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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프리마돈나 조수미

조수미 지음 | 창해
꿈꾸는 프리마돈나 조수미

조수미 지음

창해 / 2010년 5월 / 192쪽 / 12,000원



피아노, 피아노, 피아노 / 칭찬은 즐거워


수경이(조수미의 원래 이름)는 1962년 11월 22일 서울 동대문구 보문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수경이의 엄마는 수경이를 임신했을 때 하루 종일 유명한 오페라와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교향곡을 들었습니다. 이루어지진 못했지만 어렸을 때 엄마의 꿈은 유명한 성악가가 되는 것이었거든요. 그리고 엄마는 좋은 음악을 들으면 태어날 아이도 분명 행복할 것이고 그 아이가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 거라고 믿었습니다. 수경이가 태어난 뒤에는 클래식 음악은 물론이고 많은 동요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덕분인지 어려서부터 수경이의 노래 솜씨는 남달랐고,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다섯 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수경이는 피아노 치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고, 다른 아이들이 몇 달 걸려 익히는 곡을 며칠이면 익혔습니다. 피아노 학원 선생님은 수경이가 피아노 신동인 것 같다고 했습니다. 원래는 노래 연습에 도움이 되라고 피아노를 치게 한 것인데, 엄마는 수경이가 노래보다 피아노에 더 많은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엄마는 수경이의 피아노 수업을 시간표대로 엄격하게 시켰습니다. 하지만 수경이에게는 피아노 말고도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았습니다. 그래도 수경이는 언제나 피아노만 치다 보니 재미있었던 피아노도 조금씩 지겨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쉬는 시간도 없이 피아노와 노래 연습을 해야 했습니다.

어느 날,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친구들이 수경이에게 같이 놀자고 말했습니다. 수경이도 같이 놀고 싶었지만 할 수 없이 친구들을 뿌리치고 집으로 갔습니다. 수경이는 피아노도 싫고 엄마도 미워졌습니다. 그런데 집에 오니 마침 엄마는 안 계시고 남동생들만 놀고 있었습니다. '엄마 안 계시니까 밖에서 놀다 와도 괜찮을 거야. 이번 기회에 집을 확 나가버리는 건 어때?' 수경이는 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누나도 피아노 치지 않고 다른 애들처럼 놀고 싶어. 그래서 집을 나갈 거야. 엄마에겐 아주 멀리 갔다고 해." 수경이는 울며 매달리는 두 동생을 떼어놓고 집을 나섰습니다.

집 밖의 공기는 어느 때보다 맑고 상쾌했습니다. 여기저기 마음껏 돌아다니던 수경이는 갑자기 갈 곳이 없어졌습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자 결국 수경이는 집으로 돌아가 살금살금 대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수경아!" 기다리고 있던 엄마는 다짜고짜로 수경이를 꼬옥 안았습니다. "엄마……." "수경아, 피아노 연습하는 것 힘들지? 하지만 지금 시기를 놓치면 엄마처럼 후회하게 될지도 몰라. 꼭 성악가가 아니라도 좋아. 엄마의 못다 이룬 꿈을 수경이가 이루어 주면 좋겠어." 엄마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너한테는 재능이 있어. 하지만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보다 열 배, 백 배 연습하고, 노력해야 성공할 수 있어." 수경이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엄마, 미안해. 앞으로 피아노 연습 더 열심히 할게." 수경이는 그동안 엄마가 왜 그렇게 열심히 연습을 시켰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엄마와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음악가가 되리라 다짐했습니다.

수경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선생님의 권유로 전국에 있는 초등학생들의 동요 경연 대회인 〈누가 누가 잘하나〉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전국 대회라 자신 없어 하는 수경이에게 아빠 엄마는 잘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수경이는 쉬지 않고 열심히 연습하여 대회 날 1등을 했고, 연말 결선까지 진출했습니다. 수경이는 연말 결선에서도 2등에 해당하는 우수상을 받았고, 친구들과 선생님 그리고 부모님도 진심으로 축하해 주며 수경이를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수경이도 무척 기뻤습니다. 그날 이후 수경이는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 부르기를 더욱 열심히 했습니다. 수경이가 노래를 부를 때면, 그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 표정을 지었고, 수경이도 행복했습니다. 수경이는 앞으로도 계속 노래를 부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선택은 어려워 / 최고가 되고 싶어요 / 성악은 해서 뭐해!

6학년 2학기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수경이는 중학교에 진학을 해야 합니다. 부모님은 수경이를 집에서 가까운 선화예술중ㆍ고등학교(선화예술학교)에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에게 고민이 생겼습니다. 예술학교에 가려면 전공을 정해야 하는데, 수경이는 피아노와 성악에 모두 재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엄마와 수경이는 선화예술중학교에서 음악을 담당하고 있는 유병무 선생님을 찾아가서 상담을 했습니다. 수경이의 연주와 노래를 들은 유병무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어머니, 수경이는 피아니스트가 될 자질이 충분히 있습니다. 하지만 수경이는 성악을 시키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수경이의 목소리는 만 명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아름답고 독특한 목소리입니다." 전공을 피아노로 정하려는 생각이 더 많았던 부모님과 수경이는 선생님의 말씀대로 전공을 성악으로 지원했습니다. 선화예술학교는 수경이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전체 1등으로 수경이를 합격시켰습니다.

