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커 전쟁
최형미 지음 | 을파소
스티커 전쟁
최형미 지음
을파소 / 2009년 3월 / 120쪽 / 9,000원
참을 수가 없어! / 옆집 아이 / 빵을 버리는 아이들"선호야, 어제 3반 애가 산 빵에서 오딘이 나왔대!" "정말? 좋겠다. 오딘은 진짜 잘 안 나오는데……." 요즘 우리 또래들 사이에서는 스티커 수집이 유행인데, 오딘은 북유럽 신화 시리즈 중에서도 제일 좋은 거다. 내가 갖고 있는 산악 거인 스무 개하고 바꿔도 아깝지 않은 게 바로 오딘이다. "오늘은 빵 살 돈도 없는데……." 진수가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투덜거렸다. 나 역시 오늘은 빵 살 돈이 없다. 주머니에 오백 원이 있기는 하지만 미술 시간에 쓸 지점토를 살 돈이다. 지점토도 스티커가 들어 있는 빵도 똑같이 오백 원이다. 진수와 나는 지점토를 사러 샛별 문방구로 들어갔다. 하지만 나는 빵이 있는 진열대로 자꾸만 눈이 갔다. 왠지 오늘 빵을 사면 오딘이 나올 것 같았다.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빵을 집어 든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빵 봉지를 뜯었다. 문방구에 있던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내 손끝으로 모아졌다. 빵이 바닥에 떨어졌지만 상관없다. 스티커 종이를 뜯었다. 악! 또 산악 거인이다. 지점토 안 가져가면 미술시간 내내 벌까지 서야 하는데 빵을 사지 말걸!
학원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는데,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예쁘게 생긴 누나가 먼저 타고 있었다. 7층 버튼을 누르려고 보니 이미 빨간 불이 들어와 있었다. '어, 아침에 본 여자애 언니인가?' 오늘 아침, 학교에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어제 이사 온 옆집에서 얼굴이 하얀 여자아이가 나왔었다. 예쁜 누나는 역시 옆집으로 들어갔고, 나도 집에 들어갔는데 퇴근하신 엄마가 부엌에서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계셨다. "아들 왔니?" "엄마, 나 밥 먹기 전까지 텔레비전 조금만 보면 안 돼?" "오케이." 우리 엄마는 웬만하면 뭐든지 오케이다. 그런데 아빠는 뭐든 일단 태클이고, 안 된다는 게 너무 많아 골치다. 다음 날 저녁때였다. 누가 초인종을 눌러서 나가 보니 이사 온 옆집 아이가 떡이 담긴 접시를 들고 서 있었다. 엄마를 불렀더니 방에서 나온 엄마는 말했다. "어머, 잘 먹을게. 엄마한테 고맙다고 말씀드려. 넌 이름이 뭐니? 몇 학년?" "미영이에요. 3학년이구요." "어머, 우리 선호랑 같은 학년이구나." 미영이는 우리 학교로 전학 올 예정인데 서류에 문제가 있어서 다음 주 월요일부터 올 거라고 했다. 왠지 미영이랑 같은 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살짝, 아주 살짝 들었다.
일요일인데도 약국에 나가셨던 아빠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점심을 드시러 오셨다. "무슨 일 있었어요?" 엄마가 물었다. "글쎄, 사거리 문방구 앞에서 선호만 한 녀석들이 빵을 사가지고는 먹지도 않고 죄다 버리고 있는 거야. 그래서 내가 왜 빵을 버리느냐고 물었더니, 그 빵을 먹으려고 산 게 아니고, 빵 속에 들어 있는 스티커 때문에 샀다지 뭐야." "어머, 정말?" "선호 너는 그러지 않겠지?" 나는 아빠의 말에 움찔 놀랐다. "저, 저는 안 그래요." "참, 그러고 보니 네 방 벽에 붙여 놓은 그 스티커 혹시 빵에서 나온 거 아니냐?" "네? 맞는데요. 저는 그 빵이 맛있어서 산 걸요." 아빠가 거짓말하는 걸 제일 싫어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술술 거짓말이 나왔다.
