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리가 된 민희
이민혜 지음 | 문학동네
가오리가 된 민희
이민혜 지음
문학동네 / 2009년 3월 / 152쪽 / 9,000원
가오리가 된 민희내 이름은 김, 민, 희. 그것에 의문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물론 아주 가끔은 의심해 볼 기회가 있었으면 싶기도 하다. '난 원래 생선 가게 미혼모의 딸 김민희가 아니고, 부잣집 외동딸이었는데, 병원에서 다른 애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부자인 친부모가 나를 찾으러 올 거다'라고 상상해보지만, 이런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걸 기대하기엔 내가 너무 자랐다. 또 지금은 그럭저럭 상황에 만족하고 있다. '그럭저럭한 만족'을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어제도 학원 갔다 와서 열 시까지 숙제를 하느라 너무 피곤했다. 게다가 시험이 다가온다고 엄마는 공부하라는 잔소리가 더욱 심해졌다. 그래서 오늘 오후 수업 시간에는 졸음이 쏟아졌다. 얼마나 졸렸는지 내 몸이 낙지나 오징어가 되어 흐물흐물해진 느낌이었다. 유리창에 비친 모습을 보니 놀랍게도 내가 가오리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가오리가 될 만큼' 졸렸던 것이다. 그 점에 있어 엄마가 커다란 역할을 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나는 엄마가 있는 생선 가게로 날아가기로 했다. 화가 풀리기 전에 엄마한테 실컷 따지고 신경질을 내야지.
날갯짓으로 창문을 통해 교실을 빠져나왔다. 처음으로 문이 아닌 창을 통해 밖으로 나가니 자유로운 영혼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상쾌했다. 기분이 좋아지자 엄마한테 따지러 가는 길이란 걸 잊고 병원에 가 보았다. 몸에 어떤 이상이 생겨 가오리가 되었고, 어떻게 하면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같은 생물이 왜 도시로 왔는지 모르겠구나. 일단은 바다로 가 있는 게 좋겠다. 이곳은 너 같은 생물이 살기엔 너무 건조하거든. 곧 말라죽게 될 테니 빨리 출발하여라. 그럼 행운을 빈다." 난 곧 말라죽을 거란 말에 엄마 찾아가는 걸 미루기로 했다. 기차를 타고 가려고 기차역으로 갔는데, 역무원 아저씨가 나한테서 냄새가 난다며 기차를 태워주지 않았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 엄마가 생선 장사를 한다는 걸 안 은서 고 깍쟁이가 나한테 비린내가 난다며 손사래를 쳤다. 나는 얼른 옷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 친구들도 다들 똑같이 손으로 코를 막으며 고상한 척 얼굴을 찡그렸다.
기차를 타는 걸 포기한 뒤 날아서 가기 위해 할 수 없이 바람의 방향을 찾았다. 하지만 건조한 바람에 몸이 계속 말랐다. 이 도시에는 시냇물은커녕 분수대도 없었다. 화가 치밀었지만 웃으려고 애썼다. 엄마가 손님을 대할 때처럼 말이다. 엄마는 늘 반들반들한 뾰족구두를 신고 일했다. 뾰족구두는 일을 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비웃음만 사기 일쑤였지만, 뾰족구두는 엄마의 자존심이었다. 실제로 엄마는 우아하게 생선을 고르는 아줌마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예뻤다.
나는 가끔 곤란한 질문을 해서 엄마를 슬프게 했다. "어쩌다 미혼모가 됐어? 아빠는 왜 한 번도 나를 찾지 않는 건데?" "너한테는 미안하지만 네 아빠라는 사람은 엄마랑 결혼하는 걸 싫어했어. 그래서 엄마는 너의 존재를 아빠에게 말하지 못한 채 헤어졌단다. 그러니까 네가 아빠를 미워할 필요는 없어. 정말 몰라서 안 찾는 걸 거야. 엄마 친구는 아이를 지워야 한다고 했지만, 엄마는 그럴 수 없었어. 엄마도 겁이 나고 살면서 후회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민희가 엄마를 잡아 주었어. 민희야, 처음에는 실수였을지 모르는 선택이라도 끝까지 밀고 나가다 보면 결국엔 가장 소중한 것이 되는 게 있어." 엄마와의 추억이 끊임없이 생겼다 사라졌다. 그리고 조금씩 삭제되는 기분이었다. 외로웠다.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필요했지만 그런 사람을 찾는 일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나를 보고 소리를 지를지도 모르고 잡아먹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꿈속을 날아다니는 중일 수도 있고, 이미 말하는 능력을 잃어버렸을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나'라는 존재가 세상으로부터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았던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시장을 지나칠 때에야 겨우 엄마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가슴 아랫부분이 또 허해졌다. 갈수록 기억이 사라지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나 보다. 분명한 건 엄마는 이제 미아 신고를 하고 평생 눈물을 흘리며 나를 그리워할 거란 사실이었다. 엄마에게 나는 그런 존재이니까.
