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 세계의 물살을 가른 아시아의 마린보이
임진국 지음 | 스코프
박태환, 세계의 물살을 가른 아시아의 마린보이
임진국 지음
스코프 / 2012년 9월 / 144쪽 / 12,000원
콜록콜록, 천식을 고치기 위해 시작한 수영
“천식에는 수영이 최고라는데요.”
어머니는 소아과 의사의 말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선생님, 정말 수영이 효과가 있을까요?”
“수영을 하면 폐활량이 늘어나 안정적인 호흡이 가능해 천식을 고칠 수 있다고 해요.”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온 뒤 아버지와 상의했습니다.
“우리 태환이 수영장 보냅시다. 수영하면 천식을 고칠 수 있대요.”
아버지는 망설였습니다. 태환이는 아직 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고, 가정 형편도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천식은 우리 몸속에서 공기가 왔다 갔다 하는 통로인 기관지에 문제가 생겨서 발생하는 병입니다. 기침을 많이 하게 되고 숨을 쉬기가 힘들어져 매우 고통스럽답니다. 그래서 태환이의 어머니는 아들이 수영을 열심히 해서 병이 낫기를 바랐어요.
“가자! 태환아.”
“어디요?”
“신나게 물놀이할 수 있는 수영장! 생각만 해도 재밌겠지?”
“난 수영 싫어요.”
태환이는 처음에는 수영을 무척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꾀를 내어 물속에 동전을 던져놓고 찾게 하였답니다. 그렇게 수영장에 조금씩 발을 담그고 물장구를 쳐보니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태환이는 자신도 모르게 물속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물에 들어가는 것조차 싫어했던 태환이는 무엇인가에 이끌리듯 수영하는 재미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태환이는 일곱 살 때 처음으로 수영대회에서 금메달을 받았습니다. 바로 동네 수영장에서 열린 졸업경기였습니다. 당시 수영강습을 받던 48명의 단원 중에서 배영 부문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한 것이지요.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태환이가 수영에 소질이 있다며 선수로 키우자고 했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수영 선수가 되는 게 그리 내키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수영은 인기가 없는 스포츠였습니다.
어머니는 태환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수영 선수 한번 해볼래?”
“좋아요.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태환이는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 어머니는 태환이를 보면서 환하게 미소 지었습니다.
엄마, 아프지 말아요
태환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어머니는 기침을 할 때 피가 섞여 나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유방암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게 됐습니다.“엄마, 여기 약 있어요.”
“네가 무슨 돈으로 이런 걸 사왔니?”
“제가 조금 벌었어요.”
“어린아이가 돈 벌 곳이 어디 있니. 힘들게 뛰어다니지 말고 공부와 수영에만 집중해라.”
어머니는 아들이 애처롭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 태환이가 병원을 찾아올 때마다 눈물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태환이는 어머니에게 약을 사다 드리고 싶은 마음에 우유와 신문을 배달했습니다. 어린애는 안 된다고 말하던 우유와 신문 보급소장님도 태환이의 정성에 감복해 배달을 허락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태환이의 무릎에 상처가 있는 것을 보고 물었습니다. “태환아! 무릎이 왜 그래. 다쳤니?”
태환이는 아무것도 아닌 척했습니다. 사실 태환이의 무릎은 성할 날이 없었습니다. 배달을 하다가 겨울철 빙판길에 미끄러지고 힘이 부쳐 계단에서 넘어져 무릎에 피가 나기 일쑤였죠.
태환이는 그해 제주도에서 열린 <전국소년체전>에 출전했습니다. 태환이가 준비운동을 하며 출발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병원에 계신 어머니가 올 리가 없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싶어 관중석을 쳐다보았습니다. 어머니는 흉하게 빠진 머리를 감추기 위해 모자를 쓰고 관중석에 앉아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태환이는 굳게 결심했습니다.“반드시 우승할 거야. 어머니를 위해서!”
태환이는 이를 악물고 팔을 휘저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결승점에 있는 터치패드를 손으로 찍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어머니와 아들은 얼싸안고 우승의 기쁨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태환이는 초등학교 시절 모든 대회의 우승을 거의 휩쓸다시피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도 빨리 건강을 회복했고, 처음에는 걱정만 하시던 아버지의 얼굴에도 어느새 환하게 웃음꽃이 피었습니다.“우리 아들 수영 선수가 되길 잘했죠?”
“그런 것 같아. 당신이 좋아하니까 나도 좋아.”
