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는 내 뜻대로 키울 줄 알았습니다
김선희 지음 | 글로세움
내 아이는 내 뜻대로 키울 줄 알았습니다
김선희 지음
글로세움 / 2021년 3월 / 264쪽 / 14,000원
잘 하고 있는 줄 알았다
내가 못했으니 너만이라도 - “제가 필요한 게 아니잖아요” 넉넉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아이가 생기면 반드시 가르치리라 생각한 한 가지가 있었다. 빠듯한 살림 탓에 낮밤으로 일하시던 어머니께 한 번도 말하지 못했던 나의 소원? 바로 피아노였다.
초등학생 시절, 교실에 놓여 있는 피아노를 치는 아이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꼭 한번 배워보고 싶었지만 결국 기회를 갖지 못하고 어른이 되었다. 꼭 피아노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다장조 이외의 음계들을 읽지 못해 음악 선생님께 민망한 질타를 받았을 때도 생각했다. ‘피아노를 배웠더라면 이런 일은 겪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나의 1호 아이였던 지훈이는 7살이 되며 자연스레 피아노 레슨을 시작했다. 그야말로 엄마의 설움과 염원이 가득 담긴 배움이었다.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듯, 아들은 눈에 띄는 실력 향상을 보임으로써 엄마의 어깨를 으쓱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4년 뒤, 체르니 30번 진입을 목전에 둔 어느 날이었다. ‘엄마, 나 피아노 그만하고 싶어. 너무 힘들고 어려워.’ ‘아, 올 것이 왔구나.’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레슨을 받으러 가는 아이의 얼굴이 어두워지기 시작한 걸 눈치 챘던 것이다.
당시에는 사실 ‘피아노를 언제까지 이 정도 가르쳐야겠다’는 목표를 세운 건 없었다. 그저 ‘나는 못한 것을 네게는 가르치겠다.’라는 시작점만 명확했다. 그러나 적어도 체르니 30번은 마쳐야 한다는 주변의 말을 들었던 탓에 쉽게 그만두라고 허락할 수가 없었다. 그 정도는 하고 끝내야 나중에 처음 보는 악보일지라도 문제없이 연주할 수 있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더 다니고 싶지 않다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레슨을 이어가게 만들기로 했다.
“한 달만 더 다녀보자.” “한 주만 더 다녀보자. 지금 그만두면 너 그동안 고생한 거 다 잊어버린대. 너무 아깝잖아.”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며 아이와 신경전 벌이기를 며칠?. 마침내 아들은 엄마에게 편지 한 통을 내밀었다.
엄마께. 아들 유지훈입니다. 제가 피아노를 배운 지 어느덧 4년이 되어가네요. 이제 저는 악보도 잘 읽을 줄 알고?(중략)? 저는 피아노를 전공할 것도 아니니 이 정도만 배워도 될 것 같습니다. ?(중략)? 무엇보다 피아노는 제가 필요해서 배우는 게 아니고, 엄마가 필요해서 시키는 거잖아요. 그러니 피아노를 그만 배우게 해 주세요. 부탁입니다. - 아들 유지훈 올림
아들은 편지를 통해 피아노를 배우고 싶지 않은 이유를 구구절절 짚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굵은 표시로 강조한 ‘제가 필요해서 배우는 게 아니고 엄마가 필요해서 시키는 거잖아요’를 보니 반박할 말이 없었다. ‘뼈 때리는’ 아이의 지적에 더 이상 피아노를 배우라고 할 수 없었다. 결국 6개월간의 실랑이 끝에 체르니 30번을 마치지 못하고 끝이 났다.
2년 만에 열린 피아노 뚜껑: 지훈이는 그 후 2년 동안 한 번도 피아노 뚜껑을 열지 않았고 피아노 위에는 먼지만 쌓여 갔다. 남편과 나는 이제 피아노 치는 방법을 완전히 잊어버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6학년이던 지훈이 학교에서는 오케스트라 창단 준비를 하고 있었다. 창단 인원이 부족했던 탓에 엄마가 학교 임원인 아이들은 우선적으로 신청을 해야 했고, 나 또한 임원이었던 터라 지훈이는 자연스럽게 입단하게 되었다. 저렴한 비용을 내면 가르쳐 주기까지 한다니 엄마 입장에서는 안 할 이유가 없었다.
