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놀이터, 자연과 놀자
이어령 지음 | 푸른숲
상상 놀이터, 자연과 놀자
이어령 지음
푸른숲 / 2009년 10월 / 132쪽 / 9,800원
건강한 경쟁은 나를 키우는 힘! - 사슴을 살리려고 늑대를 죽였더니 사람들은 대부분 늑대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야. 심지어 우리는 나쁜 사람을 욕할 때에도 곧잘 늑대에 비유하곤 해. 그런데 늑대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우리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란다.
미국 서부의 애리조나 주에 가면 드넓은 초원이 있어. 초원이라고 하면 끝없이 펼쳐진 푸른 풀밭이 떠오르지만, 애리조나 초원은 사막과 섞여 있어서 쓸쓸하고 고요한 느낌마저 든단다. 그런데 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에는 애리조나 초원을 아름답게 뛰노는 동물이 있었어. 바로 사슴이야. 하지만 이따금씩 잔인한 늑대들이 나타나 초원의 평화를 깨곤 했지. 사람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평화로운 초원을 끔찍한 살육의 현장으로 만들어버리는 이 무법자들을 몹시 미워했어. 그래서 늑대가 산에서 내려오지 못하도록 산과 벌판 사이에 철조망을 쳤고, 늑대 소굴을 찾아내어 새끼까지 모두 잡아 없앴지.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 이 무법자들은 초원에서 사라졌고, 사람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기뻐했단다.
다시 몇 년이 지났어. 사람들은 정말 평화가 왔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 무법자가 사라진 초원에서 씩씩하게 뛰어놀아야 할 사슴들이 서서히 죽어 가는 거야. 늑대가 사라지면서 사슴 수가 너무 많이 불어났던 거지. 빠르게 늘어난 사슴들은 다 자라지도 않은 어린 풀을 앞다투어 뿌리째 뽑아 먹었어. 먹을 것을 찾지 못한 수만 마리의 사슴들은 결국 굶주려 죽어 갔고, 애리조나의 푸른 초원은 삽시간에 사막처럼 황폐해지고 말았지.
사람들은 그제야 깨달았어. 늑대가 초원의 무법자가 아니라, 사실은 초원의 평화를 지켜 주는 파수꾼이었다는 걸 말이야. 늑대가 사슴을 사냥했기 때문에 사슴 수가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었던 거지.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늑대가 사슴을 잡아먹는 것만 잔인한 게 아니야. 식물이 동물처럼 소리를 낼 수 있다면, 초원에서는 날마다 사슴 떼에게 뜯어 먹히는 풀들의 비명이 들렸을 거야. 하지만 사슴이 풀을 뜯어 먹지 않으면 풀도 살아갈 수가 없어. 풀이 너무 무성하면 땅은 또 어떻게 되겠니? 흙 속의 양분을 모두 풀에게 빼앗겨 나중에는 풀이 아예 자라지 못하는 땅이 되겠지. 그러니까 초원은 서로 먹히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가 아니라, 서로 도와가며 종족을 보존해 나가는 곳이야.
다시 한 번 정리해 볼까? 초식 동물은 풀을 뜯어 먹고, 육식 동물은 초식 동물을 잡아먹고, 사람은 식물과 동물을 모두 먹어. 식물이 없으면 짐승은 물론 사람도 살아갈 수가 없다는 뜻이지. 그리고 초식 동물과 육식 동물, 사람은 죽으면 모두 흙으로 돌아가 식물의 양분이 되는 거야. 자연 안에서 이렇게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를 먹이 사슬이라고 한단다. 지구에 사는 한 어떤 생명체도 먹이 사슬을 벗어나 살아갈 수 없어. 물론 인간도 마찬가지지.
저마다 잘할 수 있는 일은 달라 / 매미는 굶어 죽어 마땅하다? 너 이솝 우화에 나오는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 알고 있지? 이 이야기는 서양에서는 원래 '개미와 매미' 이야기란다. 지금부터 '개미와 매미' 이야기를 다시 들려줄게. 개미는 여름날 뜨거운 햇볕 아래서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했어. 그런데 매미란 녀석은 서늘한 나뭇잎 그늘에서 온종일 노래만 불렀단다. 어느덧 추운 겨울이 다가왔어. 여름내 신나게 노래만 부르며 즐겼던 매미는 한겨울 눈 속에서 먹을 것이 없었지. 매미는 생각다 못해 개미네 집을 찾아가서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했는데, 개미가 말했지. "너 같은 게으름뱅이에게 나눠 줄 게 어디 있어? 꼴좋다." 결국 매미는 이 집 저 집 떠돌아다니다가 눈 쌓인 벌판에서 얼어 죽고 말았대. 매미처럼 놀기만 좋아하다가는 결국 거지 신세가 되고, 개미처럼 열심히 내일을 준비하면 아무리 추운 겨울이 와도 문제없지.
