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가장 용감했던 17일
한국로체청소년원정대 지음 | 푸른숲주니어
한국로체청소년원정대 지음
푸른숲주니어 / 2011년 4월 / 375쪽 / 13,800원
지금이라도 포기할까?나는 재수생이다: 내 나이 열아홉…. 나는 재수생이다. 대학 입학시험에서 쓴잔을 마셨냐고? 천만에! 로체 원정대의 재수생이다. 일 년 만에 다시 로체 원정대에 지원서를 넣을 때, 내게 삼수란 없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재수에 성공해서 어깨를 펴고 당당히 원정 대원이 되거나, 또 다시 지독한 패배감을 맛보고 깨끗이 마음을 접거나……. 이 둘 중 하나를 택하기로 했다. 로체 원정대가 중시하는 과정 중심주의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내가 '원정 대원이 되느냐 못 되느냐'라는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원정대원이 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무엇을 얻었는지가 중요했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보다 나은 친구들이 히말라야로 원정을 떠나서 보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 더 옳은 일일지도 모르니까. - 김범수 -
공부가 가장 쉬었어요: 10시 정각, 드디어 첫 산행이 시작되었다. 한마디로 지옥 훈련이었다. '참 웃기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쉽구나.' 훈련이 끝날 때까지 힘들 때마다 내 머릿속을 수도 없이 왔다 갔다 했다. 마치 주문처럼 나는 그 말을 외치고 또 외쳤다. 요즘 들어 부쩍 공부가 힘들고 짜증스러웠던 터라 더 그랬던 것 같다. 공부를 하는 것이 얼마나 편하고 행복한 일인지 몇 번이나 가슴속에 새기고 또 새겼다. '학교에 돌아가면 정말로 열심히 공부해야지.' 오 분가량의 짧은 휴식 시간……. 학교에서 무의미하게 날려 버리던 십 분의 쉬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게 쓰일 수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 이다솔 -
앗, 멧돼지가 나타났다: 어느새 등산로인 산을 다 내려와 좁은 포장도로로 접어들었다. 그때 갑자기 이 대장님이 대원들에게 걸음을 멈추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돌을 하나씩 손에 잡으란다. 처음에는 또 다른 종류의 훈련이 시작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선두 쪽에 멧돼지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우리끼리 똘똘 뭉쳐 있다가 혹시라도 멧돼지가 또다시 나타나면 한꺼번에 돌을 던져야 한다고 했다. '이건 뭐, 원시 시대도 아니고…….' 대장님의 표정을 보니 장난은 아닌 듯했다. 금세라도 멧돼지가 우리를 향해 돌진할지도 모르는 위기 상황인 셈이었다. 그러자 얼마 전에 극장에서 본 영화 〈차우〉가 생각나면서 두려움이 엄습했다. 나는 손에 든 돌멩이를 꼭 움켜쥔 채 벌벌 떨면서 발걸음을 천천히 떼었다. 다행히 그곳을 빠져나갈 때까지 멧돼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 김경남 -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딸만 세 명인 집의 막내로 태어나 편하게만 자라온 나에게 이번 훈련은 난생처음 겪어 보는 고생의 연속이었다. 로체 원정 대원으로 최종 선발됐을 때는 참 간단하게 생각했다. '뭐든 열심히 하면 되겠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될 텐데 뭐가 걱정이야?' 그런데 큰 오산이었다. 가는 곳마다 눈물겹도록 힘든 일들이 마치 거대한 장애물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두 번째 날. 눈물을 머금고 옥돌봉에 오르면서 내가 왜 이곳에 와 있는지, 학교에 가만히 앉아서 공부나 하고 있을 걸, 왜 일부러 이런 고생을 사서하고 있는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수도 없이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힘들고 포기하고 싶어도, 한 발짝도 더 앞으로 나갈 수 없을 것 같아도 결국은 다시 걸어가야 하는 길……. 힘들다고 짜증을 내 봤자 나만 더 힘들어질 뿐이었다. 많이 뒤처지긴 했지만 이를 악물고 정상에 다다랐을 때의 쾌감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 홍지원 -
