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해록
방현희 지음 | 알마
방현희 지음
알마 / 2009년 6월 / 164쪽 / 9,500원
바다에서 길을 잃다 (정월 30일 - 윤정월 28일)신 최부는 제주에서 표류해서 구동(중국의 절강 동남부 연해 지역)에 배를 대고, 월남(베트남)을 지나 연북(북경 일대를 중심으로 하는 하북 북부 지역)을 거쳐, 올해(1488년) 6월 14일에 청파역(서울 청파동)에 도착해 삼가 임금의 명을 받들어 이번 길의 일지를 정리해 바칩니다.
홍치(弘治) 원년(1488년) 무신년 정월 30일, 흐림. : 해질 무렵 신의 종 막금이 나주에서 제주로 왔습니다. 상복을 가지고 와서 신의 아비의 죽음을 알렸습니다.
윤정월 1일, 비 : 제주 목사(목을 다스리는 정3품 관직)가 아침저녁으로 와서 조문하고 수정사 승려 지자의 배가 튼튼하고 빨라 관청에서 쓰는 배보다 나을 것이라며 배를 준비해 주었습니다.
3일, 바다에서 표류 : 잠깐 흐리더니 비가 조금 왔습니다. 동풍이 살짝 불고, 바닷물 빛은 짙은 청색이었습니다. 날씨 때문에 떠나기를 말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해가 높이 솟아오를 때까지 어떻게 할지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항해를 책임진 안의가 와"동풍이 마침 알맞으니 떠날 만합니다"라고 하여, 신은 마침내 작별을 고하고 배에 올랐습니다. 한참을 가니 바다가 어두워지면서 바람은 약해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물살이 아주 급해지고 하늘도 캄캄해졌으므로 군인들에게 열심히 노를 젓게 했으나, 군인들 모두 노를 힘껏 젓지 않으며"이런 날씨에 배를 출발시킨 것이 누구 잘못입니까!"라고 투덜댔습니다.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고 풍랑이 사나워 배는 파도를 따라 오르내렸습니다.
4일, 큰 바다 가운데로 표류 : 파도에 돛이 모두 부서져 버렸고, 배는 순식간에 서해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뱃사공이 말했습니다. "이곳을 지나 계속 앞으로 가면 끝없이 넓은 바다뿐입니다."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겁에 질려 배 안에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신이 안의를 시켜 군인들이 배를 수리하는 일을 격려하고 감독하게 했으나, 군인들은 그냥 편안히 죽겠다며 명령에 따르지 않았습니다. 어찌할까 궁리하다가 배에 탄 사람들을 살펴보았더니, 신이 데려온 심부름꾼이 일곱, 제주 목사가 보낸 이가 안의를 비롯해 서른넷이나 되었습니다. 신은 모두가 듣도록 소리쳐 말했습니다. "나는 부친상을 당한 터이라 잠시도 머물러 있을 마음이 아니었다. 그러니 표류를 당한 것은 나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 파도가 잠잠해진다면 비록 표류하다 다른 나라에 이르게 되더라도 살아날 수가 있을 것이다. 너희도 가족이 있을 것이니, 그들 모두 너희가 살아 있기를 바라지 않겠느냐."신의 말을 듣고 있던 십여 사람이 고개를 조아리고 말했습니다. "저희는 죽을 때까지 힘써 일하겠습니다."
7일, 바다에서 표류 : 밤이 되니 동풍이 변해 북풍이 몰아쳤습니다. 사공이 모두 통곡하며 두려워했고, 신은 사람들에게 소리쳐 말했습니다. "해야 할 일에 힘쓴 다음에 하늘의 명을 기다려야 한다! 힘을 다해 물을 퍼내도록 하라!"십여 사람이 서로를 격려하며 물을 퍼냈습니다.
