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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질

박지원 지음 | -
호질

박지원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범: 강한 짐승이기는 하지만 다른 짐승들에게 먹히기도 한다. 선비의 본질이 깨끗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북곽선생을 만나서도 잡아먹지 않고 일장연설을 한 후 그냥 가버린다.

북곽선생: 학문과 도덕이 높은 선비로 칭송을 받지만 사실은 과부 동리자와 몰래 만나는 이중 인격적인 인물이다. 동리자의 아들들에게 쫓긴다.

동리자: 동쪽 마을에 사는 과부로 절개가 뛰어나 천자와 제후로부터 칭송을 들었으나 실제로는 성이 다른 아들 다섯을 둔 부인으로 북곽선생과 밤에 몰래 만난다.

아들들: 동리자의 아들들로 어머니의 방에서 북곽선생의 목소리를 듣고 여우가 북곽선생으로 변신한것이라고 생각하여 잡으려고 한다.

농부: 새벽에 일하러 나왔다가 북곽선생이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것을 보고 무슨 기도를 올리고 있는가 묻는다.



선비를 먹으면 맛있을까, 맛없을까

의원이란 의심스러운 자다. 의심스러운 것을 남에게 시험하여 해마다 사람을 죽이는데 그 수가 항상 수만 명에 이른다. 또 무당이라는 것은 속이는 자다. 신을 속이고 백성들을 유혹하여 해마다 사람을 죽이는데 그 수가 수만 명에 이른다.

범은 슬기롭고 성스럽고 문무를 겸비하고 자상하고 효성스럽고 지혜가 있고 어질며 용맹스럽고 씩씩하고 용기가 있어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다. 그러나 비위라는 짐승은 범을 먹고, 죽우(竹牛)도 범을 먹고 박(駁)도 범을 먹고, 오색 사자도 큰 나무가 있는 산에서 범을 먹고, 자백(玆白)도 범을 먹고, 표견(豹犬)도 날아서 범과 표범을 먹고, 황요(黃要)도 범과 표범의 심장을 취해서 먹는다.

한편 활무골은 범과 표범에게 먹힌 뒤 뱃속에서 범과 표범의 간을 먹는다. 또 추이(酋耳)는 범을 만나면 찢어서 씹고 범은 맹용이라는 짐승을 만나면 눈을 감고 감히 쳐다보지도 못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맹용을 두려워하지 않고 범만 두려워하니 범의 위엄은 엄청난 것이다.

범이 개를 먹으면 취하고 사람을 먹으면 신이 생긴다. 범이 처음으로 사람을 먹으면, 그 귀신이 굴각이 되어 범의 겨드랑이에 붙어서 범으로 하여금 남의 집 부엌으로 들어가 그 솥을 핥게 한다. 그러면 그 집주인은 배고픈 생각이 나서 밤에라도 아내에게 밥을 짓게 한다.



범이 두 번째로 사람을 먹으면, 그 귀신이 이올이 되어 범의 광대뼈에 자리잡고 높은 곳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만일 골짜기에 함정이나 활이 있으면 먼저 가서 그것을 치워버린다. 범이 세 번째 사람을 먹으면, 그 귀신은 육혼이 되어 범의 턱에 붙어살며 그가 아는 벗들의 이름을 외우게 된다.

하루는 범이 귀신을 불러 말했다. “장차 해가 저무는데 어디 가면 먹을 것을 취할 수 있겠느냐?” 굴각이 말했다. “내가 얼마 전 점을 쳐보니 뿔도 나지 않고 깃도 없는 짐승 같은 물건이 있었습니다. 눈 속에 발자국이 나 있는데, 조금 걷다가는 쉬는 꼴이 아주 서툴렀고 꼬리가 뒤통수에 붙어 있어서 그 꽁무니를 가리지 못했습니다.”