이처럼 '개미와 매미' 이야기에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담겨 있단다. 물론 열심히 일하는 걸 나쁘다고 할 사람은 없을 거야. 하지만 이 세상에 개미들만 있다고 생각해 봐. 그럼 아마 노래 부르는 가수도 없을 거고, 예술가나 소설가도 없을 거야. 사람이 입는 것, 먹는 것처럼 생산적이고 물질적인 것만 밝히면 인간답게 살 수 없어. 매미처럼 여름날의 소낙비, 맑은 햇빛 그리고 자신의 기쁨이나 슬픔을 노래로 만들어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는 일도 아주 소중하단다. 사실 개미들도 매미의 노래를 들으며 더욱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었을 거야.
세상에는 이렇게 서로 다른 두 가지 역할이 있어. 하나는 물질적인 것을 생산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을 즐겁게 해 주는 일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생산하는 일이지. 사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마치 개미처럼 경제 성장만을 목표로 앞만 보고 달려왔어. 덕분에 세계에서 남부럽지 않게 잘사는 나라가 되었지. 이제는 문화와 예술의 가치를 받아들여 삶을 더욱 풍성하게 누릴 때가 되었단다. 말하자면 매미의 시대가 온 것이지. 그렇다고 모두 일손을 놓고 매미가 되자는 건 아니야. 매미는 매미대로, 개미는 개미대로 제 몫을 멋지게 해내면서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는 사회를 만들자는 거지.
거꾸로 보고 뒤집어 생각하자 - 박쥐, 배트맨이 되다! / 물구나무서서 세상 보기이 세상에 사는 짐승은 날아다니는 날짐승과 네 발로 땅 위에서 사는 길짐승으로 나눌 수 있어. 그런데 유독 박쥐만은 둘 가운데 어디에도 들지 않는 이상한 녀석이야. 생긴 건 쥐 같은데,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를 지녔거든. 이러한 특성 때문에 이솝은 박쥐를 지조도 의리도 모르는 기회주의자로 그렸어. 어느 날, 날짐승과 길짐승이 서로 편을 갈라 싸움을 했는데, 박쥐는 날짐승이 유리해지면 날짐승 편을 들고 길짐승이 유리해지면 길짐승 편을 들다가 결국 양쪽 모두에게 미움을 사 쫓겨나고 말았대.
그런데 모두가 박쥐를 꼭 이렇게 나쁘게만 그린 건 아냐. 너 배트맨 영화 본 적 있지? 거기 보면 배트맨이 박쥐 모양 망토를 입고 날아다니면서 나쁜 사람을 혼내 주는 영웅으로 나오잖아. 이 배트맨은 박쥐를 본떠 만든 인물이야. '박쥐'에는 '밝은 쥐', 다시 말해 밤에도 잘 돌아다니는 '눈이 밝은 쥐'라는 뜻이 담겨 있단다. 또 박쥐는 다른 짐승들과 달리 거꾸로 매달려서 잠을 자. 그리고 동물은 대부분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데 박쥐는 성대에서 초음파를 쏘아 반사되는 소리를 듣고 거리와 방향을 알아낸단다. 어때? 박쥐의 능력이 놀랍지 않니? 이런 멋진 박쥐의 습성을 잘 관찰하고, 박쥐가 나쁘다는 일반적인 생각을 뒤집어 보았기에 배트맨이라는 인물을 창조해 낼 수 있었던 거란다.
박쥐는 사람 입장에서 따져 보아도 나쁜 동물이라고 볼 수 없어. 박쥐는 나무 열매를 먹거나 파리, 모기, 나무좀 같은 해충을 잡아먹어. 박쥐는 사람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오히려 이로운 동물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러니 어두운 동굴에서 산다고 해서 흉측하다고만 하지 말고 박쥐가 살아가는 모습을 거울삼아 사물을 다른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길러 보는 건 어때? 예로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려서 세상을 보면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많은 것을 생각해 낼 수도 있단다. 무조건 나쁘다, 필요 없다 생각했던 것도 달리 볼 줄 아는 열린 눈이 너를 더욱 큰 사람으로 자라게 할 거야.
