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냉이, 담장을 넘다
청소년 인문학 모임 강냉이 지음 | 한티재
강냉이, 담장을 넘다
청소년 인문학 모임 강냉이 지음
한티재 / 2014년 3월 / 312쪽 / 15,000원
1 배움의 담장을 넘어
우리는 왜 학교에 갈까?_ 김재현
2013년 11월 7일, 전국의 고3 수험생들이 수능 시험을 봤다. 전날부터 학교에서는 시험 준비로 분주했고 시험 당일에는 경찰차까지 등장해 시험장을 지켰다. 시험 시간에 늦은 수험생을 경찰 오토바이가 태워주고, 시험장에 오다 사고가 난 학생은 병원에 입원한 채로 수능 시험을 치렀다. 많은 수험생들에게 12년간의 노력이 끝을 맺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다른 목소리도 들려왔다. 대학 입시 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 회원인 일곱 명의 청소년들이 수능을 거부하고 거리로 나와 기자회견을 했다. “시험과 경쟁을 위한 교육과 학생들에게 정답을 외울 것만을 강요하는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은 자유롭고 주체적인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대학 입시를 거부한 것이다.
대학 입시와 학벌의 현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어떤 영상을 보여주신 적이 있다. 주제는 ‘우리는 공부를 왜 할까?’였다. 강연자가 나타나더니 “무조건 서울대 가라! 서울대 가면 인생이 달라진다”라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강연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성공하고 싶어 하고 대기업에 취직하여 많은 돈을 벌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지원자가 많은 대기업에서는 원서를 모두 검토하고 지원자를 일일이 다 만나볼 수가 없다. 시간과 인력이 많이 들고 그게 곧 돈이 되기 때문이다. 이윤 창출을 최대 목표로 하는 기업에서는 그런 일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1차적으로 거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때 어떤 방법을 사용해 걸러낼까? 출신 대학교를 보고 걸러낸다. 수십만 명의 지원자가 모이는 마이크로소프트사 같은 세계적인 기업에서는 더더욱 대학을 보고 지원자를 추려낸 뒤에 뽑는 것이다. 설령 자기가 사업을 하고 싶어도, 다른 어떤 일을 하고 싶어도,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참신한 아이디어보다는 대학의 인맥 네트워크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
나는 동영상을 보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었고 화가 났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강연자의 말도 이런 일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이었기 때문에 나는 더 답답했고 화가 났다. 하지만 내가 실제로 느끼기에도 ‘수능 대박’을 기원하는 현수막이나 ‘수능 만점’을 축하한다는 현수막이 어디를 가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붙어 있었고,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에 따라 그들의 삶이나 사람들의 시선이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 정말 우리는 이런 현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좋은 대학에 가려는 것일까?
나의 고민: 학교를 그만두고 홈스쿨링을 한다는 사람들도 접해봤고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처럼 대학 입시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소식도 들으면서 나는 나름대로의 고민을 했다. 먼저 “내가 지금 왜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지?”라는 생각을 했다. 답은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였다. 없는 것보다 못한 이유였다. 이전까지는 제대로 생각도 해보지 않은 질문이었는데, 이런 결론이 내려지니 허무했다. 이때까지 내가 이렇게 내 삶을 대충 살아왔나 하는 자책을 하게 되었다.