이올이 말했다. “동쪽 문에 먹을 것이 있는데 그 이름은 의원입니다. 입으로 온갖 풀을 다 먹어서 살에서 향기가 납니다. 또 서쪽 문에 먹을 것이 있는데 그 이름은 무당이라고 합니다. 백 가지 신에게 이쁘게 보이려고 날마다 목욕하여 살이 깨끗합니다.”

그러나 범은 수염을 뻗치며 노해서 말했다. “의원이란 의심스러운 자다. 의심스러운 것을 남에게 시험하여 해마다 사람을 죽이는데 그 수가 항상 수만 명에 이른다. 또 무당이라는 것은 속이는 자다. 신을 속이고 백성들을 유혹하여 해마다 사람을 죽이는데 그 수가 수만 명에 이른다. 이리하여 여러 사람의 노여움이 뼈에 들어가서 그것이 변하여 금잠(金簪)이 되었으니 독이 있어 먹을 수가 없다.”

이에 죽혼이 말했다. “숲 속에 고기가 있는데, 어진 간과 의리가 있는 담(膽)을 가졌습니다. 충성스런 마음을 안고 깨끗한 마음을 품었습니다. 음악을 익히고 예의를 행합니다. 입으로 백가(百家)의 말을 외고 마음은 만물의 이치를 통하고 있습니다. 이를 이름하여 덕이 높은 선비라 하옵는데, 도를 닦아 그 수양이 외모에 드러났으며 다섯 가지 맛을 모두 겸비하고 있습니다.

이때 범이 눈썹을 치켜세우고 침을 흘리면서 만족해서 웃으며 말했다. “내 그 자세한 것을 듣고 싶구나.” 귀신들은 다투어 범에게 천거했다. “하나의 음(陰)과 하나의 양(陽)을 도(道)라 이르는데 선비는 이것을 관통했습니다. 오행(五行)이 서로 나고 육기(六氣)가 서로 베풀어지는데 선비는 이것을 인도하오니 먹기에 아름답고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때 범은 갑자기 서운한 기색으로 변해서 아주 못마땅한 어조로 말했다. “음양이라는 것은 한 기운이 없어지기도 하고 장성하기도 하는 것인데 이 두 가지를 겸비했다면 그 고기가 잡될 것이다. 또 오행(五行)은 위치를 정하고 있어 서로 먼저 생기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인데, 이제 억지로 자모(子母)가 되어 짜고 신맛을 분배했으니 그 맛이 순수하지 못할 것이다. 또 육기(六氣)는 스스로 행해지는 것이요, 베풀고 인도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는 것인데 이제 망령되이 재상(財相)이라고 일컬어 사사로이 자기의 공을 나타내고 있으니 그 고기를 먹다가는 낯설고 딱딱해서 체하거나 구역질이 날 것이다.” 이에 여러 창귀들은 감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아들 다섯을 둔 과부의 방에 북곽선생은 왜 들어갔나?

“오랫동안 선생의 덕(德)을 사모해왔사온데 오늘밤에는 원컨대 선생의 글 읽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북곽선생은 옷깃을 정제하고 무릎을 꿇고 앉아 『시전(詩傳)』을 외웠다.

정나라의 어느 고을에, 벼슬에 욕심을 내지 않는 선비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를 북곽선생(北郭先生)이라고 불렀다. 나이 사십에 손수 교정한 책이 일만 권이요, 여섯 가지 경서의 뜻을 덧붙이고 다시 쓴 것이 일만 오천 권이나 되었다. 이에 천자(天子)가 그 뜻을 가상히 여기고 제후(諸侯)들이 그 이름을 사모했다.

한편 그 고을 동쪽에 얼굴이 아름답고 일찍 과부가 된 자가 있었는데 그를 동리자(東里子)라 불렀다. 천자가 그 절개를 아름답게 여기고 제후들이 그 어진 마음을 사모하여 그 고을 둘레 수 리(里)를 봉(封)하여 주고는 ‘동리 과부의 마을’이라고 했다.

