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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 정보를 잡아라

이어령 지음 |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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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지음

푸른숲 / 2009년 10월 / 184쪽 / 9,800원



정보는 세상을 꿰뚫어 보는 힘 :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보물은? / 내게 쓸모 있는 정보를 찾아라
아주 먼 옛날, 어느 왕국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공주가 있었단다. 여러 나라 왕자들이 소문을 듣고 공주와 결혼하려고 모여들었어. 그런데 공주의 아버지인 왕은 이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보물을 가져온 사람이 공주와 결혼할 수 있다고 했단다. 그 소문에 많은 사람이 별의별 진귀한 보물을 가지고 나타났지만 왕은 어느 것도 만족해하지 않았어.

그러던 어느 날, 왕국의 국경 가까이에서 사내 셋이 우연히 만났단다. 그들은 저마다 공주에게 청혼하러 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그러자 서로 다른 사람이 가져온 보물이 무엇인지 몹시 궁금해졌지. 첫 번째 사내가 말했단다. "내가 가져온 보물은 죽은 사람도 해가 지기 전까지만 먹으면 살아날 수 있는 불사약이라오. 이보다 값진 보물이 또 어디 있겠소?"그 말을 들은 두 번째 사내가 발끈 화를 내면서 말했어. "내가 타고 있는 이 말은 단숨에 천리를 달릴 수 있는 천리마요. 당신들이 이 국경을 넘기도 전에 나는 벌써 공주에게 가 있을 것이니 후회하지 말고 돌아들 가시오."세 번째 사내는 두 사람의 말을 듣고 픽 웃었단다. "나에게는 천리안이 있어서 아무리 먼 곳에 있는 것도 다 볼 수 있다오. 날마다 이 거울로 공주를 볼 수도 있지요."

그러자 두 사람은 천리안을 가진 사내에게 공주의 모습을 보게 해 달라고 부탁했고, 천리안을 가진 사내는 우쭐해서 거울을 꺼내 궁전 쪽을 비추어 보았단다. 그러자 눈부시게 아름다운 공주가 궁전 뒤뜰에서 노는 모습이 나타났어. 그런데 바로 그때, 갑자기 꽃밭에서 나온 독사가 공주의 발뒤꿈치를 물었어. 공주는 금세 쓰러져서 숨을 거두고 말았지. 그 광경을 보던 불사약을 가진 사내가 말했어. "해가 지기 전에 불사약을 먹이면 공주는 다시 살아날 거요."그러나 해는 벌써 서산에 기울고 있었어. 천리마를 가진 사내가 소리쳤어. "천리마를 타고 가면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거요."

세 사내는 천리마를 타고 해가 지기 직전에 가까스로 궁전에 도착했지. 세 사내는 싸늘한 시체가 된 공주의 입술에 불사약을 적셔 주었어. 그러자 금세 공주 얼굴에 핏기가 돌았지. 사람들은 공주가 다시 살아난 것에 기뻐하며 큰 잔치를 벌였대. 자, 문제는 이제부터야. 공주는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할까? 세 사내는 서로 자기가 공주와 결혼해야 한다고 주장했어. 맞아. 세 사내가 가져온 보물 가운데 하나라도 없었다면, 공주는 살아날 수 없었겠지. 너라면 누구를 선택하겠니? 이 이야기에는 우리가 깊이 생각해볼 만한 상징적인 뜻이 담겨 있어. 이제 하나씩 따져 보자꾸나.

사냥을 하고 나무 열매를 따 먹고 살던 원시 시대와 가축을 기르고 씨를 뿌려 가꾸며 살던 농경 시대에는 지혜와 정보를 쌓아 가는 일보다는 몸으로 땅을 일구고 곡식을 거두는 일을 더 높게 쳐주었지. 이 시기 사람들은 불사약을 가장 귀중한 보물로 여겼을 거야. 그래서 이 시기를'불사약의 시대'라고 부르곤 해. 그런데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넘어가면서 상황이 크게 바뀌었어. 당시 사람들은 재산을 모아서 풍족한 삶을 꾸리는 것을 가장 큰 가치로 삼았어. 돈을 많이 모으려면 이야기 속 천리마처럼 빠르게 움직여야 했지. 그러니 이 시대를'천리마의 시대'라고 해도 무리가 없겠지?

