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 소년 송승환, 세상을 난타하다
송승환 지음 | 스코프
창의력 소년 송승환, 세상을 난타하다
송승환 지음
스코프 / 2011년 12월 / 160쪽 / 12,000원
1장_ 말 잘하는 어린이, 송승환
상상력 대장은 책벌레
책에는 마법사가 들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신기하게도 내가 책을 읽기 시작하면 죽은 듯 가만히 있던 글자와 그림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에는 우리 집이 바다 깊은 곳에 있는 용궁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예쁜 공주가 괴물에게 붙잡혀 있는 성이 되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세계문학전집을 선물해주셨습니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던 50∼60년대에는 누군가 쓰던 교과서를 몇 년째 물려받는 것이 당연할 만큼 책은 비싸고 귀한 존재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빳빳한 새 종이에 글자가 빼곡히 차 있고 희한한 삽화가 그려진 빨간색 세계문학전집 양장본은 나의 보물 1호가 되었습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20권에 달하는 전집을 모조리 읽었습니다. 그 중에 특히 『돈키호테』를 좋아했습니다. 세상을 구하겠다는 자신의 꿈을 비웃는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는 돈키호테의 두둑한 배짱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엉뚱함으로 치면 돈키호테에 뒤지지 않았던 나는 늘 그 책을 가지고 다니며 틈이 날 때마다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저절로 그 두꺼운 책을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런 능력을 아이들에게 자랑했고 처음에는 내 말을 의심하던 아이들도 내가 책을 보지 않고 내용을 술술 말하자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이런 재주는 결국 선생님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나는 그날부터 책을 외우는 신동으로 한동안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어린 시절 책 읽기는 내 꿈의 양분의 되어 준 것 같습니다. 가끔 너무 힘들어서 도전하던 일을 포기하고 싶을 때면 그 당시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책 속의 주인공, 돈키호테나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주인공 도로시의 끊임없는 용기를 떠올리며 나는 다시금 힘차게 꿈을 향해 도전했습니다.
2장_ 도전하는 젊은 연기자, 송승환
브로드웨이를 경험하다
세계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 뉴욕에는 유명한 것이 무척 많습니다. 하지만 뉴욕에서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을 딱 하나만 꼽는다면 그것은 바로 브로드웨이입니다.
내가 뉴욕으로 유학을 온 결정적인 이유는 브로드웨이의 공연 문화를 배우기 위해서였습니다. 브로드웨이에는 수준 높은 공연들이 넘쳐 났습니다. <캣츠>나 <오페라의 유령> 등도 이곳에서 오랜 시간 공연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죠. 그래서 공연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작품성과 흥행성을 보장받는 꿈의 무대,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을 하는 것을 굉장한 영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수많은 공연을 보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세계적인 공연 연출가이자 영화 감독인 피터 브룩의 <마하바라타>였습니다. 이 작품은 공연장부터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멀쩡한 건물에 진흙을 덧대어 움막을 만들고 무대에도 흙을 덮어 길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에 물이 흐르도록 하여 개천까지 만들었습니다.
이 공연에서 제일 놀라웠던 점은 밤 10시에 시작된 공연이 다음날 아침 7시에 끝이 났다는 거였습니다.
평소 알고 있는 상식대로라면 도무지 공연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도 이곳에서는 인기리에 상연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에 나는 당혹감을 느꼈지만 점차 다양한 공연이 열리는 이곳의 문화가 아주 많이 부러웠습니다.
나는 평소에 젊은 후배들에게 외국에 나가서 공부할 것을 권유하곤 합니다. 조금 고생스럽더라도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를 직접 보고 듣는 것이 정말 큰 공부가 되기 때문이죠. 더군다나 공연의 티켓을 팔거나 포스터를 홍보하는 방법은 현장에서만 배울 수 있는 알찬 경험입니다.
무엇보다 유학의 가장 큰 장점은 세계의 벽이 의외로 높지 않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외국의 공연이 대체적으로 수준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지 않은, 기대 이하의 공연 역시 의외로 많기 때문입니다. 나 역시 그렇게 일찍이 시야를 넓혔기 때문에 노력하면 얼마든지 세계적으로 성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3장_ 난타를 만든 공연 기획자, 송승환
프라이팬으로 사물놀이를 하자
부엌에서 들리는 맛있는 소리로 세계적인 공연을 만들겠다고 결심한 나는 마침내 내 꿈에 한 발 더 다가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세계적인 공연이 될 수 없다고 느꼈어요.
