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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아이

최형미 지음 | 명진출판
최형미 지음

명진출판 / 2010년 9월 / 117쪽 / 9,800원




엄마 숙제? 내 숙제?



"엄마, 이런 걸로 하면 안돼! 재료 사지 말고 재활용품으로 만들라고 했단 말이야!" 나는 만들기 재료를 사온 엄마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유, 재활용으로 뭘 만들어? 멋지게 만들어 가야 더 좋은 점수 받지!" 엄마는 왜 내 말을 안 들어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이 분명 아무리 잘 만들어도 재활용품이 아니면 불합격이라며, 꼭 재활용품으로 만들라고 했습니다.

"아, 진짜!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진짜 재활용품으로 하랬단 말이야!" "걱정 마, 엄마가 재활용품으로 만든 것처럼 티 안 나게 만들어 주면 되잖아!" 엄마와 내가 토닥거리는 모습을 보던 아빠가 말했습니다. "여보, 호두 숙제를 왜 만날 당신이 해줘? 만들기도 스스로 해 봐야 돼. 그래야 창의성이 생기지." "당신은 뭘 알지도 못하면서 그래! 요즘에는 만들기 숙제 같은 건 다 엄마들이 해 줘. 공부할 시간도 없는 애들이 만들기 할 시간이 어디 있다고 그래. 그리고 잘 만들어 가야 좋은 점수를 받지. 당신은 호두가 1등 하는 게 싫어?" "그거 혹시 당신이 1등 아닌가?" "뭐라고요!" 아빠는 보던 신문을 가지고 얼른 안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호두야, 엄마가 잘 만들 테니까 너는 걱정 말고 방에 들어가서 수학 문제집이나 풀어!" 나는 조용히 내 방에 들어와 수학 문제집을 폈습니다. 하지만 머릿속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김호두, 내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어 주셨습니다. 호두처럼 단단하고 야무지고 똑똑한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내 특기인 외우기도 통하지 않고, 엄마가 도와준 숙제도 선생님한테 자꾸만 지적을 받습니다. 나는 여섯 살 때부터 학습지도 하고 학원도 다니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내 생각이나 느낌 같은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진도를 빨리 끝내야 했으니까요.

다음날 눈을 떠보니 엄마가 만든 것은 정말 멋졌습니다. "우와! 진짜 근사하다. 이거 스탠드야?" "그래, 선생님한테는 못 쓰는 상자로 만들었다고 해." 나는 스탠드가 망가질까 봐 커다란 종이 가방에 잘 넣어 학교에 가지고 갔습니다.

3교시가 되었습니다. "자, 얘들아, 만들기 숙제 다 해 왔지? 모두 책상 위에 올려놓으세요." 나는 스탠드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우와, 호두 거 봐봐." "진짜 잘 만들었다!" 친구들이 탄성을 질렀습니다. "못 쓰는 상자로 만들었어." 나는 엄마가 알려 준 대로 말했습니다. 아이들이 웅성거리자 선생님이 내 자리로 오셨습니다. "어디 보자. 으음, 잘 만들었구나." 선생님은 스탠드를 요리조리 살펴보고는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칭찬을 들었는데도 썩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이야, 민상아! 이거 참 재미있는 작품이다. 친구들한테 어떻게 만들었는지 소개 좀 해줄래?" "이건 그림 맞추는 퍼즐이에요. 동생 주려고 만든 건데, 색종이에 그림을 그려서 우유팩에 붙인 거예요. 그리고 그 안에는 우리 동생 사진을 여러 개 붙였어요." "선생님은 민상이 작품이 여러모로 참 좋은 것 같아. 재활용품을 잘 활용했고,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은 것 같아서 칭찬해 주고 싶어. 얘들아, 선생님이 내 주는 숙제는 너희들 숙제야.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조금 서투르고 부족해도 스스로 하려고 노력했으면 좋겠어." 선생님 말씀을 듣는데 괜히 내 얼굴이 자꾸만 빨개집니다.