걷고 또 걷기, 25시간의 지옥 같은 산행25시를 향해서: 이번 산행의 구호는 '25시를 향해서!'였다. 말 그대로 스물다섯 시간 동안 꼬박 산행을 하는 것이었다. 불수도북(불암산,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을 다 돌았는데 어렵다기보단 극도로 피곤했다. 차 대장님의 훈련 일지를 슬쩍 훔쳐보았다. 90Km, 25시간……. '에이, 설마 이걸 우리더러 진짜로 하라고 하려고?' 그런데 그 설마가 사람을 잡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가 가야 하는 첫 목적지는 불암산 정상이었다. 예상보다 빠른 시간 안에 불암산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 오르자 바람이 더 세차게 불어서 몹시 추웠다. 땀이 식으면서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렇게 산행이 끝나고 잠깐잠깐 쉴 때 대장님이 이런 말씀을 했다. 겉옷을 수시로 벗었다, 걸쳤다를 반복해서 체온을 최대한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 앞으로 감기에 걸리지 않고 추위에 더 떨지 않으려면 꼭 그런 습관을 들여야겠다. - 윤재국 -
야, 첫눈이다: 11시 15분부터 도봉산 야간 산행을 시작했다. 산에 들어간 지 얼마 안돼서 싸라기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첫눈을 산에서 맞다니! 그나마 많이 내리진 않아서 바위틈에만 성에처럼 엷게 쌓였다. 다행히 미끄럽진 않았다. 도봉산 길은 수락산과 불암산 길보다는 가팔랐다. 어두워서 그렇게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다. 차 대장님이 도중에 헤드 랜턴을 끄고 조용히 올라가라 했다. 헤드 랜턴이 없는데도 서울 시내에서 건너온 불빛이 워낙 밝아 앞이 잘 보였다. 대체 얼마나 많은 집들이 빛을 밝혀 이 먼 산까지 밝혀 주는 걸까? 시간과 장소만 잘 잡으면 서울의 야간 산행은 맨몸으로도 할 수 있을 듯했다.
이날의 목표는 북한산 인수봉. 벌써 새벽 2시가 넘었는데 어느 세월에 가나? '아마 오늘은 안 자나 보다.' 우울한 기분으로 막 체념을 하는 순간, 비박 준비를 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원래는 북한산 캠프장에 도착해서 새벽 5시에 취침을 할 계획이었는데, 대원들이 너무 힘들어해서 이대로 비박을 하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덕분에 예상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새벽 3시에 침낭을 펴고 누웠다. 차 대장님이 알려 준 대로 배낭에 있는 짐을 모두 빼어 커다란 김장 비닐 속에 넣었다. 그리고 침낭 안으로 들어간 다음, 발을 배낭에 넣고 잠을 청했다. 오리털 침낭을 지급받은 후론 한 번도 춥게 잔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날씨가 하도 추워서 그런지 양말을 두 개나 신었는데도 너무나 시렸다. - 유희현 -
일어나, 일어나야 돼: "다솔아, 일어나! 일어나야 돼!" 어제 부탁했던 대로 희현이가 나를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침낭 속에서 나오는 데는 성공했으나, 이럴 수가…. 모두들 이제 살 것 같다고 느낄 때쯤 다시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4시 무렵, 모든 산행이 끝났다. 지옥의 '25시를 향하여'프로젝트가 대단원을 내리게 된 것이었다. 대장님과 김성태 박사님이 고생했다며 격려의 말씀을 해 주었다. 그 말씀을 듣고 있노라니, '잘 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내가 해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안도감과 뿌듯함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어제부터 탔던 네 개의 산들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오랜만의 산행에서 처음 코스라 너무나 힘들었던 불암산, 첫눈을 만났던 수락산, 반쯤 눈을 감고 걸었던 죽음의 도봉산, 이제는 친구 같은 북한산…. 이젠 안녕! '이제 이런 훈련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이런 생각을 하자 더욱 긴장이 되면서,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다솔 -
꼭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괜찮아: 그사이 부쩍 성장한 나를 만났다. 1차 훈련 때 영주 부석사에 첫발을 내딛던 그때의 '나'가 아니었다. 세제 없이 대충 닦아 놓은 식기에 다시 밥을 먹을 때 눈살을 찌푸리며 헛구역질을 하던 '나'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는 나뭇잎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편히 잠잘 수 있는 '나'만 있었다. 동료 대원이 힘들어하면 내 발걸음 역시 천근같이 무거운데도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나'로 바뀌어 있었다. 로체 원정대가 히말라야 로체 베이스캠프까지 성공적으로 등반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목표'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이 내가 성장하는 과정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국내 훈련 과정에서 얻게 된 성장 동력이다. 성장 동력을 매 훈련 때마다 발견하고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것은 결국 각자의 몫이다.
