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눈 코끼리
강정연 지음 | 푸른숲주니어
초록눈 코끼리
강정연 지음
푸른숲주니어 / 2010년 8월 / 208쪽 / 9,000원슈퍼스타, 범벅
오늘은 무지무지 특별한 날이어서 아침부터 내내 흥분 상태다. 이날만큼은 '뻥!' 하고 곧 터져 버릴 풍선마냥 온 동물원이 부풀어 오를 대로 부풀어 오른다. "범벅, 오늘의 마지막 공연이다. 잘 할 수 있지?" 콧수염은 내 코 끝에 '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추었다. 나는 콧수염이 퍽 마음에 든다. 하얀 새치가 잔뜩 섞인 곱실거리는 회색 머리칼이 마음에 들고, 웃으면 안 보이는 작은 눈이 마음에 들고, 무엇보다도 둥그런 코 아래 깔끔하게 자란 콧수염이 정말 마음에 든다. 입술을 달싹일 때마다 움직이는 그 콧수염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그를 '콧수염'이라고 부른다.
"자, 시간 됐다. 범벅, 나가자." 콧수염을 코로 휘감아 순식간에 등에 태웠다. 늘 있는 일인데도 콧수염은 이 순간을 가장 좋아했다. "자, 다음은 우리 동물원의 슈퍼스타, 범벅이의 공연이 이어지겠습니다!" 코끼리 쇼 사회자의 목소리가 공연장 밖까지 울려퍼졌다. 나는 공연장으로 들어가는 문 위로 늘어진 커튼을 젖히며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공연장을 날려 버릴 만큼 우렁찬 함성이 울려퍼졌다. 그 함성에는 놀라움과 두려움, 기대감이 한데 뒤섞여 있으리라. "슈퍼스타 범벅! 슈퍼스타 범벅!" 그래, 난 슈퍼스타 범벅이다! 고개를 빳빳이 든 채 코를 치켜들며 콧소리를 냈다. 뿌-.
저 좀 내버려 두세요, 제발!
노래? 연주? 그림 그리기? 나에게는 그 어느 것도 불가능한 것이 없다. 나의 몸짓 하나하나에 까무러칠 듯 열광하는 사람들, 나는 그들의 마음을 얼마든지 쥐락펴락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느낌은 뭐지? 누구지? 묘한 눈빛이 자꾸만 내 신경을 건드렸다. 기분 나쁜 눈빛이랄 순 없고, 다만 이제껏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눈빛이었다. 나는 관객들 앞으로 한 발 나아가서 사람들을 찬찬히 살폈다.
갈색 곱슬머리에 동그랗고 뽀얀 얼굴, 마치 화난 듯 꼭 다문 입술, 하늘색 티셔츠에 밤색 반바지를 입은 남자아이. 이상하게도 나는 그 아이가 첫눈에 마음에 들었다. "옳지, 좋았어. 오늘은 너와 함께 마무리해야겠다. 너무 놀라지 마라, 꼬맹아!" 내 기다란 코는 꼬맹이의 몸을 휘감았다. 그러고는 공중으로 높이 치켜올렸다. 단 한 번도 시도한 적 없는 이 기막힌 쇼.
사람들의 함성과 비명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나는 무대를 두어 바퀴 돈 뒤 꼬맹이를 정확하게 제자리로 돌려보내 주었다. 무대 밖으로 퇴장하기 전에 콧수염을 돌아보니 하얗게 질린 얼굴로 제자리에 서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내 마지막 쇼가 너무 과했나? 나는 콧수염에게 사과의 의미로 코를 내밀었다. 그런데 삐쳤는지 내 코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무대 밖으로 퇴장하였다. 그리고 다른 조련사에게 나를 맡기고 부리나케 공연장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오늘도 사람들 앞에서 광대 짓거리나 하고 들어왔냐? 한심한 녀석! 쯧쯧쯧." 또 시작이다. 사육장에 들어서자 큰 귀 할머니가 혀를 찬다. 나는 못 들은 척 하고 큰 귀 할머니에게서 돌아섰다. 예전에 할머니도 다 했던 일이면서.
"네 어미가 사람들 앞에서 광대 짓이나 하라고 천 일 동안 널 배 속에 품고 있었는지 아냐? 너를 천 일 동안 배 속에 품기 위해 네 어미가 겪은 고통을 알기나 하냔 말이다!" 또 저 소리다. "스물두어 달 만에 태어나는 보통 코끼리와 천 일을 꽉 채우고 나온 너는 할 일이 다르다. 우람한 덩치와, 희번덕거리는 앞니와, 하늘을 뒤덮을 만한 큰 귀와, 다른 코끼리들은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는 두 눈과…." "제발 그만하세요! 제가 천 일 만에 태어난 아프리카코끼리라 해도, 지금은 그저 동물원의 코끼리일 뿐이잖아요." "그래, 아직 때가 안 된 게지. 그때가 오면 너도 네 몫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게다."
