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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늑대 세 남매

권정생 지음 | 산하
아기 늑대 세 남매

권정생 지음

산하 / 2010년 3월 / 80쪽 / 9,000원



부엉이




부엉이 외톨이는 해묵은 상수리나무 가지에 앉아 '부우엉' 하고 울었습니다.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흩어져 반짝거리고 있었습니다. 하얀 눈에 덮인 산골짜기의 밤은 몹시 추웠습니다. 더욱이 지난 가을, 먼 곳으로 떠나가 버린 종구네 빈 오두막이 쓸쓸하게 서 있기 때문에 이곳 산속은 한결 추운지도 모릅니다.

3년 전에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살지 않는 이 깊은 산골에 찾아온 종구네는 화전을 일구어 농사를 지었습니다. 밤에도 등불을 켜 들고 산비탈을 일구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까지 온 식구가 그렇게 부지런히 일을 하던 것을 부엉이는 다 지켜보았던 것입니다.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산등성이까지 널따란 밭이 만들어졌습니다. 흙담으로 벽을 만들고 억새로 지붕을 덮은 종구네 집도 이젠 한숨을 돌리고 걱정 없이 살아갈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산골 외딴집에 갑자기 철거 명령이 내렸습니다. 일구어 놓은 화전밭에는 노란 깃발이 꽂히고, 종구네 식구들은 이삿짐을 지고 쓸쓸히 떠나가 버린 것입니다. 부엉이는 통 그 까닭을 몰랐습니다. 그토록 애써 일구어 놓은 밭을 고스란히 두고 소식 없이 가 버린 것이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부엉이는 기다려 보았습니다. 혹시나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동안 정들어 버린 종구네 식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그려보았습니다.

그러나 종구네는 떠나간 다음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윙윙 찬 바람이 불었습니다. 부엉이는 쓸쓸하게 혼자서 상수리나무 가지에 앉아 울었습니다. "부우엉, 부우엉……." "부엉이야." 상수리나무 가지 꼭대기에 찾아온 별님이 불렀습니다. "왜 그러세요, 별님?" "종구네 소식을 알아보고 왔어." "뭐라고요? 종구네 소식이라구요?" 부엉이는 멀었던 귀가 번쩍 뜨이는 것만 같았습니다. "서울로 가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종구는 학교에 다닌대." "어머나! 정말이셔요?" "그래, 정말이야. 여기 일구어 놓은 화전은 산사태가 날 우려가 있어 나무를 심는단다. 대신 종구네는 충분한 돈을 마련해 줘서 그걸로 서울 간 거야. 기차 타고……."

그때, 어느 쪽에선지 '부웅-' 하는 기적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 봐! 저게 바로 종구네가 타고 간 기차 소리야." 별님이 생글생글 웃으면 가르쳐 주었습니다. 부엉이는 반가움과 함께 걱정이 가시고 알 수 없는 기쁨이 가슴 뿌듯하게 밀려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기 늑대 세 남매



시내 미골 막바지 깊숙한 소나무 숲에, 아기 늑대들이 엄마 늑대한테 조르고 있었습니다. "엄마, 춘자 아주머니네 교회에서 여름 성경 학교를 한 대요. 굉장히 재미있다는데 우리도 보내줘여, 네?" 누나 늑대가 말했습니다. 두 남동생 늑대가 붙어 앉아 엄마 늑대의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얘들은, 또 춘자 아주머니 얘기를 엿들었구나. 그러면 못써요." 엄마 늑대는 새끼 늑대들이 춘자 아주머니네 밭 가까이까지 나가는 것이 못마땅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사람들과 짐승들은 이렇게 서로 못 믿게 된 것입니다. "엄마, 우린 사람들하고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요." "하지만 그게 너희들 마음대로 되니?" "그러니까 우릴 이번 여름 성경 학교에 보내 주면 되잖아요." 아기 늑대들은 엄마한테 졸라 대었습니다.