지구별 여행자



나는 효도 방학 숙제로 엄마, 아빠와 설악산을 다녀온 뒤에 기행문을 쓸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빠 회사에 일이 생기는 바람에 여행을 가지 못하게 됐습니다. 나는 괜히 심술이 나서 소파 위에 놓은 쿠션을 주먹으로 팍 쳤습니다. "얘가 왜 쿠션에 화풀이야! 그냥 독후감 숙제 하면 되잖아!"

어느덧 효도 방학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김호두, 독후감 숙제 다 했어?" "안 했는데. 엄마가 해 준다고 했잖아." 나도 걱정이 되긴 했지만 모두 엄마한테 미뤄버렸습니다. 엄마는 인상을 찡그리더니 '어쩌지!' 하며 한참 동안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 그러면 되겠다." 엄마는 좋은 생각이라도 났는지 컴퓨터를 켜고 무언가를 열심히 찾기 시작했습니다. "찾았다. 호두야!" "뭔데?" "요즘 여행 갔다 와서 블로그에 글 올리는 사람들 많잖아. 이거 보고 우리가 여행 갔다 온 것처럼 정리해서 쓰자." 남의 것을 베낀다는 말에 조금 걱정이 되었습니다.

"우리 선생님은 책 같은 거 베끼는 거 싫어하신단 말이야." "블로그는 책이 아니잖아. 그리고 베껴 가도 절대 안 들켜. 블로그가 얼마나 많은데!" 나는 절대 안 들킨다는 엄마 말에 블로그를 살펴보았습니다. <지구별 여행자>라는 이름의 블로그에는 우리가 가려고 했던 설악산 사진과 여행기가 꼼꼼히 올려져 있었습니다. 엄마와 나는 머리를 맞대고 <지구별 여행자>가 쓴 글을 내가 쓴 것처럼 조금씩 고쳤습니다. "호두야, 꼭 우리가 여행 갔다 온 것 같다. 그치?" "그러게. 근데 엄마, 너무 잘 쓴 거 같아. 선생님이 뭐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

효도 방학이 끝나고 교실에 들어가니,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이 수다를 떠느라 교실이 시끌시끌합니다. 4교시, 드디어 효도 방학 숙제 발표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들 재미있게 보냈니?" "네!" "그럼 한 명씩 발표해 보자. 조장 호두가 해볼까?" "저는 엄마, 아빠와 설악산에 다녀와서 기행문을 썼습니다." 아이들은 숨을 죽이고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내가 발표를 마치자 아이들은 감탄한 표정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내 기행문과 사진을 한참 보시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려는데 선생님이 나를 불렀습니다. "호두야, 여행은 재미있었니?" 선생님이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나에게 물었습니다. "네." "선생님은 호두가 공부도 열심히 하고 여러 가지 면에서 의젓한 아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호두야, 호두가 잘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자기 숙제를 남의 힘에 빌려서 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야."

나는 선생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만들기 숙제 때문에 그러시는 걸까요?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선생님은 컴퓨터 화면에서 얼굴을 돌려 내 얼굴을 찬찬히 보셨습니다. 앗, 그런데 컴퓨터 화면에 익숙한 사진들이 떠 있었습니다.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어? 어, 어!" "선생님 블로그야." 아뿔싸! 엄마가 아무도 모를 거라고 했던 <지구별 여행자> 블로그의 주인은 바로 선생님이었습니다.

다 엄마 때문이야!



"이게 다 엄마 때문이야!" "아니, 호두 너 왜 그래?" 나는 씩씩대면서 엄마한테 내가 베껴 간 블로그가 선생님 블로그였다는 사실을 말했습니다. "뭐? 선생님 블로그라고?" 엄마도 무척 당황한 것 같았습니다. 엄마는 한참 고민하더니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나를 달랬습니다. "별일 아니야. 시험 성적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잖아. 이번 중간고사에서 백 점 맞으면 돼." "몰라, 엄마는 항상 백 점 타령이야."