'그때'라는 것이 언제인지는 몰라도 나는 정말 눈곱만치도 관심이 없다. 나는 울컥 화가 나서 건초 덩이를 다시 웅덩이에 집어던지고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누웠다. 난 단 한 번도 할머니 말을 끝까지 들어 본 적이 없다. 솔직히 궁금하지만 묻지도 듣지도 못하겠다. 겁이 나서……. '콧수염은 도대체 어딜 간 거야?' 몸이 점점 가라앉으며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진다.
내 친구, 환희 / 너와 함께 있을 수 있어!
콧수염이 돌아왔다. "짠!" 콧수염 뒤에서 누군가가 얼굴을 쏙 내밀었다. "아니, 너!" 아까 나와 함께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하던 그 곱슬머리 꼬마였다! 곱슬머리 꼬마가 헤벌쭉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아까 범벅이 네가 환희를 코로 들어 올렸을 때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처음엔 우리 아들 닮은 앤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까 우리 아들이 맞더라고." 콧수염이 나의 콧등을 툭툭 치며 말했다.
"안녕! 나는 환희야, 서환희. 범벅, 너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근사하다. 아까 나를 코로 휘감아 높이 올려 주었을 때는 정말 끝내줬어!" 환희는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이 나를 대했다. 나는 일부러 인상을 잔뜩 쓰며 말했다. "너, 정말 내가 안 무서워?" "네가 왜 무서워? 너는 사람을 절대로 위험에 빠뜨릴 녀석이 아니다. 그런데 뭐가 무섭니?" "그나저나 너, 콧수염이랑 정말 안 닮았다." "뭐, 콧수염? 우리 아빠를 콧수염이라고 부르는구나? 아빠, 얘가 아빠를 콧수염이라고 부른대!" "그게 무슨 소리냐? 범벅이가 나를 콧수염이라고 부른다고?" "그렇다니까. 아빠, 몰랐어?" "환희야, 너 정말 범벅이 말을 알아듣는 거야?" 어, 진짜 그러네! 내가 사람들 말을 다 알아듣는 것처럼 이 녀석도 내 말을 몽땅 알아듣잖아. 대체 이 녀석 정체가 뭐야?
"아빠, 난 코끼리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고! 코끼리의 머리울림, 콧소리, 눈빛, 몸짓을 다 이해할 수 있다고 몇 번이나 말했어?" 범벅이는 다른 코끼리들하고 확실히 달라. 내가 코끼리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는 것처럼, 범벅이도 사람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는다고." "그거야 뭐, 나도 이미 알고 있지." "걱정 마. 범벅! 이젠 너와 늘 함께 있을 수 있어! 나만 믿어!"
끝내주는 아이디어
환희는 정말로 하루 만에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김 부장과 함께. 물론 콧수염도 따라왔다. "그러니까 네가 범벅이와 얘기가 통한단 말이지?" 김 부장은 코털이 삐져나온 코를 벌름거리며 환희에게 두세 번이나 확인을 받았다. "좋았어. 그럼 그걸 증명해 봐. 시간은 딱 한 달 주지. 만약 누구도 보여 주지 못한 쇼를 보여 준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 범벅이의 꼬마 조련사로 인정하마". 간만에 히트작 하나 만들어 내서 동물원에 사람만 들끓게 하면, 나는 부원장이 되는 거고 너는 꼬마 조련사가 되는 거지."
"꺄오! 기회가 이렇게 쉽게 올 줄이야! 이번 기회만 잘 잡으면 나는 진짜 범벅이의 조련사가 될지도 모른다고!" "네 계획이 뭔데?" "내 계획? 아주 끝내주는 거야." "끝내주는 거, 뭐?" "콧수염과 나는 동시에 되물었다. "그건 바로! 사람 말을 하는 범벅이!" 순간 정적이 흘렀다. "뭐?" "뭘 그렇게 놀라? 범벅이가 사람 말을 하는 것만큼 확실한 쇼가 어디 있어?" "그건 끝내주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불가능한 아이디어지!"
아~안 녀~엉!
