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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전

무명 지음 | -
박씨전(朴氏傳)

작자 미상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박씨: 어진 덕을 지니고, 다재다능하며, 선견지명과 도술을 소유한 여장부. 변란이 일어나자, 신통력을 발휘한다.

이시백: 박씨의 남편으로 우의정을 지냄. 처음엔 박씨의 추한 외모를 꺼려했지만, 박씨가 허물을 벗고 미모를 드러내자, 마음을 돌려 박씨의 추종자가 된다.

이득춘: 이시백의 부친. 며느리 박씨의 외모가 추하다고 홀대하지 않고, 박씨의 인품과 재능을 진심으로 아껴준다.

박처사: 박씨의 부친. 금강산에 은거하여 도를 닦아 신선이 된 인물. 도술을 부린다.

계화: 박씨의 시비. 병란이 일어나자, 박씨의 명을 받고 호장(胡將)을 골탕먹인다.

기홍대: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자객. 호왕(胡王)의 사주를 받고 박씨를 살해하기 위해 이시백의 집에 위장침입 하지만, 그녀의 정체를 미리 알고 있었던 박씨에 의해 추방당한다.



흉물스런 박씨와 이시백의 혼인

상공과 신랑은 신부를 한 번 본 후, 다시 볼 수 없었고, 간담이 떨어지는 듯하고 정신이 없어 두 눈이 아찔했다.

명(明)나라 숭정년간(崇禎年間)에 조선국(朝鮮國)에 이득춘(李得春)이란 재상(宰相)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학업에 힘쓴 결과, 문장으로 온 나라를 진동시켰다. 게다가 사람을 알아보는 감식안의 소유자였다. 그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과거급제를 했고, 점점 승진하여 외직으로 경상감사, 내직으로 좌의정을 지냈다.

상공에게는 시백(時白)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시백은 사서삼경(四書三經)과 시서백가(詩書百家)를 통달했고, 계교(計巧)와 술법(術法)이 장안에서 으뜸이었다. 이 때문에 상공은 시백을 몹시 사랑했다.

상공은 바둑과 장기를 잘 두었고, 피리를 잘 불었다. 하루는 상공이 사랑방에 혼자 앉아있는데, 갈건야복(葛巾野服)을 입은 사람이 상공을 찾아왔다. 상공은 그 사람의 용모와 거동이 범상치 않음을 보고, 급히 일어나 공손히 예(禮)를 표시했다. 이 사람은 바로 금강산(金剛山)의 박처사(朴處士)였는데, 상공의 덕이 높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 상공은 주안상을 성대히 차려오게 하여 박처사를 극진히 대접했다.

상공은 박처사가 비범한 사람임을 알아보고 그의 재주를 한번 시험해보려고 마음속으로 벼렸다. 마침 박처사가 상공에게 한번 피리를 불어보거나 바둑을 두자고 청하자, 상공은 기회가 왔다고 여겼다. 상공과 박처사가 마주앉아 바둑을 두었다. 상공은 정신을 과도히 쏟았으나 박처사는 개의치 않고 두었다. 그런데 박처사의 바둑두는 실력이 월등히 뛰어났다. 피리를 각기 불어보았는데, 또한 박처사의 솜씨가 더 빼어났다.

이렇게 여러 날을 지냈다. 하루는 박처사가 상공의 아들 시백을 한번 만나보길 원했다. 상공이 시백을 불러오자, 박처사는 시백의 인물됨을 칭찬했다. 그리고 상공에게 시백을 사위 삼고 싶다고 했다. 시백은 마음속으로 ‘박처사는 예사로운 인물이 아니니, 시백을 박처사의 사위가 되게 한다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곤 쾌히 허락했다. 이에 박처사는 손금을 짚어 혼인 날짜를 잡고, 절차를 조촐하게 하여 금강산으로 찾아오라고 하고, 곧 작별인사를 하고 떠났다.