춘자 아주머니의 얘기를 들어 보니, 여름 성경 학교라는 것은 여름 방학 동안 동네 아이들을 모아 놓고 무용도 가르치고, 노래도 가르치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하느님의 말씀을 배운다는군요. 하느님이라면 온 세상을 만드시고 사람도, 짐승도, 나무들도, 꽃도, 새도 모두 만들어 주신 분이죠. "엄마, 그런 하느님의 교회에 우리들 늑대들도 함께 가서 공부할 수 있잖아요." "글쎄다. 위태롭지 않을까?" "위태롭지 않아요. 우린 감쪽같이 사람으로 둔갑할 줄 알잖아요." "그래, 이따가 저녁에 아버지가 오시거든 한번 여쭈어 보자꾸나."

그날 저녁 둥근 해님이 서산으로 넘어가고 하늘에 별들이 드문드문 나왔을 때, 아버지 늑대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엄마 늑대와 아기 늑대가 여름 성경 학교 얘기를 꺼내자 껄껄 웃었습니다. "여름 성경 학교라면 나도 어릴 때 한번 가 봤지." "어머나! 당신 참말이에요?" 엄마 늑대는 깜짝 놀랐습니다. "못 믿겠다는 건가. 좋아, 우리 꼬마들이 가고 싶다면 얼마든지 보내겠어." "와아! 아버지 만세!"

8월 첫째 주일이 되었습니다. 아기 늑대 세 남매는 아침 일찍 세수를 깨끗이 하고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어떻게 감쪽같이 사람의 모습으로 바꾸었는지, 그건 비밀이에요. 하지만 아무리 둔갑술이 좋다 해도 한 군데만은 늑대의 자국이 남아 있게 마련입니다. 바로 배꼽 둘레에 노란 털이 한 줌만큼 나 있거든요.

"엄마, 내 이름은 무어라고 할까요?" 제일 맏이인 누나 늑대가 물었습니다. "글쎄다. 너도 사람의 모습으로 바꾸었으니 사람 이름과 같아야겠지. 능자라고 하자." "그럼 우린 이름을 무어라 불러요?" 동생 늑대 둘이서 물었습니다. "너희들은 남자니까 남자 이름을 짓자꾸나." "어떻게요?" "박용대, 박성대. 어떠니?" "늑대라는 대 자를 넣으니까, 아주 그럴 듯하군요."

아기 늑대 세 남매는 지각할까 봐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시내미골 꼬불꼬불한 산길을 씩씩하게 걸어서 갓재산 모롱이까지 오니, 마침 교회 종소리가 '땡 땡…' 울리고 있었습니다. 교회당엔 많은 아이들이 모여서 노래도 부르고 뛰어놀기도 했습니다. 문 앞에서 성경 학교 선생님이 책상 앞에 얌전히 앉아서 찾아오는 학생들을 맞이해주었습니다. 예쁜 여선생님이 낯선 누나 늑대를 쳐다보며 물었습니다. "이름이 뭐니?" "박능자예요." 누나 늑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눌러 가며 대답했습니다.

아기 늑대 세 남매는 잘못하면 털이 난 배꼽이 보일까 봐, 바지를 추켜 올리고 저고리 앞자락을 꼭꼭 여미었습니다. 아이들이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애들이 왔다가 자꾸 쳐다보았습니다. 다행히 아기 늑대들은 눈이 까맣고 귀여웠기 때문에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여름 방학이니까 먼 곳에서 친척 집에 놀러온 아이들인 줄 알았겠지요.

다 마치고 나서, 아기 늑대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시내미골 막바지에 엄마 늑대가 가슴을 졸이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얘들아, 무사히 돌아오는구나!" "엄마아!" "그래, 오늘 무엇을 배웠니?" "말씀대로 살자!" "하느님의 자녀로 자라자!" 아기 늑대들은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아기 늑대들은 5일 동안 빠짐없이 나가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고는 내년 여름 성경 학교엔 시내미골 산짐승 모두모두 데리고 가겠다고 벼르는 것이었습니다. 혹시 우리 교회에도 아기 산짐승들이 사람으로 모양을 바꾸고 오지 않았나 살펴보세요. 배꼽들 슬쩍 훔쳐보면 털이 나 있나 없나 알 수 있지요. 그러나 있다고 해도 절대 모른 척하셔요.

