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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품격 학습교양 100

이영직 지음 | 스마트주니어
고품격 학습교양 100

이영직 지음

스마트주니어 / 2010년 7월 / 372쪽 / 11,800원



Society




중세의 암흑으로부터 인류를 구한 철학, ‘오컴의 면도날 법칙’

중세의 서양은 모든 학문과 철학이 신학의 시녀였던 암울한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신학으로부터 철학을 구해내고, 신앙으로부터 이성을 탈출시키려 했던 철학자가 영국의 윌리엄 오컴이었다. 오컴은 프란체스코 수도회에서 논리학을 공부했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초기에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았으나 치열한 논리적 사유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는 다른 결론에 이르렀다.



중세의 신학인 스콜라 철학이 신이나 이데아 같은 ‘보편자’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실재론’을 주장한 것에 비해 오컴은 그것은 사람들이 붙인 이름일 뿐이라며 ‘유명론’을 들고 나왔다. 유명론에서 그는 스콜라 철학에서 주장하는 보편자는 인간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인간이 붙인 이름일 뿐이고, 사변에 의해 쌓아올린 스콜라 철학은 허구라며 공격했다.



오컴은 진리와 사변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단순함의 법칙을 들고 나왔다, 그에 의하면 세상의 진리는 복잡하지 않다. 장황한 설명이나 여러 개의 가설과 가정이 있어야만 설명이 가능한 것은 진리가 아니다. 그는 진리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가정이나 전제들을 모두 잘라 버리고 단순함의 잣대로 사물의 핵심만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그가 볼 때 이런 저런 가설과 구차한 전제를 붙여야만 설명이 가능한 이데아나 이데아 대신 신을 그 자리에 앉힌 스토아 철학, 곧 중세 신학은 군더더기 같은 것들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스콜라 철학의 창시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나 스승이었던 스코터스를 비판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의 명쾌한 이론에 중세 기독교 철학이 수호해왔던 수많은 진리와 가치들이 잘려 나갔다. 그래서 그의 철학을 ‘오컴의 면도날 법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오컴에 의하면 진리는 단순해야 하며, 동일한 현상을 설명할 때 두 개의 서로 상반되는 주장이 맞선다면 그 중 더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진리이다. 예를 들어 신학은 성경 하나로 충분하다. 그렇다면 중세 교황들이 남긴 수많은 메시지까지 성서적으로 해석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후일 루터에게 큰 영향을 주어 종교개혁을 이끌었으며, 데카르트나 데이비드 흄과 같은 경험주의 철학에 길을 열어주었고,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에게 근세 과학의 지평을 열 수 있도록 결정적인 영감을 주었다. 그래서 오컴의 철학을 중세의 암흑으로부터 인류를 구한 철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엘리트 vs 집단지성, ‘1:99의 법칙’

‘한 사람의 영웅이냐, 99명의 민초들이냐.’ 이 논쟁만큼 뜨거웠던 주제도 없다. 19세기 영국의 역사가 칼라일은 『영웅 숭배론』에서 “역사, 즉 인간이 이 세상에서 이룩한 것은 근본적으로 이 땅에서 활동했던 영웅들의 역사다. 세계 역사는 위인들의 전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정치, 군사, 과학, 예술 등 어느 분야든 역사는 위대한 인물들에 의해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이야기이다.



1%의 천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서슴없이 갈릴레오, 뉴턴, 에디슨, 아인슈타인 등 과학사에 길이 빛날 이름들을 든다. 만약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했을 당시에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도느냐. 태양이 지구의 둘레를 도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다중의 의견을 물어서 결정했더라면 당연히 태양이 지구의 둘레를 돌고 있어야 했다. 공기보다 무거운 물체가 공중에 뜰 수 없다는 것이 당시 과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고, 일부 과학자들은 공기보다 무거운 물체가 하늘을 날 수 없다고 증명까지 해보였다. 그러나 비행기는 날았다.