어리둥절 태릉선수촌 입촌
아테네 올림픽을 준비하던 김봉조 국가대표 수영팀 감독님은 서울 대청중 3학년생인 박태환의 경기를 유심히 지켜보았습니다. 태환이가 계영 400미터, 혼계영 400미터, 자유형 400미터, 자유형 200미터에서 우승을 하자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국가대표팀에 선발했습니다. 태환이는 드디어 그렇게 바라던 국가대표가 되었습니다. 태릉선수촌에 들어가게 된 태환이는 새벽 4시만 되면 풀장으로 가서 2시간가량 수영 훈련을 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오전 수업을 받고 오후에는 선수촌으로 돌아와 웨이트 트레이닝과 수영 연습을 했습니다. 태환이는 부모님이 걱정할까 봐 선수촌 생활이 재미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훈련 스케줄이 빡빡해 아침밥도 제대로 못 먹고 학교에 간다고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꼬꼬마 국가대표 실격당하다
2004년 8월, 열여섯 살 태환이는 아테네 올림픽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태환이가 출전하는 자유형 400미터에는 세계적인 선수들이 즐비했습니다. 태환이는 좀처럼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습니다. “다음 조 준비하세요.”
경기 안내원의 장내방송에 따라 태환이는 출발대로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준비!”
태환이는 출발음 소리를 듣고 힘차게 물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 물에 뛰어든 사람은 태환이 혼자였습니다. 준비 구호를 출발 신호로 착각한 것이었습니다. 수영에서는 단 한번만 빨리 출발해도 실격됩니다. 그날 태환이는 탈의실 화장실에서 문을 잠그고 2시간이나 울었습니다.
나는 다시 일어날 거야
“수영은 포기할 거냐?”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요.”
“대회는 앞으로도 많아. 수영장에서 기다리마. 당장 나와!”
아테네 올림픽 실격 이후 집에만 있던 태환이는 노민상 수영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실수를 약으로 만들려면 열심히 운동해서 좋은 성적을 내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을 바꾸자 힘이 솟았습니다. 태환이는 선생님과 함께 열심히 훈련을 했습니다. 자신의 실수를 다시 보는 것은 괴로웠지만 선생님과 태환이는 아테네 올림픽 실격 장면이 담긴 비디오를 보면서 상대 선수를 분석했습니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수만 번 비디오를 보고 연습을 거듭했습니다.
MVP는 즐거워
2006년 12월 4일,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 노민상 선생님과 태환이는 자유형 200미터 결선을 앞두고 라이벌 장린을 이기기 위해 작전을 짰어요. 지구력이 좋은 태환이가 막판에 역전하는 전략을 세운 거죠. 예선에서 1위를 한 태환이는 가장 좋은 4레인을 배정받았고, 양 옆 레인에는 예선에서 2위와 3위를 차지한 호소카와와 장린이 있었습니다.
“좋아! 됐어!”
노민상 선생님은 태환이의 출발 반응속도가 0.67초로 나오자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아테네 올림픽 때 출발 실수로 탈락했던 태환이는 연습을 통해 아픔을 딛고 누구보다 빠르게 출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태환이는 힘차게 팔을 휘둘렀습니다. 마침내 150미터 지점에서 장린을 따돌리고 1위로 나선 태환이는 힘차게 터치패드를 찍었습니다.“내가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어!”
태환이는 전광판에 쓰인 ‘1분 47초 51, 아시아 신기록’이라는 글자를 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며칠 뒤 새벽, 우리 국민들은 새벽잠을 설치며 태환이의 자유형 1,500미터 경기 장면을 지켜보았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아나운서와 해설자가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태환이의 금메달을 기원했습니다. 경기가 끝나자 아나운서가 외쳤습니다.“또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박태환 선수 정말 대단합니다!”
그날 태환이는 예선 3위로 결선에 올라 또다시 라이벌인 장린을 누르고 자유형 1,500미터에서 우승(14분 55초 03)을 했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언론도 태환이가 1,500미터 경기에서 15분 안에 들어온 것을 칭찬하며 베이징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내가 해냈어!
“선생님, 동양인이 수영에서 동메달만 따도 잘하는 거죠?”
“그만하면 진짜 잘하는 거지.”
태환이는 베이징 올림픽 400미터 예선을 하루 앞둔 날 밤 노민상 국가대표 감독님 방을 찾아갔습니다. 감독님과 이야기를 하면 마음이 편해져 잠이 잘 올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죠.“이제 가서 잘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태환아! 나는 너를 믿어.”
감독님은 자기 방으로 가는 태환이의 뒷머리를 향해 또렷하게 말했습니다.
감독님은 400미터 예선에 앞서 태환이에게 결선에 대비해 힘을 아낄 것을 주문했습니다. 태환이는 결선에서 좋은 레인을 배정받기 위해 최소한 3위는 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예선전에 출전했고, 작전대로 3번 레인에서 결승을 치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태환이는 결선을 앞두고 매우 긴장을 했습니다. 경쟁 선수인 해켓, 장린, 젠슨도 잔뜩 긴장한 얼굴로 이리저리 서성이고 있었습니다.“대한민국! 박태환 화이팅!”
관중석에서 힘찬 응원을 보냈습니다.
