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T KNOW 세계 100대 기업
김민주 지음 | 미래의창
MUST KNOW 세계 100대 기업
김민주 지음
미래의창 / 2012년 4월 / 400쪽 / 15,000원
에너지 - 로열더치셸 Royal Dutch Shell
설립연도 : 1907년(1890년 로열더치, 1897년 셸)
설립자 : 어거스트 케슬러, 헨디 디터딩(로열더치), 마커스 사무엘, 샘 사무엘(셸)
매출액/이익 : $378,152/$20,127(백만 달러)
자산규모 : $322,560(백만 달러)
시가총액 : $212,900(백만 달러)
종업원 : 97,000(명)
국적/본사 : 네덜란드/헤이그
포춘 2위, 포브스 5위, 인터브랜드 74위
네델란드 헤이그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기업이자 에너지산업 분야의 1위 기업인 로열더치셸의 본사가 위치해 있다. 로열더치셸은 네덜란드의 로열더치와 영국의 셸이 1907년에 설립한 합작회사다. 로열더치는 네덜란드 왕 윌리엄 3세의 허가를 받아 1890년에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유전 개발을 위한 회사로 설립되었다. 그리고 셸은 1897년에 런던의 마커스와 샘 사무엘 형제가 가족사업을 확장시켜 석유 분야에 뛰어들면서 설립했는데, 로열더치셸의 조개모양 로고와 껍데기라는 뜻의 "Shell"이라는 이름은 이 형제의 아버지가 조개껍데기를 파는 상점을 했던 데에서 비롯됐다.
네덜란드와 영국의 두 기업이 합작을 하게 된 데에는 당시 불안정한 석유 생산과 정치적 불확실성을 비롯해 미국의 사업가 록펠러가 세운 스탠더드오일이라는 위협적인 존재도 한몫 했다. 로열더치가 60%, 셸이 40%의 지분을 나눠 가진 로열더치셸은 영국과 네덜란드 두 나라에 세금을 납부했고, 이사회도 두 개였다. 하지만 2004년에 이르러 완전히 통합되어 네덜란드에만 세금을 납부하고 이중 이사회제도도 폐지하여 단일기업으로 재편되었다. 이는 로열더치셸이 출범한 지 100년 만에 이루어진 완전 합병이다. 로열더치셸은 출범 후, 동인도 및 보르네오의 석유를 독점하고 러시아, 루마니아, 멕시코, 미국, 베네수엘라 등에서도 석유 이권을 획득하여 스탠더드오일과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며 성장했다. 2차 세계대전 때에는 연합군의 연료 보급을 맡았고 1960년대에는 석유 생산과 판매량이 급증하면서 전 세계 석유 수급의 1/7을 차지할 정도로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1970년대 초, 로열더치셸은 세계 에너지산업 분야에서 7위 기업이었다. 하지만 단숨에 2위로 올라서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로열더치셸의 유명한 '시나리오 경영'이다. 시나리오 경영이란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몇 가지로 예측하고 각 상황에 대한 대응 전략을 수립해 준비하는 것을 말한다. 1969년 로열더치셸은 한 편의 시나리오를 작성한다. 그 시나리오에 따르면 미국의 석유 비축량이 바닥을 보이고 있고, 1967년 중동에 벌어졌던 6일 전쟁 후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들이 서방세계의 이스라엘 지원에 대한 반발로 정치적 결속력을 강화하고 그 일환으로 OPEC 국가들이 가까운 시일 내에 유가 폭등을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유가가 안정되어 있었기에 아무도 이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로열더치셸은 원유와 값싼 유전을 미리 확보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러던 중 마침내 로열더치셸의 시나리오대로 1973년 10월 중동전쟁이 발발했고 오일쇼크가 세계를 덮쳤다. 유가는 1년 만에 4배 가까이 올랐고 이는 전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입혔다. 하지만 로열더치셸만은 이 위기에 대응할 수 있었기에 가장 많은 이익을 내는 기업이 되어 세계 2위의 에너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후 로열더치셸은 환경 문제와 안전에 대한 우려를 해결하는 차원에서 무연휘발유를 생산했다. 진보된 기술로 다양한 고품질의 제품을 선보였고 고객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선두 기업으로의 위치를 확고히 다졌다. 에너지 선두 기업 로열더치셸은 지속가능한 개발과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는 기업 이미지를 구축해나가는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 유전 탐사, 화학제품 생산, 가스 및 전력 생산, 석유제품 생산, 대체에너지 개발 같은 직접적인 이윤창출을 위한 사업은 물론이고, 보건ㆍ안전ㆍ교육 및 환경과 같은 사회분야에 대한 투자를 포함하여 다양한 공익프로젝트들을 진행해오고 있다.