한편, 무역업을 하고 있었던 수경이의 아빠는 세계화와 외국어의 중요성을 일찍 깨달았기 때문에, 가족들이 모이는 시간에는 항상 외국어 테이프를 틀어 놓게 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수경이와 동생들에게 세계 곳곳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습니다. 특히 아빠는 수경이가 세계적인 성악가가 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수경이의 외국어 공부에 더욱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훗날 사람들은 조수미가 세계적인 가수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노래 실력과 함께 뛰어난 외국어 실력을 꼽는답니다.

수경이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되자, 유병무 선생님은 수경이의 재능을 더 크게 키워 줄 선생님이 필요한 것 같다며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 계시는 이경숙 교수님에게 수경이를 추천해 주었습니다. 이경숙 교수님은 워낙 유명하고 엄하기로 소문난 분이었는데, 수경이의 노래를 듣고는 수경이를 꼭 안아 주며 말했습니다. "너는 틀림없이 세계적인 성악가가 될 거야."그 뒤 수경이는 일주일에 한 번씩 이경숙 교수님의 수업을 받았습니다. 이경숙 교수님은 수경이에게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가르쳐주었고, 돌멩이처럼 보이는 원석을 다듬어 찬란한 보석을 만들 듯 수경이를 이끌어 주었습니다.

1981년, 수경이는 서울대학교에 성악과가 생긴 이래 최고의 실기 점수를 받고 수석으로 입학했습니다. 교수님들은 수업 시간이면 늘 수경이에게 시범을 보이게 했고, 모두들 수경이의 노래 실력에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수경이는 부모님과 교수님들의 기대, 친구들의 질투 섞인 눈초리가 오히려 불편했습니다. 잠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노래연습과 공부만 했던 수경이는 음악 외에는 별다른 취미도 없고 친구도 많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수경이는 학과 공부와 노래 연습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미팅을 하고 노는 것에 열심이었고, 남자친구도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학교 성적도 아주 나빠졌고, 수경이의 나빠진 성적에 엄마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수경아, 너 왜 그러니?" "난 결혼할 거예요! 이제 노래하기 싫다구요." "뭐…… 뭐야?" 엄마는 한숨을 쉬며 주저앉았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수경이를 가르쳐 온 이경숙 교수님도 걱정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 이경숙 교수님이 수경이를 불러서 유학을 가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습니다. 교수님은 수경이의 목소리가 세계무대에서도 손색없는 목소리라며 새로운 도전을 해보라고 충고해 주었습니다. 수경이의 마음속은 복잡해졌습니다. 교수님의 말씀이 충분히 이해가 가면서도, 낯선 땅에 혼자 공부하러 가는 것은 두려웠습니다. 가족도, 남자친구도 모두 한국에 두고 말입니다.

며칠 뒤 수경이는 남자친구에게 유학을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냈습니다. 섭섭해 하며 유학을 말릴 줄 알았던 남자친구는 잠시 생각하다가 뜻밖에도 유학을 가서 훌륭한 성악가가 되기 바란다고 대답했습니다. 남자친구의 대답에 수경이는 오히려 실망했지만, 남자친구도 수경이가 가야 할 길이 자신과 다르다는 걸 깨달았던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수경이는 밤새도록 뒤척이며 생각했습니다. '음악과 내 인생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어. 그래, 좀 더 큰 세상으로 가자. 용기를 내! 조. 수. 경!'다음 날 유학을 가기로 했다는 수경이의 말을 들은 부모님은 수경이의 결정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이경숙 교수님도 반가워하며 유학에 필요한 많은 부분을 도와주었습니다. 1983년 3월 28일, 수경이는 이탈리아에 있는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을 향해 유학을 떠났습니다.

유학 생활은 너무 힘들어 / 마침내 세계무대에 선 날 / 시련은 한꺼번에 찾아온다

유학생활을 하면서 수경이는 자신의 이름을 외국 사람들이 발음하기에 편한'수미'로 바꿨습니다. 로마에서 조수미는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의 보렐리 교수님과 로마 시립 오페라극장 소프라노인 발렌티니 선생님, 두 명의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게 되었는데, 선생님들은 레슨 때마다 서로 다른 곡을 과제로 내주었기 때문에 하루에 다섯 시간은 연습을 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학교에서 다른 과목도 공부해야 했고 어학원도 다녀야 했습니다. 그렇게 바쁜 유학 생활로 인해 조수미는 길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일까지 있었지만, 조수미에게 음악은 자신의 전부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조수미는 콩쿠르에도 참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참가한 핀란드 콩쿠르에서는 상을 받지 못하여 절망했지만, 조수미는 더 열심히 노력하여 1985년 나폴리 존타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그 뒤로 시실리 에나 국제 콩쿠르, 베르첼리 베오티 국제 콩쿠르, 베르셀로나 비냐스 국제 콩쿠르, 베로나 국제 콩쿠르 등에서 차례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의 월반을 거쳐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을 2년 반 만에 졸업했습니다. 1986년 10월 26일, 조수미는 드디어 오페라 《리골레토》의 주인공, 질다 역으로 꿈에 그리던 세계무대에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베르디극장에서의 조수미의 데뷔무대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조수미는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봄에 공연할 오페라 《리골레토》의 질다 역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 12개 도시 순회 독창회도 열기로 했습니다. 조수미는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습니다.