그 후, 산업 사회가 고도로 발전하면서 이전처럼 정해진 길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게 되었어. 이를테면, 공장에서 아무리 옷을 많이 만들어 시장에 내놓아도 그게 사람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말짱 헛것이지. 사람들이 어떤 옷을 좋아하는지, 앞으로 어떤 옷이 유행할지 알아보고 옷을 만들어야 했어. 이럴 때 필요한 게 무얼까? 그래, 바로 알차고 정확한 정보야. 바야흐로'천리안의 시대'가 열린 거란다. 만약 공주가 오늘날 사람이라면 세 사람 가운데 천리안을 가진 사내와 결혼했을 거야. 우리 시대의 천리안은 뭘까? 신문, 전화, 텔레비전, 인터넷이 바로 천리안이지 뭐야.

천리안은 과거의 불사약, 천리마와 아주 다른 점이 있어. 곡식과 상품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 물건이었고, 그 물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주인이었지만, 정보는 실체가 없어. 실체가 없으니 그게 누구의 소유도 아니라고 할 수도 있고, 모든 사람의 소유라고 할 수도 있겠지.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정보는 그걸 쓸모 있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것이라고 해야겠구나. 그렇다고 천리안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불사약과 천리마를 낮추어 보자는 이야기는 아니야. 이 세 가지 보물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없다면 인간은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지. 다만 오늘날에는 농업과 공업 분야에서도 정보를 필요로 할 뿐이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천리안을 가졌으니 세상 어디라도 들여다볼 수 있어. 그 천리안으로 어떤 정보를 네 것으로 만들지는 순전히 저마다의 몫이지.

정보를 담는 그릇, 종이 : 사람은 종이를 만들고, 종이는 사람을 키우고

먼 옛날부터 지식과 정보를 기록해 두려면 종이가 꼭 필요했는데, 정보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종이는 언제 처음 만들어졌고, 또 어떻게 모습을 바꾸어 왔을까? 원시 시대 동굴 벽화부터 생각해 보자. 원시 시대에는 동굴 벽이 종이나 마찬가지였어. 동굴 벽에 무언가를 쓰거나 그려서 생각을 표현하고, 또 훗날까지 기록으로 남겼으니 말이야. 그러니까 인류는 생각 씨앗을 틔우는 순간부터 종이를 필요로 했어. 인간이 자기 생각을 내보이고 무언가를 기록해서 남기려는 욕망은 문자를 발명해냈고, 문자를 쓰면서 생각이 폭발적으로 자라나게 된 인류는 그걸 담아낼 그릇, 종이가 필요했지. 처음에는 점토나 짐승 뼈에 글씨를 새겼는데, 그러자니 힘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렸어. 보관도 어려웠지.

그러다가 5천 년 전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정말 멋진 발명을 했어. 이집트 나일 강가에는 파피루스라는 식물이 아주 많이 자라고 있었는데, 그 파피루스를 얇게 쪼개어 가로세로로 엮은 다음 햇볕에 말리면 푸른 풀물이 빠져 하얗게 바뀌었어. 표면이 매끄럽고 부드러워서 글씨를 쓰기에 더없이 좋았지. 비로소 오늘날 종이와 가까운 도구를 발명한 거야. 종이를 뜻하는 영어 '페이퍼(paper)'도 파피루스라는 말에서 유래했단다. 하지만 파피루스 종이는 풀을 겹쳐서 만든 거라 수명이 그리 길지 않았어. 또 파피루스가 자라지 않는 지역에서는 종이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도 문제였어.

마침내 105년에 중국의 채륜이 이런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했다고 해. 채륜은 나무껍질, 베옷, 그물 따위를 잘게 짓이겨서 물에 푼 다음 채로 걸렀지. 이걸 그늘에 말리면 얇은 종이가 되었단다. 비로소 온전한 의미의 종이가 탄생한 거야. 채륜의 종이는 부드럽고 수명도 아주 긴 데다 가볍고 얇았어. 또 풀에서 재료를 뽑았기 때문에 종이 만드는 방법을 알면 어디서나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었지. 결국 종이 만드는 방법은 동쪽으로는 우리나라와 일본, 서쪽으로는 인도와 아라비아를 거쳐 유럽으로 퍼져 갔어. 종이의 발명으로 인류는 비로소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전달하고 보관할 수 있게 되었어.