나는 엄마한테 소리를 지르고는 방에 들어와 버렸습니다. 나는 학교에 가는 것도 싫고, 선생님을 보는 것도 너무 창피한데 엄마는 괜찮다고만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된다고, 중간고사 때 백 점만 맞으면 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을 보는 것이 너무나 힘듭니다. 선생님 머릿속에 나는 선생님 블로그를 베껴서 잘난 척한 나쁜 아이일 테니까요.

며칠이 지났습니다. 내일로 다가온 중간고사가 걱정이 됩니다. 외우는 것은 자신 있지만 서술형 문제는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내일이 오는 게 정말 싫습니다. 시험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림자 나라



"얘들아, 오늘은 아침 자습 대신 특별한 시간을 갖자." 선생님의 말씀에 아이들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다들 3학년 올라와 처음 보는 시험이라 많이 긴장되지? 긴장도 풀 겸 잠시 눈을 감고 차분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자. 자, 모두 눈을 감고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차분히 해 보세요." 긴장을 풀어 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는 음악은 오히려 내 마음을 자꾸만 불안하게 만듭니다.

"야, 일어나!" 나는 누군가의 고함 소리에 고개를 들었습니다. "어?" 분명 교실이었는데, 친구들이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가 어디지?"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온통 회색 빛깔 벽뿐입니다. "여기서 뭐 해? 빨리 자리로 돌아가!"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깜짝 놀랐습니다. 입만 있고 눈도 코도 귀도 없는 검은 물체가 내게 고함을 치고 있었습니다. "빨리 자리로 돌아가. 얼른 시키는 대로 해." "시키는 것만 하라고요?" "자꾸 묻지 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시키는 걸 해. 숙제든 공부든 만들기든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해!"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뭐 하는 거야? 여긴 어디야?" "여기는 그림자 나라야. 우리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도대체 왜 나를 여기에 데려온 거야?"

아바타 아이



검은 물체들은 계속 나를 책상에 끌어 앉히려고 했습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겨우 뿌리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검은 물체들이 나를 쫓아오며 소리쳤지만, 나는 무조건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하지만 계속 달려도 보이는 건 회색 벽뿐이었습니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주저앉았습니다.

"얘!" "너, 너는 뭐야!" 검은 물체처럼 생겼지만 눈과 코와 입이 있는 검은 물체가 나를 향해 웃고 있었습니다. "안녕! 너도 그림자 아이들을 피해서 도망쳤구나?" "그림자 아이?" "그림자 아이들은 처음에 눈도 코도 귀도 없고 입만 있는데, 무조건 시키는 대로 자신의 나이만큼 살면 입도 없어진대. 그러면 완벽한 그림자가 된 거라서 아무것도 안 시킨대." "평생 그림자로 살아야 한다고?" 나는 소름이 끼쳤습니다.

"너도 그림자 아이야?" "아니, 나는 아바타 아이야. 나도 시키는 대로만 하고 살다가, 그게 싫어서 도망쳤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싫으면 안 하면 되잖아." "바보! 너도 늘 시키는 대로 하고 살았잖아. 이곳에 오는 아이들은 다 똑같아. 너도 혼자 생각하는 거 싫어하지? 혼자 힘으로는 숙제도, 공부도 잘 못하고?" 나는 아바타 아이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그러니까요. 그래서 어떤 일이든 항상 엄마한테 먼저 물어봅니다.

