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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소년 미로, 바다를 보다

알렉스 쿠소 지음 | 푸른숲



눈먼 소년 미로, 바다를 보다

알렉스 쿠소 지음

푸른숲 / 2008년 7월 / 152쪽 / 8,500원





나는 앞을 보지 못한다. 두 눈이 완전히 멀었다. 그래서 친구들은 나를 ‘미로’라고 부르는데, 미로는 ‘눈이 나쁜 사람’이라는 뜻이다. 내 진짜 이름은 마리우스다. 뭐 이름 따위야 아무래도 상관없다. 정말 화가 나는 건, 혼자 있게 되는 일이다. 사람들은 나를 방해하지 않는 것이 장애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착각한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어 있었지만 불행하지는 않다. 그보다 나쁜 경우도 훨씬 많으니까. 부모님은 나를 사랑한다. 단지 나는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고, 이름은 마리우스이며, 별명은 미로일 뿐이다. 그런데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이지?

눈으로 볼 수 없을 때는 꿈꾸는 일이 쉽다. 상상력이 호박 덩이처럼 부풀어 올라 머릿속에서 펑, 하고 터진다. 나는 하루 종일 만지고, 듣고, 느끼고, 꿈을 꾼다. 그리고…… 이야기를 한다. 내 말벗으로는 우선 볼로가 있는데, 볼로는 불쌍한 눈먼 소년을 돌봐 주는 착한 개다. 그리고 두 명의 친구, 뤼카와 니노가 있다. 뤼카는 오래전부터 한동네에 살고 있는 친형제 같은 아이고, 니노는 떠돌이 집시인데 무척 대담한 아이다. 적어도 위험한 순간에 기가 죽거나 눈빛이 흐려지는 겁쟁이는 아니란 소리다. 내 친구는 또 있다. 팔뤼슈 할아버지인데, 누구보다도 나를 잘 챙겨 준다. 예전에 프리메이슨 단원이었다는데, 요즘은 낚시로 소일하며 산다. 나는 여름철인 요즈음은 거의 매일 팔뤼슈 할아버지를 따라다니거나, 아니면 볼로와 모래사장에 앉아 바다에 나간 할아버지를 기다린다. 볼로, 내일 같이 낚시하러 가자. 간다면 가는 거야.

다음날, 나는 위험해서 안 된다는 할아버지를 졸라서 할아버지의 배에 함께 타고 바다로 나갔다. 물론 볼로도 함께.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던 할아버지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곰치다!” 곰치는 거의 괴물 수준의 큰 물고기이다. 할아버지가 갈고리 장대로 물고기를 들어 올리는 느낌이 들더니, 육중한 것이 우리 발치에 널브러졌다. “조심해. 발목을 물어뜯을 정도로 큰 놈이야.” 그렇게 말하던 할아버지가 바닥에 나동그라지더니 곧 비명을 질렀다. “미로! 미로! 놈이 내 팔목을 물었어!” 나는 칼을 집어 들고 곰치의 머리 위로 기어올라가서 찌르고, 또 찔렀다. 곰치가 죽었다.

팔에 부상을 입은 팔뤼슈 할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했다. 그런데 병원은 몸을 낫게 할지는 몰라도 마음에는 시련을 주기 마련이다. 병원 복도를 감도는 죽음의 냄새는 최악이다. 할아버지는 옆자리에 누워 있던 사람이 죽어 가는 걸 똑똑히 지켜봤다. 그 뒤부터 팔뤼슈 할아버지의 심장은 점점 희미하게 뛰기 시작했다. 병문안을 간 나에게 할아버지가 말했다. “미로, 오늘 아침에 의사가 경고했단다. 이제 바다낚시는 끝났다고. 오로지 휴식만이 필요하대. 내 심장이 너무 낡아서.” 나는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깟 의사 말에 쓰러지지 말자고요. 할아버지! 기운 내요.” 잠시 뒤 뤼카와 나는 팔뤼슈 할아버지를 커다란 카트에 태우고 빠른 걸음으로 병원 정원 쪽으로 달렸다. 비로소 할아버지의 노란 얼굴에 신선한 공기를 쐬어 주게 되었다. “어디로 가지?”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집으로!” 할아버지가 소리쳤다. 뤼카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제 할아버지 얼굴색이 노랗지 않아.”

그렇게 우리가 병원에서 탈출시킨 할아버지는 갈 곳이 없고 몸도 쇠약했기 때문에 결국 양로원 겸 요양원으로 가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방은 생각보다 예쁘장했다. 의자 위로 올라서면 항구도 보인단다. 하지만 니노 말이 맞다. 적어도 이곳은 할아버지를 위한 데가 아니다. 니노가 물었다. “할아버지, 이런 쥐구멍 같은 데말고, 할아버지를 받아 줄 가족은 없어요?” “여동생이 하나 있어. 하지만 멀리 살지. 게다가 만나지 못한 지 십오 년이 넘었고.” “여동생을 만나러 가겠어요.” “뭐 하러?” “동생 분이 할아버지를 돌보게 하려고요. 할아버지 집에서요.” “집, 팔았어.”