로열더치셸이 이러한 기업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데는 1995년에 발생한 큰 위기가 계기로 작용했다. 당시 로열더치셸이 원유채굴에 사용했던 시설물을 북해 한가운데 가라앉힌 사건으로, 세계 10대 악덕 기업 1위에 뽑힐 정도로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로열더치셸은 이 방법이 환경에도 오히려 안전하고 비용면에서도 가장 좋다고 판단했지만 세계적인 환경운동단체인 그린피스는 대대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고, 이는 인터넷을 통해 확대되고 전파되며 불매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결국 로열더치셸은 해양폐기 계획을 철회했다.
이 사건으로 기업 이미지가 최악으로 떨어지자 로열더치셸은 이미지 쇄신을 위해 온ㆍ오프라인 상에서 다양한 노력을 펼쳤다. 고객들뿐 아니라 직원들과 소통창구를 만들고 정치적인 중립성과 환경에 대한 공헌에도 열심이었다. 유전이 있는 개도국의 의료시설과 경제 지원을 늘렸고 적극적인 정보공개를 통해 투명한 기업으로 거듭났다. 로열더치셸은 현재 전 세계 에너지 공급의 선두주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기술 개발과 혁신에 아낌없이 투자를 하고 있으며 특히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새로운 에너지를 개발하고 공급하는 데에도 적극적이다. 청정연료인 천연가스의 생산을 늘리고, 브라질 기업과 함께 사탕수수에서 에탄올을 추출하고 이를 판매하는 사업을 위해 대규모의 투자를 결정하기도 했다.
로열더치셸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중 대표적인 것이 호주 해상 가스전 프로젝트이다. 5년간 300억 달러(약 32조 4천억 원)이상을 투자하는 이 프로젝트는 로열더치셸의 대표적인 장기 수익성장 모델로 세계 최대 규모의 FLNG(floating liquefied natural gas, 부유식액화천연가스)시설 건설과 혁신적인 기술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에너지산업 역사의 큰 획을 긋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일반제조 - 제네럴 일렉트릭 General Electric
설립연도 : 1878년
설립자 : 토머스 에디슨
매출액/이익 : $151,628/$11,6440(백만 달러)
자산규모 : $118,936(백만 달러)
시가총액 : $216,200(백만 달러)
종업원 : 287,000(명)
국적/본사 : 미국/코네티컷 주 페어필드
포춘 16위, 포브스 3위, 인터브랜드 5위
토머스 에디슨(1847∼1931)은 1897년 전구를 발명하여 세상의 빛을 밝혀주었다. 에디슨은 발명에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사업가적인 면모도 갖춘 사람이었다. 발명품과 기술에 대한 특허를 모두 등록했고 1887년에는 정식 연구소를 개소했다. 그리고 1890년 에디슨 종합전기회사(Edison General Electric Company)를 설립하는데 이것이 오늘날 GE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1892년, 당시 동일 업종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전기회사, 토슨-휴스턴 사와 합병을 통해 제너럴 일렉트릭이 되었다. 오늘날 GE의 주력 분야인 전기와 운송, 산업제품, 전력송신, 의료장비 등의 산업 부문은 모두 에디슨의 사업 유산인 셈이다.
GE는 일찍이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파악하여 1900년에 미국 최초로 기업부설 연구소를 설립해 수많은 특허와 신제품을 개발했고 1932년과 1973년에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GE의 연구소에서 전구ㆍ모터ㆍ발전기ㆍ항공기 엔진 등 산업사회에서 핵심적인 제품들이 개발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1970년대에는 미국 5위권의 초대형 기업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관료주의, 경영의 비효율성, 생산 둔화 등의 문제점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때 GE의 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꾸게 될 경영의 달인 '잭 웰치'가 등장한다.