동리자가 수절은 잘 했으나, 자식이 다섯이 있었고 각각 그 성(姓)이 달랐다. 어느 날 다섯 아들은 서로 말하기를, “문 북쪽에서는 닭이 울고 문 남쪽에서는 별이 밝은데 방안에 웬 남자 소리가 나니 북곽선생과 똑같은가?” 하고 창 틈으로 상황을 살펴보았다. 이때 동리자가 북곽선생에게 청했다. “오랫동안 선생의 덕(德)을 사모해왔사온데 오늘밤에는 원컨대 선생의 글 읽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북곽선생은 옷깃을 정제하고 무릎을 꿇고 앉아 『시전(詩傳)』을 외웠다. “원앙새는 병풍에 있고 흐르는 반딧불은 밝기도 해라. 가마솥과 세 발 솥은 무엇을 본떠 만들었는가. 흥이로구나.” 이때 다섯 아들이 서로 이르기를, “예법에 과부의 방에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는데, 북곽선생처럼 어진 사람이 이럴 리가 있겠는가. 내 들으니 정읍(井邑)의 성이 무너져서 여우가 드나드는 구멍이 있다고 하고, 또 들으니 여우가 천 년을 묵으면 사람의 모양으로 변할 수 있다고 하니 이것은 그 여우가 북곽선생으로 변한 것이 아닐까?”하고 상의했다.

“내 들으니 여우의 갓을 얻는 사람은 천금을 가진 부자가 되고, 여우의 신발을 얻는 사람은 대낮에도 모습을 감출 수가 있으며, 여우의 꼬리를 얻는 자는 남에게 잘 보여 사람들이 기뻐한다고 하니 우리 이 여우를 죽여서 나누어 갖도록 하자.”





범을 만나 아첨하는 똥 묻은 북곽선생

“그 거룩하신 이름은 신령스러운 용과 나란히 할 수 있어 바람과 구름을 마음대로 부리시니 하토(下土)의 천한 백성은 감히 그 아래에 있습니다.”

다섯 아들은 방안으로 들어가 선생을 포위하고 함께 때리려 했다. 북곽선생은 크게 놀라서 달아났는데 남이 자기를 알아볼까 두려워 팔을 목에 감고, 귀신처럼 춤을 추고 웃으면서 문을 나서다가 자빠져서 그만 들판의 웅덩이에 빠져버렸다. 그 웅덩이에는 똥이 가득 차 있었다.

웅덩이에서 억지로 헤쳐나와서 머리를 들고 쳐다보니, 이때 범이 바로 앞에 다가와 있었다. 범은 얼굴을 찡그리고 구역질을 하면서 코를 가리고 머리를 옆으로 틀어 탄식하며 말했다. “에이, 선비한테서 냄새가 나는구나.” 북곽선생은 머리를 조아리고 기어서 앞으로 나아가 세 번 절하고 나서 무릎을 꿇어 올려다보며 말했다. “범의 덕은 지극하십니다. 어른들은 그 변하는 것을 본받고, 왕은 그 걸음걸이를 배우며, 사람의 자식은 그 효성을 본받고, 장수들은 그 위엄을 취하고자 합니다. 그 거룩하신 이름은 신령스러운 용과 나란히 할 수 있어 바람과 구름을 마음대로 부리시니 하토(下土)의 천한 백성은 감히 그 아래에 있습니다.”



똥 묻은 선비를 준엄하게 꾸짖는 범

범이 일찍이 표범을 잡아먹지 않는 것은 같은 무리이기 때문에 차마 잡아먹을 수 없어서이다. 그런데 범이 노루와 사슴을 잡아먹은 것이 사람이 노루와 사슴을 잡아먹은 것만큼 많지 않고 범이 마소를 잡아먹은 것이 사람이 마소를 잡아먹은 것만큼 많지 않으며, 범이 사람을 잡아먹은 것이 사람이 서로 잡아먹은 것만큼 많지 않다.