며칠 뒤 우리는 팔뤼슈 할아버지의 여동생이 살고 있는 브레스트로 향했다. 니노의 친척 아저씨가 우리를 차로 데려다 주었다. 마침내 우리는 사르딘느 거리 23번지에 도착했다. 그녀는 평온한 골목 한켠에 자리한 잿빛의 작은 주택에 살고 있었다. “오후 한 시 전에 시장으로 데리러 가마.” 아저씨는 동네 어귀에 우리를 내려 주며 그렇게 말했다. 벨을 누르자 누군가가 나왔다. 중년 남자의 목소리였다. 팔뤼슈 할아버지의 동생을 만나러 왔다는 우리의 말에 사내는 “꺼져!” 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문을 쾅 닫고 빗장을 걸어 버렸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정원의 담장을 따라 가다가 이어져 있는 울타리를 펄쩍 뛰어넘었다. 뤼카가 말했다. “누가 그네를 타고 있어. 흰색 원피스를 입은 아주머니야.”

온화한 목소리가 우리 얼굴 위를 스쳐 지나갔다. “무슨 일이니, 얘들아?” “아주머니 오빠 되시는 분이 몸이 안 좋아서 저희가 여기까지 왔어요.” 순간 고요가 깃들더니 잠시 뒤 아주머니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나도 몸이 안 좋단다.” 뤼카가 계속 말했다. “아주머니 오빠는 지금 요양원에 있는데 거기 있는 걸 전혀 좋아하지 않아요. 그리고 집도 팔았어요.” “너희는 오빠가 여기서 나와 함께 지냈으면 하는 거니? 남편이랑 오빠는 함께 지내기가 쉽지 않아. 마음이 맞은 적이 한 번도 없어. 게다가 나는 내 한 몸 돌보는 일만 해도 너무 힘겹단다.” 아주머니는 냉정한 목소리를 유지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때 남자가 다시 나타났다. “꺼지라고 했잖아! 꺼져!” 아주머니가 내게 슬픈 목소리로 이렇게 속삭였다. “오빠에게 대신 인사를 전해 주렴. 절대로 잊지 않을게.” 우리는 그냥 돌아와야 했다.

얼마 후, 팔뤼슈 할아버지는 타던 낚싯배를 우리에게 주었다. 우리는 뤼카네 헛간에 배를 들여놓고 소중하게 간수했다. 우리는 양로원에서 목이 빠지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할아버지를 거의 매일 찾아갔다. 팔뤼슈 할아버지는 전에는 한 번도 하지 않던 질문들을 나에게 던졌다. 나를 약 올리려는 듯이, 하늘 색깔이나 바다 위에 떠 있는 구름의 모양 따위를 물어본다. 나는 일부러 한껏 꾸며 내어 대답을 한다. 계절이 바뀌어서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할아버지의 집은 이제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다. 지난달에 몇 차례 확장 공사를 하고 난 뒤, 새로운 사람들이 이사를 와서 살고 있다. 볼로, 너에겐 안 된 일이지만 그 집에서 개는 안 키우더라. 하지만 소녀가 한 명 있어. 내 또래야. 내 취향이고. 가끔씩 우리와 어울리는데, 너를 꽤 좋아하는 거 같아. 아니면 날 좋아하는지도 모르지. 어쨌든 그 애가 이따금 찾아와서 이런 저런 얘기를 꺼내는데, 나도 모르게 받아 주게 돼. 이름은 뤼스. 나는 그냥 륀이라고 불러. 륀은 뤼카와 니노랑 같은 학교에 다녀.