스티커가 유치하다고? / 수상한 아저씨들 / 대체 무슨 일이지? / 중독이 그렇게 무서운 거야?다음날 교실에서 나를 보자마자 진수가 소리쳤다. "선호야, 나 어제 오딘 나왔어!" "정말?" 그때 선생님이 놀랍게도 미영이와 함께 교실로 들어오셨다. 선생님은 미영이를 아이들에게 소개시키셨다. 쉬는 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미영이 자리로 몰려들었다. "안녕? 나는 윤주야. 넌 어떤 스티커 모으니?" 우리 반 여자아이들 중에서 스티커가 제일 많은 윤주가 미영이에게 가장 먼저 말을 걸었다. 미영이는 스티커 안 모은다고 했고, 윤주는 무안한 얼굴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점심시간에 진수 자리에서 오딘 스티커를 구경하고 있는데, 우리 반 싸움대장 영진이가 다가왔다. 우리 반 애들 중에서 영진이한테 스티커를 안 뺏긴 애는 아마 한 명도 없을 거다. 영진이는 백 개를 줘도 안 가질 산악거인 다섯 개를 내밀면서 진수에게 오딘이랑 바꾸자고 했다. 싫다는 진수를 영진이가 때릴 듯이 노려보고 있는데, 그 순간 "유치해." 라고 진수 옆에 앉은 미영이가 말했다. 나는 깜짝 놀랐고, 아이들도 모두 놀란 표정이었다. "뭐라고?" "너 하는 짓이 유치하다고." "뭐, 이게 진짜!" 영진이는 당장에라도 미영이를 때릴 기세였다. "여, 영진아, 그러지 마아. 오, 오늘 새로 전학 온 애잖아." 진수가 겁먹은 얼굴로 영진이를 말렸다. 영진이는 씩씩거리며 교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미영이가 또 말했다. "정말 유치해. 스티커 따위가 뭐라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영이의 말이 가시처럼 내 마음을 콕콕 찔렀다.
학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데, 아파트 입구에 검은 옷을 입은 험상궂은 얼굴의 아저씨들이 서 있었다. 갑자기 한 아저씨가 말했다. "어, 저거 박혜영 아냐?" 아파트 입구로 걸어 들어오고 있던 여자가 아저씨들을 보더니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 그때 본 누나잖아?' "어라? 저게 도망을 가네." 아저씨들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무서웠지만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아저씨들을 몰래 뒤따라갔다. 3단지 쪽에 있는 공원에서 아저씨들이 누나에게 고함을 치고 있었는데 넘어졌는지 누나는 무릎이 까져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대체 저 예쁜 누나가 무슨 잘못을 저지른 걸까? "우리 돈이 어떤 돈인데 겁대가리 없이!" "잘못했어요. 갚을게요. 흑흑." 누나가 비는데도 한 아저씨가 누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뺨이 부풀어 오른 누나는 아저씨들이 가고 난 한참 후까지 바닥에 주저앉은 채 일어나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공원에서 본 장면이 생각나서 잠을 못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우당탕탕!' 하고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아악!" "너 이리 안 와!" "혜영이 아빠! 그만 좀 해요." 소리가 나는 건 바로 옆집이었다. 갑자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아빠가 문을 열자 미영이가 맨발로 서 있었다. "아저씨! 우리 아빠 좀 말려 주세요. 우리 언니 죽어요." 아빠와 엄마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머뭇거리던 아빠는 미영이네 집으로 갔고, 한참 동안이나 울던 미영이는 엄마가 데워 준 우유를 마시고 좀 진정이 되었는지 소파에 누워 잠이 들어 버렸다. 아빠가 소영이네 아빠를 말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울음소리와 고함 소리가 멈췄다. 아빠가 미영이네 아빠와 함께 밖으로 나가시자, 미영이네 엄마가 미영이를 데리러 오셨다. 대체 미영이네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깜빡 잠이 들었던 나는 현관문 소리에 잠이 깼다. 아빠가 들어오신 모양이다. 나는 밖에서 들려오는 엄마 아빠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니, 그 돈을 다 어떻게 갚는대?" "옆집 아저씨 충격이 크더라고. 대학 들어가기 전까지는 정말 모범생이었대." "그러고 보니 옆집에 유난히 택배가 많이 온 게 쇼핑 중독 때문이었구나." "전에 살던 동네에서도 카드빚을 갚겠다고 사채를 썼다가 곤욕을 치렀대." "어머나!" "무언가에 중독되는 건 다 절제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야. 빵 버리는 애들도 마찬가지잖아. 우리 선호도 교육 잘 시켜야겠어."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렸다. '혹시 나도 스티커에 중독된 걸까?'
