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세계인권사
하승수 지음 | 두리미디어
청소년을 위한 세계인권사
하승수 지음
두리미디어 / 2011년 6월 / 296쪽 / 15,000원
1부. 인권, 어떻게 출발했나인권의 뿌리를 찾아서
인권이란?: 최근 살인이나 아동 성폭력 같은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의 얼굴을 공개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나오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범죄자에게도 인권이 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범죄자에게도 인권이 있다'라는 이야기를 뜯어보면, 두 가지 명제가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범죄자도 인간이다'와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인권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인권人權은 '인간의 권리' 또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리는 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권이라는 말이 나오면 보편성, 천부성, 항구성, 불가침성 같은 딱딱한 단어들이 붙기도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누구에게나 인권이 있다'라고 했을 대 당연히 연관되어 나오는 것들입니다. 먼저 인권은 인종, 성별, 신앙, 사회적 신분 등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누리는 권리입니다. 이것을 인권의 보편성普遍性이라고 부릅니다.
인권은 사람이면 누구나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인권을 가지게 되기까지 다른 절차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냥 태어나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을 인권의 천부성天賦性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인권은 박탈당하지 않고 영구히 보장되는 권리입니다. 따라서 범죄자라고 해도 그 사람의 인권 전체를 박탈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인권의 항구성恒久性이라고 합니다. 또한 인권은 인간이 그것을 향유하는 것을 침범 받지 않는 권리입니다. 이것을 인권의 불가침성不可侵性이라고 합니다.
인권이라는 관념의 뿌리를 찾아서: 그렇다면 인간의 권리를 뜻하는 '인권'이라는 관념은 언제부터 형성되기 시작했을까요? 인권人權은 한자어입니다. 이 단어는 영어인 'Human Rights'를 번역한 것으로,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전후해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 발표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에는 'Les Droits de l'Homme'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것을 영어로 번역하면 'The Rights of Man(인간의 권리)'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인간이 가지는 권리'라는 관념의 씨앗을 찾아보면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우선 고대부터 이어져 온 종교의 가르침에서도 인권의 씨앗들이 존재했습니다. 예를 들면 유대교 십계명 가운데 '살인하지 말라'라는 항목에서 생명권의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살인하지 말라'라는 것은 명령이지만, 그 명령에 의해 사람들의 생명이 보호되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고대 철학에서도 오늘날까지 의미를 가지는 주장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플라톤은 여성에 대한 평등한 대우를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플라톤의 생각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여성은 노예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처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플라톤은 이 문제에 관해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성도 개인적인 능력에 따라 사회에서 하나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인권의 새 지평을 연 종교개혁과 종교의 자유
지금도 여전히 문제인 종교의 자유: 우리나라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만, 여전히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쟁점이 되는 문제는, 사립학교에서 종교적 의미를 담은 행사나 교육을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행사나 교육에 의무적으로 참석하게 한다면, 그것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이 믿고 싶은 종교를 선택할 자유가 있고, 그 어떤 종교도 갖지 않을 '무신앙의 자유'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종교의 자유'는 여전히 살아 있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도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적 배타주의와 자신들의 종교만이 뛰어나다고 믿는 종교적 우월주의로 인해 많은 분쟁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다수가 믿는 종교와 다른 종교를 믿는 소수집단이 있을 때, 다수가 무력으로 그 소수집단을 억누르는 사례들이 많습니다. 거의 모든 종교에서 강조하는 '관용'의 정신은 온데간데없습니다. 이슬람교는 교리로만 보면 관용의 정신을 가장 강조한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현실을 보면, 이슬람교 신자들이 다른 종교에 대해 관용을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이것은 기독교를 포함한 다른 종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근대 시민혁명의 대사건들
근대 시민혁명은 1차 인권 혁명: 요즘에도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가끔 '혁명'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혁명'이란 결정적이면서 급격하게 이루어지는 사회 변화를 말합니다. 최근에도 정치적인 의미에서 '혁명'이라고 불리는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2011년에 들어와 중동지역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많이 벌어졌습니다. 아프리카 북쪽에 있는 튀니지라는 나라에서도 시민들의 시위에 의해 독재정권이 물러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것을 '재스민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재스민이 튀니지를 상징하는 꽃이라서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지금도 혁명이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혁명'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실제 현실로 나타난 시기는 17세기부터 18세기에 이르는 때였습니다. 근대 시민혁명이라고 불리는 혁명들이 이 시기에 일어났습니다. 이 무렵에 영국의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 미국의 독립혁명(독립전쟁), 프랑스 대혁명 같은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건들 속에서 인권은 권리장전', '권리선언' 같은 이름의 문서에서 명시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근대 시민혁명을 1차 인권 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2부. 인권을 역사의 무대로 끌어 올린 글과 사람들세계를 뒤흔든 인권 문서들
영국의 문서들: 「마그나카르타」 - 문서로 권리를 보장하려는 시도는 영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영국에서는 1215년에 '대헌장'이라고도 부르는 문서인 「마그나카르타」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렇지만 「마그나카르타」가 전에 없던 권리를 새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근본적인 한계는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아닌 귀족들만의 권리를 보장해 주는 문서였기 때문입니다.