모든 사람이 수증기로 거대한 기관차를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단언했지만 기관차는 힘차게 달렸다. 결국 1%의 천재가 옳았던 것이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인류는 지금도 암흑 속에서 살고 있을 거라는 주장이다. 정치가, 철학자들 중에는 대중을 우매한 집단으로 비하한 사람들이 많다. 히틀러는 어리석은 대중을 자시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쯤으로 보았다.



초인본주의자였던 철학자 니체는 “광기 어린 개인은 드물지만 집단은 언제든 그렇게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집단이 되면 개인의 이름이 매몰되기 때문에 이성보다는 감성의 지배를 받으며, 주장이 과격해지고 비도덕적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진다는 이야기이다.



군중심리가 바로 그러하다. 사회학자 구스타프 르봉도 인간은 집단을 이루면 모두가 어리석어진다고 주장하면서 집단은 언제나 소수 엘리트보다 열등하다고 보았다. 여기에 우생학도 한몫을 하게 된다. 우생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영국의 프랜시스 골턴은 우량 인자들 간의 교배로 동식물의 품종을 개량할 수 있듯이 인간도 같은 방법으로 얼마든지 우수한 인종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의 사촌이기도 했던 골턴은 자신의 가문에서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는 이유를 우생학이라는 개념에서 찾았다. 우생학이란 다름 아닌 ‘좋은 집안 출신’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논의를 확장하면 우생학에는 사회전체를 위해서는 열등 인간은 도태시켜도 좋다는 극단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이것이 후일 나치 독일에서 유대인과 동구 유럽인들을 정치적으로 핍박하고 흑인이나 소수 민족을 차별하는 근거가 되었다.



1%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20세기 전반을 휩쓸었던 나치와 파시스트의 폭거를 경험한 인류는 집단의 운명을 광기어린 한 사람의 손에 맡길 수 없다는 의식이 팽배했던 것이다. 이것은 곧 민주주의라는 정치 형태에 힘을 실어 주었다. 민주주의란 대중이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사상으로, 그것이 최선의 결정은 아닐지라도 최악의 결정은 막을 수 있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민주주의에서 정치적인 문제는 대중에 의해 결정되었지만 경제적인 문제는 여전히 소수의 자본가들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러다가 소수 엘리트들에 의해 움직이는 자본주의가 불황이나 빈부격차와 같은 모순을 더해가자 이에 대한 반발로 사회주의가 나타났다. 사회주의가 등장하자 이제 사상은 ‘대중은 항상 옳다’는 극단주의로 흐르기 시작했다. 사회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시기에는 대중을 대표하는 노동자의 이름으로 하지 못할 일이 없었다. 스탈린 치하의 소련이 그러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어 동구 공산권이 몰락하면서 집단 우위론은 위기를 맞았다. 인간의 탐욕에 기초한 자본주의가 부의 불평등을 낳았다면 민중이 주체가 되어, 민중의 평등사상에 기초한 사회주의 이론은 역설적이게도 생산성 부족으로 주저앉고 만 것이다. 그러다가 인터넷 시대를 맞아 다시 집단 우위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의 경영학자이며 칼럼니스트인 제임스 서로위키는 이런 집단의 지적 능력을 ‘대중의 지혜’라고 명명하면서 소수 엘리트주의자들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세웠다. 다중이 모이면 소수의 엘리트를 능가한다는 주장이었다.



예를 들면 누구나 자유롭게 집필에 참여할 수 있는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디피아는 출현한 지 불과 2년 만에 24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추월했다, 1%의 우위를 상징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라면 집단 우위를 상징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구글이나 위키피디아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이 논쟁이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여도 한 명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한 명의 아인슈타인은 나오지 않는다는 주장도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Economy



돈이 돈을 번다, ‘마태 효과와 메칼프의 법칙’

부의 쏠림 현상은 고대에도 여전했던 모양이다. 성서 마태복음에도 다음과 같은 글귀가 보인다. “사진 사람은 더 받아서 차고 남을 것이며,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태복음 13장 12절)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K. 머튼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의 집중 현상을 가리켜 ‘마태 효과’라고 명명하였다. 마태 효과는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과학 모든 분야에 관찰되는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데 두루 쓰이는 개념으로 정착되었다.



