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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책상 위에 서양고전

김이수 지음 | 명진출판
고1 책상 위에 서양고전

김이수 지음

명진출판 / 2013년 2월 / 312쪽 / 15,000원





플라톤을 탐험하며 멘탈 붕괴를 극복해_ 《국가》



이데아 세계를 현실에 적용한 것이 《국가》라는 고전이야: 죽음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생각은 서양사상의 빅뱅을 일으켰다. 현대 우주론의 기본이 되는 빅뱅(Big Bang)은 원래 ‘커다란 뻥’이라는 뜻으로, 조롱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소크라테스 빅뱅은 플라톤의 노력으로 서양사상 전체로 확장되었다. 플라톤에 의해 소크라테스가 부활한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증명한 영혼은 플라톤의 이데아 세계로 확장되었고, 개인을 강조한 소크라테스를 이어받아 플라톤은 국가를 강조했다. 개인의 영혼을 발견한 소크라테스에 이어 플라톤은 영혼이 머무르는 이데아 세계를 발견했고, 그것을 현실에 적용시키기 위해 국가를 강조했던 것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아테네의 자랑인 민주주의가 점차 쇠락해가면서 이를 대체할 새로운 정치 제도를 구상한 것이다.

당시 아테네의 민주주의 제도하에서 성인 남자는 누구나 정치에 참여할 권한이 있었다. 그래서 정치 지도자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국회 같은 민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여기서 연설을 잘하면 민회를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도 있었다. 또한 정치인을 선거뿐만 아니라 추첨으로도 뽑았기 때문에 운이 좋으면 무지한 사람도 나랏일을 할 수 있었다. 플라톤은 이런 제도하에서는 자격 없는 사람들이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주 위험천만한 일로 여겼던 것이다.

전쟁에 패한 이후 아테네는 정치,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고 사람들 사이에서 극도의 이기심이 횡행하였다. 이런 현실을 지켜보면서 플라톤은 철학자가 나라를 다스리는 철인(哲人) 정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국가》는 철인 정치라는 새로운 정치사상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국가》에 따르면 인간은 올림픽 경기의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처럼 금족, 은족, 동족 중 하나로 결정되어 태어난다고 한다. 세 단계로 결정되는 기준은 이데아 세계에 대해 얼마나 많이 기억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인간이 태어나려면 영혼만 있는 이데아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와야 하는데, 그 사이에는 망각의 강인 레테가 있다. 레테를 건너는 동안 이데아 세계를 완전히 잊을 정도로 망각의 강물을 많이 마시면 동족이 되는 식이다. 이렇게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각자 타고난 지혜가 다르기 때문에 하는 일도 다르고, 갖춰야 하는 덕목도 다르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타고난 능력에 따라 역할이 정해지는 계급사회인 것이다.

금족은 나라를 다스리는 수호자 계급이다. 그러므로 금족은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은족은 전사 계급으로 나라를 지키는 군인에 해당하기에 용기가 있어야 한다. 동족은 생산자 계급으로서 힘든 일을 오래 할 수 있는 절제력이 있어야 한다. 동족은 피지배계급이기에 지배계급에 순종하고, 명령에 잘 따르는 것이 미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플라톤이 생각하는 수호자는 국민들 중에서도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엄격한 교육을 끝까지 마쳐야 나라를 통치할 자격을 얻는다.

물론 플라톤이 생각하는 나라가 실제로 존재할 수는 없다. 아무리 철저하게 교육을 받고 세뇌를 받아도 주어진 일에 만족하면서 계급 상승은 꿈조차 꾸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통치자 역시 사람인 이상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 게다가 다른 계급들은 정치에 대해 아는 게 없기 때문에 다양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이를 해결하거나 바로잡아 줄 수 없다. 따라서 플라톤이 주장하는 철인 정치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고 위험한 구석도 많았다. 그런데도 플라톤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국가에 대해 사람들이 찬성할 것이라 믿으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철학자들이 그들의 나라에서 왕이 되지 않는 한, 또 반대로 왕 또는 지배자로 불리는 이들이 실제로 지혜를 사랑하지 않는 한, 즉 정치권력과 철학이 하나로 합쳐지지 않는 한 국가와 인류에게 나쁜 일들은 끝날 날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플라톤이 《국가》에서 주장한 말도 안 될 것 같은 정치사상이 1,000년 넘게 현실에 적용되었다. 바로 로마 교황청이 지배하는 서양의 중세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다만 철학의 자리에 종교가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플라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국가의 실현 가능성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또한 철인 정치가 현실적인 문제들을 잘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주장도 여전히 확인 불가능하다.

한편 플라톤은 장차 나라의 기둥이 될 젊은 세대들을 교육시키는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다.젊은 세대가 영원한 인간의 사명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늙은 사람들의 의무다. 교육은 법에 의해서 공정하게 발표된 원리와 가장 오래되고 정당한 자의 경험에 의해 진정으로 옳다고 확인된 원리로 아이들을 이끌고 지도하는 것이다.