박처사가 떠난 후에 상공은 집안 사람과 친척을 모아 정혼한 말을 의논하니, 모두들 ‘혼인은 인륜대사(人倫大事)인데, 경솔히 결정했다’고 하며 의견이 분분했다. 상공은 ‘혼인은 하늘이 정해준 인연’이라고 하며 자신의 의향대로 할 것임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리고 결혼 절차를 차려 시백을 데리고 혼인 날짜에 맞추어 금강산으로 향했다.

여러 날 만에 금강산에 도착했는데, 첩첩산중이라 박처사의 집을 찾을 방법이 없었다. 금강산은 어딜 가나 절경이었기에, 상공과 시백은 이리저리 구경하면서 박처사의 집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사오일이 지나도 박처사의 집을 찾지 못했다. 상공과 시백은 지쳐서 당초 약속한 날짜를 맞추어 하루만 더 찾아 헤매기로 했다. 이튿날 상공과 시백이 짐을 꾸려 산골짜기 깊은 길로 점점 들어가다가 박처사를 만났다. 상공과 시백은 박처사의 인도를 받아 그의 집으로 갔다. 박처사의 집은 층암절벽이 좌우로 병풍이 되고, 푸른 소나무, 대나무가 울창하고, 기이한 꽃과 풀이 만발하고, 봉황새와 공작이 날아다니는 가운데 있었다. 이렇듯 집 주변은 경관이 빼어났지만, 정작 박처사의 집은 몇 칸 안 되는 초가집이었다.

날이 저물어 대례(大禮)를 치렀다. 이윽고 박처사가 술병과 두어 가지 채소를 놓은 작은 소반을 들고 나와 상공과 따라온 하인들을 접대했다. 상공은 이런 대접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으나 하인들은 은근히 비웃었다. 다음날 조반을 먹은 후에, 처사는 신부를 아예 데리고 가라고 권했다.

상공은 아들과 신부를 데리고 길을 떠났다. 날이 저물자 여관에 들어가, 신랑과 신부를 데리고 한 방에 들어갔다. 신부가 무릎깨를 벗고 앉았는데, 그 용모가 흉칙하기 그지없었다. 상공과 신랑은 신부를 한 번 본 후, 다시 볼 수 없었고, 간담이 떨어지는 듯하고 정신이 없어 두 눈이 아찔했다. 상공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생각했다. “신부의 외모는 비록 추하지만 그 인물됨은 반듯하리라. 이는 운명이니 내가 이 사람을 중히 여겨야 복이 되리라.” 그리고 시백에게 신부는 우리 가문에 복이 되고, 네 몸에 무궁한 경사(慶事)가 있게 할 것이라 말했다.

여러 날 만에 집에 돌아오자, 일가 친척과 성안에 사는 대신댁 부인들이 신부를 구경하려 많이 모였다. 신부가 들어와 무릎깨를 벗고 중당(中堂)에 앉았는데, 신부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수군수군하다가 일시에 나가버렸다. 그러나 상공은 기쁜 얼굴로 사랑방에 앉아 손님에게 신부의 덕행을 자랑했다. 상공의 부인은 남 보기 부끄럽고 집안 걱정이라며, 신부를 돌려보내고 다른 가문에 구혼하여 어진 며느리를 다시 얻자고 상공에게 간청했다. 그러자 상공이 크게 노하여 ‘사람은 외모보다 행실(行實)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하며, 부인을 나무랐다.

상공의 호통에도 불구하고 부인은 박씨를 미워했고, 시백도 박씨의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자 하인들도 박씨를 박대했다. 박씨는 외로이 슬픔을 머금고, 매일 밥만 먹고 잠만 자며 매사를 전폐하니, 온 집안 사람들이 더욱 미워했다. 다만 상공이 알까 두려워 박대하지 못할 뿐이었다. 상공은 이런 기미를 눈치채고 하인들을 꾸짖어 각별히 조심시켰고, 또한 시백을 불러 박씨를 홀대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 시백은 상공의 훈계를 듣고, 효도하는 차원에서 그날 밤부터 박씨의 방에 들어가 거처하려 했다. 그러나 박씨의 얼굴을 보면 동침할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아 구석에 등을 돌리고 앉았다가 나와 다른 방에서 자고, 새벽이면 상공에게 문안인사를 여쭈었다. 상공은 시백이 박시의 방에 거처하는 줄로 알고 기뻐했다. 시어머니의 박대가 계속되자, 박씨는 상공에게 청하여 뒤 마당에 조그마한 집을 한 채 짓고, 시녀 계화와 함께 그곳에 거처했다.