1986년 12월, 3년 만에 한국으로 가서 꿈에 그리던 가족과 함께 연말을 보낸 조수미는 로마보다 추운 한국의 겨울 날씨로 인해 그만 독감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예정된 일정 때문에 로마로 돌아간 조수미의 감기는 점점 심해져서 기관지염까지 일으켰습니다. 결국 예정되었던 오페라《리골레토》의 질다 역은 포기하고 말았고, 곧 다가올 남아프리카공화국 12개 도시 순회 독창회도 문제였습니다.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조수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떠나 이를 악물고 독창회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첫 독창회 공연을 마친 요하네스버그에서 조수미는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심각한데요. 위 입구와 횡격막 사이에 작은 구멍이 뚫렸어요. 수술을 해야 합니다."이제 막 세계무대에 데뷔해 발판을 닦으려는 때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결국 남은 공연을 취소한 조수미는 하늘을 원망했습니다.

로마로 돌아온 조수미는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다행히 요하네스버그에서의 진단은 오진이었습니다. 로마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몸은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지만,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몸은 납덩이를 매단 것처럼 무거웠습니다. 결국 7월까지 예약된 모든 공연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수미는 절망 속에서도, 세계적인 성악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노력하던 나날을 되돌아보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을 조금씩 늘렸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습니다. "아…….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조수미는 자기 자신을 끝까지 믿었던 것입니다.

신이 주신 선물 / 세계 정상을 향하여

어느 날 조수미는 지휘자 폰 카라얀이 조수미의 노래를 들어보고 싶어 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조수미는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세계적인 지휘자 카라얀의 오디션을 받는다는 것은 성악가들에게는 평생 있을까 말까 한 꿈 같은 일이었습니다. 조수미는 오디션을 받으러 카라얀이 있는 잘츠부르크로 갔습니다. 카라얀은 나이가 들어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눈빛만은 젊은이처럼 날카로웠습니다. 조수미의 노래를 듣고 난 카라얀이 말했습니다. "수미 조의 목소리는 한 세기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신이 내려준 선물이야. 그러니 수미 조는 신의 선물을 잘 갈고닦아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의무가 있어. 다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가면무도회》를 공연할 예정인데, 오스카 역을 공부해 두라고." 조수미는 카라얀과 함께 공연을 하게 된 것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기뻤습니다.

다음 해 봄이 되어 《가면무도회》연습이 시작되었습니다. 카라얀은 너무나 엄격해서 작은 실수 하나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는데, 조수미가 연습할 때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조수미를 늘 귀여운 손녀딸처럼 대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공연 리허설이 한창인 7월, 너무나 슬픈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던 카라얀이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조수미의 슬픔은 너무 컸고, 잘츠부르크 전체가 충격과 슬픔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조수미와 동료들은 슬픔을 억누르고 마에스트로 카라얀을 위해 최고의 공연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비록 카라얀이 직접 지휘는 못했지만, 《가면무도회》는 조수미를 세계무대에 알리는 기회가 되었고, 조수미는 세계 정상의 소프라노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조수미에게는 이제 세계 5대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겠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세계 5대 오페라극장은 이탈리아의 라 스칼라 극장과 영국의 로열 오페라하우스 코벤트가든, 프랑스의 바스티유 오페라극장,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오스트리아 빈의 국립 오페라극장입니다. 그런데 조수미는 1988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오페라 《페톤테》의 행운의 여신 역을 시작으로, 1993년에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 《호프만 이야기》의 올림피아 역으로 공연함으로써 동양인으로서는 최초로 세계 5대 오페라극장의 무대에 선 프리마돈나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누구보다도 활발하게 활동한 조수미는 1993년에 성악가의 최고 영예인'황금기러기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조수미가 부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독일 오페라 《그림자 없는 여인》이 오페라 부문 최고 음반으로 선정되어 '그래미상'을 수상했습니다. 한꺼번에 두 가지 상을 모두 받은 조수미가 이제 세계 최고의 소프라노 가수라는 것은 아무도 의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조수미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우리나라를 알리는 데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독창회나 콘서트에서는 한국 디자이너의 옷을 즐겨 입고, 공연 뒤 앙코르를 받으면 한국 가곡을 부르곤 합니다. 조수미는 한국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크고 작은 국제 행사에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참가를 합니다.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일은 이제 조수미에게 또 하나의 도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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