나는 2010년 겨울에 산청 간디학교의 계절학교에 참가했다. 산청 간디학교는 정부의 인가를 받은 대안 고등학교다. 간디학교의 선생님은 간디학교가 어떻게 운영되고 학생들이 수업은 어떻게 하는지 소개해주셨다. 정부의 인가를 받기 위해 수업 일수나 과목은 자율적으로 하지 못했지만, 수업은 학생들 위주로 되어 있었다. 평범한 학교와는 달리 시험이 목적이 아닌 수업을 했다. ‘의미가 있는 배움’이 수업의 목적이었고, 학생들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토론이 주가 되었다. 설명과 함께 사진도 보여주셨는데 모든 수업이 즐거워 보였다. 우리 학교 수업도 저러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수업시간에 잠을 자거나 핸드폰을 만지는 일은 상상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기숙사 생활이나 여러 활동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에서 학생들은 진정으로 자유로워 보였다. 미래에 대한 소모적인 불안이나 근심은 전혀 없어 보였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보고 설명을 들으면서 “간디학교에 오면 정말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나도 간디학교 학생들처럼 살아보고 싶었고 계절학교에 함께 온 친구들도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을 마치고 고등학교를 선택할 때 나는 간디학교를 선택하지 않았다. 실제로 계절학교에 함께 갔던 친구들 중 간디학교에 입학한 친구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많아 봐야 열 명일 것이다. 많은 친구들이 간디학교 학생들의 삶을 원하지만 선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우선 내가 간디학교에 가지 않은 이유는 무리에서 낙오되는 느낌, “일반 학교를 졸업하지 않으면 혹시 뭔가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나름대로 고민을 했지만 성격 탓인지 과감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경솔한 판단일 수 있지만, 간디학교를 선택하지 않은 많은 친구들도 나와 비슷하게 미래에 대한 불안감, 일반 고등학교를 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위의 분위기, 고등학교에 대한 고민조차도 무색하게 만드는 그런 분위기에 휩쓸렸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일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꿈을 꾸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같은 말은 너무 많이 들었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입시지옥ㆍ무한경쟁 같은 말들이 안 좋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또한 삶의 질과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대안학교를 졸업하느냐 일반학교를 졸업하느냐, 대학을 가느냐 마느냐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내 생활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다.
진정한 공부: 그렇다면 진정한 공부란 무엇일까? 나는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공부는 돈과 지위를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공부의 즐거움은커녕 하면 할수록 스트레스만 커지기 때문이다. 갓난아기의 무궁무진한 호기심은 학교 공부를 만나면서 사라지거나 학교 공부에 맞게 바뀌어버린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콩도르세는 “교육의 목적은 현 제도의 추종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비판하고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호모 쿵푸스』의 저자 고미숙 씨는 공부를 이렇게 말했다.
“아주 낯설고 이질적인 삶을 구성하는 것, 삶과 우주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탐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공부다. 더 간단히 말하면, 공부는 무엇보다 자유에의 도정이어야 한다. 자본과 권력, 나아가 습속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야 비로소 공부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오랜 고민 끝에 지금 내가 생각하는 공부는, 스스로 궁금한 것을 찾아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궁극적으로 공부를 함으로써 내 삶을 바꾸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 탐구하고 싶은 것이 있고 자기 스스로가 그것을 끝까지 붙들고 해내는 것,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노력하여 그 궁금증을 푸는 것, 이런 것들을 해낸다면 삶이 바뀌지 않을까? 학교는 학생들이 이런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아니, 최소한 못 하도록 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입시지옥, 무한 경쟁이란 말들이 사라져야만 할 것이다. 언제쯤 우리가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을까? 그날이 기다려진다.
2부 삶의 담장을 넘어
자신을 위한 변화가 필요한 순간_ 조해민