너만의 발걸음으로 세상을 누벼라 - 부지런한 참치, 게으른 개복치 /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물고기 중에 참치가 있지? 이 참치라는 녀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헤엄을 치기 시작한단다. 헤엄을 쳐야만 산소를 얻을 수 있거든. 다른 물고기는 물을 마신 다음 입을 닫고 아가미로 물을 내보내면서 산소를 빨아들이는데, 참치는 입을 딱 벌리고 헤엄을 치면서 물을 아가미로 계속 흘려보낸단다. 그렇게 해야 물속에 녹아 있는 산소를 빨아들일 수 있지. 그래서 참치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잠시라도 헤엄을 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어. 그러니 참치는 평생 동안 한군데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 바다 저 바다를 돌아다니면서 산단다.
그런가 하면 넙치나 가자미 같은 물고기는 힘들여 헤엄치지 않고 가만히 파도에 제 몸을 내맡기지. 넓적하게 생긴 물고기는 대부분 그래. 이런 종류의 물고기 가운데서도 가장 게으른 녀석이 개복치라는구나. 개복치는 우리나라, 남태평양, 지중해 등에 사는 물고기인데, 온종일 잠만 잔대.
가만히 관찰해 보면 사람들 가운데도 참치형이 있는가 하면 개복치형이 있어. 참치형 사람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고, 새로운 일을 벌이지. 성공한 사람들,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들 가운데는 참치형 사람이 많단다. 그런데 제자리에 가만히 멈춰 서서 조용히 사색하는 개복치형 사람 가운데도 위대한 사람, 훌륭한 사람이 많단다. 특히 예술가가 많아. 그렇다고 예술가가 개복치처럼 움직이기 싫어하는 게으름뱅이라는 뜻은 아니야. 예술가도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데 대부분 개복치형으로 보이는 까닭은 조용히, 깊이 사색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야.
참치형 사람이 세상이 좁다고 헤엄치고 다닐 때 가만히 누워 있던 개복치형 사람은 그들보다 근대화에서 뒤진 게 사실이야. 하지만 이들은 자연과 더불어 오늘날 문명이 가지지 못한 평화를 누리며 살고 있단다. 오늘날 개복치형 문화는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어. 앞서 나가듯 보이던 참치형 문화가 자원 고갈과 지구 온난화 같은 위기를 맞자 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거지. 이제 인류는 참치형 사람과 개복치형 사람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해. 참치처럼 잠을 자면서조차 헤엄을 쳐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개복치처럼 햇볕이 내리쬐는 푸른 바다에 조용히 떠서 물결치는 대로 제 몸을 내맡겨야 할 때도 있는 거란다.
아름다운 것도 필요해 - 제비 꽁지는 왜 쓸데없이 길까? 요즘 도시에서는 제비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 제비를 잘 관찰해 보면 놀라운 삶의 지혜를 배울 수가 있어. 제비는 곤충을 먹고 사는데 제비가 아무리 날쌔다 해도 먹이는 한 번에 한 마리씩만 입에 물 수 있어. 하지만 그 좁은 둥지 안에서 대여섯 마리나 되는 새끼 제비들이 저마다 배고프다고 울어대는데, 어미 제비는 어떻게 차례를 알고 골고루 먹이를 먹일까? 어미 제비는 새끼가 벌린 입만 봐도 누구에게 먹이를 줘야 할지 단번에 알 수 있대. 배도 안 고프면서 '나 배고파요' 하는 새끼는 아무리 입을 크게 벌리려고 해도 벌려지지가 않아. 진짜 배고픈 녀석, 먹이를 아직 못 얻어먹은 새끼만이 입을 크게 벌릴 수 있지. 그러니까 어미는 입이 가장 크게 벌어진 새끼한테 벌레를 주면 되는 거란다. 제비가 이런 슬기를 가지고 있다는 게 놀랍지 않니?
그것만이 아니야. 제비가 얼마나 빨리 나는지 아니? 제비는 최고 시속 200킬로미터까지 날 수 있어. 그래서 날쌔기로 이름난 독수리나 매도 쉽사리 제비를 잡을 수가 없어. 뿐만 아니라 제비는 아주 멀리까지 날 수 있어. 제비들은 우리나라에서 여름을 보낸 뒤에 저 먼 동남아시아까지 날아가서 겨울을 나지. 겨우 사람 손바닥만 한 제비가 그렇게 먼 바다를 폭풍에 휘말리지도 않고 날아간단다.