한동안 내린 비로 몸이 촉촉해져서, 훨씬 날기가 쉬워졌다. 하지만 하늘은 금세 맑게 개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이 더욱 진한 빛깔을 드러냈다. 아래 보이는 풍경은 진짜로 아름다웠다. 그런데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는 이상하게 엄마 얼굴이 더 진하게 떠올랐다. 동시에 내 안에 무언가가 사라지고 말았다. 일단 싸악 사라지고 나면 흔적도 없으므로 그게 무엇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확실한 건 내가 가오리란 사실에 점점 덜 괴로워한다는 것뿐이었다. 다행히 나는 아직 진짜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나는 김민희이고 동화초등학교 5학년이며 생선 가게 딸이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가오리가 되어 있었다. 의지라고는 바람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밖에 남지 않았고, 바다 건너 날아오는 새들처럼 나도 가오리의 본능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나는 언제나 해가 지는 곳을 향해 나아갔고 매 순간 노을을 볼 수 있었다.
한번은 산등성이에서 함께 노을을 바라보던 친구가 말했다. "팔십 평생을 살면서 노을을 좋아하는 가오리는 처음이구나." "팔십 평생이라고요? 그렇게 나이 드신 줄 몰랐어요. 그런데 저는 제 나이를 잊어버렸어요. 제가 언제부터 가오리였는지도 모르겠어요." "어쩐지 너는 외로워 보이는구나. 그러고 보니 이렇게 말을 해 본 게 오랜만이네. 어떤 날은 말을 한마디도 듣지 못하기도 해." "그럼 텔레비전을 보세요." "허허허, 텔레비전은 죽어 있어서 생기가 없어. 차라리 살아 있는 것으로 가득 찬 이곳이 좋지." 그러고 보니 이곳엔 집도, 사람도 별로 없었다. 녹색 풀, 나무, 꽃만 무성하여 바람 소리, 새 소리만 들렸다. "오랜만에 말을 하니 말이 줄줄 나오는구나." "예, 할아버지는 참 수다스러우세요. 그래서 말하길 잘했구나 생각하고 있어요. 적어도 할아버지를 귀찮게 하지는 않은 것 같으니까요. 어른들은 제가 말이 길어지면 '오늘은 좀 피곤하니까 다음에 해'라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놀랍네요. 어떻게 이런 기억이 남아 있을까요?" "아마도 기억을 자극할 만한 것이 없었던 게지." "아니에요. 기억은 기억인데 제가 지금 누구의 얘기를 하고 있는지 떠오르지 않아요."
"네 부모가 걱정이구나. 네가 유괴라도 당한 줄 알 거야." "글쎄요. 부모님이 걱정하실 지도 모르지만, 저처럼 금방 잊으실 거예요. 어쩌면 홀가분해할지도 모르지요." "어리석긴! 이놈아, 부모는 간혹 자식을 귀찮아하는 것 같아도, 정작 자식이 없으면 허전함을 감당하지 못해. 내 경우도 첫째 아들이 처음 집을 떠날 때는 당당했지. 가장 좋은 대학에 가장 좋은 회사에 남부럽지 않은 며느리까지……. 모두가 부러워할 거라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기뻤단다. 그런데 남은 자식들마저 떠나고, 점점 더 그놈들과 얘기할 거리가 없어진다는 걸 깨달았어. 자식들은 세상이 많이 바뀌었으니 고리타분한 이야기는 늘어놓지 말라는 식이지." 말을 듣다 보니 나는 좀 화가 났다. "할아버지는 대답할 수 있는 게 많아요. 저한테도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잖아요. 문제는 할아버지 자식들이죠." "아니다. 그 애들은 나보다 훨씬 많은 걸 알고 있어." "할아버지는 제가 뭘 해야 할지 깨닫게 했어요. 바다로 가서 엄마, 아빠를 찾을 거예요." "그렇다면 빨리 떠나거라." 나는 꼬리를 흔들며 인사한 뒤 날아올랐다.
