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총장님처럼 되고 싶어요!
김경우 지음 | 명진출판
반기문 총장님처럼 되고 싶어요!
김경우 지음
명진출판 / 2008년 5월 / 184쪽 / 9,500원
모두들 재미없는 공부가 왜 재미있었을까? /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어볼 거야 반기문은 1944년 6월 13일, 충청도 음성의 행치마을에서 태어났다. 기문이 세 살 때 청주로 이사 간 기문의 가족은 당시 기문의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 일로 인해 이사를 자주 해야 했고, 기문도 몇 번 전학을 해야 했는데, 청주의 명문인 교현초등학교로 전학한 첫 날, 반 아이들은 기문의 코에 난 까만 점을 보고는'파리똥'이라 부르며 놀려댔다. 기문은 화가 났지만 꾹 참고, 착하게 사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매사 겸손하고 착하게 생활하였다. 시간이 지나자 친구들은 기문의 유순한 성격을 알게 되었고, 더 이상 괴롭히거나 장난을 치지 않았다. 공부도 잘했던 기문은 친구들이 모르는 것을 물어오면 늘 언제나 웃으며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고, 그러자 친구들은 기문을 파리똥이 아닌 '반 선생'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 기문은 공부가 자신이 한 만큼 그대로 결과가 나오고, 또 평등하다고 생각했다.
기문이 6학년이던 어느 날, 외교부장관이 기문이 다니는 학교를 방문해 연설을 하게 되었다. 당시 외교부 장관이던 변영태 장관은 체력을 튼튼히 기르고 열심히 공부해서 꼭 나라를 위한 큰 인물이 되어 달라고 학생들에게 당부했다. 기문은 변영태 장관의 연설에 큰 감동을 받았다. 기문은 나라를 위해 일을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몰랐지만, 변영태 장관의 말처럼 열심히 공부를 하다 보면 자신도 나라를 위해 일할 기회가 올 것 같았고, 외국을 돌아다니며 우리나라의 이익을 위해 애쓰는 변영태 장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영어를 마음껏 읽고 싶은 소원이 생겼어 / 영어를 통해 큰 세계를 알고 싶어 기문은 열심히 공부하여 명문 충주중학교에 입학했다. 중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영어를 배우게 된 기문은 영어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처음 접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말인 영어가 신기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영어를 잘하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기문은 알파벳 쓰는 연습부터 열심히 했고, 선생님이 내어 준 숙제를 빠짐없이 하다 보니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어에 재미를 붙인 기문은 영어 교과서를 줄줄 외울 정도로 읽고 또 읽었고, 그러다 보니 영어로 된 것이면 무엇이든 읽고 싶어졌다. 하지만 충주에서는 영어로 된 책이나 잡지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기문은 미군부대 근처에 영어로 된 책을 파는 서점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물어물어 찾아가서 영어 잡지를 한 권 구입할 수 있었다. 《타임(Time)》이라는 잡지였는데, 중학생이 이해하기에는 무척 어려운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아는 단어를 중심으로 그냥 읽는 데 만족해야만 했는데, 일일이 사전을 찾아가며 읽다 보니 점점 그 뜻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한 페이지 넘어가는 데만 몇 시간이 걸렸지만 기문은 그 영어 잡지를 한순간도 손에서 놓지 않고 뜻이 이해될 때까지 매일 읽고 또 읽었다. 기문은 잡지를 읽으면 읽을수록 영어에 대한 열정은 물론이고,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뒤 충주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기문은 어느 날, 교과서 외에 자신에게 맞는 영어교재가 있으면 지금보다 더 영어를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문은 영어선생님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했는데, 선생님은 뜻밖에도 기문에게 직접 교재를 만들어보라고 하시면서, 기문에게 녹음기 한 대를 내주면서 원어민을 직접 찾아가 영어 발음을 교과서에 맞게 녹음해 오라고 하셨다. 기문은 그 일을 해보고 싶었지만 외국인을 찾아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아 고민하다가 충주에 새로 생긴 비료공장에 와 있는 외국인 기술자들이 생각났다. 기문은 녹음기를 들고 충주비료공장 근처에 있는 미국인 기술자 주택가를 찾아갔는데, 일하느라 바쁜 기술자들 대신 외국인 기술자 부인들 중 한 명인 스미스 부인을 만나게 되어 부탁을 했고, 스미스 부인은 흔쾌히 도와주었다. 기문은 무사히 영어 교재를 만들 수 있었고,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즐거웠다. 영어가 더 배우고 싶어진 기문은 스미스 부인으로부터, 한국 학생들에게 영어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는 브라운 부인을 소개받아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영어로 말하는 것에 점점 자신감이 생겼다.