박씨의 재능과 지혜로움

박씨가 촛불을 밝히고 바늘을 잡아 옷을 지으니, 바느질을 제일 잘한다는 사람들도 박씨의 솜씨에 경탄을 금하지 못했다. 하룻밤 사이에 관복을 지었는데, 앞에는 봉황을 뒤에는 청학(靑鶴)을 수놓았으며 조금도 흠잡을 곳이 없었다.

이때 나라에서 상공을 우의정으로 패초(牌招)하였으니, 밤을 지내면 조정에 들어가야 했다. 상공이 부인에게 관복(官服)을 준비하라고 하자, 부인은 바느질 솜씨로 이름난 사람들을 데려다 만들려 했다. 그런데 박씨는 이 말을 듣고 자신이 직접 상공의 관복을 지어 올리겠다고 했다. 부인은 외면했지만 상공은 박씨가 특별한 재주가 있을 것이라 믿고 옷감을 며느리 박씨에게 보냈다. 박씨가 촛불을 밝히고 바늘을 잡아 옷을 지으니, 바느질을 제일 잘한다는 사람들도 박씨의 솜씨에 경탄을 금하지 못했다. 하룻밤 사이에 관복을 지었는데, 앞에는 봉황을 뒤에는 청학(靑鶴)을 수놓았으며 조금도 흠잡을 곳이 없었다.

상공이 관복을 입고 궁궐에 들어가 임금을 뵈니, 임금이 상공을 보고 ‘경의 관복을 지은 사람이 누구냐’고 묻었다. 상공은 며느리가 지은 것이라고 아뢨다. 임금은 상공의 옷 앞뒤에 수놓은 봉황과 청송을 보고 상공 집안에서 며느리를 고생시키고 독수공방케 함을 알아냈다. 이에 상공은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사실대로 아뢰었다. 상공의 말을 듣고 난 후, 임금은 박씨의 관복 짓는 솜씨는 사람의 재주로는 불가한 것이라고 감탄하며, 상공에게 박씨를 잘 대해 주라고 했다. 또한 임금은 박씨를 위하여 매일 서 말의 곡식을 내려 주었다.

상공은 머리를 조아리며 임금의 명령을 받들고 집으로 돌아와, 부인과 시백을 불러, 임금께서 내리신 분부와 서 말의 곡식을 내려주신 일을 말했다. 그리고 여전히 박씨를 박정하게 대하는 시백을 꾸짖었다. 시백이 잘못함을 아뢰자, 상공은 다시 조용히 훈계하며 각별히 조심하라고 당부했다.이날부터 나라에서 내려주신 쌀 서 말을 세 끼니에 한 말씩 지어주니, 박씨는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다 먹고 오히려 부족한 듯이 여겼다. 그 후로는 집안사람들이 감히 박씨를 박대하지 못했고, 상공은 더욱 공손히 박씨를 대했다.

하루는 박씨가 상공에게 ‘재산이 넉넉하지 못하니, 재산을 모을 방도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상공은 ‘빈부(貧富)는 운명이니 인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했다.

박씨는 제주산 말 가운데 사납고 비루먹은 망아지를 300냥을 주고 사오게 했다. 그리고 한끼에 쌀 서되, 보리 서 되, 참깨 서 되씩을 먹여 기르게 했다. 이렇게 3년을 기르자, 이 망아지는 한 마리 훌륭한 말이 되었다. 이 말의 몸은 용 같고, 머리는 범 같고, 걸음은 가을하늘의 구름 같았다. 박씨가 상공께 여쭈었다. “모월 모일이 되면 중국에서 사신이 올 것입니다. 그때 이 말을 영은문(迎恩門)에 매어두면, 사신이 보고 당장에 사자하며 말 값을 물을 것이니, 값을 3만냥이라 하옵소서.”

