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베트남 일기장
마리 셀리에 지음 | 맑은가람
나의 베트남 일기장
마리 셀리에 지음
맑은가람 / 2009년 1월 / 46쪽 / 10,000원
파르팡 수녀님 - 2월 2일 화요일베트남은 내가 태어난 나라이다. 하지만 나는 베트남을 모른다. 방금 길 끝에 있는 우체통에 편지 한 통을 넣었다. 호이안의 파르팡 수녀님께 보내는 편지다. 파르팡 수녀님은 내가 아기였을 때 지냈던 고아원의 원장 선생님이다. 나의 부모님이 프랑스로 나를 데려 오기 전에 살았던 그 고아원의…….
친애하는 파르팡 수녀님, 수녀님이 절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전 고아원에서 4년간 살았어요. 제 이름은 휘이구요, 지금은 프랑스에 살고 있어요. 여기서는 모두 저를 니콜라라 부른답니다. 제가 이렇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수녀님께서 제 베트남 친어머니의 흔적을 알고 계신지 여쭤 보고 싶어서입니다. 수녀님께서 알고 계신 걸 제게 일러 주신다면 정말 기쁠 거예요.
두 엄마 - 2월 9일파르팡 수녀님께 편지를 보낸 지 일주일이 지났다. 답장이 금방 오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온통 편지 생각뿐이었다. 수녀님은 내 편지를 읽어 보셨을까? 날씨가 춥다. 거기 날씨는 어떨까? 엄마 말씀이 베트남 북부는 추운 계절이지만, 베트남 중부에 있는 호이안은 겨울이 아주 따뜻하다고 한다. 엄마는 방금 베트남에 관한 아주 근사한 책 한 권을 주셨다. 난 엄마가 베트남 친엄마를 찾고 싶어하는 내 마음을 알아주셔서 마음이 놓인다. 그런데 첫 번째 엄마, 그 엄마는 왜 날 버렸을까? 하지만 친엄마도 지금쯤 나를 다시 찾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어, 그럼 우리 아빠, 엄마와는 어떻게 되는 거지? 생각을 하면 할수록 머리가 혼란스럽다.
오지 않는 편지 - 3월 9일줄곧 편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답장이 없다. 내 친구 앙투완은 내가 요즘 변했다고 말했다. 그게 좋다는 뜻인지 나쁘다는 뜻인지 알 수 없지만, 앙투완의 말이 맞는 것 같다. 나는 분명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다. 나의 마음은 줄곧 그곳에 가 있다. 마치 한 발은 프랑스에, 다른 한 발은 베트남에 딛고 서 있는 거인처럼. 나는 과연 베트남 사람일까?
자장가 - 4월 3일내가 지금의 부모님을 따라 고아원을 떠난 날이 4월 3일이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으려 애써 보지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엄마가 베트남 노래가 담긴 CD 한 장을 주셨다. 노래 중에서 자장가는 어디에선가 들어 본 듯한 느낌이 난다. 하지만 자장가에 얽힌 기억들을 아무리 찾아내려 애를 써도 더 이상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얼마 전 우리 학교에 한 여자아이가 전학을 왔다. 그 애 이름은 안느다. 베트남 사람이고 입양되지 않은 아이다! 그 아이는 베트남 부모님과 함께 프랑스에 살고 있다고 한다.
호랑이 연고 - 4월 16일안느의 부모님은 프랑스에 일하러 오셨다. 하지만 친척들을 만나러 베트남에 자주 간다고 했다. 안느는 호이안에 대해 알고 있었다. 호이안은 작고 예쁜 어촌 마을이란다. 안느가 호이안에서 산 아주 조그만 빨간색 통 하나를 선물로 주었다. 통 안에는 호랑이 연고가 들어 있었는데, 이 연고는 모든 상처를 낫게 해준다고 안느가 말했다. 이걸 바르면 엄마가 그리워 생긴 내 아픔도 나을 수 있을까?
안느의 저녁 초대 - 4월 27일파르팡 수녀님으로부터 여전히 아무런 답장이 없다. 내가 조바심을 내자 안느는 내가 너무 참을성이 없다고 말했다. 어제는 안느가 저녁 식사에 나를 초대했다. 안느 어머니는 '퍼'라는 베트남 음식을 만들어 주셨다. 퍼는 하얀 쌀국수에 고기를 얹어 먹는 요리인데, 국물 맛이 아주 진했다. 안느 가족은 내가 그런 음식을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다고 말하자 놀라워했다. 사실 난 베트남 음식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생일 - 5월 5일오늘은 내 생일이다. 사실 내가 5월 5일에 태어났는지는 확실치 않다. 고아원 서류에 그렇게 적혀 있어서 내 생일날로 정해진 것이다. 엄마는 친구들을 초대하자고 하셨지만, 나는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다. 상상도 못했는데 앙투완이 선물을 주려고 집에 들렀다. 자기가 특별히 좋아하는 노래들을 모아 만든 CD 한 장을 구워 내게 건넸다. CD케이스에는 '나의 친구, 니코-휘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오래된 앨범 - 6월 11일엄마는 베트남 여행에서 찍은 사진이 담긴 앨범을 다시 찾아 너무 좋아하셨다. 부모님이 날 데리러 온 그 해에 찍은 사진이 담긴 앨범인데, 이사하면서 잃어버린 줄 알고 계셨단다. 앨범 표지에는 어깨에 작대기를 맨 한 여인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 여인은 과일이 가득 담긴 양쪽 바구니 무게에 짓눌려 약간 비틀거리는 모습으로 발끝으로 걷고 있었는데, 엄마는 그 모습이 베트남을 상징해서 보여 준다고 말씀하셨다. 베트남 지도를 잘 살펴보면, 북쪽이라는 바구니와 남쪽이라는 바구니가 양쪽에 달린 작대기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언젠가 나를 베트남에 데려가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호이안의 고아원 - 6월 13일어제 저녁 부모님께 호이안의 고아원에 대해 한 번 더 이야기해 달라고 졸랐다. 아빠는 노란 벽과 공동 침실의 침대들이 기억난다고 하셨고,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팔을 벌리며 부모님께 뛰어 들던 내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엄마가 말씀하셨다. "네가 우릴 선택했어. 우리는 금세 알아차렸지. 프랑스로 데려갈 애는 바로 너라는 걸 말이야."