"좋은 아침! 범벅, 잘 잤어?"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여섯 시에 찾아온 사람 말 선생님 환희. "아-, 어때?" 환희는 마치 내 소리가 안 들리는 것처럼 이렇다 저렇다 대꾸도 하지 않고 건초 덩이 하나를 들고 물에 확 풀어 놓았다. 그러고는 손으로 휘휘 저으며 하는 말. "너, 지금 '아' 소리를 낸다고 한 거냐?" "응! '아' 소리가 제대로 났어? 알아듣겠어?" "아 에 이 오 우." "아니, 코로 소리를 내지 말고 목으로 내란 말이야." "야, 난 코끼리야. 코끼리가 사람 말을 못 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니야? 나, 더 이상 못 하겠어! 이 고약한 고집쟁이야!"
할머니는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내가 소리를 좀 낼 줄 알지."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할머니가 소리를 낼 줄 안다니! "목에 바람을 잔뜩 넣은 다음 코끝을 목구멍에 넣어 흔들어 봐라. 그럼 '목소리'가 날 게다. 잘만 연습하면 '사람 말'도 할 수 있을 거고." "할머니, 왜 그런 걸 제게 가르쳐 주시는 거예요? 할머니는 제가 사람 좋아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시잖아요." "그건 말이다.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네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지. '그때'가 다가왔다는 걸." 할머니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통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그때'라는 말을 할 때마다 가슴이 묘하게 요동을 쳤다. 도대체 '그때'가 언제일까?
아침이 밝았다. "범벅! 안녕! 좋은 아침!" 아, 드디어 환희가 왔다! "아~안 녀~엉!" 환희는 내 목소리를 듣고 너무 놀라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잠시 동안 멍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기분이다! 한 번 더 해 주지! "아~ 안 녀~엉!"
초록눈 코끼리
드디어 공연날이 밝았다. "안녕하세요, 범벅이 친구 환희랍니다!" 환희가 제법 의젓하게 인사했다. 그다음은 내 차례였다. 나는 일단 코를 하늘 높이 치켜들고 콧소리를 냈다. "아~안 녀~엉!" 사람들은 거의 기절한 것 같은 얼굴로 환호성을 질러댔다. 그때 누군가 놓친 풍선 몇 개가 천천히 날아오르는 게 보였다. 그런데 그중 하나가 천장에 닿자마자 '뻥' 하고 터졌다.
두르르르르르. 뛴다기보다는 무언가 굴러오는 듯한 느낌. 가장 앞에서 뛰던 큰할머니가 고통스러운 콧소리를 내며 나동그라졌다. "멈추지마! 앞만 보고 뛰어라!" 내가 달리기를 멈추려 하자 엄마가 뒤에서 소리쳤다. 탕! 탕! 엄마가 쓰러져 다리를 버둥거리고 있었다. 나는 쓰러져 있는 엄마에게 바짝 다가갔다. "초록눈, 내 아들…. 너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 어서 도망쳐!" 아, 정신이 아득하다.
"범벅아, 정신차려! 눈 좀 떠봐! 제발!" 환희의 목소리였다. 눈꺼풀을 겨우 들어 올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객석은 텅 비어 있었다. "범벅 너, 돌처럼 굳은 채로 두 시간 넘게 서 있었어 정말 네가 돌이 된 줄 알았단 말이야!" "초록눈은 분명 나였어." "초록눈? 그게 무슨 소리야? 어! 그러고 보니 네 눈! 초록빛으로 변했어!" 나는 문득 할머니가 말하던 '그때'라는 말을 떠올렸다. 아주 무서운 꿈
"드디어 초록눈이 되었구나. 백 년을 기다려 온 초록눈이야." 할머니 얼굴에서 이렇게 행복한 표정을 본 적이 있던가? "범벅아, 잘 들으렴. 너는 아프리카코끼리의 길잡이, '초록눈'이다. 초록눈은 오직 우리 가문에서만 백 년에 한 번씩 천일둥이로 태어난단다. 초록눈으로 변하는 순간, 반드시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을 꿈을 통해 알게 되지. 그 후 아프리카코끼리의 길잡이로 영광스러운 백 년을 살게 되지." "그렇다면 초록눈 코끼리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게 뭐예요?" "범벅아, 부디 아프리카 초원으로 돌아가서 초록눈 코끼리의 역할을 다하렴. 너만은 아프리카 초원으로 돌아가 길잡이 코끼리답게 살길 바란다."