상공은 말 값이 너무 과함을 염려하면서도 박씨의 말대로 해보려고 했다. 과연 때가 되자, 사신이 영은문에 당도하여, 그 말을 보고 놀라 말 임자를 찾았다. 이에 상공 집의 하인이 말 값이 3만냥이라고 하자, 오히려 싸다고 하며 두말없이 3만냥을 주었다. 상공은 며느리 박씨의 지혜로움을 칭찬하고, 기이함에 탄복했다.

또한 박씨는 뒤마당 곁방 사방에다 나무를 심어 무성하게 자라게 했는데, 그 나무 가운데 바람과 구름이 어우러져 변화 무궁했다. 그리고 곁방 문 위에 ‘피화당’(避禍堂)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상공이 후원을 방문했다가, 나무와 ‘피화당’에 대해 박씨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보니, 박씨가 대답했다. “이후로 불행한 때를 당하면 저 나무로 인하여 화를 면할 수 있을 것이므로 당호(堂號)를 ‘피화당’이라 했습니다.”

상공이 그 말을 듣고 놀라고 의심스러워 ‘이후의 불행’에 대해 또 묻자, 박씨는 천기누설이라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상공은 박씨를 영웅호걸이라 칭송하며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상공은 또한 시백의 못나고 어리석음을 들먹였다. 하지만 박씨는 시백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으로 돌리자, 상공은 박씨의 인자함에 탄복하여 눈물을 흘렸다.

이때는 나라가 태평성대 해서 널리 인재를 등용하려고 과거를 보았다. 하루는 박씨가 꿈을 꾸고 연못가에서 연적을 얻었다. 박씨는 시녀 계화를 시켜 시백에게 연적을 보냈다. 시백은 과거 시험장에서 이 연적을 기울여 먹을 갈아 일필휘지(一筆揮之)로 답안지를 작성하여 장원급제(壯元及第)를 했다. 시백이 어사화(御賜花)를 꽂고 청홍개(靑紅蓋)를 쓰고, 꽃 뿌리는 동자를 앞 세우고, 악대의 연주를 받으며 성안의 큰길로 나오니, 장원급제한 시백의 얼굴이 옥 같아서 천상(天上)의 선관(仙官) 같으니, 누구나 칭찬했고, 성안의 백성들이 다투어 구경하며 축하했다.

한편 박씨는 피화당에서 외로이 수심에 쌓여 지냈다. 하루는 박씨가 시집온 지 3년이나 되어도 친정 소식을 듣지 못해, 이틀 말미만 주면 잠깐 다녀오겠다고 상공에게 청했다. 상공은 그렇게 빨리 다녀온다는 것이 미심쩍었지만 허락해 주었다. 과연 박씨는 이틀만에 금강산에 갔다 돌아와 친정집안의 무사함과 사돈인 박처사가 아무날 찾아올 것임을 아뢰었다. 박처사가 방문한다는 날이 되자, 상공은 주안상을 성대히 준비하고, 사랑방을 깨끗이 청소하게 하고, 의관을 단정히 입고 기다렸다. 이윽고 오색구름이 영롱하고 피리소리 들리는데, 박처사가 백학을 타고 공중에서 내려와 당에 닿았다. 상공은 박씨와 시백의 금슬이 좋지 않음을 미안해했지만, 박처사는 도리어 자신의 딸을 거두어 준 것을 고맙게 여겼다.



박씨의 변신

허물을 벗은 박씨의 얼굴은 구슬 같고 달 같았으며, 그 아름답고 고운 자태는 양귀비라도 미치지 못할 것 같았다.