12일, 영파부 경계에서 해적을 만나다 : 해질 무렵에 큰 섬에 이르렀는데, 중간 크기의 배 두 척이 신의 배를 향해 똑바로 왔습니다. 한 배에 열 명 남짓 타고 있었는데 요란스럽게 떠드는 소리는 모두 중국말이었습니다. 신은 종이에 글을 써 건넸습니다. "조선국의 벼슬아치 최부는 왕명을 받들고 섬에 갔다가 부친상을 당해 급히 바다를 건너다 바람을 만나 표류해 이곳에 이르렀소. 이곳이 어느 나라 마을인지 모르겠소."중국 사람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이곳은 대당국(당시 중국은 명나라가 통치하고 있었지만 당나라 시절부터 보통 대당국이라 불렀다) 절강성 영파부 지방이오. 조선으로 돌아가려면 대당국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소."그들은 먹을 물을 두 통 가져다주고는 가 버렸습니다. 신은 한 섬에 배를 대게 했는데, 또 다른 배 한 척이 다가오더니 창과 칼을 든 자들이 신의 배에 들이닥쳐서는 의복과 양식을 모두 빼앗았습니다. 금은을 내놓으라고 하기에 없다고 신이 대답하였더니, 해적 두목은 화를 내며 신을 거꾸로 매달고는 신의 목을 칼로 베려고 했는데, 다른 해적이 말렸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배로 신이 타고 있는 배를 큰 바다 가운데로 끌어다 놓은 다음 도망쳤습니다.
16일, 우두 앞바다에 정박 : 날이 흐리고 어두컴컴했습니다. 산 위에 봉수대가 죽 늘어서 있는 모습이 보이니 기쁘게도 다시 중국 땅에 도착한 것이었습니다. 배 여섯 척이 우리 배를 빙 둘러싸자, 부하들이 신에게 관복을 갖춰 입고 저들에게 위엄을 보일 것을 청했으나, 신은 상복을 벗는 것은 효가 아니고, 거짓으로 남을 속이는 것은 신의가 아니라며 거절하였습니다. 그 배가 우리 배에 다가오자, 신은 글을 써서 신이 표류하게 된 사연을 알리고, 그곳이 어느 나라의 바다인지 물었는데, 대당국 태주부 임해현에 속한 우두 앞바다라는 대답이 건너왔습니다.
17일, 배를 두고 몰래 뭍에 오름 : 앞서 말한 배 여섯 척이 빙 둘러싸고 신에게 귀중한 물건이 있으면 달라고 했습니다. 신은 바다를 표류한 지 오래라 모두 바다에 던졌다고 말했으나, 저들은 배에 다투어 들어와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빼앗고는, 자기들의 배를 따라가자고 했습니다. 신은 밥을 지어 먹고 따라가겠노라고 하며 상황을 살폈습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그들이 모두 배 안으로 들어가고 망을 보는 사람이 없기에 신은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저들이 하는 짓이 매우 황당하구나. 잘못하다가는 바다 한구석의 귀신이 되고 말 것이다."마침내 신은 종과 배리(벼슬아치를 모시는 아전)등을 먼저 거느리고 배에서 내리고, 잇달아 여러 군인들도 내려 숲 사이를 뚫고 도망쳐 숨었습니다.
예닐곱 리를 가니 한 마을이 있었습니다. 신은 배리와 군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돌아보며 진심을 담아 말했습니다. "이처럼 생사의 괴로움을 함께하니 우리는 한 핏줄과 다름없지 않겠느냐. 이제부터 서로를 보호한다면 온전한 몸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본래 예의의 나라다. 비록 표류하고 도망 다니는 급박한 가운데서도 위엄을 세워 이 땅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의 예절을 보여야 한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마을에 이르니 우리를 괴상하게 여긴 구경꾼이 몰려왔는데, 신분이 높아 보이는 두 사람이 신에게 다가왔습니다. "당신들이 해적인지, 혹은 표류해 온 사람인지, 낱낱이 써 내면 조선으로 돌려보내 주게 될 것이오."신은 종이에 표류하게 된 연유를 쓰고 인신과 관대, 마패와 문서를 보여 주었습니다. 두 사람은 다 보고 나서 신의 앞에 차례로 꿇어앉은 관리, 배리 등과 차례로 엎드린 군인들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귀국이 예의의 나라임을 들은 지 오래였는데 과연 듣던 바와 같소."그들은 우리에게 길을 안내해 주었고, 신은 그 말에 따라 길을 떠났습니다.