영어 잘하는 신기한 시골 아이, 미국에 가보다 / 누가 뭐라 해도 나의 꿈은 외교관 고등학교 2학년 어느 날, 영어 선생님이 기문을 교무실로 불렀다. 선생님은 기문이 영어를 잘하고 성실하니까 장차 외교관이 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기문은 집으로 오는 내내 '외교관'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 외교관이라는 말은 아직 낯설고, 귀에 익지 않았지만 자꾸 기문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어 선생님은 기문에게 미국에 갈 기회가 있으니 도전해 보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미국의 적십자사에서 매년 세계 각국의 청소년들을 미국에 초청하는데, 서울에서 열리는 영어 대회에 입상을 해야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문은 도전해 보겠다고 했고, 선생님은 대회준비를 위해 영어 신문을 기문에게 구해 주었다. 기문은 매일 영어 신문을 읽고 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 선생님과 토론을 하며 영어 대회 준비를 했다. 드디어 충청도 대표로 영어 대회에 참가한 기문은 1등으로 입상했고 꿈같은 미국행이 결정되었다. 기문은 충주의 스타가 되었고, 그동안 어려운 가정형편과 환경 탓에 꿈을 갖지 못했던 어린 학생들은 기문을 보고 막연하게나마 자신의 꿈을 가질 수 있었다.
미국 적십자사에서 마련한 이번 행사는 미국 청소년 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예술제와 문화탐방, 그리고 미국인 가정에서 생활하는 한 달간의 일정으로 43개국에서 117명의 대표 학생들이 참여하였다. 우리나라 대표는 기문을 포함하여 남학생 둘, 여학생 둘이 함께 갔다. 기문이 체험한 미국의 가정은 한국과 달리 물질적으로 여유로웠으며, 긍정적이고 명랑하게 생활하는 미국 사람들은 기문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런데 미국에 온 다른 나라 학생들과 얘기해 본 기문은 그들이 대한민국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사실에 심한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기문은 연수 기간 동안 다른 나라 학생들과 미국인들에게 대한민국에 대해 열성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고, 그제야 다른 참가자들은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나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기문이 외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깨닫는 순간이었다.
외교관이 되려면 외교학과에 들어가야 해 / 시골 아이, 드디어 꿈꾸던 외교관이 되었다네미국 여행에서 돌아온 기문은 흥분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자연히 공부도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그동안 친구들은 대학 입시를 위해 벌써 많은 공부를 했을 것을 생각하니 기문의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문은 마음을 다잡고 매일 늦은 밤까지 공부에 매달렸다. 외교관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목표로 정한 기문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공부했고, 드디어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 당당히 합격했다. 집을 떠나 서울로 올라가 대학생이 된 기문은 새로 배우는 외교학과 공부에 매우 흥미를 느꼈고, 새로운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대학생활을 했다. 그리고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계속 부모님께 의지할 수만은 없었던 기문은 가정교사를 하며 학비를 벌기도 했다. 그 뒤 대학 2년을 마친 기문은 군에 입대했고, 군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복학했을 때 선배로부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까지 없던 제도인 외무고시라는, 외교관이 될 수 있는 공식적인 시험제도가 생긴 것이었다. 기문은 갑자기 눈앞이 환하게 밝아 왔고, 꿈을 향해 더 열심히 공부하였다. 기문은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었다. 그것이 그동안 자신을 믿고 응원해 준 부모님께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기문은 자신의 방법대로 공부에 매진했는데, 그것은 그저 '열심히, 최선을 다해, 즐겁게 공부하는 것'이었다. 기문은 끝없이 외우고 반복하며 공부한 결과 2등으로 외무고시에 합격하였고, 부모님과 친구들은 기뻐하며 기문을 축하해 주었다. 한편 기문은 외교부에 들어간 후 또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연수 기간에 받은 성적에 따라 좋은 곳으로 발령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문은 연수 기간 동안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솔선수범하여 최선을 다했고, 마침내 1등으로 연수를 마칠 수 있었다.
연수생 1등에게는 자신이 근무할 곳을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데, 그 당시 연수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미국이었다. 하지만 기문은 근무지 결정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왜냐하면 미국은 누구보다 가고 싶은 곳이었지만, 물가가 비싸 생활비가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기문은 생활비를 아껴 충주의 전셋집에서 사시는 부모님께 조그만 집이라도 하나 사 드리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즈음 기문은 간소하게 신혼살림을 살고 있었다. 신부인 유순택은 기문이 고등학생 때 활동했던 청소년 적십자단에서 처음 보고 마음에 두었던 여자친구인데, 유순택도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니게 되었고, 둘은 자연스럽게 친해져서 기문이 외교부에 들어간 그 다음 해인 1971년 결혼을 했던 것이다. 고민 끝에 기문은 인도를 첫 근무지로 선택했다. 인도는 아무도 가고 싶어하지 않는 나라 중 하나였지만, 생활비가 저렴하게 들기 때문에 기문이 생활하기에는 부담 없는 곳이었다. 아내도 두말 않고 남편인 기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기문은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어떠한 어려움에도 견딜 수 있으며 언젠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미국에 가지 못하는 것이 슬프거나 억울하지 않았다.