가장 새로운 소식을 가장 정확하게 : 신문, 자유를 찾아가다

우리가 매일 읽는 신문의 종류는 엄청나게 많단다. 신문은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취재해서 널리 알리는 역할을 맡고 있어. 그런 신문은 언제 처음 생겨났을까? 신문의 첫 모습을 찾아 고대 로마 시대로 가 보자. 로마의 정치가 카이사르는 용맹한 장수였는데, 기원전 59년에 로마를 다스리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어. 카이사르는 권력을 유지하려면 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바로 최초의 신문 《악타 디우르나》야. '매일의 사건'이라는 뜻이지. 《악타 디우르나》는 원로원과 평민원에서 있었던 토론이나 회의 내용을 매일 로마 광장에 내걸었단다. 로마 시민들은 《악타 디우르나》를 보며 자연스럽게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의원들은 시민들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늘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됐지.

15세기 유럽은 상업과 무역이 빠르게 발달했어. 그로 인해 여러 지역의 새로운 정보가 필요해진 상인들은 지역마다 업종마다 소식지를 만들어 주고받았단다. 오늘날로 치면 경제 신문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제대로 된 신문은 아무래도 구텐베르크가 금속 활자 인쇄술을 발명한 1440년 이후에 생겨났다고 봐야지. 금속 인쇄술을 발명한 나라답게 독일에서 최초의 인쇄 신문인 《플루크 블라트》를 펴냈단다. 이 신문에는 정치와 경제 소식을 비롯해서 떠도는 소문까지 여러 정보가 담겨 있었지.

17세기는 유럽에 산업 사회의 기운이 움터 오르던 시기였고, 상인들이 성직자와 귀족들의 그늘에서 벗어나 힘을 키우게 되었지. 상인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물건을 팔아서 이윤을 남기는 것이었는데, 물건을 사야 할 사람들이 옛날 제도에 얽매여 까막눈으로 농사만 짓고 있으니 곤란했어. 즉 사람들이 스스로 물건을 살지 말지 선택하는 경제 주체로 서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글을 읽고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얻어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어야 했어. 그래서 상인들은 일부러 인쇄술을 널리 퍼트렸단다. 이렇게 나온 인쇄물 가운데 가장 큰 인기를 끈 게 바로 신문이었어. 1609년에 독일에서 최초의 주간 신문이 나오고 뒤이어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에서 주간 신문이 발행되었단다. 그리고1660년에는 독일 라이프치히 지방에서 세계 최초의 일간 신문인 《라이프치거 차이퉁》이 발행되었어.

그런데 신문이 제대로 자기 역할을 해내는 모습을 보려면 영국으로 건너가야 할 것 같구나. 17세기 초까지만 해도 영국은 왕의 권위가 하늘을 찔렀어. 당시 영국 왕이었던 찰스 1세는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며 이를 비판하는 의회를 없애버렸어. 참다못한 종교 개혁자와 상인들은 1640년에 힘을 합쳐 찰스 1세를 몰아내고는 의회를 다시 세워 나라를 다스리기로 했지. 이때 의회는 귀족 편에 선 왕당파와 시민 편에 선 의회파로 나뉘었어. 두 세력은 팽팽하게 맞서며 자기 의견을 주장했단다. 그러자 신문에서도 의회 소식을 다루면서 왕당파와 의회파의 주장을 똑같은 무게로 싣게 되었고, 사실을 정확히 내보이는 데 최선을 다했지. 그래야 독자들이 누가 어떤 주장을 했는지 확실히 알고, 판단을 내릴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이때부터 신문은 사실 그대로 보도하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삼게 되었단다.

빛의 속도로 소리를 실어 보내다 : 전선을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서 정보를 전달해 주는 꿈의 통신 수단인 전화에 대해 알아볼까? 전화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먼저 새뮤얼 모스를 만나 보는 게 좋겠어. 새뮤얼 모스는 1844년에 모스 부호를 써서 전선으로 신호를 보내는 데 성공했단다. 모스가 생각해 낸 방법은 아주 간단해. 전선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서 전류가 흘렀다가 끊기게끔 스위치를 눌렀다 떼면 반대쪽에서도 그걸 감지할 수 있는데, 스위치를 빨리 두 번 누르면 'ㄱ', 2초 동안 길게 누르면 'ㅏ' 이런 식으로 미리 약속을 해서 간단한 문장을 전달하는 거야. 모스 부호의 출현은 세상을 흥분의 도가니로 빠뜨렸어. 이전의 통신 수단인 말이나 기차, 배, 봉화에 비해 갑자기 빛의 빠르기로 정보를 자유롭게 전달하는 방법이 등장한 거지.