19일, 도저소에 도착 : 큰비가 내렸습니다. 신의 다리가 아파 걸음을 걸을 수가 없어 여러 사람이 신을 번갈아 업고 고개를 넘어가 한 성에 이르니 바로 해문위(병영 이름) 도저소였습니다. 군졸들이 신과 일행을 한 공관(관리가 쓰는 집)에 머물게 했고, 왕벽이란 자가 글을 써 보였습니다. "어제 이미 왜선 열네 척이 변경(나라의 국경을 이루는 변두리)을 침범해 약탈했다고 보고했소. 당신은 왜인이오?" "나는 왜인이 아니라, 조선국 선비요!"또 다른 사람이 글을 썼습니다. "보아하니 당신은 나쁜 사람은 아닌 듯하오. 이번에 당신이 처음 배를 댄 곳의 관리는 당신을 왜구라며 덮어씌우고 공을 세우려고'왜선 열네 척이 변경을 침범해 약탈했다'라고 보고를 했던 것이오. 그런데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당신의 목을 베려는 참에 당신들이 먼저 배를 버리고 마을로 들어갔던 까닭에 뜻대로 하지 못했던 것이오. 내일 비왜파총관이 와서 당신들을 심문할 텐데 자세히 해명하시오."
21일, 도저소에서 심문을 당함 :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신을 구경했습니다. 한 높은 벼슬아치가 앞뒤로 엄정하게 군대를 정렬시켜 오더니 황화관에 자리 잡고 앉았습니다. 그는 신을 심문하기 시작했고, 신은 표류하게 된 사정과 그간에 겪은 일들을 상세히 적었습니다. 그는 또 물었습니다. "너는 어느 해에 과거에 급제해, 어떤 벼슬을 지냈으며, 데리고 온 사람들의 신원은 어떻게 되며 짐에는 무슨 무기가 있으며, 원래 있던 배는 몇 척인가?"신이 모든 질문에 자세히 답하자, 파총관은 다과를 대접하며 말했습니다. "조선이 해마다 우리 명나라에 조공하여 의리가 있고 침범이나 반역한 일이 없어 마땅히 예절로 대우할 것이니 안심하시오. 북경으로 전송하여 조선으로 돌려보낼 것이오."
대운하를 따라 (윤정월 29일 - 2월 23일)29일, 영파부를 지남 : 가마를 타고 큰 내를 건넜습니다. 북도강은 작은 거룻배를 타고 건넜습니다. 운하를 따라 노를 저어 영파성 안으로 들어가 상서교에 이르니 다리 안의 강 너비는 백여 걸음이었습니다. 높고 큰 집이 언덕 좌우에 죽 이어져 있었으며, 자줏빛 돌로 기둥을 만든 것이 거의 절반이나 되는데, 그 기이한 광경과 좋은 경치는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2월 4일, 소흥부에 도착 : 해 뜰 무렵 소흥부에 도착했습니다. 호송관 적용이 우리를 이끌고 배에서 기슭으로 내렸는데, 저자의 번화함과 인구는 영파부의 세 배나 되었습니다. 벼슬아치들이 진성당 북쪽 벽에 죽 늘어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파총관이 했던 질문과 비슷한 것을 물었으며, 신의 대답을 들은 그들은 말했습니다. "만약 조선 사람이라면 조선의 역사와 도읍, 인물, 제사의 예법, 상례의 예법, 군병의 제도, 관직과 상벌 제도 들을 자세히 써 내라. 다른 자료와 맞춰 보고 옳고 그름을 가려내겠다."신이 상세히 진술한 것을 읽어 본 관리들은 신에게 다과를 대접하고 선물을 주었습니다.
6일, 항주 도착, 7일 항주에 머묾 : 새벽에 중국 벼슬아치가 물었습니다.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김완지, 조혜, 이사철, 이변, 이견은 모두 조선의 인물들인데, 이들이 어떤 벼슬자리에 있었는지 일일이 적어 내라."신이 아는 대로 대답하자, 그는 또 어떤 경전을 공부했는지 물었습니다. 신의 대답을 다 들은 그는 신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실로 글을 읽고 공부하는 선비가 맞는 것 같소."
9일, 항주에 머묾 : 벼슬아치가 다시 와 말했습니다. "당신이 왜구가 아닌 것을 이제는 모두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북경으로 보낸 뒤 조선으로 귀국시키기로 하였습니다."
북경을 향하여 북으로, 북으로 (3월 17일 - 4월 23일)3월 17일, 맑음 : 저녁에 고성현 앞에 이르러 배를 댔습니다.