피아노는 싫었지만 음악은 좋아했던 아들은 피아노가 아닌 다른 악기를 연주하게 될 거란 이야기에 흥미를 보였다. 그렇게 아들은 오케스트라에서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했고, 아이들과의 합주도 재미있었는지 잊고 있던 음악의 즐거움을 되찾은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굳게 닫혀있던 피아노 뚜껑을 아이가 직접 오픈한 것이다!
피아노 뚜껑을 연 지훈이의 손에는 악보 하나가 들려 있었다. 다름 아닌 마룬5(Maroon5)의
이라는 노래 악보였다. 피아노 치는 법을 깡그리 잊어버렸을 거란 엄마의 생각을 산산조각 내며 아들은 처음에는 다소 헤매는 듯 하더니 금세 능숙하게 연주해 나갔다. ‘체르니 30번을 완수하지 않으면 헛돈 쓴 거다.’라는 말이 헛소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지훈이는 이 날을 시작으로 매일같이 본인이 즐겨 듣는 팝 가수들의 악보와 유튜브 연주자들을 따라하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았다. ‘해야만’ 하는 고루한 체르니가 아니라 본인이 ‘하고픈’ 연주곡을 치니 어떤 강요나 설득도 필요 없었다.
아이는 줄기차게 피아노를 쳐댔다. 정말로 눈뜨고서부터 학교 가기 직전까지, 저녁을 먹고 늦은 밤이 되기까지 피아노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반가우면서도 낯선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내 머리를 강타한 생각은 하나였다. ‘아?이 아이한테는 휴식이 필요했군.’
나는 아이에게 피아노를 즐길 여유는 주지 않고 쉼 없이 밀어붙이기에만 열심이었다. 휴식의 시간이 도태되는 시간이 될 거라는 내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 아이에게 휴식은 곧 더 멀리 뛰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시간이었다. 무작정 아이를 달리게 하는 게 답이 아니라는 그 평범한 진실을 당시의 나는 왜 몰랐을까? 힘들 땐 때론 쉬어가도 된다는 그 간단한 진실을, 나는 아이 덕분에 제대로 깨달을 수 있었다.
부모라고 다 자식을 모른다
내 맘을 몰라주는 엄마 - “엄마, 심리학 전공이라면서?”
초등학교 3학년 지훈이는 생일을 맞은 엄마에게 기억에 남는 선물을 했다. 그건 다름 아닌 책이었다. 재밌는 건, 생일이 나와 딱 4일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내 동생(아이들에게 단 하나뿐인 이모다)에게도 같은 책을 선물했다는 것이다. 열 살밖에 안 된 아이가 엄마의 생일을 챙기려 한 그 마음도, 다른 무엇도 아닌 책을 선물로 준비했다는 것도 너무나 기특했다.
그러나 포장지를 뜯는 순간 나는 헉~ 숨이 멎는 듯했다. 지훈이가 선물한 책의 제목은 『엄마가 아들을 아프게 한다』였다. 고백하건대, 나는 아직도 이날 받은 책을 읽지 않고 있다. 아니, 읽지 못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리라. 책 제목을 본 순간, 나는 바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내게 하고픈 말이 무엇인지, 당시의 내가 어떻게 아들을 아프게 하고 있었는지?.
책을 선물하면서 아들이 어떤 말을 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단 한 문장은 아직도 가슴에 새겨져 있다. “근데 엄마는 심리학 전공이라면서 왜 내 맘을 몰라? 전공한 거 맞아?” 강렬한 어퍼컷을 날린 아들에 이어 일곱 살짜리 딸내미까지 ‘맞아.’ 하고 잽을 날리는 것이 아닌가! 못나고 부끄럽게도 그 순간에도 내 방어기제는 반사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나는 애써 당황한 기색을 숨기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심리학이 무슨 독심술도 아니고, 엄마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다 알아? 그리고 엄마 공부한 지 너무 오래 되어서 거의 다 까먹었지. 한 번 기억을 잘 떠올려 볼게.”