점점 더 가까이에서 바다 냄새가 느껴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바다로 향해 갔다. 이제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 능력은 이제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기능은 바다 냄새를 좇고 바람의 방향을 가늠하고 아래를 관찰하기 위해 존재했다. 푸르스름한 바다가 보이자 나는 바다로 몸을 던졌고, 파도에 휩쓸려 점점 더 깊은 바다로 들어갔다. 숨쉬기가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바다에선 향긋한 비린내가 났다. 정말 우연히도 '엄마 품처럼 포근하고 향긋한 비린내가 느껴지는 곳'이라는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어떻게 그런 말이 생각났을까. 전혀 남아 있지 않았는데. 처음부터 바다는 바로 엄마였다. 감각은 어떤 과정 없이 번쩍 살아났고, 그건 기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더 이상 나는 바다에 있지 않았다. 기적은 나를 어떤 혼잡한 시장으로 옮겨 놓았다. 그때 무언가가 반짝였다. 그것이 반짝일 때마다 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엄마란 걸 깨달았을 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나는 그 모든 것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을 엄마로 선택했던 거다. 엄마는 허겁지겁 우산을 펴고 있었다. 비가 폭포처럼 쏟아지는데 엄마는 서둘러 가게에서 나와 비를 맞아 가며 우산을 폈다. 비가 오는 날 한 번도 엄마가 데리러 온 적이 없었는데. 내가 다가갔지만 엄마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뛰기만 했다. 고인 빗물 위에서 뾰족구두가 아슬아슬 흔들렸다. 이제야 나는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맘이 생겼다. 엄마보다 빨리 가야 한다.
"민희야! 일어났니?" 책상에 엎드린 채로 잠이 깬 나에게 선생님이 말했다. "어떻게 친구들이 다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한 번도 안 깨고 자니?" 나는 벌떡 일어나 거울 앞으로 달려가 내 얼굴을 만져 보았다. 분명히 김민희, 나였다. 창밖은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급하게 책가방을 싸며 말했다.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엄마가 이제 거의 도착하셨을 거예요." 1층으로 내려가니 엄마가 막 오고 있었다. 나는 달려가 엄마를 꼬옥 안았다. "민희야, 엄마한테 생선 냄새 나. 그만해." "엄마, 나는 오늘 알았어. 엄마한테는 비린내가 아니라, 바다 냄새가 난다는 걸.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바다에서 가오리로 살 뻔했어." 엄마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엄마 인생에선 엄마가 빛나지 않을지 몰라도, 내 가슴에선 항상 빛나고 있어." "엄마 가슴에도 우리 민희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고 있어. 걱정 많이 했지? 엄마가 또 못 올까 봐." 나는 속으로 '제시간에 오지 못할까 봐 더 걱정한 사람은 엄마면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와의 감동적인 순간도 잠시, 나는 또 시험공부를 해야 했다. 가오리가 되어 바다까지 날아갔다 돌아왔건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병아리 죽이기"어이! 김유승, 너 이리 와 봐." 골목길에서 영철이 형이 졸개처럼 달고 다니는 인호 형이랑 상수를 옆에 끼고 앉아 나를 불렀다. 아 왜 하필 나일까? "왜, 왜요?" "너 삼계탕은 있는데, 병아리탕은 왜 없는 줄 알아? 단지 병아리가 좀 더 귀엽고 불쌍하게 삐약 소리를 낸다는 것 때문이야. 그러니까 우린 사회적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 병아리를 처단하기로 했어. 병아리는 한 마리에 오백 원밖에 안 하니까 네 마리쯤은 끄떡없겠지?" 그 말은 '당연히 이천 원 정도는 있겠지?'란 뜻이었다. 으악! 저 악마. 옆에 있던 인호 형이 어두운 얼굴로 변했다. "곤충이라면 몰라도 병아리는 죽이면 피나잖아?" 그러자 상수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에이, 겁쟁이. 벽돌로 박아 버리거나 목을 자르면 돼. 그렇게 겁나면 형은 아파트에서 던지는 것만 시킬게." 나는 상수가 왜 저렇게 폭력적인 아이로 변했는지 안다. 게임 중독이기 때문이다. 3학년밖에 안 된 것이 만날 PC방에서 산다. 나는 영철이 형에게 말했다. "나 돈 없어요……." "너 뒤져서 돈 나오면 백 원에 한 대씩인 줄 알아." 나는 주머니에 있던 돈을 다 꺼내 주었다. "이건 원래 엄마 심부름해야 하는 돈이라서……. 거짓말한 건 아니에요."