28일, 북경 옥하관에 도착 : 배를 놓아두고 당나귀를 타고 동악묘, 동관포를 지나 통진역에 이르렀습니다. 이곳 역 서북쪽에 통주의 옛 성이 있었습니다. 신은 신성의 서문 밖에서 당나귀를 타고 영제사, 광해사를 지나 숭문교에 이르렀는데, 숭문교는 북경 성문 밖에 있습니다. 지휘 양왕은 신을 인도해 황궁 동남쪽에 있는 숭문문으로 들어가 회동관에 이르렀습니다. 신 등이 머문 관사는 옥하의 남쪽에 있던 까닭에 옥하관이라고도 불렀습니다.
29일, 병부에 이름 : 양왕이 신 등을 안내하여 옥하관을 나와 서쪽 거리로 걸어서 병부(국방과 군대를 맡은 기관)에 이르렀는데, 많은 관리가 모여 있었습니다. 관리들이 지도를 가리키면서 신에게,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디에 정박하였는지, 일행 중에 죽은 사람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또 조선에서 『가례』를 따르는지도 물었고, 조선 국왕이 글 읽기를 좋아하는지 등도 물었습니다. 신이 성의껏 물음에 답하자, 다른 관리가 우리들을 옥화관으로 다시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4월 1일, 맑음 : 새벽에 홍려시 주부 이상이 신에게 기쁜 말을 전해 주었습니다. "오늘 병부에서 당신의 일을 황제께 보고하려고 하니 마음을 놓으셔도 되겠소."
16일, 옥하관에 머묾 : 한 관리가 왔습니다. 신은 그에게 말했습니다. "빈 여관에 머물러 하는 일 없이 벌써 보름을 지냈습니다. 언제나 귀국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예부에서 황제께 아뢰어 당신들에게 상을 내려 주실 것을 청한 후에야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곳에 온 것은 나랏일 때문이 아닌데 상을 받다니요. 거의 죽을 뻔한 뒤인지라 살아서 돌아가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20일, 대궐에서 황제의 은혜에 사례함 : 새벽에 이상이 자기 집에서 바로 신에게 왔습니다. "당신은 지금 관복을 갖추고 대궐에 들어가 황제의 은혜에 사례해야 합니다."그러나 신은 지금까지 어려움 속에서도 상복을 벗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관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상을 당했는데 내가 비단옷을 입고 비단 모자를 쓰면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황제의 은혜를 입고도 만약 가서 사례하지 않는다면 신하의 도리에 크게 어긋나는 것입니다. 우리 중국의 예법은 높은 관리가 부모상을 당했을 때 황제께서 사람을 보내 위로해 주면, 비록 상중이더라도 반드시 길복을 갖추고 달려가 입궐하여 사례하고 난 뒤에 상복을 도로 입습니다."신은 하는 수없이 길복을 입고 대궐에 들어갔습니다. 황제 앞에 다섯 번 절하고 세 번 조아리고 난 뒤에 옥하관으로 돌아왔습니다.
조선으로, 고향으로 (4월 24일 - 6월 4일)24일, 회동관에서 길을 떠남 : 이날은 맑았습니다. 중국 관리가 수레 세 량(수레를 세는 단위)을 받아 가져왔습니다. 신은 말을 타고 종자들은 수레를 타기도 하고 당나귀를 타기도 했습니다.
27일, 어양역에 이르러 조선 사신을 만남 : 계주성 남쪽 오 리 쯤에 있는 어양역에서 반갑게도 조선 사신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중추부사 성건, 서장관 윤관과 최자준 등이 어양역 안으로 들어왔고, 신이 나아가 뜰에서 사신을 뵈니 사신이 신에게 고국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임금께서 그대가 표류되어 간 곳이 없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예조에 명을 내려 각 도의 관찰사를 시켜 가까운 바다의 관리마다 알려 샅샅이 수색하도록 하고, 대마도와 일본 여러 섬에 이와 같은 사연을 쓴 글을 보내도록 하셨다오. 이 은혜를 어찌 헤아릴 수 있겠소?"신은 임금의 마음을 알고 감격했습니다.
5월 7일, 산해관을 지남 : 산해관에 이르렀습니다. 관리가 신과 일행의 성명을 죽 써서 주사관에게 알렸습니다. 주사관은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서 점검한 뒤에 나가게 했습니다.
6월 4일, 압록강을 건넘 : 배로 오야강을 건넜고, 저녁녘에 또 배로 난자강을 건넜습니다. 3경(오후 11시~새벽 1시)에 말을 달려 드디어 의주성(조선 땅)으로 들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