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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까마귀 나라

권정생 지음 | 산하
아름다운 까마귀 나라

권정생 지음

산하 / 2010년 3월 / 79쪽 / 9,000원



아기 산토끼


아기 산토끼는 개울에 물을 먹으러 갔다가 다람쥐한테 들었습니다. "얘 토끼야, 마을에 내려가면 네 친척 되는 애들이 상자 속에 갇히어 살고 있단다. 새하얀 토끼래. 눈은 빨갛고. 그리고 마을에 집들이 많고, 예배당에선 종을 치고, 밤이면 촛불을 켜 놓고 예배를 드린대."

아기 산토끼는 갑자기 마을에 내려가 보고 싶었습니다. 자기네 친척 되는 토끼들이 궁금하고, 집도 예배당도 보고 싶었습니다. 스무 밤이 지나고, 아기 산토끼는 수염을 예쁘게 다듬고는 조심조심 산을 내려갔습니다.

아기 산토끼는 제 친척 되는 하얀 토끼가 보고 싶어 그걸 찾느라 구석구석 두리번거리며 살폈습니다. 그런데 정말 양지 쪽 담 밑에 네모난 상자가 있고, 철사 그물을 쳐 놓은 토끼장에 눈처럼 하얀 토끼 한 마리가 갇혀 있는 게 보였습니다. "어머나! 아주머니!" "아주머니라니? 나한테 아주머니라 했니?" "네, 우리 친척이잖아요." 아기 산토끼는 상자 속 아주머니 토끼를 뚫어져라 들여다보았습니다. 하이얀 털이 곱고, 빨간 눈알이 예뻤습니다. 그런데 상자 속에 갇혀서 살다니, 불쌍했습니다.

"아주머니, 산에 가고 싶지 않으세요?" "가고 싶어도 못 간다." "달아나면 되잖아요." "아냐, 달아나면 나빠요. 그런 소리 자꾸 하지 말고 그만 돌아가요." 아주머니 토끼는 고개를 돌리고는 몰래 눈물을 훔치는 것 같았습니다. 아기 산토끼는 어쩔 수 없이 돌아섰습니다.

언덕 위에 있는 예배당으로 얼른 뛰어갔습니다. 아기 산토끼는 발돋움을 하고서 예배당 안을 갸웃이 들여다보았습니다. 바로 맞은편 벽에 마리아의 품에 안긴 예수님의 그림틀이 보였습니다. 찬송가가 울려 퍼지고, 목사님의 설교가 흘러나왔습니다. 아기 산토끼는 끝까지 끝까지 다 듣고는, 밤길을 걸어서 산으로 돌아갔습니다.

돌아가면서 아기 예수님의 모습과 상자 속에 갇힌 하얀 토끼 모습을 떠올리며 웃음을 머금기도 하고, 울상을 짓기도 했습니다. 아기 산토끼는 왠지 쓸쓸해졌습니다.

가엾은 나무

언덕에 5천 년 묵은 느티나무가 있었습니다. 비바람에 가지가 찢기고, 눈보라에 마른 나뭇가지가 듬성듬성 드러난 늙은 느티나무였습니다. 작은 언덕은 뿌리를 마음껏 뻗을 수 있는 땅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느티나무는 아주 장하게 버티면서 살아왔습니다. 봄이면 가지마다 자줏빛 잎사귀를 피우고, 작은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어 살았습니다. 여름엔 두터운 그늘을 만들어 사람들과 짐승들의 쉴 곳을 마련해주었습니다.

이른 아침, 느티나무 가지에서는 아름다운 새소리로 흥겨운 잔치처럼 보였습니다. 일터로 나가는 농부들, 학교로 가는 아이들, 집에서 바느질을 하는 어머니들 모두가 설렘 속에 고된 것도 잊고 열심히 하루 일을 시작합니다. 느티나무엔 이름 모를 많은 새들이 날아와 흥겹게 재잘대었습니다.