「권리청원」과 「권리장전」 - 영국에서는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 등을 거치면서, 「권리청원」이나 「권리장전」을 비롯한 문서들이 계속 작성되었습니다. 「권리장전」의 주요 내용은 의회의 동의 없이 왕권으로 법률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것은 위법하다는 것, 의회의 동의 없이 과세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이러한 「권리장전」의 내용은 미국의 「독립선언서」나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미국의 「독립선언서」: 미국 독립혁명이 전개되는 과정에서도 여러 중요한 문서들이 작성되었습니다. 각 주에서는 「권리장전」을 제정했습니다. 1776년 6월 미국 독립혁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나온 「버지니아 권리장전」에서는, 생명권, 자유권, 재산권, 저항권 등의 인권을 천부적天賦的 자연권으로 규정했습니다. 천부적 자연권이란, 인간이면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히 누리는 권리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버지니아 권리장전」에서는 언론과 출판의 자유, 종교와 양심의 자유 등을 비롯한 근대적 권리들을 체계적으로 제시했습니다.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프랑스 대혁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제헌국민의회는 1789년 8월 26일에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결의했습니다. 이 선언은 앞부분에서 "인간은 권리에 있어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고 생존한다. 사회적 차별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만 가능하다."라고 전제하고, 재산권, 사상의 자유, 언론과 출판의 자유, 신체의 자유 등을 불가침의 권리로 선언했습니다. 또한 "모든 정치적 결사의 목적은 인간의 자연적이고 침해할 수 없는 권리를 보존하는 데 있다."라고 하여,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존재한다는 것을 명백하게 밝혔습니다.
인권을 발전시킨 사상가들과 그 명암
인권 사상의 발전: 역사를 보면, 인권의 발전은 늘 인권에 관한 사상의 발전과 함께해 왔습니다. 1차 인권 혁명으로 불린 영국의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 미국 독립혁명,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기까지 인권 사상은 꾸준히 발전했습니다. 혁명에 이론과 논리를 제공해 준 것이 바로 인권 사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에서 인권 사상이 발전해 온 과정을 언급하려면, 자연권과 사회계약론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인간이면 자연적으로, 그리고 당연히 누리는 권리라는 의미의 '자연권'사상은 여러 사상가들에 의해 발전해 왔습니다. 영국의 토마스 홉스, 존 로크 등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한편 '사회계약론'은 '국가가 휘두르는 권력이 어떻게 발생했으며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관한 사상입니다. 이 사회계약론 역시 여러 사상가들에 의해 발전되었는데, 여기에는 토마스 홉스, 존 로크, 장 자크 루소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사회계약론에서는 자연 상태라는 것을 전제합니다. 국가도 없고 통치기구도 없는 자연 상태에 대한 생각은 사상가에 따라 모두 달랐습니다. 홉스는 자연 상태를 '만인萬人에 대한 만인萬人의 투쟁'이 벌어지는 상태라고 생각했지만, 루소의 경우에는 자연 상태에서 인간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전제했습니다.
이런 자연권 사상과 사회계약론에 바탕을 두고 '어떤 정치체제가 바람직한가'에 대한 생각도 점점 발전해 갔습니다. 토머스 홉스는 절대군주제를 지지했지만, 자연권과 사회계약론이 발전해 나감에 따라 미국 독립혁명 당시 토머스 페인은 왕이 없는 공화제를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3부. 근대 시민혁명의 유산과 그 발전근대 시민혁명의 한계와 의미
인권 혁명이 이룬 것들과 남은 것들: '인간'의 범위에 제한은 있었지만,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이루어진 구체적 성과도 적지 않았습니다. 먼저 고문이 폐지되었습니다. 또한 종교의 자유가 확립되고,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인정되는 성과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성과들은 확고하지 않았습니다. 확실해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혁명 당시에는 완전히 해결되지 못했지만, 다음 시대인 19세기를 지나오면서 차차 이루어진 과제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노예제도가 그렇습니다. 프랑스 대혁명을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논쟁의 대상이 된 노예제도는 점차 폐지되는 과정을 밟아 왔습니다. 미국에서는 남북전쟁까지 겪으면서 폐지되었습니다.