플라톤은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교육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재미있는 것만 가르쳐서는 안 되고, 연극이나 음악, 미술도 교육에 좋은 내용들만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특히 어린이 교육에 제일 좋은 방법은 교훈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는 것이라 했다. 때문에 신들이 서로 싸우고 매우 황당한 범죄마저 저지르는 그리스 신화 같은 것을 가르치는 것은 교육적으로 매우 나쁘다고 생각했다. 또한 불성실하거나 나약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쁜 본보기가 되므로 이 역시 아이들에게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했다. 플라톤은 공부도 억지로 시키는 것이 아니라 면학 분위기 속에서 아이가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정신이 몸을 제대로 지배하기 위해서는 마음과 함께 몸의 단련도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플라톤이 남자와 여자 모두 동등하게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당시 남자와 여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결코 동등한 존재가 아니었다. 생물학적 차이로 인한 차별이 당연시되던 시대에 플라톤은 남자와 여자를 원칙적으로 동등한 존재로 보았다. 그래서 동등한 교육과 함께 전쟁이 일어나면 여자도 참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여자는 남자보다 힘이 약해 똑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겠지만, 여자도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플라톤은 시대를 앞서가는 진보주의자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플라톤의 사상에는 너무 큰 흠결이 있다. 신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는 내다버려야 한다거나, 정신병에 걸린 사람이나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은 죽여야 한다는 주장은 대단히 비인권적인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플라톤의 철인 정치 사상이 현실 가능성 여부를 떠나 비판을 받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를 탐험하며 살아가는 이유를 확인해봐_ 《니코마코스 윤리학》



스승 플라톤의 생각을 뒤집어 현실 세계로 옮겨놓았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았던 당시 그리스는 정치·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사회가 혼란스러우면 자연히 사람들의 가치관 역시 혼돈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혼란을 더욱 부추긴 이들은 스스로를 지혜로운 자라 일컫던 소피스트들이었다. 그들은 이 세상에 확실한 진리는 없다면서, 옳고 그른 것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없을 경우 자신에게 유리한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사람들의 이기심을 부추겼다. 요즘 말로 하면 오피니언 리더라는 지식인들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부도덕하고 이기적인 행동을 해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정말 변하지 않는 것, 변하지 않는 진리는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 아테네의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며, 변함이 없는 영혼에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플라톤은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이어받아 현실의 모든 것은 변화함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이데아 세계를 제시하였다. 또한 사회의 혼란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엄격한 신분제를 기초로 한 이상적인 국가론을 제시했다.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비판 없이 계승해서 발전시켰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달랐다. 그는 스승 플라톤의 사상에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계승, 발전시켰다.

서양사상의 빅뱅 과정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의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납득할 수 없는 죽음으로 인한 멘탈 붕괴의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이데아라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다. 그리고 2천 년 넘게 서양사상을 지배한 형이상학의 체계를 만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플라톤의 형이상학의 체계를 활용했다. 하지만 그것을 활용하는 방식은 플라톤처럼 추상적이고 비상식적인 게 아니라 구체적이고 상식적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구체적인 자료나 자신이 직접 관찰한 것들을 근거로 자신의 이론을 정립해나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는 ‘이데아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이데아계에 있는데, 그것이 어떻게 현실 속의 사물에 영향을 끼쳐 그 사물이 되게 하는가?’라고 의심했다. 말하자면 이데아계와 우리가 속해 있는 현실 세계가 따로 떨어져 있는 별개의 세계라면 이데아계에 있는 색연필의 이데아가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색연필을 어떻게 만들어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 것이다. 그리하여 이데아계와 현상계가 따로 있으면 그만큼 세상이 복잡해질 뿐이라고 결론지었다. 사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물건마다 이데아가 있다면 얼마나 복잡하겠는가!

그렇다면 이데아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플라톤은 진짜로 존재하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 이데아라고 했다. 이데아만이 영원 불멸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짜로 존재하는 것은 이데아가 아니라 우리 주위에 있는 사물이라고 했다. 비록 사물 하나하나는 있다가도 없거나 모습이 변할 수도 있지만, 이데아는 사물과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사물 속에 들어 있는 이데아가 바로 형상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 의하면 사물은 형상과 질료로 구성되어 있다. 책을 예로 들어보자. 책을 책이 되게 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어떤 점이 책을 책답게 만들어주는 것일까? 우선 책은 종이로 만들어졌고, 읽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포함해서 설명하면 ‘우리가 책장을 넘기면서 글자를 읽는 어떤 것’이 될 것이다. 이것이 책의 형상이다. 질료는 책을 만들 때 들어가는 종이와 잉크, 접착제 같은 재료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형상과 질료, 또는 모양과 재료, 기능과 원료가 합쳐져 있다. 형상 없이 질료만 덩그러니 있을 수 없고, 질료가 합쳐지지 않은 형상, 즉 이데아만 따로 있을 수도 없다. 그런데 질료는 변할 수 있다. 책에 글씨를 인쇄한 잉크는 시간이 지나면 바라서 희미해진다. 종이가 찌어지거나 너덜너덜해질 수 있다. 이렇게 재료에 손상이 가고 변화가 일어났다고 더 이상 책이 아닌 것은 아니다. 좀 낡았더라도 여전히 책이다. 바로 그 안에 책의 형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었다고 해도 플라톤이 펼쳐놓은 세계에 대한 형이상학적 설명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아리스토텔레스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스승 플라톤의 생각을 그대로 뒤집어 현실 세계로 옮겨놓았기 때문이다. 관념론자인 헤겔의 변증법을 뒤집어서 현실에 적용시킨 마르크스처럼 말이다. 이렇게 스승이 이룩해놓은 토대를 밑천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만의 철학적 성취를 이루고 서양사상의 일진 짱이 될 수 있었다.



