌아왔다. 드디어 다들 배를 타고 그 빈 섬으로 들어갔다. 허생이 도둑을 몽땅 쓸어 가서 나라 안에 시끄러운 일이 없었다.
그들은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대를 엮어 울을 만들었다. 땅기운이 온전하기 때문에 백곡이 잘 자라서, 한 해나 세 해만큼 걸러 짓지 않아도 한 줄기에 아홉 이삭이 달렸다. 3년 동안의 양식을 비축해 두고, 나머지를 모두 배에 싣고 장기도로 가져가서 팔았다. 장기는 삼십만여 호나 되는 일본의 속주이다. 그 지방은 한참 흉년이 들었는지라 가져간 양식을 다 팔고 은 백만 냥을 얻었다. 허생이 탄식하면서, 남녀 이천 명을 모아 놓고 말했다.
“이제 나의 조그만 시험이 끝났구나. 내가 처음에 너희들과 이 섬에 들어올 때엔 먼저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한 연후에 따로 문자를 만들고 의관(衣冠)을 새로 정하려 하였더니라. 그런데 땅이 좁고 덕이 엷으니, 나는 이제 여기를 떠나련다. 다만, 아이들을 낳거들랑 오른손에 숟가락을 쥐고, 하루라도 먼저 난 사람이 먼저 먹도록 양보케 하여라.”
허생은 이어서 “가지 않으면 오는 이도 없으렸다.”면서 다른 배들을 모조리 불사르고,“바다가 마르면 주워 갈 사람이 있겠지. 백만 냥은 우리나라에서 쓸 곳이 없거늘, 하물며 이런 작은 섬에서랴!”면서 돈 오십만 냥을 바다 가운데 던졌다. 그리고 글을 아는 자들을 골라 모조리 함께 배에 태우면서 말했다. “이 섬에 화근을 없애야지.”
변씨와의 사귐 : 운명관과 현실에 대한 비판
“내가 부자가 되고 싶었다면 백만 냥을 버리고 십만 냥을 받겠소? 이제부터는 당신의 도움으로 살아가겠소. 당신은 가끔 나를 와서 보고, 양식이나 떨어지지 않고 옷이나 입도록 하여주오. 일생을 그러면 족하지요. 왜 재물 때문에 정신을 괴롭힐 것이오?”
허생은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을 구제했다. 그러고도 은이 십만 냥이 남았다. “이건 변씨에게 갚을 것이다.” 허생이 변씨를 찾아갔다. “나를 알아보시겠소?” 변씨는 놀라 말했다. “그대의 안색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으니, 혹시 만 냥을 실패 보지 않았소?” “재물에 의해서 얼굴에 기름이 도는 것은 당신들 일이오. 만 냥이 어찌 도(道)를 살찌게 하겠소?”허생이 웃으며, 십만 냥을 변씨에게 내놓았다. “내가 하루 아침의 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글읽기를 중도에 폐하고 말았으니, 당신에게 만 냥을 빌렸던 것이 부끄럽소.” 변씨는 대경해서 일어나 절하여 사양하고, 십분의 일로 이자를 쳐서 받겠노라 했다. 허생이 잔뜩 역정을 내어, “당신은 나를 장사치로 보는가?”며 소매를 뿌리치고 가버렸다.
변씨는 가만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허생이 남산 밑으로 가서 조그만 초가로 들어가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한 늙은 할미가 우물터에서 빨래하는 것을 보고 변씨가 말을 걸었다. “저 조그만 초가가 누구의 집이오?” “허생원댁입지요. 가난한 형편에 글공부만 좋아하더니, 하루아침에 집을 나가서 5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으시고, 시방 부인이 혼자 사는데, 집을 나간 날로 제사를 지냅지요.” 변씨는 비로소 그의 성이 허씨라는 것을 알고, 탄식하며 돌아갔다. 이튿날, 변씨는 받은 돈을 모두 가지고 그 집을 찾아가서 돌려주려 했으나, 허생은 받지 않고 거절했다.
“내가 부자가 되고 싶었다면 백만 냥을 버리고 십만 냥을 받겠소? 이제부터는 당신의 도움으로 살아가겠소. 당신은 가끔 나를 와서 보고, 양식이나 떨어지지 않고 옷이나 입도록 하여주오. 일생을 그러면 족하지요. 왜 재물 때문에 정신을 괴롭힐 것이오?”
변씨가 허생을 여러 가지로 권유하였으나, 끝끝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변씨는 그때부터 허생의 집에 양식이나 옷이 떨어질 때쯤 되면 몸소 찾아가 도와주었다. 허생은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였으나, 혹 많이 가지고 가면 좋지 않은 기색으로, “나에게 재앙을 갖다 맡기면 어찌하오?” 하였고, 혹 술병을 들고 찾아가면 아주 반가워하며 서로 술잔을 기울여 취하도록 마셨다.