나, 아프리카로 돌아갈래
생각을 했다. 아프리카로 돌아갈 방법. 아프리카 초원은 어디에 있는 거지? 일단 이곳에서 나가야 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나가야 할까.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야외 사육장 가장자리에 파 놓은 골이 새롭게 보였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봤는데……. 이제 보니 내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파 놓은 모양이었다. 자존심이 확 상했다. 결국 내 세상이라고 믿었던 이곳이 나를 가두는 곳이었다니, 발목에 쇠사슬을 매고 있다고 조롱했던 코끼리들과 나는 별반 차이가 없는 신세였던 거다.
바깥으로 나가는 문은 닫혀 있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쇠창살문을 밀고 나갔다. 문은 건초 줄기만큼이나 쉽게 휘어지고 쓰러졌다. 의외로 요란한 소리가 나서 깜짝 놀랐다. 동물원 여기저기를 천천히 걸어 다녔다. 내가 지나가도 동물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멍한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빨리 동물원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발걸음을 좀더 빠르게 움직였다.
동물원을 나와 조금 더 걸어가자 네모난 건물들이 점점 많아졌다. 동그란 다리로 움직이는 자동차들은 도로를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출현에 차들은 모두 멈춰 섰거나,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거나 모여들었다. 오로지 내 머릿속에는 이곳을 빠져나가 아프리카 초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우뚝 섰다. 아무리 걸어가도 이 끔찍한 늪에서 영원히 빠져나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곳에도 아프리카로 갈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범벅아! 그래, 가만히 서 있어. 내가 갈게!" 환희 목소리였다. 코끼리들의 길잡이가 되기 위해 아프리카로 반드시 돌아가야 하는 나는, 어쩔 수 없이 저 아이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환희, 아무래도 네가 나를 도와야겠다.
제발 기다려 줘
"범벅아, 정말 왜 그래?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응? 말 좀 해." "나는 아프리카로 돌아가야 해." "뭐라고? 아프리카, 뭐?" 환희는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다시 물었지만,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아프리카는 어디에 있는 거야? 알려줘." "아프리카는 너무 멀어. 비행기를 타고서도 열 시간은 넘게 가야 도착할 수 있거든. 그곳에 가는 건 불가능해." "불가능하다고? 웃기지 마.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잡아오는 건 가능하고, 다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서환희 군! 범벅이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게 사실입니까?" 간 큰 기자 하나가 우리와 제법 가까운 곳에 서서 마이크를 들이댔다. "네." 환희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환희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대신 나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범벅, 무조건 내가 도울게. 난 너의 친구잖아.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는 어차피 안 돼. 다시 동물원에 돌아가서 함께 방법을 찾아보자. 응?" 나는 망설였다. 동물원으로 다시 돌아가는 건 내키지 않았다.
"범벅이가 뭐라고 하던가요?" 기자가 환희에게 다시 질문했다. "범벅이는 지금 아프리카로 돌아가야 한대요." "그게 사실인가요? 그 이유가 뭡니까?" "우리는 지금 동물원으로 다시 돌아갈 거예요. 돌아가서 얘기를 나눠 볼게요. 그리고 방법을 찾아야죠." "내가 언제 동물원으로 돌아간다고 했어?" 환희가 조그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범벅, 지금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너와 내가 말이 통한다는 게 증명이 되는 거야. 내게 다 생각이 있어. 약속할게. 난 틀림없이 너를 도울 거야."
나는 천천히 발을 떼었다. 환희의 말을 얌전히 따르자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둘이 말이 통하긴 통하네 보네." 사람들이 수군댔다.
가자, 아프리카 초원으로!
"범벅! 앞서 달리는 빨간 자동차만 따라가. 공항까지 안내해줄 거야. 나도 뒤따라갈게!" 잠시 뒤 참으로 흥미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내 앞뒤로 커다랗고 요란한 빨간 자동차가 섰고, 내 옆으로는 기자들을 태운 자동차들이 섰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도로 한가운데를 신나게 달리는 코끼리라니!
"범벅, 저게 비행기야!" 차에서 내린 환희가 내게 소리쳤다. "그럼 저게 나를 아프리카로 데려다 준다는 거야?" "그래! 너는 아프리카로 갈 수 있을 거야!" 덜컹. 나를 실을 네모난 상자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저 안으로 들어가면 이 거대한 상자는 화물 비행기로 옮겨져 곧 아프리카로 날아가는 거다. 이제 정말 이 땅을 떠나 아프리카로 가는 모양이다. 나는 상자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주위를 가만히 둘러보았다. 그래, 한때 이 땅이 슈퍼스타였던 범벅의 마지막 서비스다! 뿌- 나는 최선을 다해 우렁찬 콧소리를 뿜어냈다. 다시 한 번 더! 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