잭 웰치는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고 시장에서 1, 2위를 다투는 기업체만이 경쟁에서 이길 수 있으며, 그렇지 못한 사업은 재조정을 하거나 매각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GE의 사업구조를 개편한다. 그는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스탭 조직을 줄여 나갔다. 대신 발전설비 및 연구직은 강화하여 기업의 역량은 높이는 전략으로 대대적인 기업 개편을 단행하게 된다. 그 결과, 잭 웰치가 취임한 이후 10년간은 수백 개의 사업이 합병ㆍ매각되거나 중단되었으며 34만 명이었던 직원은 22만 명으로 감소됐다. 이 결과 GE는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 순위 10위에서 5위로 올라갔으며 기업의 체질은 건전해졌다. 하지만 잭 웰치를 향한 비판의 여론도 거셌다. 그가 CEO로 있는 동안 10만 명의 직원이 해고당했으며 수익이 나는 사업을 키운다는 명목으로 핵심사업 중 상당수를 팔아 치우고 GE캐피탈 같은 금융 부문만을 키웠다는 것이다. 현재까지도 GE의 금융 부문은 전체 매출액의 32%로 가장 높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 여론에도 오늘날까지 잭 웰치를 '경영의 달인'으로 부르는 이유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기업 체질을 변화시켰다는 데에 있다.
GE는 'CEO 공장'이라고 불릴 만큼 잘 짜인 스파르타식 리더 교육으로도 유명하다. 2000년부터 현재까지 CEO로 재직하고 있는 제프리 이멜트 역시 치열한 경쟁과 6년 5개월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24명의 경쟁자들과 함께 CEO 수업을 받았고 메디컬 시스템에서 가장 출중한 성적을 낸 결과 CEO가 될 수 있었다. GE의 사업 부문은 금융ㆍ에너지ㆍ기술 인프라ㆍNBC방송 사업부ㆍ가전 사업부라는 5가지 사업부로 크게 분류된다. 가장 많은 수익을 차지하고 있는 부문은 기업 금융과 소비자 금융 분야이며 전체 매출에서 약 31%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대계열과 합작 투자를 하여 현대캐피탈이라는 상호명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GE가 가장 역점을 두고 사업을 추진하는 분야는 에너지와 기술 인프라다. 에너지사업 부문은 오일, 가스 그리고 세계 1위 시장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담수 시설, 에너지사업 등을 포함하고 있다.
2005년에는 에코메지네이션(Ecomagination: 환경을 의미하는 에콜로지ecology와 GE의 슬로건인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힘Imagination at work'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합성어)을 발표하며 차세대 지능전력망 사업인 스마트그리드(smart grid), 재생에너지 등의 친환경에너지 분야에 매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항공기엔진과 헬스케어 기기, 철도시설과 같은 기술 인프라 산업도 GE가 주목하는 분야이다. 이밖에 태양광 에너지ㆍ하이브리드 기관차ㆍ연료전지ㆍ저감엔진ㆍ가벼우면서도 강한 소재 등의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GE는 1896년 찰스 다우(Charles Dow)가 시장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하여 12개 종목을 편입시켜 만든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에 처음 편입된 이래 현재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기업이다. GE가 현재까지도 우수한 기업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리더를 육성하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였다는 것, 경쟁적인 대내외 환경 속에서도 반드시 성과를 내는 강력한 기업문화 때문일 것이다.
자동차 제조 - 토요타 자동차 Toyota Motor
설립연도 : 1937년
설립자 : 토요타 사키치
매출액/이익 : $221,760/$4,765(백만 달러)
자산/규모 : $359,862(백만 달러)
시가총액 : $137,800(백만 달러)
종업원 : 317,716(명)
국적/본사 : 일본/아이치 현 토요타 시
포춘 8위, 포브스 55위, 인터브랜드 11위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 사이에는 아이치 현을 중심으로 일본의 3대 광역 도시권이 형성되어 있는데 아이치 현 안에는 토요타 시(市)가 있다. 원래 명칭은 고로모 시였으나 토요타 자동차 공장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면서 토요타 시로 승격되었다.