사실 외국의 공연 수준은 매우 높았습니다. 19세기에 시작된 외국의 공연은 우리나라보다 50∼60년이나 긴 역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좋은 공연을 만들어 내는 많은 기술과 장비를 가지고 있었죠. 게다가 공연에 투자하는 비용도 몇십 배 정도 차이가 나서 화려한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관객들의 눈도 매우 높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면 공연 역사가 짧은 대한민국의 작품으로 세계인의 관심을 끌 수 있을지 매일같이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깊은 고민에 빠져 있을 무렵 외국에서 중요한 손님이 찾아왔어요. 그런데 입맛이 까다롭기로 유명했던 그 외국 손님은 거리 곳곳에 있는 포장마차를 몹시 흥미롭게 여기고 난생 처음 먹어본 떡볶이의 매운 맛에 큰 감탄을 표시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떡볶이가 너무나 소박하고 평범해 보이지만 그 외국 손님 입장에서는 매우 특이한 한국의 음식 문화였던 것이죠.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야!" 나는 우리나라 문화만큼은 내가 외국의 공연 제작자보다 훨씬 잘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부엌의 소리에 가장 한국적인 특색을 집어넣는다면 우리나라 관객의 입장에서는 매우 친숙하게, 외국의 관객에게는 신선하고 개성 있게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물놀이는 우리 민족의 피에 흐르고 있는 힘찬 음악입니다. 사물놀이를 듣는 사람이라면 대단히 강렬한 한국적 에너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해외에서 '김덕수 사물놀이패' 공연에서 사회를 맡은 적이 있던 나는 김덕수 선생님께서 사물놀이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사물놀이는 꽹과리, 장구, 북, 징을 이용해 우리나라의 풍물 가락을 연주하는 공연입니다. 사물놀이의 리듬은 천천히 상승되다 어느 시점에서 정점으로 치닫는 등 변화무쌍하여 도저히 예측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사물놀이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정신이 쏙 빠질 정도의 황홀한 순간을 맞습니다. 그 매력을 김덕수 선생님께서는 한국적 에너지를 뜻하는 '신명'이라고 불렀어요.
나는 부엌에서 나는 소리에 사물놀이의 리듬을 어우러지게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누구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부엌의 소리라는 보편적인 문화에 한국적인 리듬이라는 사물놀이의 특수한 문화가 합쳐진 것이죠. 세계적인 공연이라면 꼭 갖추어야 할 자질입니다. 가장 한국적이며 가장 세계적인 공연의 기초를 완성한 나는 떨려오는 마음에 잠을 이룰 수 없었어요. 아직 모든 것이 시작 단계지만 곧 세계의 문을 신나게 두드리러 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죠.
4장_ 미래를 준비하는 문화 CEO, 송승환
꿈에 그리던 브로드웨이로
2003년 9월, <난타>는 브로드웨이에서 당당히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브로드웨이의 대표적인 가족 극장인 '뉴 빅토리 극장'에서 정식으로 초청하면서 상당한 출연료를 제시했어요.
"쿠킨(난타)은 어른과 어린이가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보기 드문 작품입니다."
뉴 빅토리 관계자는 나이, 언어, 문화 등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신나게 볼 수 있는 <난타>를 아주 우수한 작품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좀처럼 장기 공연을 하지 않는 뉴 빅토리 극장에서 <난타>는 한 달이나 공연을 할 수 있었어요. 한국 공연이 브로드웨이에 최초로 진출한 일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 공연 중에서도 최초의 일이었어요.
꿈은 멈추지 않는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 중의 하나는 365일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난타>가 공연되는 '<난타> 전용관'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난타>를 우리나라의 대표 문화 공연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한 것이죠.
2000년, 드디어 <난타> 전용관이 서울에 생겨났습니다. 당시에는 정말 도전적인 일이었어요. 난타 전용관은 대성공을 거두었죠. <난타> 전용관이 생기고 나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사업을 하는 기업이나 관광 회사 등에서 우리에게 제일 많은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난타>는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는 놀라운 선물이었어요.
이렇게 <난타>는 365일 두드림을 멈추지 않으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 공연으로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가장 한국적이며 가장 세계적인 공연을 만들겠다는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