박처사는 닷새를 머물다가 박씨를 불러다 놓고, 이제 액운이 다했으니 허물을 벗으라는 말을 남기고, 상공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작별인사를 하고 떠났다. 박씨의 얼굴이 남보기 끔찍할 정도로 추했던 까닭은 액운이 끼어서였다. 이날 밤에 박씨는 목욕을 하고 뜰에 내려가 하늘을 향해 기도를 한 후 방에 들어가 허물을 벗었다.

허물을 벗은 박씨의 얼굴은 구슬 같고 달 같았으며, 그 아름답고 고운 자태는 양귀비라도 따라오지 못할 것 같았다. 계화가 이 사실을 상공에게 아뢰자, 상공은 급히 피화당에 와서 박씨의 아리따운 모습을 보고 정신이 혼미하여 아무 말도 못했다. 부인과 온 집안 식구가 이 말을 전해듣고 기이하게 여겼다.

이때 시백도 정신없이 피화당에 들어갔지만 전일 박대하던 일을 생각하여 감히 방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주저했다. 문 밖에서 엿보니 박씨가 과연 경국지색(傾國之色)이었고, 방안에서 향내가 진동했다. 그날 밤 시백은 저녁 먹는 것도 잊은 채 다시 피화당에 들어갔는데, 박씨가 촛불을 밝히고 단정히 앉아 있었다. 시백이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 했지만 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시백은 박씨와 함께 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러다가 얼떨결에 방안에 들어가 앉았다. 박씨는 눈치를 채고 마음속으론 웃었지만 겉으로는 낯빛을 엄숙히 하고 전혀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시백은 이렇듯 마음만 애태우다가 급기야 병이 나고 말았다. 시백은 그날로부터 식음(食飮)을 전폐했고, 그 모습이 날로 초췌해졌다.

어느 날 황혼 무렵에 박씨가 계화를 시켜 시백을 청하자, 시백은 피화당으로 급히 달려갔다. 박씨가 시백에 대한 그간의 노여움을 풀고, 시백에게 수신제가(修身齊家)에 힘쓰라고 했다. 이에 시백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 이날 박씨와 시백은 처음으로 원앙금침을 펴고 동침했는데, 그 정이 비할 데 없이 좋았다. 시백은 벼슬살이를 하면서 집에서는 박씨와 모든 일을 의논하며 잘 지냈다. 이렇게 지내던 어느 날 시백은 평안감사를 제수 받고 박씨와 함께 떠나려 했다. 그러자 박씨는 ‘부모님을 잘 봉양하고 있을 터이니, 감사는 부디 정사(政事)를 잘하여 나라에 충성하라’고 했다. 시백은 평양에 부임하여, 백성의 어려움과 수령의 선정(善政) 여부를 염탐하여 다스리니, 일년 사이에 평양도내에 훌륭한 감사라는 소문이 자자해졌다. 임금이 이 사실을 전해듣고 시백을 기특히 여겨 다시 내직(內職)의 병조판서로 부르셨다.



호국의 음모와 병자호란의 발발

박씨가 그 칼을 들고 기홍대의 배 위에 앉아, 조선을 도모하고자 하는 호국의 배은망덕(背恩忘德)을 호되게 꾸짖었다. 기홍대가 사실대로 말하며 목숨을 구걸하자, 박씨는 기홍대를 살려 보냈다.

갑자년(甲子年) 8월에 시백이 어명(御命)을 받들고 남경(南京)에 사신으로 갔을 때, 임경업을 데리고 갔다. 그때 마침 청나라가 총마가달(驄馬可達)의 난을 당해 천자(중국황제)께 구원병을 요청했다. 천자가 조선에서 온 사신으로 청병장(請兵將)을 삼아 구원하라고 명했다. 이에 시백과 임경업이 총마가달을 쳐 무너뜨리고, 호국을 구원했다. 천자가 이를 가상히 여겨 금은보화를 많이 내려주었다. 시백과 임경업이 본국에 귀국하자, 임금 또한 가상히 여겨 시백을 우의정으로, 경업을 도원수(都元帥)로 삼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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