더글라스 케네디가 쓴 『빅 픽처』를 읽은 것은 기말고사가 끝나서 방학이 다가올 때쯤이었다. 재밌어 보여서 샀지만 못 보고 미루어 와서 “이거라도 읽어보자”는 생각이었다. 소설책을 수개월 동안 읽지 않았던 나로서는 꽤나 재미있고 의미가 있었다. 처음 책표지를 봤을 때 인상적이었다. 피 묻은 손, 사진으로 가려진 얼굴, 깔끔한 정장 차림, 목에 걸린 사진기, 전혀 연관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능력 있었지만 불행했던 변호사의 삶: 뉴욕의 잘나가던 변호사인 벤은 남부러운 것 없이 살고 있었다. 능력 있는 변호사로서 높은 연봉, 예쁜 아내, 귀여운 자식들, 사진기 수집과 사진 찍기라는 취미. 겉보기엔 행복한 삶을 사는 듯 보였다. 하지만 벤에게는 불행한 점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 벤은 사진작가가 꿈이었지만 아버지의 고집에 밀려 변호사가 되었고 아직 사진작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는 점, 둘째, 아내 베스와의 관계가 점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벤은 베스가 이웃집 남자 게리와 불륜을 저지르는 것을 알아채고, 게리를 우발적으로 죽이게 된다. 벤은 요트 사고로 위장하여 마치 자신이 죽은 것처럼 꾸민다. 그리고 죽은 게리로 신분 세탁을 하여, 평생의 꿈이었던 사진작가로서 새로운 삶을 마운틴폴스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벤은 조용하게 살고 싶었던 바람과는 달리 ‘사진가 게리’로 유명해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신의 정체를 칼럼니스트 루디가 알게 되고, 한밤중에 루디와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까지 나게 된다. 사고에서 살아남은 벤은 이 사고를 또 한번 위장하여 ‘앤디’로 신분 세탁을 한다. 그리고 마운틴폴스에서 만난 앤과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벤은 여러모로 불행한 삶을 살았다. 사진작가라는 꿈을 뒤로한 채 아버지의 고집으로 변호사가 되었고, 결혼 전과 달리 아내 베스와의 관계는 금이 갔고, 우발적 살인으로 인해 떳떳하지 못한 채 게리의 삶을 대신 살고, 마지막으로 모든 것이 들통 나자 앤의 도움을 받아 다시 앤디로서의 삶을 산다.
자기 자신을 위해 살 수 없었던 벤: 벤은 한 번도 자기 자신의 삶을 산 적이 없다. 아버지의 고집으로 된 변호사로서의 삶, 신분 세탁으로 위장한 사진가 게리의 삶, 마지막 앤디로서의 삶. 그중 특히 안타까운 것은 아버지의 압박에 못 이겨 변호사가 되는 과정에서 사진작가의 꿈을 접어야 했던 것이다. 성공한 사진가가 꿈이었던 젊은 시절과는 달리, 변호사가 된 벤은 ‘큰돈을 버는 것’이 목표가 되어버렸다. 사진가가 되기 위해 돈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단지 쉬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움츠러들면서, 사진가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만 하며 변호사가 된 자기 자신을 합리화시켜버렸다.
이 소설은 미국 작가가 쓰고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했지만,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했다. 얼마 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어떤 사람이 주위의 압력에 못 이겨 의사가 되었다가 뒤늦게 후회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로 직업을 바꿨다는 에피소드를 보았다. 변호사인 벤이 떠올랐다.
책을 읽으며 벤이라는 인물에게 답답함을 느낀 적이 종종 있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그것을 추진할 수 있는 뚝심이나 배짱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체적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가는 인물. 한편으론 나 자신도 벤과 같은 삶을 살까 봐 두려웠다.
벤은 게리를 우발적으로 살해하고 게리의 삶으로 위장한 뒤 마운틴폴스로 가고 나서, 물론 자신의 신분이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자유롭진 못했지만, 나름대로 자기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 것 같다. 게리로서의 삶이지만 사진가로서 살면서 말이다. 자신의 삶을 ‘변호사보다는 사진가가 되었어야 한다는 후회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면서 후회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게리의 삶으로 위장하여 사는 것마저 들키자 마운틴폴스에서 만난 앤과 또다시 신분 세탁을 하고 도망치는 모습이 나온다. 전에는 유명해지면서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나서 도망치게 되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작은 변화일지 몰라도 동행하는 사람이 생겼다. 앤이었다. 아마 앤은 벤이 사랑하는 사람인 동시에 크게 의지가 되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 장면에서 벤이 불안한 미래에 대해 자신 없어 보이는 말을 하자, 역정을 내는 앤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벤은 변호사였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속에 있는 응어리를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혼할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부인 베스에게 다시 시작하자고 제대로 말하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벤이 이번에는 자기 자신과 동반자인 앤만을 위한 결정을 했기 때문에 속이 후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불행한 벤과 나: 소설 전반적으로 벤의 답답한 모습이 내 속을 답답하게 한 동시에 나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끌어내지 못하는 것 같은, 또 내가 벤처럼 시간이 흘러 후회감에 사로잡히면서 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벤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이 조금 두려웠던 나는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마음속에 있는 것을 밖으로 꺼내면서 나 자신을 위한 변화를 시작해야겠다.