이런 현상은 현대사회로 옮겨 오면서 좀 더 심화되고 있다. 지식, 정보화 사회로 변하면서 부자와 가난한 자는 물려받는 재산뿐 아니라 교육과 지식, 정보력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화된다. 다음으로 경제위기가 반복되면 가난한 사람들은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지만 부자들은 오히려 재산을 늘릴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도 부익부빈익빈 현상은 여전하다. 시장을 선점한 상품이나 기업은 웬만해서는 그 지위를 잃지 않는다. 시장을 선점했기에 유명해지고, 유명하기에 더 많이 팔린다. 더 많이 팔리는 상품이기에 무언가 다를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 더욱 많이 팔리게 되는 것이 시장의 생리다. 유명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노벨상을 받은 교수와 대학원 조교가 몇 달에 걸쳐 쓴 논문이 유명해지면 발표한 교수는 유명해지지만 정작 논문 작성을 도맡았던 대학원생 조교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가장 뚜렷이 나타나는 분야는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네트워크이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네트워크를 선점한 자는 훨씬 더 유리한 고지에서 경쟁을 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즈가 인터넷을 독점하고 있는 것은 가장 좋은 프로그램이어서가 아니라, 가장 먼저 그 분야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메칼프의 법칙’이 등장한다. 메칼프는 3Com의 창시자이며 이더넷을 발명한 인물로 “네트워크의 가치는 네트워크에 연결된 사람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이론을 제창했다.



처음 전화가 등장했을 때 전화기 한 대로는 아무 쓸모가 없지만 가입자 수가 늘어날수록 가치는 급증한다는 말이다. 이에 따라 어떤 네트워크의 유용성은 사용자 수의 제곱에 비례하게 되고, 어떤 표준의 사용자 수가 일단 충분한 수량에 도달하게 되면 그 가치는 비약적으로 증가한다는 내용이다. 그것이 바로 인터넷이다.



Economy II



하나를 아는 순간 그 하나는 답이 아니다, ‘불확정성 이론과 주식투자’

퀀텀 점프 이론이 요즘 다시 화제가 되는 것은 투자의 귀재 조지 소로스가 만든 헤지 펀드의 이름이 ‘퀀텀 펀드’이기 때문이다. 이름도 특이하지만 그의 투자 이론도 특이하다. 조지 소로스는 현대 물리학의 아버지격인 하이젠 베르크의 ‘불확정성 이론’에서 크게 감명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펀드 이름을 ‘퀀텀 펀드’로 정하고 불확정성 이론을 투자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불확정성 이론에 의하면 양자의 세계는 관찰자가 관찰 대상에 영향을 준다. 마찬가지로 관찰 대상도 관찰자에게 영향을 준다. 그에 따르면 투자도 마찬가지다. 투자자는 주가에 영향을 주고, 주가는 다시 투자자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만든 이론을 ‘반사성 이론’으로 명명했다. 그는 이 투자 이론으로 1969년부터 1995년까지 연간 35%의 경이적인 수익을 냈다. 자신의 투자 이론을 한마디로 설명해달라는 사람들의 요청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것이다’라고 말해준다면 그 순간부터 ‘이것’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예를 들어 주가가 2000까지 오른다는 예측을 발표하면 일반인들은 주가가 2000이 되기 전에 모두 팔아 버릴 것이기 때문에 그 예언은 발표하는 순간 틀리게 된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불확정성 이론이다. 소로스는 이렇게 번 돈을 공산국가의 자유화나 제3세계의 민주화 등에 쏟아 붓고 있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자신의 생애와도 관련이 있다.