달이 뜨지 않은 어느 날 밤, 누군가 내 방 들창을 두드렸다. “누구?” “륀. 같이 산책하지 않을래?” 나는 얼른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섰다. 볼로가 내 뒤를 쫓아왔다. 매서운 추위에 매력적인 소녀의 팔을 잡고 하는 한밤의 산책은 아주 근사한 일이다. 륀이 말했다. “팔뤼슈 할아버지를 보러 갈까?” 세상에 이럴 수가! 이제 팔뤼슈 할아버지 얘기까지 꺼내다니! “뤼카가 할아버지 얘기를 해 주었니?” “내가 너에 대해 물어봤어. 난 네 오래된 친구도 알고 싶어.” “좋아, 가자.” 그래서 우리는 양로원으로 갔다. 할아버지는 무척 반가워했다. “내 친구를 소개하려고 왔어요. 얘는 륀이에요. 륀, 이분이 팔뤼슈 할아버지야.” “아, 네가 륀이구나? 미로가 네 얘길 하더구나.” 할아버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수염이 덥수룩한 그의 입가에 번지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할아버지는 륀을, 륀은 할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을 거다. 그리고 둘 다 웃으면서 날 바라보겠지. 며칠 후, 우리는 할아버지를 위해 조촐한 깜짝 파티를 준비했다. 그러나 그 파티는 열릴 수가 없었다. 그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팔뤼슈 할아버지는 자기 몸을 땅에 묻지 말고 태워 달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아무 쓸모없는 내 눈은 비로소 뭔가를 해내고 말았다. 울었던 것이다. 할아버지의 몸은 한 줌의 재로 남았고, 그것은 봉인된 유골 상자에 담겨 가족 중 마지막 생존자인 그의 여동생, 장례식이 진행되는 내내 아무 말 없이 서 있던 그녀에게 맡겨졌다. 며칠이 지나서야 문득 궁금해졌다. 그녀는 할아버지의 유골 상자를 어떻게 했을까? 나는 친구들에게 내 생각을 얘기했고, 우리는 다시 그녀를 보러 가기로 했다. 다음 날, 니노의 삼촌은 우리를 브레스트에 데려다 주었다. 륀도 우리와 함께 갔다. 다행히도 그녀의 고약한 남편이 집에 없는 탓에 우리는 무사히 그녀의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지난번보다 목소리가 몇 년은 더 늙어 버린 것 같았다. “너희가 언젠가 다시 찾아올 줄 알았다. 이렇게 와 줘서 고맙다.” 아주머니는 내 어깨를 무거운 팔로 감싸 안았다. “그러니까 네가 미로지. 오빠가 네 얘기를 좀 했단다.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가끔 긴 편지를 보내 주곤 했거든.”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오믈렛을 만들어 주었고, 우리는 아주머니에게 이야기를 했다. 우리에 대해, 아주머니의 오빠에 대해,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낚시에 대해, 제 몸을 가눌 수 없었던 할아버지의 어려움과 골방 같은 병실에 앉아서 고스란히 느꼈을 그 권태에 대해서도……. “알아, 나도 알지. 나도 이젠 아주 지쳐 있거든.” 아주머니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유골 상자 어디 두셨어요?” 내가 물었다. “지하실에 있어. 남편이 치워버리기 전에 너희에게 주마. 오빠도 밖에 있는 게 더 나아. 그 재를 곳곳에 조금씩 뿌리렴. 오빠가 자주 다니고 좋아하던 곳에.” 그건 또 하나의 멋진 생각이다. 팔뤼슈 할아버지를 기억하기 위한 진정한 작은 의식이 될 거다. 아주머니는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잠시 뒤 유골 상자를 들고 돌아왔다. “잘 가요, 오빠.” 나는 팔뤼슈 할아버지를 두 손에 안고 그 집을 나왔다.

그날 저녁, 열네 살의 나는 친구들에 이끌려 처음으로 술에 취해 보았다. 볼로, 네가 그 모든 걸 이해할 수는 없어. 내가 그 정도로 정신을 잃을 수 있다는 걸 넌 상상할 수 없을 거야. 단지 우리는 니노 삼촌과 함께 니노의 집에 돌아갔고, 걔네 엄마가 먹을 것을 내놓으셨던 거야. 할아버지의 유골 상자는 우리 집에 잘 보관해 놓았다. 뤼카와 륀과 함께 집에 들러 부모님께 오늘 밤에 집에 없을 거라고 미리 말해 두었다. 나의 부재. 그 말이 정확해. 술이 취할수록 조금씩 내가 없어지거든. 몇몇은 춤을 추기 시작했지만, 난 그냥 소리만 질러. 소리를 지르면서 마시는 거지. 난 륀의 존재를 잊어버렸어. 너 역시 잊었어. “륀은 어딨지?” 나는 술을 마시며 물었다. “갔어.” 니노가 말했다. 니노가 헐떡이며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술에 취한다는 게 이런 건가? “너, 뭐 해?” 나는 두 팔을 벌려 나무 기둥을 끌어안으며 뤼카에게 물었다. 대답이 없다. 뤼카는 토악질을 하고 있는 중이다. 내 친구 볼로! 취한다는 게 어떤 건지 넌 봤어.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야. 슬퍼…….