로체 원정대는 결과보다 과정을 우선으로 한다. 국내 훈련 과정에서 여러 산을 오르내리면서 느낀 것은 어느 산의 정상에 올랐다는 만족감보다는, 우리가 함께 한 그 길 위에 눈물이 있고 기쁨이 있고 감동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동료 대원, 그리고 서포터즈 선생님과 함께 산을 오르면서 내가 몰랐던 한계를 깨닫고,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고비고비마다 눈물을 꾹 참았다. 결국 극복해 낸 것이다. 일곱 번에 걸친 국내 훈련을 통해 나를 비롯한 스무 명의 동료 대원들은 또래와는 확연하게 다른 자신감과 인내심을 갖게 되었다. 타인을 배려할 줄 알고, 함께 뭔가를 이뤄 가는 기쁨을 알게 된 것이다. 꼭 정상이 아니어도 괜찮다. 이미 난 정상에 오른 것과 마찬가지의 커다란 자신감을 갖게 되었으니까. - 김범수 -
나마스테, 네팔새해, 그리고 시작: 2010년 1월 1일이다. 새해 첫날엔 누구나 그렇듯이, 떡국을 먹고 한 살을 더 먹었다. 오늘은 나에게 아주 특별하다. 히말라야 원정을 떠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네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나라……. 그곳으로 나는 원정을 떠난다. 히말라야라는 거대한 목표에 도전하는 데, 2010년 1월 1일은 딱 제격인 것 같다. 모든 사람이 새해에는 새 마음을 먹고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하지 않는가. 나도 새 마음으로 새 각오를 다지며 2010년의 첫 단추를 끼운다. 그 첫 단추는 나 자신에 대한 도전, 그리고 성취로 채우고 싶다. 드디어 비행기가 움직였다. 이렇게 떠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나는 믿기 위해서 애써 주문을 걸었다. 믿어야지.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지는 일들이 왠지 꿈같고 장난 같고 어색했다.
여기까지는 잘 참고 견뎌 왔는데, 끝까지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래, 영하 20도의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침낭 하나에 의지한 채 잠을 청했고, 불암산과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을 하루 세 시간씩만 자면서 종주하기도 했는데……. "까짓 거, 뭘 못 해! 어디쯤 왔을까?" 창 너머로 거대한 산맥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이 평화로움이 마지막 평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광활한 산맥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니, 산맥 위에 실핏줄처럼 여러 갈래로 퍼진 길들이 보였다. 저 길들을 내가 걸어가야 한단 말이지? 순간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막상 눈으로 보니까, 그동안의 다짐과 각오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이제야말로 실전이다.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기 암시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선배들의 조언처럼, 지금 여기서 나를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므로.
드디어 비행기가 네팔 공항에 도착했다. 제국 오빠가 "나마스테!"하고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네자, 네팔 사람들이 "한국 짱!"이라고 소리치며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어느 책에서 네팔사람들은 '가난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묘사한 글을 본 적이 있었다. 나라면 이런 환경에서 도저히 웃으며 살 수 없을 것 같은데, 평생을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네팔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새 내 가슴속의 두려움과 불안감이 설렘과 기대감으로 바뀌고 있었다. 살짝 흥분되는 느낌이랄까? 카트만두 거리는 꽤 충격적이었다. 21세기의 첨단 문명과 완벽하게 단절된 모습이었다. 그러다 한 순간, 나의 손짓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대 여섯 살쯤 돼 보이는 아이들이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저 아이들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한창 유치원에서 뛰어놀 나이인데……. 내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새삼 온몸으로 와 닿았다. - 홍지원 -