소로스는 1930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4세 때 아우슈비츠 가스실로 끌려갈 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다. 영국으로 피신했다가 전쟁이 끝난 뒤 헝가리로 돌아왔지만 다시 소련 군정을 피해 영국으로 떠났다.



그는 17세부터 26세까지 젊은 시절을 영국에서 비참하게 보냈다. 살기 위해 그는 웨이터, 마네킹 조립공장 직원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 모은 돈으로 런던 정치경제대학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소로스는 세계적인 석학 칼 포퍼를 만났고, 그의 저서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 큰 감명을 받았다. 열린사회의 적들이란 발 나치즘과 공산주의를 가리킨다. 그가 자유화와 민주화에 돈을 쓰는 것도 그 영향 때문이었다. 그는 또한 1980년대 말 동유럽․구소련이 붕괴될 당시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옛 소련 붕괴 후 과학자들이 생계가 막막해지자 1억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그가 생전에 자선사업에 투입한 액수는 250억 달러에 달한다.



Science I



왜 전쟁 기간에는 물고기 수가 줄어들까? ‘볼테라의 법칙’

자연계가 추구하는 것은 평형이지만 온전한 평형을 유지하는 것은 순간일 뿐, 자연계는 늘 요동치면서 평형을 향해 나아간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에 아드리아 해는 이탈리아 해군이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해군을 맞아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곳이었다.



생태학자 단코나는 전쟁이 끝난 후 바다생태계를 조사하던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전쟁 동안 고기를 잡지 않았음에도 물고기 개체 수는 상당히 줄어든 반면, 상어와 육식어의 개체 수는 전쟁 이전보다 월등히 높아져 있었던 것이다. 단코나는 이 같은 사실을 수학자 볼테라에게 상의했다. 여기서 나온 것이 ‘볼테라의 법칙’이다.



편의상 바다에 사는 많은 종의 물고기들은 포식자와 피포식자로 나누기로 하자. 어업활동이 활발해지면 물고기라 줄어들지만 이를 먹이로 하는 육식 어종의 개체 수도 감소한다, 상어로서는 먹이를 어부들에게 빼앗기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상어의 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물고기로서는 천적이 사라진다는 의미, 따라서 물고기의 수는 의외로 빨리 늘어난다.



반대로 전쟁으로 인해 어업활동이 중지되면 먹이가 많아지게 되고, 이는 상어의 먹이가 풍부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그렇게 하여 상어의 개체 수는 늘어나는 반면 물고기는 오히려 감소한다는 이론이다. 자연계의 역설이라고 할 수 있다. 마오쩌둥 시절 중국에서는 아까운 벼를 쪼는 참새를 박멸하자며 대대적인 참새 박멸 운동을 벌였다. 몇 년 후, 참새는 대폭 줄어들었지만 그만큼 해충의 개체 수가 몇 배로 늘어나 벼농사를 망치게 된 것이다.



살충제를 사용하여 벼농사를 망치는 해충을 대대적으로 박멸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살충제로 해충이 죽으면 해충을 먹고 사는 새들도 죽게 된다. 새들은 살충제에 오염된 해충을 먹어서도 죽고, 먹이가 부족해서도 죽는다. 결과적으로 천적이 줄어들어 해충의 숫자는 오히려 더욱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볼테라의 모델은 후에 미국의 화학자 로트카에 의해 좀 더 정교하게 정리되어 지금은 ‘로트카-콜테라의 법칙’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인간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서민을 위한다고 생필품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면 업자들은 수지가 맞지 않는 그 상품의 생산을 줄이게 되고, 그 결과 가격은 더욱 올라 서민들은 더 큰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Science II



왜 선거 때만 되면 사건이 일어날까? ‘베버의 법칙’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집어넣으면 깜짝 놀라서 뛰쳐나오지만 차가운 물속에 넣어두고 조금씩, 서서히 열을 가하면 개구리는 죽고 만다. 물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감각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감각은 기존의 자극보다 일정 비율 이상 더 큰 자극이 주어져야만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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