정치적 불평등도 개선되어 왔습니다.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으로 왕정은 폐지되었지만, 그때도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선거권이 주어졌습니다. 그러한 모순은 19세기 동안 투표권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조금씩 극복되어 왔습니다. 한편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다음에도, 자본주의의 발전은 불평등과 빈곤을 심화시켜 왔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숙제도 이제 다음 세대로 넘겨졌습니다.
사상, 양심, 표현의 자유, 그 멀고도 험한 길
금서와 양심수: '금서禁書'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금지된 책을 말합니다. 국가 권력이나 종교 권력에 의해 출판 또는 판매가 금지된 서적입니다. 역사를 보면 수많은 금서들이 있었습니다. 금서를 모아 불태워 버리는 일도 많았습니다. '필화筆禍'라는 말도 있습니다. 글 때문에 화禍를 입는다는 뜻으로, 글을 발표했다가 권력으로부터 제재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토머스 페인은 프랑스 대혁명을 옹호하는 『인권』이라는 책을 발표했다가 영국 정부에 붙잡혀 처벌을 받을 뻔했습니다. 이런 사건을 필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발표한 글의 내용이 문제가 되어 작가가 감옥에 갇히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사상과 양심과 표현의 자유란?: '사상思想'이란 사람이 세계와 인생에 대해 가지는 생각을 말합니다. 흔히 말하는 세계관, 인생관 같은 것을 사상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사상에는 정치적 신념도 포함됩니다. '양심良心'이란 사람이 옳고 그름 또는 선악에 대한 가지는 도덕적 판단을 말합니다. 사상이 논리적 차원의 사고를 의미한다면, 양심은 윤리적, 도덕적 차원의 사고라고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권과 관련해서는 흔히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함께 묶어 이야기할 때가 많습니다.
20세기에도 위협받는 사상, 양심, 표현의 자유: 19세기에도 사상과 양심과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는 경우가 많았고, 20세기에 들어오고 나서도 이러한 현상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19세기 말에 사상과 양심과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유명한 사건인 '드레퓌스 사건'이 터졌습니다. 1894년에 프랑스 군대에 복무하던 알프레드 드레퓌스라는 유대인 장교가 독일 스파이라는 혐의로 부당하게 기소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에 대한 편견 등이 작용함으로써 결백을 입증하는 수많은 증거가 있었는데도 유죄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이때 유명한 소설가인 에밀 졸라(1840~1902)가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을 신문에 발표했습니다. 이 일은 여전히 표현의 자유가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세계대전이 벌어지면서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권력으로부터 탄압받았습니다. 영국 출신의 유명한 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셀은 전쟁에 반대하다가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미국에서는 전쟁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1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투옥되었습니다. 당시에 미국 정부는 스파이법을 통과시켰는데, 외국 정부에 고용된 스파이들이 아니라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기소하고 감옥에 넣기 위한 용도로 쓰였습니다. 전쟁반대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은 20년에서부터 심지어는 40년까지 중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한 행동은 글을 쓰거나 강연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이처럼 심한 처벌을 받은 것입니다.
4부. 인권의 말살 위기와 「세계인권선언」의 탄생인권의 역사를 무너뜨린 전쟁
전쟁과 인권: 예나 지금이나 인권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전쟁입니다.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것으로 가장 중요한 인권인 생명권이 위협받습니다. 그리고 전쟁은 조직적인 반인권 범죄 행위를 수반하기도 합니다. 인종 청소, 민간인 학살 같은 인권유린이 조직적으로 자행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전쟁은 인권의 전반적인 후퇴를 초래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다른 여러 인권들을 억압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20세기 들어와서 세계는 큰 전쟁을 두 번이나 치렀고, 그 밖에도 많은 전쟁과 내전을 겪었습니다. 특히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과거의 전쟁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엄청난 군대가 전선에서 맞붙었고, 그 전의 어떤 전쟁에서보다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기관총, 탱크, 비행기, 잠수함에서 독가스, 원자폭탄에 이르는 무기들은 더 많은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향한 인류의 발걸음은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 그리고 그 사이에 세계를 휩쓴 대공황과 파시즘의 물결 속에서 퇴보하게 됩니다.
「세계인권선언」과 국제적인 노력들
「세계인권선언」의 탄생: 세계 곳곳에서 대학살과 인권유린이 자행되고 무려 6천만 명이라는 인명이 희생된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부터 새로운 국제기구를 설립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됩니다. 사실 국가 간의 분쟁을 해소하기 위한 연합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국제 평화에 관심이 많았던 칸트가 이미 1795년에 《영구평화론》을 통해 제안했을 정도로 역사가 오래되었습니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 후에 국제연맹이 생겼지만,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바람에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다시금 세계 평화와 기본적 인권을 지키기 위한 국제기구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국제연합(UN)을 결성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