다른 무엇보다 속상하고 괴로웠던 것은 나 자신은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잘 키울 방법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키우고 있다고 생각하던 차에 자식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으니? 어떤 엄마인들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속상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들이 내게 이런 선물과 말을 하게 된 원인을 찾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대체 왜 내게 이렇게 말을 한 것일까? 왜 이모에게까지 같은 책을 선물했던 걸까?
아기였던 시절의 지훈이에게 아빠는 주말에만 만날 수 있는 사람, 엄마는 일이 바빠 밤이 늦어서야 집에 들어오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부재중일 때 아이를 돌봐준 사람은 다름 아닌 이모였다. 당시 대학을 휴학 중이던 동생이 바쁜 언니 부부를 대신해서 조카를 돌봐주었다. 그때의 지훈이는 진짜 엄마가 누구인지 혼란스러웠으리라. 나조차 내가 아이들의 엄마인지 동생이 엄마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당시의 지훈이 사진을 보면 아이 곁에는 늘 이모가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쩌다 동생이 본가(친정)로 돌아가게 되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멀뚱히 아이를 바라보고는 했다. 마찬가지로 지훈이 역시 ‘엄마가 어디 갔지?’ 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으니? 엄마와 아들을 감싸던 그때의 그 어색한 공기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무얼 하지 말아야 할까를 고민해야: 초보 엄마이던 내게 ‘행복한 육아’란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나는 전쟁 같은 하루하루에 짓눌려 있었던 탓에 사소한 일에도 불같이 화를 내기 일쑤였다. 그뿐만 아니라 어려운 형편에 어울리지 않게 비싼 전집을 덜컥 사서는 아이에게 읽게 하는 등 내 마음의 부채감을 덜고자 끊임없이 아이에게 무언가를 시켜댔다. 이런 나로 인해 동생까지 덩달아 사랑하는 조카에 대한 걱정으로 전전긍긍했으니? 아이에게 전해진 부정적인 감정들 역시 두 배였으리라.
부모란 아이에게 무엇을 하게끔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무언가를 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가 불안할 때, 그 불안이라는 이름의 비로부터 아이를 지켜주는 우산이 되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건만?. 지금 그 시절을 회상하자니 그때의 내가 너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시간 여행이라는 것이 가능하다면, 나는 서른이 되기 전의 미숙한 엄마였던 나를 안아주며 꼭 이야기해 주고 싶은 것이 있다.
“아직 너도 어른이 아닌데?. 아이가 아이를 키우려니 참으로 고생이다. 그치? 맞아, 애들이 잘못 클까봐 걱정이 많지? 매일 무엇을 해주어야 할까 고민도 되지? 남들처럼 영어 유치원은 못 보내도 학습지는 해야 할 것 같고 말이야. 그런데 있지. 생각보다 아이들은 엄마가 뭘 해줬었는지 잘 기억을 못하더라. 큰맘 먹고 돈을 쓴 건데도 말이지. 그러니 아이에게 무엇을 해 줄까보다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한번 고민해봐. 그래도 사는 데 별 문제 없더라고.”
마찬가지로, 당시의 나와 비슷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다른 엄마들에게도 같은 말을 해주며 토닥여주고 싶다. 부모가 무언가를 해 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꼭 이것저것 배우게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잘못 크지 않는다고, 그러니 너무 불안해하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함께 보내는 즐거운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시간이 흘러 어느 날,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동생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언니, 쭈니 논술 뭐 시킬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하지 마. 안 해도 되니까 그냥 쭈니랑 놀아. 그게 최고야. 나중에 정말 쭈니가 필요하다고 하면 그때 해줘도 늦지 않아. 그러니까 차라리 나중에 써야 할 돈으로 모아둬. 뭐 많이 해주려고 하면 지훈이한테 받은 책, 나중에 쭈니한테 또 받는다.” “ㅋㅋㅋㅋㅋㅋㅋ 알았어.”