이 말을 듣고 범은 선생을 심하게 꾸짖었다.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마라. 전에 내가 들으니 선비는 아첨한다 하더니 과연 그렇구나. 네가 평소에 천하의 악한 이름을 다 모아서 망령되이 나에게 덮어씌우더니 지금은 일이 급해지자 눈앞에서 아첨을 떠니 누가 곧이듣겠느냐. 대체로 천하의 이치는 하나인 것이니, 범의 성품이 악하다면 사람의 성품 또한 악한 것이요, 사람의 성품이 착하다면 범의 성품이 또한 착한 것이다. 너의 천 가지 말, 만 가지 말이 오상(五常)에 있다. 그런데 도회지에서 코 베이고 발꿈치 잘리고 얼굴에 문신하고 다니는 것들은 모두 오륜을 지키지 못한 자들이 아니냐. 포승줄과 먹줄, 도끼와 톱 같은 형벌을 행하는 도구들이 매일 쓰여져서 쉴 겨를이 없는데도 죄악을 중지하지 못하는구나. 범의 세계에는 원래 그런 형벌이 없으니 이것으로 보자면 범의 본성이 인간의 본성보다 어질지 않느냐.

또 범은 초목을 먹지 않고 벌레와 물고기도 먹지 않으며, 누룩이나 술과 같이 좋지 못한 음식을 좋아하지 않으며, 순종하고 굴복하는 하찮은 것들을 차마 먹지 않는다. 산에 들어가면 사슴을 사냥하고 들로 나가면 말과 소를 잡아먹기 위해 비굴해진다거나 음식 따위로 다투는 일이 없으니 범의 도(道)가 어찌 공명정대한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고 너희는, 범이 사슴을 먹는 것은 미워하지 않으면서, 말이나 소를 먹으면 원수로 아니, 이것은, 사슴은 사람에게 은혜가 없고, 말과 소만 너희들에게 공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런데 너희들은 소나 말들이 태워주고 일해주는 공로와, 따르고 충성하는 정성을 다 저버리고 날마다 푸줏간을 채워 뿔과 갈기도 남기지 않고 먹으면서도 다시 우리의 노루와 사슴도 넘보아서 산에도 들에도 먹을 것이 없게 만든단 말이냐. 하늘이 일을 공평하게 처리한다면 너희가 죽어서 나의 밥이 되어야 하겠느냐, 그렇지 말아야 하겠느냐?

대체로 제 것이 아닌 것을 취하는 것을 ‘도(盜)’라 하고, 살아있는 것을 괴롭히고 물건을 해치는 것을 ‘적(賊)’이라 한다. 너희가 밤낮으로 쏘다니며 팔을 걷고 눈을 부릅뜨고 노략질하면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심한 놈은 돈을 형이라고 부르고 장수가 되기 위하여 제 아내를 죽이기도 하니 다시 윤리 도덕을 논할 수도 없다. 뿐만 아니라 메뚜기에게서 먹이를 빼앗아 먹고, 누에에게서 옷을 빼앗아 입고, 벌을 막고 굴을 따며, 심한 놈은 개미 새끼를 젓 담아서 조상에게 바치니 잔인무도한 것이 무엇이 너희보다 더하겠느냐. 너희가 이치를 말하고 성품을 논할 적에 걸핏하면 하늘을 들먹이지만 하늘의 입장에서 보자면 범이나 사람이나 다 같이 만물 중의 하나이다. 천지가 만물을 낳은 인(仁)으로 논하자면 범과 메뚜기, 누에, 벌, 개미 및 사람이 다 같이 땅에서 길러지는 것으로 서로 해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선악을 분별해 보자면 벌과 개미의 집을 공공연히 도둑질하는 것은 인간만이 하는 일로 인간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큰 도둑이 된 것이다. 또 메뚜기와 누에의 밑천을 약탈하는 것은 인간의 인과 의를 해친 것이다.