그러자 사람들은 진짜 사람 목소리를 전달할 방법을 생각했어. 드디어 사람들 머릿속에서'전화기'가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거야. 그럼 전화기를 맨 처음 발명한 사람은 누구일까? 예전에는 그레이엄 벨이 1876년에 처음 발명했다고 알고 있었어. 하지만 최근에는 엘리사 그레이가 그보다 앞선 1874년에 발명했다고도 하고, 또 한편에서는 필립 라이스, 안토니오 메우치 같은 사람이 먼저 전화기를 발명했다고 주장하기도 해. 어쨌든 그 시기에 그 많은 사람이 전화기를 발명하는 데 매달렸다는 사실이 흥미롭지? 전선에 사람 목소리를 실어 나르고자 했던 사람들의 바람이 그만큼 컸기 때문일 거야. 전화가 발명되면서 비로소 지구는 하나로 묶였고, 똑같은 시간대를 살아갈 수 있었단다.

세계를 둘러싼 정보 거미줄 : 모든 개인이 정보의 주인으로 / 우리는 디지털 시대의 유목민! 오늘날 컴퓨터는 생활필수품이 되었어. 이 세상 모든 컴퓨터가 한순간이라도 멈춘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 봐. 공장 기계가 멈추고, 거리는 교통지옥으로 바뀌고, 전기도 끊겨서 세상이 온통 깜깜해질걸. 세계의 모든 정치와 경제도 혼란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거야. 이렇듯 컴퓨터는 우리 사회를 지탱해 주는 뿌리가 되었단다.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개인이 정보를 만드는 주체가 되었고, 개인의 정보가 모여 사회의 정보를 이루었지.

컴퓨터에 날개를 달아준 게 바로 컴퓨터 통신기술, 곧 인터넷이야.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컴퓨터는 정보를 저장하고 정리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정보를 빠르게 주고받는 역할까지 맡게 되었어. 즉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만 하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비해, 인터넷에서는 개인이 저마다 필요한 정보를 만들어서 주고받을 수 있는데, 이렇게 정보가 양쪽으로 흐른다는 점이 인터넷의 독특한 매력과 가치란다. 인터넷은 1969년에 미국에서 처음 생겨났어. 미국 국방성은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중요한 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여러 컴퓨터를 연결하는 통신망을 갖추어 서로 정보를 공유하게 했어. 어느 컴퓨터 한 대가 망가진다고 해도 다른 컴퓨터에 똑같은 정보가 남아 있게 되는 거지. 이게 발달해서 1990년대부터는 일반 기업과 개인까지 인터넷을 쓸 수 있게 되었단다.

우리나라는 인터넷 문화가 세계에서 가장 발달했는데, 그렇게 된 과정을 살펴볼까? 지난 1997년, 우리나라는 너무 무리하게 경제 규모를 키우느라 다른 나라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어. 결국 우리나라는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려야 했고, 악몽과도 같은'IMF 시대'가 시작된 거야. 이때 돌파구를 마련해 준 게 바로 인터넷 관련 사업이었단다. 인터넷 산업은 천연자원이나 값비싼 재료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오직 사람의 지식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되는, 우리 경제 조건에 딱 들어맞는 산업이었거든. 인터넷 사업이 크게 성장하면서 다른 분야의 사업들도 힘을 얻게 된 우리나라는 2000년에 국제통화기금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집집마다 광케이블까지 깔아 놓고 인터넷을 밥 먹듯 즐겨 하는 걸까? 나는 오래전부터 내려온 우리 민족성 때문이라고 생각해. 사실 우리는 저 먼 옛날 말을 타고 드넓은 초원을 달리던 유목 민족이었어. 생각해봐. 인터넷은 유목민이 살아가는 모습과 아주 닮았어. 알고 싶은 정보를 찾아 늘 자유롭게 움직이잖아. 우리 몸속에 숨어 있던 유목민의 피가 인터넷을 만나 화려하게 다시금 꽃피우고 있는 거야. 여기에 바로 우리나라가 인터넷 강국으로 거듭난 비밀이 숨어 있는 거란다. 유목민의 삶은 생각처럼 쉽지 않아. 자칫 방향을 잃고 헤매거나 같은 자리를 빙빙 맴돌 수도 있어. 오늘 혹시 인터넷 게임이나 채팅만 하다가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았니? 그렇게 한곳에 머무르지 말고 더 넓은 정보의 바다를 자유롭게 항해해봐. 우리 시대의 새로운 유목민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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