느티나무는 새들과 짐승들의 즐거운 놀이터가 되고 사람들의 쉬는 장소로서 만족했습니다. 그것이 느티나무가 지닌 따뜻한 마음씨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느티나무는 그 조그맣고 알뜰한 마음씨를 괴롭히는 심술궂은 바람 때문에 몹시 괴로웠습니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북풍과 남쪽에서 불어오는 남풍이 바로 나쁜 악마들이었습니다. 북풍은 눈보라와 함께 매서운 바람을 몰고 와서 큰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느티나무야, 항복하지 않겠냐? 내가 너의 뿌리를 뿌리째 뽑아 버리기 전에 어서 내 말을 듣는 것이 좋을 게다." 그러나 느티나무는 꿋꿋이 버티었습니다. "북풍아, 나는 하느님이 이 세상을 만드실 때, 이 조그만 언덕을 지키는 나무로 심어 주셨단다. 누구에게도 이 언덕을 내어 줄 수 없어. 여기 모여드는 새들과 산짐승들과 사람들, 모두가 함께 이 언덕을 지킬 거야." 북풍은 좀처럼 이 느티나무를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남풍이 사나운 태풍을 몰고 왔습니다. 남풍도 북풍과 꼭같은 말을 하면서 항복하기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느티나무는 당당하게 버티었습니다. 때로는 북풍과 남풍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이 작은 언덕을 반씩 차지하여 느티나무를 괴롭혔습니다. 그때마다 느티나무는 목을 조르는 듯한 숨 막히는 괴로움을 견디면서 간신히 간신히 서 있었습니다.

남풍은 이런 느티나무에게 때로는 부드럽게 너그러운 모습을 띠어 마음을 쏠리게 했습니다. 느티나무는 깜빡 속을 때도 있었습니다. 남풍은 침략자가 아니라 친구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남풍은 아주 계획이 들어맞아 느티나무의 반쪽을 차지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본 북풍도 생각을 바꾸어 느티나무를 구슬리기 시작했습니다. 느티나무는 이번엔 그 간사한 북풍에게 속아 버린 것입니다. 북풍은 나머지 반쪽을 차지하고 말았습니다. 가엾게도 느티나무를 남풍과 북풍이 반씩 차지하여 힘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북풍과 남풍이 차지하고부터 이상하게도 느티나무는 나무의 빛깔이 달라져 버렸습니다. 어쩌면 한 가운데를 반으로 금을 긋듯이, 남쪽은 회색으로 북쪽은 검자줏빛으로 물든 것입니다. 그 빛깔은 아주 천천히 천천히 물이 들었기 때문에 느티나무는 금방 알아차릴 수 없었습니다.

빛깔이 달라지면서 나뭇가지에 노래 부르는 새들의 울음소리도 달라졌습니다. 나무 밑 그늘에 쉬어가는 짐승들의 모습도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의 생각도 달라졌습니다. 모두가 느티나무와 같이 북쪽으로 모여드는 새와 사람들, 그리고 남쪽 그늘에 모여드는 새와 사람들이 따로 모이는 것입니다. 느티나무의 반쪽끼리 서로가 미워하고 괴롭히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느티나무는 괴로웠습니다. 자신의 몸을 자신이 마음대로 못 하게 되기까지 느티나무는 많은 잘못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만큼 느티나무는 정신을 차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느티나무는 어찌하면 좋을지 많은 후회를 하면서, 한꺼번에 자신의 몸에 붙어 있는 북풍의 사슬과 남풍의 사슬을 떼어 내려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되지 않았습니다.