범이 일찍이 표범을 잡아먹지 않는 것은 같은 무리이기 때문에 차마 잡아먹을 수 없어서다. 그런데 범이 노루와 사슴을 잡아먹은 것이 사람이 노루와 사슴을 잡아먹은 것만큼 많지 않고 범이 마소를 잡아먹은 것이 사람이 마소를 잡아먹은 것만큼 많지 않으며, 범이 사람을 잡아먹은 것이 사람이 서로 잡아먹은 것만큼 많지 않다. 지난해 관중(關中) 땅에 큰 가뭄이 들자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은 것이 수만 명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잡아먹기로야 춘추시대 같은 때가 있었을까. 춘추시대에는 공덕을 세우기 위한 싸움이 열에 일곱 번이요, 원수를 갚기 위한 싸움이 열에 세 번이었는데, 그래서 흘린 피가 천 리를 물들였고, 버려진 시체가 백만이나 되었다.

그러나 범의 세계는 홍수나 가뭄을 모르기 때문에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원수도 공덕도 모두 잊어버리기 때문에 누구를 미워하지 않으며, 운명을 알아서 따르기 때문에 무당과 의사의 간사함에 속지 않고, 타고난 그대로 천성을 다하기 때문에 세속의 이해에 병들지 않으니, 이것이 곧 범이 지혜롭고 성스러운 이유이다. 우리 몸의 얼룩무늬 한 점만 엿보더라도 그 빛나는 무늬를 천하에 자랑할 수 있으며, 한 자 한 치의 칼날도 빌리지 않고 다만 발톱과 이빨을 가지고 용감함을 천하에 떨치고 있다. 솥과 술잔에 범과 원숭이를 그려 넣은 것은 우리가 천하에 효성스럽기 때문이다. 하루에 사냥을 해서 까마귀와 소리개, 개미에게까지 먹이를 남겨주니 어진 것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굶주린 자를 잡아먹지 않고 병든 자를 잡아먹지 않고, 상복 입은 자를 잡아먹지 않으니 그 의로운 것이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너희들이 먹는 것은 어질지 못하기 짝이 없도다! 덫이나 함정을 놓는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오히려 새그물, 노루망, 큰그물, 고기그물, 수레그물, 삼태그물 따위의 온갖 그물을 만들어냈으니 처음 그것을 만들어 놓은 놈이야말로 세상에 가장 재앙을 끼친 자이다. 그 위에 또 가지각색의 창이며, 칼에다가 화포란 것까지 있어서 이것을 한 번 터뜨리면 소리는 산을 무너뜨리고 천지에 불꽃을 쏟아내서 벼락치는 것보다 무섭다.

그래도 아직 잔인함이 부족해서 이에 부드러운 터럭을 쪽 뽑아서 아교에 붙여서 붓이라는 뾰족한 물건을 만들어냈으니 그 모양은 대추씨 같고 길이는 한 치도 못되는 것이다. 이것을 오징어의 시커먼 물에 적셔서 가로세로로 찔러대는데 구불텅한 것은 세모창 같고, 예리한 것은 칼날 같고, 두 갈래 길이 진 것은 가시창 같고, 곧은 것은 화살 같고, 팽팽한 것은 활 같아서 이 병기를 한 번 휘두르면 온갖 귀신이 밤에 곡을 한다. 서로 잔인하게 잡아먹기를 너희들보다 심한 것이 어디에 있겠느냐?“

북곽선생은 자리를 떠나 엎드려서 주춤거리다가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말했다. “『맹자』에 말하기를, ‘비록 악한 사람이 있더라도 목욕재계(齋戒)하면 하느님을 섬길 수 있다’ 고 했사오니 하토(下土)의 천한 백성은 감히 밑에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고 나서 숨을 죽이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으나 범은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이에 진실로 황송하고 진실로 두려워서 손을 마주잡고 머리를 조아리다가 우러러보니 동방이 밝았고 범은 이미 가버리고 없었다.

이때 농부가 아침에 김을 매러 나왔다가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어찌 이렇게 일찍 들에 나오셔서 절을 하고 계십니까?” 북곽선생은 엄숙하게 말했다. “성현의 말씀에 ‘하늘이 높다 해도 머리를 아니 굽힐 수 없고, 땅이 두텁다 해도 조심스럽게 딛지 않을 수 없다’고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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