좋은 날들이 돌아왔다. 낮은 전보다 더 길어졌고, 날씨는 따뜻해졌다. 할아버지의 유골 상자는 여전히 내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여 있다. 우리는 할아버지를 마지막 거처인 바다로 데려가는 일을 매번 연기하고 있다. 우리는 아주 잔잔한 바다를 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보기 흉하게 술에 취해 버렸던 그 슬픈 광경을 본 다음부터, 륀은 우리를 자주 찾아오지 않았다. 나한테 책을 읽어 주러 오지도 않았다. 뽀뽀를 해 주러 오지도, 어느 날 밤처럼 날 찾아와 깜짝 놀라게 하지도, 새벽이 되기 전에 눈이 내릴 거라고 알려 주러 오지도 않았다. 볼로, 올봄은 모두 달라. 할아버지도 없고, 곰치도 없고, 륀 조차 없어. 난 한 여자애를 좋아하고 있어. 그건 친구들하고는 다른 얘기야. 너와도 달라. 할아버지하고도 아무 상관없는 일이야. 그 애하고 있을 땐 거의 어른 같은 느낌이 들어. 륀하고는 뭔가 다른 일을 만들어 가고 싶어. 그래서 결심했어. 오늘은 네가 날 륀에게 데려다 주고,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하고, 화해하고, 뽀뽀하고, 그 밖의 여러 가지 일을 지칠 때까지 하는 거야. 아니다. 오늘은 륀이 병원에 있구나. 가벼운 치아 수술인데 며칠 동안 입원하고 있어. 그래, 가 보자. 자, 도착했다. 개들은 출입 금지니까 병원 입구에 있거나 창문 아래 지켜 서 있어. 준비가 되면 휘파람을 불게.

간호사가 나를 방으로 안내했다. 이미 와 본 적이 있는 복도를 가로지르려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팔뤼슈 할아버지가 입원했던 곳. 나는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 륀. 들어가도 돼?” 그러라는 그녀의 대답에 마음이 놓였다. “이거, 너 주려고 가져왔어. 사진집이야. 맘에 들어?” “물론이지! 하지만 이 책을 너한테 어떻게 읽어 주지?” 다시 찾아든 침묵. 어색함 속에 있는 나에게 륀의 손이 다가오더니 내 얼굴을 부드럽게 만지고는 말했다. “너한테 뽀뽀하지 않을래. 좀 전에 젖니를 네 개나 뺐거든. 볼이 잔뜩 부었어.” 륀은 미소를 짓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내 마음은 환해졌다. “빨리 나아서 여기서 나가길 빌게. 넓은 바다로 나가려고 모두들 널 기다리고 있어. 할아버지에게 마지막 산책을 시켜 줘야 하잖아.” 나는 륀의 손에 입을 맞추고 일어났다. 입구에서 볼로를 되찾았다. 볼로, 나 행복한 거 같아. 마구 소리를 지르고 싶어. 아니,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고 싶어.

며칠 후 드디어 바다로 나갔다. 우와! 잔잔한 바다라고들 하더니 정말 잔잔하다. 그리고 햇살 가득한 오후라고 했지. 볼로! 니노와 뤼카는 노를 젓고, 륀은 해변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 정말 이상야릇해. 배 안에 있으면서, 네 곁에 있으면서, 친구들 곁에, 할아버지 곁에 있으면서도 나는 또한 륀의 시선 속에 있는 느낌이거든. “어디에 뿌리지?” 내가 물었다. 뤼카가 상자를 내게 건넜다. 나는 엄숙하게 유골 상자를 두드렸다. 재는 가볍다. 마치 눈 같다. 적어도 내 상상 속의 미지근한 눈 같다. 겨우 몇 줌밖에 안 된다. 이게 할아버지의 몸이라니. 나는 상자에서 손을 빼내, 단호한 손짓으로 할아버지를 뱃전 너머로 비워 낸다. 잘 가요, 팔뤼슈 할아버지. 니노와 뤼카가 다시 노를 잡는다. 나는 다시금 륀의 시선 속으로 되돌아가고, 해변으로 되돌아가는 우리를 바라본다.

륀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린다. “끝났어? 그럼 수영하러 가자.” 우리는 수영을 한다. 팔뤼슈 할아버지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내가 같이 배를 타고 낚시하러 가겠다고 조를 때 했던 말이. “넌 누가 옆에서 길잡이를 해 줘야 하잖아. 혹시라도 내가 물에 빠지기라도 하면. 넌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아무 데로나 가 버릴 텐데. 그건 안 되지.” 정말 그런 날이 왔다. 할아버지는 물에 빠졌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 방향으로나 수영하지 않는다. 륀이 방향을 잡아 주고 있다. 륀의 몸이 나를 편안하게 만든다. 나는 륀이 지나간 자리만 따라가면 된다. 뤼카와 니노는 우리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경주를 하고 있다. 훨씬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어슬렁거리던 볼로는 이내 모래 언덕 꼭대기로 사라져 버렸다. 볼로, 내가 널 잊었듯이 너도 날 잊고 있었구나. 나는 두 팔을 한껏 뻗어 륀을 품에 안았다. 우리는 신선한 공기를 한 움큼 들이마셔 허파를 빵빵하게 부풀린 다음, 하나로 얽힌 두 몸을 완전히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힌다. 자, 이제 숨을 쉬지 않고 키스를 해 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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