경비행기를 타고 히말라야로!: 경비행기는 다 그런 걸까? 이륙을 할 때 엄청난 소음이 났다. 장난감같이 생긴 이 경비행기가 추락이라도 하지 않을까 싶어서 공포에 떨면서도 눈길은 자꾸만 바깥쪽으로 쏠렸다. 역시 상상했던 대로 히말라야라는 멋있었다. 거대함과 웅장함, 광대함, 그리고 그곳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어떤 존재에게도 결코 길들여질 것 같지 않은, 말 그대로 야생이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광경이었다. 비행기는 산 위를 나는 것이 아니라 산과 산 사이를 곡예 하듯이 위태롭게 날아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착륙을 하는 것 같았다. 이 엄청난 흔들림으로 보면 착륙이라기보다는 불시착에 가까웠다. 이윽고 지상에 발을 내딛으니, 우리가 히말라야에 왔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우리는 해발 2,840미터에 위치한 루크라 공항에 도착했다. - 강병민 -
로체야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고산병과의 아찔한 첫 만남: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등에서 전율이 일더니 속이 더부룩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는 애써 기운을 내고는 짐을 날랐다. 그러고는 건물 안에 들어가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갑자기 등에서 식은땀이 나면서 저릿저릿하더니, 급기야 창자가 심장 쪽으로 기어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루크라보다 고도가 200미터가량 낮은 팍딩으로 이동할 때는 더욱더 상태가 좋지 않았다. 결국 몇 걸음 떼지도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토하고 말았다. 거의 오 미터 간격으로 토악질을 했다. 그때마다 한 걸음씩 뒤처지는 바람에 마음은 한없이 조급했지만, 발걸음을 떼는 것 자체가 고역인지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중에는 쉬고 걷고 토하고를 규칙적으로 반복했다. - 박주나 -
마음이 원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 산행을 하면서 풀밭을 지나기도 하고 빙판길도 지나면서 급격한 기온의 변화를 느꼈다. 온도가 바뀔 때마다 수시로 옷을 벗었다, 입었다를 반복했다. 어떨 땐 귀찮아서 그냥 버티기도 했다. 내 마음을 어떻게 눈치챘을까? 대장님이 게으르면 감기에 걸리게 되고, 그 대가는 하산이라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찔끔했다. 에베레스트 국립공원 입구에서 잠깐 휴식을 취했다. 햇살이 참 따뜻했다. 햇살 아래서 천천히 걸어 다니는 기분이 정말 좋았다. 얼마쯤 걸었을까? 오, 저기! 에베레스트가 보였다.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하얀 연기가 날리고 있었다. 그것을 설연이라고 부른다 했다. 설연은 눈처럼 날리는 것인데, 꼭 구름이 빠르게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영상과는 달리, 설연은 정상의 바람이 엄청 세다는 것을 알려 주는 증거란다.
우리는 다시 산행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선두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누군가를 만나서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대장님과 친분이 있는 산악인 김홍빈 아저씨라고 했다. 지금 막 칼라파트라에서 내려오는 길이라나. 그런데 김홍빈 아저씨가 대장님과 악수를 하는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악수를 하기 위해 내민 두 손이 온전하지 않았다. 비록 손가락을 잃긴 했지만 산에 대한 열정을 꺾을 수가 없어서 산악활동을 계속 한다고 했다. 장애를 극복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김홍빈 아저씨를 보니 가슴 밑바닥에서 존경스런 마음이 일었다. 정말로 멋있어 보였다. 김홍빈 아저씨는 존경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러니까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사니까 정말로 행복하다." - 윤재국 -
인내의 단맛을 알다: 천만다행으로 그날은 고산병에 적응을 하기 위해 비교적 고도가 높지 않은 상보체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일정이었다. 선발대에 서서 산행을 시작했지만 오 분 정도가 지나자 다시 속이 안 좋아져서 뒤로 처지고 말았다. 이 대장님이 함께해 주었다. 대장님은 이렇게 말했다. "만약 지금 멈춘다면 그건 백 퍼센트 네 의지가 부족해서인 거야." 이 말이 자극제가 되어 계속해서 걸었다. 얼마 후, 대장님이 물었다. "시후야, 여기서 내려갈래?" "아니요, 지금 내려가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요." 난 결국 끝까지 갔다. 대원들 모두가 환호해 주었고, 그 환호에 나는 힘을 얻었다. 오늘 난 정말 소중한 것을 하나 배웠다. 바로 '인내'라는 단어였다. 지금까지 무언가를 참고 노력해서 이룬 적이 없었다. 하지만 힘듦을 참고 또 참아서 목적지에 올랐을 때 느꼈던 성취감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성장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 조시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