방학 - 7월 5일한 학년이 끝났다. 어제 저녁에 거실을 지나면서 엄마가 아빠에게 하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 애가 그 편지를 보낸 이후로 달라진 것 같아요. 이제 나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요. "내가 정말 변한 걸까? 다음 주에는 브르타뉴에 있는 할머니 댁에 갈 것이다.
앙투완의 이야기 - 8월 24일여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 브르타뉴에서 할머니랑 사촌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또 프랑스 남동부 알프스 지역의 베르코르 지방에서 부모님과 앙투완과 함께 3주를 지냈다. 갑자기 결정된 일이었다. 엄마가 나도 모르게 앙투완을 초대한 거였다. 우리 둘은 서로 많은 얘길 나눴다. 앙투완은 입양아가 되는 것도 행운이라고 말했다. 입양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아이들도 많이 있으니까. 앙투완은 이 다음에 둘이서 베트남으로 긴 여행을 떠나자고 말했다.
수녀님의 답장 - 9월 1일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오늘 아침, 호이안에서 답장이 온 것이다. 파르팡 수녀님은 소식이 늦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수녀님은 내가 고아원에 오기 전에 나를 보살폈던 보모를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나를 고아원에 맡긴 남자를 기억하고 계셨다. 수녀님은 어떤 분의 주소를 주셨다. 트루옹이라는 이름의 아주머니인데, 나에 대해서 알고 계실 거라고 말씀하셨다. 전화번호도 적혀 있었다. 우리는 내일 아침에 전화하기로 했다. 나를 고아원에 맡긴 그 남자는 누구일까……? 정말 궁금하다.
전화 - 9월 2일우리가 전화할 사람이 불어를 한마디도 못할 거라는 점을 짐작하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 그리고 나는, 베트남 말을 못 알아듣지 않는가. 우리는 수화기를 든 채 서로 다른 말을 몇 번씩 되풀이 하다 그냥 끊고 말았다. 생각 끝에 안느 아버지인 딩 아저씨가 내일 아침 우리 집에 오셔서 트루옹 아주머니와 통화를 해주기로 하셨다. 난 지금 방안에서 서성대고 있다. 아무것도 손에 안 잡히고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버려진 아기 - 9월 3일트루옹 아주머니는 나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나이가 많은 한 노부부는 울음소리에 잠이 깼단다. 할머니가 밖으로 나가보니 배고파 울부짖는 한 아기가 있었다. 그 아기는 나였다! 할머니는 이웃의 한 여인이 며칠 전에 딸아이를 해산했다는 걸 기억하고는, 나에게 젖을 먹이게 하려고 그 여인을 찾았다. 그 여인이 바로 트루옹 아주머니의 동생이었다. 젊은 여인은 나를 돌봐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이미 아이가 여럿 있어서 너무 힘들었고, 나에게 젖을 먹이는 일까지 할 수가 없었단다. 결국 일주일 후, 그 여인의 남편이 나를 고아원에 데리고 왔던 것이다.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내가 어디에서 왔으며, 엄마가 누구인지. 트루옹 아주머니는 내가 당시 생후 15일 정도였으며, 건강하고 깨끗하며 잘생긴 아기였다고 말하셨다.
입양아들 - 9월 4일엄마가 말씀하셨다. "네 베트남 엄마는 너를 떠나보내기 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거야. 내가 확신하는데, 네 엄마는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사랑을 너에게 준거야. 네가 건강하고 잘생긴 아기였다잖니? 네 엄마가 할 수만 있었다면 틀림없이 널 지켜 줬을 거야." 그러면서 엄마는 한마디 덧붙였다. "그럼 난, 난 어떻게 되었을까?" 난 대답했다. "다른 아이를 입양했겠죠." 그런데 엄마는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다고, 우리는 처음부터 같이 살도록 되어 있었다고 주장하셨다.
설날축제 - 2월 4일
다섯 달이 지났다. 안느와 안느 부모님, 우리 가족 그리고 앙투완과 함께 베트남 설날 행사에 갔었다. 굉장한 축제였다! 나는 예전의 일기장을 다시 읽으면서 올 한 해 동안 참 많은 일을 겪었구나, 하고 느낀다. 이제 나의 베트남 엄마는 먼 과거 속의 사람이다. 나는 엄마가 나를 버렸다고 해서 더 이상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어쩌면 잘 된 것 같다. 내 곁에 있는 진정한 가족을 다시 찾아 주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안느도 함께 있지 않는가? 안느가 내 귀에 대고 말했다. "우리에게 멋진 한 해가 될 거야." 분명히 '우리에게!'라고 말했다. 꿈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