이렇게 몇 해를 지나는 동안에 두 사람 사이의 정이 날로 두터워갔다. 어느 날, 변씨가 5년 동안에 어떻게 백만 냥이나 되는 돈을 벌었던가를 조용히 물어 보았다. “그야 쉬운 일이지요. 조선이란 나라는 배가 외국에 통하질 않고, 수레가 나라 안에 다니질 못해서, 온갖 물화가 제자리에 나서 제자리에서 사라지지요. 무릇, 천냥은 적은 돈이라 한 가지 물품을 독점할 수 없지만, 그것을 열로 쪼개면 백 냥이 열이라, 또한 열 가지 물건을 살 수 있겠지요. 단위가 작으면 굴리기가 쉬운 까닭에, 한 물건에서 실패를 보더라도 다른 아홉 가지의 물건에서 재미를 볼 수 있으니, 이것은 보통 이익을 취하는 방법으로 조그만 장사치들이 하는 짓 아니오? 대개 만 냥을 가지면 족히 한 가지 물품을 독점할 수 있기 때문에, 수레면 수레 전부, 배면 배를 전부, 한 고을이면 한 고을을 전부, 마치 총총한 그물로 훑어내듯 할 수 있지요. 뭍에서 나는 만 가지 중에 한 가지를 슬그머니 독점하고, 물에서 나는 만 가지 중에 슬그머니 하나를 독점하고, 의원의 만 가지 약재 중에 슬그머니 하나를 독점하면, 한 가지 물품이 한 곳에 묶여 있는 동안 모든 장사치들이 고갈될 것이매, 이는 백성을 해치는 길이 될 것입니다. 후세에 당국자들이 만약 나의 이 방법을 쓴다면 반드시 나라를 병들게 만들 것이오.”
“처음에 내가 선뜻 만냥을 꾸어줄 줄 알고 찾아와 청하였습니까?” “당신만이 내게 꼭 빌려 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 능히 만 냥을 지닌 사람치고는 누구나 다 주었을 것이오. 내 스스로 나의 재주가 족히 백만 냥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운명은 하늘에 매인 것이니, 낸들 그것을 어찌 알겠소? 그러므로 능해 나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라, 반드시 더욱 더 큰 부자가 되게 하는 것은 하늘이 지키는 일일 텐데 어찌 주지 않았겠소? 이미 만 냥을 빌린 다음에는 타고난 복이 많아서 하는 일마다 곧 성공한 것이고, 만약 내가 사사로이 했었다면 성패는 알 수 없었겠지요.”
변씨가 이번에는 딴 이야기를 꺼냈다. “방금 사대부들이 남한산성에서 오랑캐에게 당했던 치욕을 씻어보고자 하니, 지금이야말로 지혜로운 선비가 팔뚝을 뽐내고 일어설 때가 아니겠소? 선생의 그 재주로 어찌 괴롭게 파묻혀 지내려 하십니까?”
“어허, 자고로 묻혀 지낸 사람이 한둘이었겠소? 우선, 졸수재(拙修齋) 조성기(趙聖期) 같은 분은 적국에 사신으로 보낼 만한 인물이었건만 베잠방이로 늙어 죽었고, 반계거사(磻溪居士) 유형원(柳馨遠) 같은 분은 군량(軍糧)을 조달할 만한 재능이 있었건만 저 바닷가에서 소요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의 집정자들은 가히 알만한 것들이지요. 나는 장사를 잘 하는 사람이라, 내가 번 돈이 족히 구왕(九王)의 머리를 살 만하였으되 바다 속에 던져 버리고 돌아온 것은, 도대체 쓸 곳이 없기 때문이었지요.” 변씨는 한숨만 내쉬고 돌아갔다.
허생이 제시한 세 가지 책략과 이완의 거부
“이것도 어렵다, 저것도 어렵다 하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하겠느냐? 가장 쉬운 일이 있는데, 네가 능히 할 수 있겠느냐?” “말씀을 듣고자 하옵니다.” “무릇, 천하에 대의를 외치려면 먼저 천하의 호걸들과 접촉하여 결탁하지 않고는 안되고, 남의 나라를 치려면 먼저 첩자를 보내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는 법이다.”
변씨는 본래 이완(李浣) 이 정승과 잘 아는 사이였다. 이완이 당시 어영대장이 되어서 변씨에게 쓸 만한 인재가 없는가를 물었다. 변씨가 허생의 이야기를 하였더니, 이 대장은 깜짝 놀라면서 물었다.“기이하다. 그게 정말인가? 그의 이름이 무엇이라 하던가?” “소인은 그분과 만나서 3년이 지나도록 여태껏 이름도 모르옵니다.” “그인 비범한 사람이야. 자네와 같이 가보세.” 밤에 이 대장은 구종들도 다 물리치고 변씨만 데리고 걸어서 허생을 찾아갔다. 변씨는 이 대장을 문 밖에 서서 기다리게 하고 혼자 먼저 들어가서, 허생을 보고 이 대장이 몸소 찾아온 연유를 이야기했다. 허생은 못 들은 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