"그럼, 넌? 넌 왜 여기에 와 있는데?" "난 혼자 할 줄 아는 게 없어. 그래서 누가 시키는 대로 하거나 다른 사람을 따라 했어. 그러다보니 이곳에 오게 됐지. 여기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몰라서 이렇게 혼자 숨어 지내고 있어." "그럼 여기에서 탈출하지 못하면 평생 이렇게 지내야 해?" "응…." 나와 아바타 아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나는 엄마 생각이 났습니다. 이럴 때 엄마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엄마한테 물어보면 다 알려 줄 텐데…. "그런데 너도 점점 눈하고 코하고 귀가 희미해지고 있는 거 같아." "뭐라고!" 나는 아바타 아이의 말에 소리를 질렀습니다.

누구한테 물어봐야 해?



"배고프다." "배고프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아바타 아이는 지겹도록 나를 따라 했습니다. "그래도 널 만나서 참 좋다." 아바타 아이가 갑자기 말했습니다. "뭐가?" "그림자 아이들은 다 똑같잖아. 징그러울 만큼. 그런데 넌 다르니까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어, 너 점점 눈이랑 코랑 귀랑 또렷해지는 거 같아." 나는 아바타 아이를 보며 문득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제까지는 다른 사람이 행동하고 말하는 걸 따라 하거나 시키는 대로만 했는데 날 만나서는 내가 좋다는 생각도 하고, 그런 생각을 너 스스로 말했다는 거지?" "응, 그렇다니까." 나는 무릎을 치며 말했습니다. "나 알 것 같아. 여기를 빠져나가는 방법!" "그게 뭔데?" "뭘? 앗, 다시 그림자 아이들이 쫓아온다!"

그림자 아이들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이대로 그림자 아이들에게 붙잡히면 나는 평생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합니다. 아바타 아이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얼른 도망가!" 아바타 아이가 그림자 아이들에게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어느새 나도 그림자 아이들에게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나는 그림자 아이들에게 어깨를 붙잡힌 채 말했습니다. "아바타야, 생각해. 스스로 생각해! 이곳을 빠져나가려면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하려고 해 봐!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고. 그게 방법이야!"

난 아바타 아이가 아니야



"호두야, 왜 갑자기 소리를 질러?" 나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린 사람이 그림자 아이들이 아니라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분명 난 그림자 나라에 있었는데 어떻게 된 것일까요?

"자, 모두 눈을 뜨세요. 모두들 마음이 차분해졌나요?" "예." "그럼 오늘 시험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세요." "예!" 아이들이 큰 소리로 대답합니다. 나는 아직도 어리둥절합니다. 내가 잠깐 꿈을 꾼 걸까요?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만 하는 눈도 코도 입도 귀도 없는 그림자로 평생 살아야 한다는 건 너무나 무서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짜 무서운 건 내 생각도 없이 그림자처럼 누군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니까요.

"김호두! 너 이게 뭐야? 백 점이 한 과목도 없잖아." 엄마는 내 시험지를 보자마자 소리를 질렀습니다. 3학년이 되어 처음으로 본 시험인데 서술형 문제를 두세 문제씩 틀렸으니까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앞으로 더 잘할 자신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제는 그림자처럼 생각도 없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외우지 않을 겁니다. 선생님 말처럼 조금 서투르고 부족해도 숙제도, 시험 준비도 스스로 할 거예요."너 이번 한 번만 봐주는 거야. 앞으로는 어림없어. 그리고 알림장 가져와 봐. 오늘 숙제 뭔지 보게." "독서 기록장 쓰기, 오늘 시험 본 국어, 수학 틀린 문제 정리하는 거야." 엄마가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난 이만 독서 기록장 쓰러 내 방으로 들어갑니다." "어, 독서 기록장 쓴다고?" 엄마는 좀 당황한 것 같았습니다. 나는 늘 엄마에게 '다음에 뭐 해야 해?' 하고 물어보았는데 오늘은 묻지 않았으니까요.

1, 2학년 때 나는 백 점도 많이 맞고 똑똑하다는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진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스로 한 것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달라질 겁니다.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힘으로 한번 해본 다음 도움을 청할 겁니다. 나는 그림자 아이, 아바타 아이가 아니라 단단하고 야무진 아이, 김호두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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