할 수 없이 병아리를 사러 갔다. 어제 주헌이가 생일 턱으로 병아리를 고르라고 했을 때는 가장 활발하고 귀여운 놈을 고르고 싶었는데, 지금은 곧 죽을 것 같은 놈을 찾느라 가슴이 답답했다. 나는 겨우 네 마리의 병아리를 사서 영철이 형에게 갖다 주고 어서 그 자리를 뜨려고 했는데, 상수가 말했다. "형도 궁금하지 않아? 살아 있는 게 죽을 때는 어떤지?"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이렇게 잔인하다니 교회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으면 상수는 잔인한 연쇄살인범이 될지도 모른다. 내가 불쌍했는지 영철이 형이 말했다. "너는 그냥 구경만 해." 먼저 영철이 형이 줄로 병아리 목을 묶었다. 병아리는 소스라치도록 삐약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치더니 얼마 지나자 날개가 곧 인형처럼 굳었고, 상수는 아무 거리낌 없이 쓰레기통에 버렸다. 다음은 상수 차례였다. 상수는 벽돌같이 생긴 돌을 구했다. "유승이 형, 병아리가 움직이지 않게 좀 잡아 줘." "싫어. 너 진짜 하면 선생님한테 이를 거야." "겁쟁이! 마음대로 해. 난 그런 적 없다고 하면 돼." 상수는 곧바로 병아리 목을 쳤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병아리는 푹 고꾸라졌고 또 쓰레기통에 던져졌다. 잠시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잠시 후, 상수를 제외한 우리는 질질 끌려가듯 근처 아파트로 향했다. 비참했다. 왜 나는 비겁하게 말리지 못하는 거지? 우리는 묵묵히 5층까지 올라갔다. 이번엔 인호 형 차례였다. 인호 형은 병아리를 건네받고는 어찌할 바를 모르더니 갑자기 구역질을 했다. 인호 형이 말했다. "에이 씨, 나는 갈래." 상수가 말했다. "형, 겨우 이까짓 게 겁나서 그래? 우리가 안 죽여도 어차피 이 병아리들은 병 걸린 것들이라 다 죽어. 형들도 궁금해서 따라온 거 아니었어?" 그렇다. 사실 한편으론 보고 싶은 맘도 있었다. "이까짓 병아리 좀 죽인다고 용감해지지 않아." 인호 형 말에 힘입어 나도 상수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 병아리 내 돈으로 샀으니까 돌려줘. 며칠 안에 죽든 말든 내가 가져갈 거야." 그때였다. 상수는 인호 형한테서 잽싸게 병아리를 낚아채서 공중으로 던졌다.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곧 나는 영철이 형이 들고 있는 병아리 봉지를 낚아챘다. 어떻게 그런 힘이 솟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화가 많이 나 있었다. 그리고 어깨를 세우고 똑바로 눈을 마주친 뒤 뒤돌아섰다. 그때만큼은 영철이 형도 나를 부르지 못했다. 그길로 병아리를 파는 아줌마한테 가서 남은 한 마리의 병아리를 돌려주며 말했다. "아줌마, 여기서 병아리 팔지 마세요." "나한테는 먹고사는 일이야. 어디 버릇없게." "죄송해요. 아줌마가 꼬치나 솜사탕을 판다면 꼭 사 먹을게요. 하지만 병 걸린 병아리는 안 돼요. 어떤 애들은 어차피 죽을 거라면서 이상한 짓을 해요. 그러니까……." 눈물이 나왔다. 무슨 말을 해도 나는 아줌마를 설득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돈은 못 돌려줘. 그런 줄 알아." 그렇다. 나는 상수에게서 병아리를 빼앗을 수는 있어도 어른을 설득할 수는 없다. 병아리에게도 그러하듯 나에게도 세상은 너무 무서웠다. 나는 엉엉 울며 집으로 갔다.
저녁에 누나가 신경질을 내며 나에게 말했다. "야, 너 어제 왜 불량 병아리는 사 왔냐? 하루 만에 죽어 버렸잖아. 빨리 묻고 와." 누나는 화를 내면서도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같이 나가서 묻어 주겠다고 했다. 묻고 돌아오는 길에 잔디밭에 떨어진 죽은 병아리를 보았다. 아까 던졌던 병아리 같다. 나는 그것도 묻어 주자고 했다. 누나는 징그럽다며 싫다고 하면서도 결국 묻어 주었다. 나는 병아리를 묻을 때 속으로 계속 중얼거렸다. '너무너무 미안해. 다음엔 상수 같은 아이가 살지 않는 평화로운 곳에서 태어나.' 나는 선생님한테 모든 일을 일러바칠 생각이다. 비겁하다고 해도 할 수 없다. 어른들이 나서지 않으면 상수는 커서 정말 끔찍한 범죄자가 될지도 모른다. 붉은 노을로 물든 산 위로 새들이 깍깍깍 무서운 소리를 내며 날아올랐다. 매일 보는 풍경이 오늘따라 무섭고 스산하게 느껴졌다. '내가 어떤 일을 했느냐에 따라 세상은 또 다르게 보이는구나.' 한동안 달걀을 보지 못할 것 같다. 이것도 상수 탓으로 돌리면 마음이 좀 편해질까? 가슴 밑바닥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