나라를 빛내는 훌륭한 외교관이 되려면 늘 노력해야 해 인도에는 대사관 대신 총영사관이 있었는데, 총영사관의 책임자는 노신영 총영사였다. 기문은 노신영 총영사가 자신이 믿고 따라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기문의 성실한 모습을 보면서 노신영 총영사도 점점 기문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는 기문을 아끼는 마음에 외교관으로서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기문은 노신영 총영사로부터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들을 존중할 수 있는 겸손함과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사교성을 배웠다. 그 후 기문과 함께 일한 사람이라면, 그의 성실함과 겸손함에 칭찬이 끊이질 않았다. 이렇듯 열심히 생활하다 보니, 기문은 선배나 동기들에 비해 승진도 빨랐다. 1년에 세 차례나 승진하던 때도 있었다.
1979년 뉴욕의 유엔 본부에서 1등 서기관으로 있을 때였다. 기문은 영어 하나만으로 유엔 본부에서 근무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어를 배우기로 했다. 업무가 바빠서 공부할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던 기문은 자투리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매일 몇 십 분씩 꾸준히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프랑스어는 발음과 문법이 매우 어려워서 기문도 처음엔 어려워했지만, 몇 십 번을 반복해 가며 바쁜 와중에도 꾸준히 최선을 다해 공부하였다. 그 결과 그리 오래지 않아 유엔의 프랑스어 최상급 자격증을 따게 되었다. 그리고 1998년 오스트리아 대사로 있을 때는 독일어를 배워서 독일어를 사용하는 나라의 외교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독일어로 연설해 깊은 감명을 주기도 하였다. 반기문은 언어뿐만 아니라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는 데도 욕심이 많았는데, 배운다는 것은 늘 자신을 즐겁게 하고 힘을 준다며 배움 그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반기문에게도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1년 2월 외교부 차관으로 있을 때였다. 한국과 러시아의 공동 성명을 발표했는데, 그 발표 내용 중 미국의 입장에서 오해할 만한 내용이 포함된 것이 문제가 되어 반기문은 외교부 차관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충격을 받아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던 반기문은 인도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던 때 만났던 노신영 총영사를 찾았다. 노신영 총영사는 힘들고 어려운 때일수록 더 열심히 살아야만 자신의 능력을 보여 줄 기회를 다시 찾을 수 있다고 충고해 주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은 반기문은 외교안보연구원에 방 하나를 얻어 그동안 못했던 연구와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지금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가고 있더라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다 보면 반드시 좋은 기회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어 좋아하던 그 시골 아이가 최고의 외교관, 세계의 대통령이 되었어
반기문이 외교부를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한승수 외교부 장관으로부터 유엔총회의장 비서실장을 맡아 달라는 연락이 왔다. 한승수 장관은 미국대사로 있을 때 반기문과 함께 일을 했고, 그 당시 늘 성실하게 일을 하던 반기문을 아껴주었고, 반기문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는 함께 아파하고 위로해 주었다. 잊지 않고 자신을 불러 준 한승수 장관에게 감사하며 유엔에서 새롭게 일을 시작한 반기문은 이전보다 더 열심히 일을 했다. 유엔에서의 훌륭한 외교관 활동을 마친 반기문은 청와대 외교 보좌관을 거쳐 드디어 2004년, 모든 외교관의 꿈인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그 때 기문은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좋은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는 노신영 총영사의 말을 다시 한번 마음속 깊이 떠올렸다.
그리고 1년쯤 되었을 때, 당시 유엔 사무총장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유엔과 각 나라에서는 다음 유엔 사무총장을 선출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유엔 사무총장은 '최고의 외교관'이자, '세계의 대통령'이라고까지 불리는 중요한 자리이다. 2005년 7월 한국 정부에서도 조심스럽게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가능성을 따져보게 되었고, 30년이 넘는 외교관 생활과 유엔에서의 실무 경험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반기문 외교부 장관을 유엔 사무총장 후보로 결정했다. 반기문은 무척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어깨가 무거웠다. 왜냐하면 유엔 사무총장을 선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나라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회원국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상임이사국 5개 나라와 비상임이사국 10개 나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무총장은 15개 회원국 가운데 9개국 이상의 지지를 받은 후보를 유엔 총회를 거쳐 확정한다. 특히 상임이사국 가운데 한 나라라도 반대하면 당선될 수 없다. 반기문은 다른 나라의 후보들과 달리 투표권을 가진 회원국들에게만 집중적으로 선거 운동을 하지 않고, 유엔에 소속된 다른 나라 모두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세계 각국을 돌아다녔다. 차분하지만 열정적인 반기문 식 선거운동이었다.
드디어 선거가 시작되었고, 반기문은 세 번의 예비투표를 거쳐 2006년 10월 3일 마지막 투표를 앞두고 있었다. 드디어 마지막 투표 결과, 찬성 14표, 기권 1표, 상임이사국의 반대표는 단 한 표도 없었다. 반기문이 드디어 유엔 사무총장이 된 것이다. 반기문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다 같이 감격하며 기뻐했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유엔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대한민국이 이제 유엔 사무총장이 나올 정도로 국력이 향상된 나라가 된 것이다. 사실 반기문이 유엔 사무총장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하지만 평소 그의 성실함과 적극적인 성격을 알고 있는 유엔 회원국들의 외교관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고, 작은 인연도 소중히 간직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반기문의 기본적인 생활태도와 꿈을 이루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하는 그의 자세가 그의 꿈을 이루게 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