얼마 전, 나는 지훈이가 엄마와 이모에게 똑같은 책을 선물하게 된 진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자매가 선물로 받은 그 책은? 그냥 1+1 행사상품이었다.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 비우기
가깝다고 마냥 좋지는 않다 - “안전거리를 유지하세요”
“가깝다고 마냥 좋은 건 아니란다. 지금은 멀어서 외롭겠지만 나중에는 외려 고맙다고 그럴걸. 가지를 벗고 꽃을 피울 때쯤에는 너무 가까우면 서로 다치고 상처를 입게 돼. 햇볕과 바람이 드나들고 통하려면 사이가 적당하게 벌어져야 해. 그래야 마음껏 가지를 벌려 주렁주렁 매달 수 있거든?. 가을배추 아주심기는 40센티미터, 토마토 옮겨심기는 50센티미터인 것처럼 사람과의 관계도 적당한 거리가 명료하게 정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 『관계의 물리학』, 림태주
부모와 자식 사이에 적당한 거리는 얼마일까? 아이들이 훨씬 어렸을 때는 이런 질문을 던져볼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때는 내가 아이인지, 아이가 나인지조차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거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그래야만 내 마음이 편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아이의 모든 것을 챙겨줘야만 할 것 같았고, 그런 나와 거리를 두지 않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고 좋았다. 그러나 아무리 엄마가 세상의 전부인 것 같던 아이들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엄마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점차 늘어갔고, 스스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아이의 거리두기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늘 아이의 생활을 밀착해서 보아야만 안심이 되었고, 그러다 보니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항상 궁금해했다. 학교에서 뭘 먹었는지부터 어떤 친구를 만났는지, 또 수업 시간에 배운 건 뭔지 등 아들의 일상을 속속들이 파악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엄마라는 울타리를 벗어나고 있던 아들과 마찰이 생기는 날이 많아졌다. 괴로운 마음을 안고 살던 나는 예방주사를 맞는 기분으로 각종 강연을 찾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들과 함께 경기도 교육청 학생위기 지원단 안해용 단장님의 강연을 듣게 되었다.
그날 강연의 주제는 아이들의 마음속 괴로움이 자살로 이어진다는 무거운 내용이었다. 사실 강연이 시작될 때만 하더라도 ‘자살이랑 우리 아이들이 무슨 상관이 있다고?.’ 하는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 그러나 강연을 들으며 내 눈과 귀는 조금씩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게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게 만드는 강연을 듣던 중, 갑자기 단장님이 앞자리의 한 어머니에게 아주 가까이 얼굴을 대고 질문을 던졌다.
“어머니, 제가 이렇게 가까이 서서 보니 어떠세요?”
“부, 부담스럽네요?.”
“지금 어머니들이 아이를 바라보는 거리가 이렇습니다. 너무 가까워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제야 아들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아이는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단장님은 나를 비롯하여 한 대씩 얻어맞은 듯한 얼굴이 된 어머니들을 돌아보며 뒷말을 이었다.
“그럼 어머니들, 아이들과 적당한 거리는 얼마일까요? 식탁 테이블의 거리를 한번 생각해보세요.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하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가 바로 식탁 테이블만큼의 거리입니다. 자녀와의 거리도 마찬가집니다. 그렇게 거리를 두시면 돼요.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거죠.”
림태주 작가의 문구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가을 배추 아주심기’가 40센티미터, ‘토마토 옮겨심기’가 50센티미터라면 부모와 자식의 거리는 ‘식탁을 두고 마주 앉아 이야기할 수 있는 거리’인 80센티미터 정도가 아닐까. 부모는 얼마든지 아이가 클 수 있는 공간을 주면서도 관찰 할 수 있다. 극도로 밀착해서 모든 걸 지켜봐야만 한다는 내 생각은 착각이었던 것이다.
지지해 주면 스스로 자란다
폭풍 잔소리, 그리고 후회 - “현상보다는 관계죠”
“언니, 애들한테 잔소리를 안 하고 싶은데 참 마음대로 안 된다. 한두 번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같은 말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반복하는데 어쩜 이렇게 매번 같은 잔소리를 하고 또 하게 만드는지 모르겠어. 차라리 안 보는 게 맘 편하겠다 싶어서 못 본 척 해봐도 또 그것도 마음대로 안 되고?. 그렇다고 그래, 차라리 잔소리 하는 입을 닫아버리자 해도 그것도 쉽지 않고? 애들 행동을 대체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모르겠어.”
언니는 최근 자신도 비슷한 고민을 했는데 교육학을 전공한 친한 교수님께서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고 한다. “지금 눈에 보이며 나를 괴롭게 하는 아이의 성적이나 행동, 그리고 부족해 보이는 학습 같은 것들은 모두 지나갈 현상에 불과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