데카르트를 탐험하며 자신의 존재를 물어봐_ 《방법서설》



고전 《방법서설》의 핵심은 일단 의심해보라는 거야: 양식(bon sens)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그것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다른 모든 것에 있어서는 좀처럼 만족하지 않는 사람도 그것만큼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것보다 더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 모든 사람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이는 잘 판단하고, 참된 것을 거짓된 것에서 구별하는 능력, 즉 일반적으로 양식 혹은 이성으로 불리는 능력이 모든 사람에게 천부적으로 동등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셈이다.

《방법서설》의 첫머리에는 인간은 누구나 양식, 그러니까 이성(理性)을 갖고 있다는 데카르트 철학의 대전제가 나온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이성은 과연 확실한 것인가? 이 점에 의문을 가진 데카르트는 인간 이성의 출발점을 수학적으로 증명해보고자 했다. 과거 소크라테스가 인간의 영혼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한 ‘사용되는’ 육체와 ‘사용하는’ 영혼의 구분은 사실 모호하고 약간 말장난 같기도 하다. 과학이나 수학의 확실성하고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수학자인 데카르트는 과학이나 수학에 근거해서 이 점을 증명해내려고 했다. 하지만 확실한 증명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후회와 의심 속에서 점점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회의(懷疑)에 더 깊이 침잠해 들어갔다.

나는 오로지 진리 탐구에 전념하려고 하므로, 조금이라도 의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전적으로 거짓된 것으로 던져버리고, 이렇게 한 후에도 전혀 의심할 수 없는 것이 내 신념 속에 남아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감각은 종종 우리를 기만하므로, 감각이 우리 마음속에 그리는 대로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가정했다.

데카르트가 진리를 찾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한 것이자 가장 잘한 일은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것이었다. 전혀 의심할 수 없는 것이 남을 때까지 그의 의심은 계속되었다. 심지어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져보는 감각까지 의심했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 다시 말하면 모든 지식을 일단 의심해보았다. ‘일단 의심해보았다’는 말을 학문적 용어로 ‘방법적 회의’라 한다.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것을 찾기 위해 의심을 활용한 것이다. 데카르트가 이런 방법을 사용한 가장 큰 목표는 확실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지식을 얻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학교에서 배운 것이고, 또 하나는 스스로 깨우친 것이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도 처음에는 누군가 스스로 깨우친 지식일 것이다. 그렇다면 맨 처음 그 지식을 얻은 사람은 어떻게 지식을 얻게 되었을까? 첫 번째 방법은 경험하는 것이다. 얼음을 만져보면 차갑다. 반대로 펄펄 끓는 물에 손가락을 넣어보면 엄청 뜨겁다. 이런 경험을 통해 얼음과 끓는 물의 온도차와 감각의 차이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두 번째 방법은 경험 없이 오직 논리만으로 얻는 것이다. 논리만으로 얻을 수 있는 지식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수학이다. 수학은 순수하게 논리만 가지고 이루어지는 학문이다. 데카르트는 이 두 가지 지식을 차례차례 의심해보았다.

우선 경험으로 얻은 지식부터 의심했다. 논리적 과정을 통해 확실성을 추구하던 데카르트는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과 경험을 통해서 얻은 지식은 확신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확실성을 추구하는 데카르트의 이런 자세는 이후 서양문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한편 장자의 동양문명을 불행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확실성을 추구하는 데카르트에게는 이제 논리를 통해 얻는 지식만 남았다. 논리적으로 맞는 지식을 어떻게 의심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1더하기 1은 2’라는 것은 예전부터 논리적으로 확실한 지식이라고 인정받은 것이다. 그런데 데카르트는 이 확실한 지식마저 의심했다. 결국 방법적 회의를 통해 데카르트가 내린 결론은 ‘확실한 지식은 없다는 사실만 확인’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모든 것들이 다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동안에, 당장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그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진리는 너무나도 확고하고 확실하기 때문에 회의론자들의 지나친 의견도 이 진리는 뒤흔들 수 없다. 나는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거침없이 이 진리를 내가 찾고 있던 철학의 제1원리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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