그런데 드넓은 바다에서 하늘 높이 날고 있는 제비를 떠올리자니 한 가지 궁금한 게 생기는구나. 제비 꽁지는 왜 그렇게 긴 걸까?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꽁지가 긴 수컷 제비일수록 암컷 제비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대.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지 않니? 그래서 수컷 제비들은 긴 세월을 두고 어떻게 하면 꽁지를 길게 만들까 경쟁해 왔대. 그런데 수컷 제비의 긴 꽁지는 정작 제비들이 살아가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아. 제비 꽁지처럼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닌데, 마음을 끄는 것을 흔히 미의 세계, 아름다움의 세계라고 하지. 음악이나 그림을 생각해 봐. 음악이나 그림은 사실 사람이 사는 데 도움을 주는 건 아니지만 우리 마음을 풍요롭게 해 주지. 이렇듯 실용적인 것만이 꼭 가치 있는 건 아니야. 아름다움과 실용, 이 두 가지를 골고루 갖추어야 삶이 균형을 이루는 거란다.
작은 것이 이 세상을 움직인다 - 하느님, 모기는 왜 만드셨나요? / 작은 몸에 지닌 최첨단 기술고려 시대에 살았던 이규보라는 이름 높은 학자가 쓴 글 가운데 〈조물주에게 묻는다〉라는 아주 재미있는 글이 있어. 조물주는 이 세상을 만들고 다스리는 신이야. 이 글에서 이규보는 조물주에게 조목조목 따졌어. "제가 보기에 곡식이나 채소, 물, 공기 같은 것들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조물주께서 자연을 만든 건 사람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사람을 괴롭히는 이와 벼룩, 사람의 피를 빨아 먹는 모기 같이 아무 소용도 없는 것들을 함께 만든 겁니까? 사람에게 이로우라고 만드셨습니까, 아니면 사람을 괴롭히라고 만드셨습니까?"
조물주가 한 대답을 들어 보렴. "그게 무슨 소리인고? 사람인 네 입장에서 만물을 보니까 어떤 것은 해롭고 어떤 것은 이롭게 여겨지는 것이다. 천지 만물은 그저 제각기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자기 잣대로 세상을 재려 드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래. 세상 만물은 어떤 것도 좋고 나쁘고, 이롭고 해롭다고 말할 수 없어. 저마다 제자리가 있어서 거기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지. 자연은 인간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란다. 그래서 조물주는 아주 작은 것들 하나하나한테도 그에 걸맞은 재능을 주어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었지.
모기를 한번 보렴. 사람 입장에서 보면 모기는 정말 나쁜 녀석이지. 예부터 모기는 제가 살려고 사람의 피를 뽑고, 사람은 또 모기에게 물리지 않으려고 갖은 방법을 짜내었어. 게다가 모기는 나쁜 병균을 옮기기도 하지. 그런데 조물주는 도대체 무얼 보고 모기를 해롭다 할 것이 없다고 했을까?
모기는 깜짝 놀랄 만한 점이 많은 곤충이란다. 모기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모기가 피를 빨아 먹는 기술은 최첨단 기술과 다름없다고 해. 모기 몸에는 사람의 땀 냄새와 숨 쉴 때 내뿜는 이산화탄소 냄새를 맡는 감각 기관이 있어. 이 기관은 놀랍도록 뛰어나서 아주 멀리서도 사람을 찾아갈 수 있단다. 모기의 뾰족한 입 안을 자세히 보면 무려 여섯 개의 침이 들어 있지. 모기는 사람 몸에 앉으면서 곧바로 드릴 기능을 지닌 두 개의 침으로 피부에 구멍을 뚫기 시작해. 동시에 톱날처럼 생긴 두 개의 침으로 피부를 쓱싹쓱싹 잘라 내지. 침이 피부 속으로 들어가 모세 혈관을 찾으면 나머지 두 개의 침에서는 피가 굳는 걸 막고 혈관을 넓혀 주는 화학 물질이 나와.
그래서 학자들은 모기가 미래 사회에 꼭 필요한 이상적인 기계 모델이라고 해. 미래에는 모기처럼 작고 가볍고, 작은 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 기계가 아주 많이 쓰일 거라는 거지. 그러니까 목숨이 있든 없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간단다. 우리 인간이 모기한테서 21세기를 이끌어 갈 미세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것처럼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