참아야 해! / 마음 따로 행동 따로 / 내가 도둑놈이 되다니!며칠 동안은 밤에 자려고 침대에 눕기만 하면 미영이네 언니가 뺨을 맞던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중독'이라는 말이 가슴 한쪽을 누르고 있는 것 같아 벽에 붙은 스티커를 보는 것도 괴롭고 빵을 사는 것도 두려웠다. 행여나 또 빵을 사게 될까봐 며칠 째 엄마가 주시는 용돈을 모조리 돼지 저금통에 넣었다. 무언가를 참는다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정말 몰랐다. 그러나 나의 결심은 곧 무너졌다. 엄마 때문이다. 며칠 전에 마트에서 장을 봐 오신 엄마가 내게 빵을 내밀었다. "우리 아들 이 빵 좋아한다고 했잖아." 엄마에게 받은 빵을 들고 내 방으로 온 나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게 참았는데, 내 마음도 모르고 빵을 사 온 엄마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막상 빵을 보니 빵 속에 어떤 스티커가 있을지 못 견디게 궁금해졌고, 봉지를 뜯어 스티커를 확인한 나는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오딘이었다. 오딘이 손안에 들어오고 나니 중독이니 절제니 그런 말들은 안개 걷히듯 내 미음에서 싹 사라졌고, 그 순간부터 나는 다시금 스티커에 빠져들었다. 며칠 전에 진수가 미미르 스티커도 곧 나올 거라고 했던 말도 생각났다. 미미르는 머리만 있는 거인인데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다. 오딘보다도. 게다가 아직 어떤 아이도 미미르 스티커를 가지지 못했다. 돼지 저금통을 들어 보니 제법 묵직했다. 나는 "안 돼!"라고 말하면서도 어느새 칼로 돼지 저금통의 배를 가르고 있었다.
다음 날, 나는 집에 오는 길에 사 온 빵을 하나하나 뜯어 스티커를 확인했다. 하지만 열다섯 개나 되는 빵 속에 미미르는 하나도 들어 있지 않았다. "선호야, 저녁 먹자." 내 방문을 벌컥 연 아빠는 방바닥에 쌓여 있는 빵을 보고 깜짝 놀라신 듯 했다. "너 이 녀석! 너도 역시?" "아, 아녜요! 내일 학교에 빵을 가져가야 해서, 커, 커다란 봉지에 한꺼번에 넣어 가려고 뜯은 거예요. 조별끼리 먹을 간식이에요." 아빠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셨다. "거짓말이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자기 마음 하나 못 지키는 사람은 나중에 커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니까!" 그날 밤,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스티커 때문에 거짓말까지 술술 하게 되다니, 갑자기 내가 너무나 한심하고 멍청하게 느껴졌다. '그래, 다시 스티커를 모으지 말자고 결심하면 돼. 나는 내 마음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다음날 학원에 갔더니 아이들이 경민이 주변에 몰려 있었다. 경민이가 미미르 스티커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모두 부러워했다. "경민아, 그 스티커 나 주면 안 돼?"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나 자신도 놀랐고, 경민이와 다른 아이들까지 나를 째려보았다. "야, 너 정말 웃긴다." 준호가 경민이 보다도 난리를 치며 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나는 간절하게 다시 한 번 부탁했다. "경민아, 너 스티커 안 모으면 그거 나 주라. 응?" "글쎄." "그럼 돈이랑 바꿀래? 천 원, 아니 삼천 원 줄게!" "안 바꿀래." 갑자기 경민이가 나쁜 애처럼 느껴졌다. 나는 수업 시간 내내 미미르 생각뿐이었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모두 밖으로 나가자 나도 모르게 경민이 자리로 갔다. 필통 속에 놓여 있는 미미르 스티커가 계속 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쿵쾅거렸지만 미미르가 내 손안으로 쑥 들어오는 순간 내 마음은 너무나 편안해졌다. 그러나 강의실에 들어온 경민이를 보자 다시 머릿속이 캄캄해졌다. "선생님! 제 스티커가 없어졌어요!" 필통을 열던 경민이가 소리를 질렀다. 나는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갑자기 준호가 소리쳤다. "선생님, 선호가 가져갔을 거예요. 아까부터 계속 스티커를 달라고 했단 말이에요." "선호야, 사실이니?" 선생님이 굳은 얼굴로 내 곁으로 다가오셨다. 나는 준호에게로 달려들었다. 준호도 경민이도 미웠다. 아니 제일 미운 건 그깟 스티커 때문에 도둑놈이 된 나였다. 그래서 준호에게 맞으면서도 계속 달려들었다. 잠시 후 나는 원장실에서 벌을 섰고, 원장 선생님은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가 얼마나 실망하셨을까? 내가 도둑질을 하다니.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 내 마음의 주인은 나 / 나만의 스티커집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 무섭게 느껴진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나는 집에 들어갈 용기가 안 나서 3단지 공원으로 갔다. 벤치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미영이네 언니가 뺨을 맞던 일이 떠올랐다. 나도 미영이네 언니처럼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거짓말을 했다. 그것도 모자라 도둑질까지 했다. 결국 나는 바보처럼 주저앉아 엉엉 소리내며 울어버렸다. 한참 울고 있는데, 누가 휴지를 내밀어서 보니 미영이었다. 내가 우는 거 다 봤을까? 미치겠다. "너나 우리 언니나 도대체 왜 자기 마음 하나 어쩌지 못하는 걸까? 근데 우리 언니 지금 충분히 반성하고 있으니까 나쁘게 생각하지는 마." 미영이는 묻지도 않았는데 언니 얘기를 꺼냈다. "어, 어. 나쁘게 생각 안 해." 그러자 미영이가 말을 계속했다.