수몰 지구에서 온 아이



동수는 수몰 지구(댐을 막아 물속에 잠긴 곳)에서 이사 온 아이다. 열 살이나 열 한 살쯤 되어 보이는데 아직 학교에도 다니지 않는다. 말을 잘 안 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친해지려고 하지 않았다. 교회여름 성경 학교를 시작하면서 "여러분, 교회 안 다니는 아이들을 많이 데리고 와요"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이들은 동수한테 갔다. "동수야, 우리 예배당에 같이 가. 재미있는 성경학교 한다." 동수는 눈만 말똥말똥 듣고 있다가 그냥 돌아서서 가 버렸다.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손 잡고 교회당으로 몰려갔다.

예배 시간에 모두가 두 눈을 꼭 감고 기도를 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살금살금 와서 앉는 아이가 있었다. 기도가 끝나 모두 눈을 뜨고 보니, 뜻밖에도 동수가 다소곳이 와서 앉아 있는 것이었다. 마지막 기도를 하고 났을 때, 동수는 아까 들어올 때처럼 살금살금 빠져나가 훌쩍 가 버렸다.

여름 성경 학교를 시작하고 사흘째 되는 날, 동수는 교회 문밖에까지 와서 가만히 서 있다가 그냥 돌아가 버렸다. 그러고는 아이들이 교회에서 다 돌아가고 난 뒤, 아무도 없는 교회에 슬그머니 찾아갔다. 깨끗이 청소가 되어 있는 교회 안 강대상엔 그저께 본 꽃병이 놓였고 예쁜 꽃이 가득 꽂혀 있었다. 동수는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가 꽃병에 꽂힌 꽃다발을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김 선생님을 찾아 몰려갔다. "김 선생님, 큰일 났어요. 동수가 교회 꽃병에 꽂힌 꽃을 훔쳐 갔어요." 아이들이 목청을 돋우면서 일러바쳤다. "아니, 동수가 꽃병의 꽃을 무엇 때문에 훔쳐 가니?" "거짓말 아니에요. 제가 도망치는 걸 봤어요. 꽃다발을 껴안고 달려갔어요. 저쪽 방청둑 길로…." "그래, 알았다. 그 꽃다발이 무척 갖고 싶었던 게지." "갖고 싶으면 하느님 계시는 교회 꽃을 훔쳐 가도 되나요?" 언덕 너머 냇가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과 김 선생님은 냇가 언덕길로 뛰어갔다.

냇가 버드나무 곁에 동수가 앉아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동수의 둘레엔 교회 꽃병에서 뽑아온 꽃들이 모래밭에 송이송이 꽃밭처럼 꽂혀 있었다. "동수야!" "너 혼자서 뭘 하니?" 아이들이 몰려가자 동수는 놀라 돌아봤다. 동수는 몰려온 아이들과 선생님이 무엇 때문에 왔는지 금방 알아차렸다. 동수는 얼른 일어서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우리 고향 집 생각을 하면서 노래를 불렀어요. 그리고 헤어져 온 동무들도 생각했어요. 지금쯤 모두 어디 있을까. 우리집은 물 속에 잠기어 가라앉아 버렸을 거구요. 여기 모래밭에 꽂아 놓은 꽃은 교회 꽃병에 있던 거예요. 이 꽃 때문에 선생님이 걱정이 되셨다면 용서해 주셔요. 꽃이 무척 갑갑할 것 같아서 제가 잠깐 동안 바람을 쏘여 주고 싶었어요. 이렇게 꽂아 뒀다가, 해가 지면 거두어 다시 교회로 갖다 주려고 했어요…."

동수는 하던 말을 그치고 갑자기 고개를 떨구었다. 김 선생님과 아이들은 가슴이 뿌듯하게 메어 오는 것을 느꼈다. 동수는 숙인 고개를 얼른 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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