토요타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2008년 GM을 제치고 세계 1위 자동차 업체로 성장했다. 비록 일본 대지진, 대규모 리콜 사태 등으로 2011년 전반기 GM에 1위 자리를 다시 내주었지만 아직도 세계 시장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1937년 토요타 자동차공업이 설립된 이래 75년 동안 적자를 낸 연도는 단 네 번뿐이었다. 그중 두 번은 2008, 2009년으로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일이다. 한때는 토요타의 생산방식을 배우기 위하여 전 세계에서 토요타 공장을 방문했다. 일본의 작은 방직업체로 시작한 토요타가 오늘날 세계적인 자동차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토요타의 창업주인 토요타 사키치는 그의 나이 59세에 토요타 방적회사를 설립했다.
관동대지진을 겪고 난 그는 아들에게 "지진 같은 재난을 당하면 철도는 쓸모없다. 지금 움직이는 기계는 자동차뿐이다. 앞으로는 틀림없이 자동차 시대가 온다. 나는 평생 섬유기계만 만들었으니 너는 자동차를 만들어라"고 말한다. 아들 토요타 기이치로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토요타 자동차를 정식으로 출범시키기 전에 해외 자동차 공장을 여러 곳 방문했는데, 그가 아이디어를 얻었던 곳은 뜻밖에도 슈퍼마켓이었다. 슈퍼마켓에서 사람들이 필요한 만큼만 물건을 사는 것을 보고 재고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적기 공급 생산방식(JIT: Just-In-Time)에 대한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적기 공급 생산방식은 제품을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여 재고를 최소화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를 통해 인력과 기계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어떤 부품이든지 항상 같은 자리에 배치하여 혼선을 줄이고 즉시 반응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토요타는 창업주의 공장 자동화 기술과 적기 공급 생산방식을 더욱더 발전시켜 오늘날 세계 1위로 거듭나게 만들어준 토요타 생산방식, 즉 TPS(Toyota Production System)를 개발하게 된다. '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 만드는 것'을 강조하는 토요타 생산방식은 질적, 양적, 시간적으로 철저한 원가 절감을 이루어냄으로써 오늘날 거의 모든 기업의 생산방식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 또한 대량생산으로 원가를 낮추던 규모의 경제를 당연하게 여긴 시대에, 양을 줄여도 싸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필사적으로 생각한 결과 오늘날 모든 기업이 배우고 싶어 하는 기업의 경영모델을 만들 수 있었다.
1989년에는 고급 승용차 시장을 공략한 렉서스(LEXUS) 브랜드를 런칭하게 된다. 렉서스 개발을 위해 토요타는 고급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석을 오랜 기간 철저하게 실행했다. 그들은 인터뷰를 통하여 벤츠나 BMW 같은 명차들의 구매 동기와 이미지를 분석했고 시트 종류를 고르는 데도 2년이 걸릴 만큼 치밀한 준비 과정을 거쳐 브랜드의 품격을 높였다. 덕분에 렉서스는 토요타의 다른 차종과 달리 '품격 있는 명차'라는 이미지를 구현하며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토요타는 하이브리드 차량에서도 한발 앞선 모습을 보였다. 1997년 토요타가 세계최초로 개발한 하이브리드 차량인 프리우스는 친환경 자동차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으며 3세대로 진화한 현재까지 리터당 29km라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으로 하이브리드 시장을 선도해 나가고 있다.
그동안 탄탄한 경영 성과를 보여준 토요타도 최근 들어 큰 위기에 봉착했다. 2009년 발생한 10여 건의 리콜 사태는 미국 시장에서 토요타 자동차의 안정성과 품질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하였으며, 특히 렉서스의 급발진 문제를 은폐하고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소비자들의 많은 비난을 받게 되었다. 이로 인해 큰 타격을 입어 2011년에는 시장 1위 자리를 결국 GM에게 넘겨주고 포드 자동차에도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생산 차질이 빚어지게 되면서 판매가 감소했고 이제는 우리나라 현대-기아차에게도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창립 이래 가장 큰 위기를 겪고 있는 토요타가 어떻게 이 위기를 넘기고 다시 예전의 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