꼭 큰돈을 버는 것이 인생의 성취는 아닐 것이다. 내가 나중에 어떤 진로를 선택할지는 모르겠지만 진로 선택에 있어서, 가족들이나 진학 상담 선생님의 압박에 의해 결정하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벤과 달리 내 인생에서만큼은 내가 선택하는 나 자신만의 삶을 살 것이다.
유럽에서 얻은 작은 추억들_ 김은진
나는 언제나 유럽을 꿈꿔왔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부터인지, 아니면 중학교 때부터인지, 어느 순간부터 나는 유럽을 꿈꾸고 있었다. 대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도 졸업 전에 유럽 여행을 갈 거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 모아둔 돈도 없이, 언제, 어디로 갈 거라는 계획도 없이 참 막연한 계획을 뻔뻔스럽게 여기저기 잘도 얘기하고 다녔다.
1학년이 끝나고 2학년에 올라갈 무렵, 대학생이나 되어서 부모님께 돈 달라는 말을 하는 것이 어찌나 자존심 상하고 부끄럽던지 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운이 좋게도 집 근처 빵집에서 일하게 되었다. 5개월 동안은 평일 오후에 일을 했다. 아르바이트를 위해 주 3일만 학교에 가도록 시간표도 치밀하게 짰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가서 수업 듣고, 마치면 아르바이트를 하고, 늦게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 강의도 듣고, 과제가 있을 땐 과제도 하고……. 어떻게 하루하루 살았는지 지금 생각하면 참 대단하다. 거의 밤을 새다시피 평일을 보내고 주말에는 지쳐 하루 종일 자면서도 할 일을 다 해내고 있는 내 모습이 뿌듯했다.
그런데 4월부터는 학교 공부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열심히만 살아도 사회에 대해서 금방 배울 수 있는데, 왜 책을 봐야 하는지 당시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할수록 학교 출석일수는 줄어들었다. 교수님께 상담을 요청하고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1학기가 얼마 남지 않은 6월에 다음 학기는 휴학을 하리라 결심했다. 아르바이트를 평일 오전으로 옮기고 모으는 돈의 액수를 높였다. 월급의 10퍼센트는 부모님께 드리고 80퍼센트는 저금했다. 그리고 100만 원이 만들어질 때마다 짧게나마 예금을 들었다. 천 원이라도 더 늘려보자는 생각이었다.
11월 말, 모아둔 돈을 겨울방학 때 어떻게 쓰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유럽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가는 것도 좋겠지만 해외에 처음 나가는 거니까 친구를 꼬셨다. 다행히도 친구는 모아둔 돈과 받았던 장학금이 있었기에 흔쾌히 가자고 했다. 그리고 12월,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여행 계획을 짰다. 그렇게 해서 크리스마스까지 여행 계획을 완료했다. 여행 기간은 총 27일, 여행하는 나라는 총 5개국이며 도시는 14개 도시였다. 친구는 파리를 가장 가고 싶어 했고, 나는 독일 이곳저곳을 가고 싶어 했다. 우리 둘 다 유럽 여행의 묘미는 국경을 마음껏 넘어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서로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세운 여행 계획이었다.
여행에서의 추억은 사람이 결정한다: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있었던 일이다. 숙소에 도착했는데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여행객들이 머무는 숙소임에도 불구하고 계단이 좁고 많은데다, 어둡고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복도도 좁고 방 안의 침대들도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게다가 방은 온통 빨간색이라 은근히 무섭기까지 했다. 친구와 짐을 풀고 숙소를 보며 한숨을 쉬고 있는데 한국인 여자 한 명이 들어왔다. 숙소를 보더니 자기가 있던 곳보다 낫다며 이곳으로 옮기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뒤에 따라 들어왔던 한국인 여자 두 명은 앞서 들어온 언니와 일행처럼 보였지만 우리와 다른 층에 머물렀다. 알고 보니 일행은 아니고 숙소 앞에서 만난 사이였다. 저녁에 함께 모여 여행 이야기를 했고, 다른 방에 머무는 언니 두 명과 다음 날 일정이 같아 함께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