마침내 출발 신호가 울렸습니다. 태환이는 0.69초로 제일 빨리 출발했습니다. 박태환은 부지런히 팔과 다리를 움직였습니다. 350미터 지점을 지나서는 다른 선수들을 볼 만큼 여유가 있었습니다. 끝까지 힘을 낸 박태환은 터치패드를 찍고 머리를 들었습니다. 전광판 제일 위에 ‘박태환 3분 41초 86’이라고 찍힌 것을 확인하고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승리를 자축했습니다.
태환이는 시상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태극기를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너무 딴딴한데.”
익살스럽게 금메달을 깨물어 보기도 했습니다. 올림픽 수영 자유형 400미터에서 동양 선수가 금메달을 딴 것은 태환이가 처음이었습니다. 태환이는 이 여세를 몰아 200미터에서 펠프스에 이어 2위를 차지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아, 런던 올림픽 400미터
“런던 올림픽에서는 세계 신기록을 세워야지.”
태환이는 런던 올림픽에 대비해 6개월에 걸친 해외 전지훈련에 들어갔습니다. 해외 전지훈련을 시작하기 전 태환이를 전담하는 마이클 볼 코치는 태환이에게 런던 올림픽에서 반드시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태환이는 수영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1년에 10개월 이상을 선수촌과 해외 전지훈련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전지훈련을 마친 태환이는 곧바로 런던으로 가서 선수촌에 입촌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수많은 기자들과 교민들이 태환이를 환영했습니다. 400미터 부문의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으니 관심을 보이는 건 당연했습니다.“박태환 역이 생긴 건 아시죠?”
“예, 이야기 들었습니다. 대회가 끝난 뒤에도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네요.”
런던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런던 시내 361개 역에 지금까지 올림픽을 빛낸 스타들의 이름을 만들었습니다. 태환이 역은 런던 동북쪽 외곽에 있는 데브덴 역이었습니다.
드디어 태환이가 400미터 예선에 출전했습니다. 태환이는 여유롭게 예선에서 1위로 터치패드를 찍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전광판에 1위라고 쓰여 있는 대신 ‘실격’이라는 뜻의 DSQ가 표시되었습니다. 태환이는 원인을 몰라 어리둥절했습니다. “당장 이의신청부터 하세요.”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런던 올림픽 선수단 단장의 지시에 따라 한국선수단은 조직적으로 움직였습니다.
“박태환은 출발자세에서 어깨와 몸을 움직이는 부정출발을 해 실격 처리했습니다.”
국제수영연맹은 심판의 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알려왔습니다. 한국선수단은 수정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따라 각 나라 수영연맹 회장과 국제연맹 회장단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약 한 시간 동안 녹화된 영상을 보면서 회의를 했습니다. 결선을 준비하면서 몸을 풀고 연습을 해야 했던 태환이는 그 시간 동안 스트레스를 받으며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마침내 최종 결과가 나왔습니다.
“박태환 선수의 실격이 취소됐어요!”
국제수영연맹 관계자가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박태환 선수가 어깨를 움직이긴 했으나, 고의성이 없는 습관이라고 판정을 내렸습니다.”
“빨리 결선 준비해!”
태환이는 부랴부랴 밥을 챙겨먹고 몸을 풀었습니다. 마음을 졸인 데다 휴식을 제대로 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으니 몸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태환이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초반에는 1위로 치고 올라갔지만, 뒤로 가면서 쑨양에게 뒤처지더니 은메달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값진 은메달이었습니다. 불리한 여건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낸 자랑스러운 메달이었습니다.
0.01초의 경기와 우정의 은메달
400미터에서 실격 소동을 겪고 은메달을 따긴 했지만 여전히 태환이의 얼굴은 어두웠습니다. 마이클 볼 코치는 200미터 결선에 앞서 걱정하는 태환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드디어 결선이 시작되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순위판을 바라보았습니다. 쑨양과 100분의 1초까지 똑같은 기록, 1분 44초 93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은메달을 받았습니다. 똑같은 기록으로 동시에 들어와 메달을 공동 수상하는 것은 올림픽 수영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쑨양은 태환이 쪽으로 다가와서 포옹을 했습니다. 두 사람은 라이벌 관계에서 점차 우정이 싹트는 관계로 발전했습니다.
쑨양과 태환의 우정은 1,500미터 경기에서도 계속되었습니다. 1,500미터 경기는 쑨양이 자신 있어 하는 종목이었습니다. 태환이는 원래 1,500미터는 출전하지 않으려 했지만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한국 선수는 태환이가 유일하기 때문에 출전한 것입니다. 태환이는 4위로 이 경기를 마쳤습니다. “쑨양, 세계 신기록 축하해.”
태환이는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한 쑨양에게 다가가 축하를 해주었습니다. 태환이는 경기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쑨양을 칭찬했습니다. “이겨보고 싶었지만 나보다 실력이 월등히 앞섰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기록을 세워주길 바랍니다.”“조금만 힘을 냈더라면 메달도 가능했는데, 4위가 아쉽지 않으세요?”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격려로 뜻깊은 메달을 두 개나 땄습니다.”태환이는 이제 수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성적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