가엾은 느티나무는 이젠 자신의 본래 빛깔마저 어떠했는지 잊어버렸습니다. 검자주빛인지 회색빛인지 모르게 된 것입니다. 정말 자신의 빛깔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가장 불행한 일입니다. 느티나무는 그러니까, 이젠 본래의 느티나무가 아닌 두 개의 다른 느티나무로 작은 언덕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젠 느티나무는 어찌 되는 걸까요? 이것이 그 작은 언덕에서 5천 년이나 되는 긴 세월 동안 하느님이 주신 자신의 생명을 간직하면서 살아온 느티나무의 참모습일까요? 그것은 천부당만부당한 말입니다. 느티나무는 어디까지나 한 그루 한 빛깔의 나무여야 합니다.

어느 날, 조그만 새 한 마리가 말했습니다. "난 이 느티나무의 빛깔은 본래 회색빛깔도 검자줏빛깔도 아니라고 봐. 우리들의 느티나무의 참빛깔은 다른 빛깔일 거야." "그래그래, 우리들의 느티나무는 우리들의 빛깔로 하나가 되어야 해." 작은 새들이 눈빛을 또롱또롱 빛내며 말하자, 커다란 새들과 짐승들과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 가엾은 느티나무의 껍질을 누구라도 살짝 벗겨 안을 들여다보면 금방 본래의 나무 빛깔을 알 수 있을 텐데, 작은 언덕의 느티나무는 가엾게도 자신의 빛깔을 찾지 못한 채 서 있는 것입니다. 두 개의 빛깔로 괴로워하면서 서 있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까마귀 나라

큰 까마귀와 작은 까마귀, 할아버지 까마귀와 할머니 까마귀, 모든 까마귀들이 진짜 까마귀인지 아닌지 분간을 못 했습니다. 까마귀의 새까만 깃털 대신 이상한 깃털 옷으로 몸을 싸고, 우는 것까지 이상한 소리로 울기 때문입니다.

아기 까마귀 깽깽이는 거추장스러워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날마다 엄마 까마귀가 차려주는 대로 알록달록한 깃털 옷을 입고 학교에 가면, 선생님은 또 이상한 노래를 가르쳐 줍니다. "엄마, 덕지덕지 깃털을 붙이고 다니니까 힘이 들어 잘 날지도 못하겠어요." "깽깽아, 너 무슨 소리를 하니? 그 시꺼먼 몸뚱이가 그래 부끄럽지도 않니? 우리 까마귀 나라도 이 만큼 잘살게 되어, 그렇게 예쁜 깃털로 치장을 하고 다니니까 얼마나 날씬하고 예쁘니? 그리고 까울랑 까울랑 그렇게 울어야 한다. 한결 멋이 있잖니?"

까마귀는 모두가 이렇게 해서 본래의 까마귀 모습을 자꾸 잃어 가고 이상한 모습이 된 것입니다. 정말 까마귀들은 그 훌륭한 나라의 새들을 닮았습니다. 몸맵시도 울음소리도 모든 마을 모습도. "우리도 이제 훌륭한 신사 나라처럼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제 훌륭한 새의 나라처럼 잘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힘도 세어졌습니다." 어른 까마귀들은 그렇게 떠들며 절로 우쭐우쭐 신이 나는가 봅니다.

그러나 아기 까마귀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엄마, 아무래도 답답해요. 모두 일부러 그러는 것만 같아요." 깽깽이는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러고는 입고 있던 거추장스런 옷을 훨훨 벗어던져 버렸습니다. 깽깽이는 푸른 하늘을 시원하게 날아다니며 모든 아기 까마귀들에게 얘기했습니다. "진짜 훌륭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자기 모습 그대로 사는 거야." "그래, 그래!" 온 나라 아기 까마귀들은 거짓 깃털 옷을 벗고 일제히 새까만 까마귀 모습으로 사이좋게 무리 지어 날았습니다.

"어떤 힘센 나라도 우리 까마귀 나를 다스리지 못한다." "그래, 그래!" 아기 까마귀들의 진짜 모습을 바라보던{{{{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어른 까마귀들도 어느새 가짜 옷을 훨훨 벗었습니다. "까욱 까욱 까욱." 까마귀 나라에 진짜 까마귀 울음소리가 흥겹게 울려 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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