"나는 우리 언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았어.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언니가 이상하게 변하더라. 언니가 대학교에 가서 과외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거든. 갑자기 돈이 많이 생긴데다가, 엄마 아빠는 언니가 번 돈이니까 언니가 알아서 쓰라고 했어. 그래서 친구들 따라 이것저것 사게 됐고, 그러다 보니까 쇼핑 중독이 돼 버렸나 봐. 너도 스티커를 못 가지면 정말 큰일이라도 날 것 같지?" 미영이는 마치 내 마음을 다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우리 언니는 늘 행복해 보이지 않았어. 진짜 갖고 싶은 걸 갖게 되면 행복해야 하는데, 그걸 갖고 나면 또 다른 게 갖고 싶어지니까 영원히 행복해질 수가 없잖아. 아빠가 그러는데 자기 마음을 잃어버리면 가장 괴로운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래."
"우리 언니,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되기 위해 아주 먼 여행을 떠났어. 국토 대장정이라고, 걸어서 전국 일주하는 거래. 무지하게 힘들어서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대. 전국 일주를 하고 나면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거라면서 아빠가 신청하신 거야. 이거 우리 언니가 나한테 보낸 편지인데 너한테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 모든 건 네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거 잊지 마!" 미영이는 편지를 건네고 먼저 집으로 뛰어갔다. 나는 미영이가 한 말을 생각해 보다가 편지를 꺼내 읽었다. '꼬맹이! 잘 지내지? 아직도 언니한테 화가 안 풀렸니? 언니도 내 자신이 무척 미웠어. 국토 대장정을 시작하고 매일 나와 싸우면서 알게 되었어. 내 마음의 주인은 나라는 거 말이야. 처음에는 하루 종일 걷기만 하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생기더라. 언니는 지금 너무 행복하단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꼭 전국 일주를 마치고 돌아갈 거야.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그래, 내 마음의 주인은 나야! 나도 나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어. 내 마음의 열쇠는 내가 채우는 거니까!' 갑자기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는 용기를 내어 집을 향해 뛰었다. 하지만 막상 문 앞에 서니 집으로 들어가는 게 망설여졌다. 머뭇거리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엄마가 나왔다. "선호야, 미영이한테 얘기 다 들었어. 많이 힘들었지?" 엄마 말에 왈칵 눈물이 나왔다. 엄마는 나를 안고 눈물을 닦아 주셨다. 아빠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표정이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무릎을 꿇었다. 아빠가 조금 놀라신 것 같았다. "아빠, 정말 잘못했어요. 제 마음 하나 지키지 못하고 바보 같은 짓을 해서 저한테 실망하셨죠? 정말, 잘……못……했어요. 엉엉!" 결국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하시던 아빠는 엉엉 우는 내 어깨를 한번 두드리더니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나는 한참만에야 눈물을 그치고 방으로 들어왔다. 뭔가 후련하고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스티커들을 모두 벽에서 떼어 냈다. 스티커를 떼어내자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던 불편한 마음들도 모두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엘리베이터 앞에서 미영이를 만났다. "선호야, 나 문방구에 들러야 하는데 같이 가 줄래?" "그래." 학교 앞 문방구에는 여전히 아이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이야! 미미르다!" 어떤 아이가 스티커 한 장을 흔들며 아이들을 향해 소리쳤다. 미영이가 물었다. "넌 빵 안 사?" "안 보여? 내 마음에 열쇠 채운 거. 그리고 스티커는 딱 하나면 돼. 그래야 진짜 나만의 스티커가 될 수 있잖아." "너 하룻밤 사이에 진짜 많이 컸다." 나를 보고 활짝 웃는 미영이를 보며 나도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