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남긴 한마디
아지즈 네신 지음 | 푸른숲
개가 남긴 한마디
아지즈 네신 지음
푸른숲 / 2008년 11월 / 144쪽 / 8,900원
스타를 닮고 싶은 원숭이동물원의 철책 안에는 열 마리 남짓 되는 원숭이 무리가 있었다. 그런데, 그중 한 마리는 다른 원숭이들과 사뭇 달랐는데, 로댕의 그 유명한 조각상〈생각하는 사람〉의 포즈를 취한 채 꼼짝하지 않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람과 비슷하던지, 나는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 원숭이와 나는 자연스레 시선이 마주쳤고, 우리는 한참 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그 원숭이가 놀랍게도 내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신사 양반, 잠깐 제 말을 좀 들어 줄래요?" "어떻게 사람처럼 말을 하지요?" "저는 사람이니까요." "당신이 사람이라고요? 그렇다면 왜 철창 안에 있는 겁니까?" "철창 안에 있는 사람이 어디 저뿐인가요? 어떤 사람은 결혼을 해서 가정이라는 철창 속으로 들어가 있고, 어떤 사람은 돈이라는 철창 속으로 들어가 있잖아요. 신사 양반, 당신에게 청이 하나 있습니다." "말해 보시오. 원숭이 군." "저는 여자예요." "말해요. 원숭이 양." "저는 영화를 아주 좋아합니다. 한때 그레타 가르보(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신비스런 여배우로 일컬어진다)한테 홀딱 빠져서 그녀처럼 웨이브가 일렁이는 머리 모양도 했더랬어요. 뒤이어 마를린 디트리히(독일 출신의 전설적인 여배우)가 제 마음을 사로잡아서 그녀를 똑같이 따라 하려 애썼지요."
원숭이 양은 계속해서, 자신이 유명한 여배우들을 닮으려고 했던 이야기를 끝없이 늘어놓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곳으로 잡혀오기 전까지 저의 인생은 그렇게 지나갔지요." "뭐라고요? 잡혀오기 전이라니요?" "거리를 걷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갑자기 저를 붙잡아서 이곳으로 데려왔어요. 저는 동물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도 제 말을 들어 주지 않았습니다." "법에 호소하지 그러셨어요?" "물론 그렇게 했지요. 저를 전문가들에게 보냈는데, 그들은 제가 원숭이라는 소견서를 쓰더군요. 그건 그렇고, 제가 당신에게 부탁할 것은 바로 이거예요. 요즘 유명한 영화배우가 누군가요? 옷은 어떻게 입나요? 화장은 또 어떤가요?"
바로 그때, 동물 조련사가 나타나더니 원숭이 양에게 대뜸 소리를 질렀다. "또 그러니? 오늘도 여전히 네가 원숭이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떠들고 있는 거냐?" 조련사는 손에 들고 있던 몽둥이로 그 가엾은 동물을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손목을 붙들었다.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은 인권에 위배됩니다." "선생님, 제발 저 얼굴을 제대로 살펴보십시오. 원숭이하고 똑같으면 같았지, 사람하고 닮은 구석이 조금이라도 있나요?" 나는 철책 안에 있는 여자를, 아니 원숭이를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조련사의 말이 옳았다. "정말. 원숭이가 틀림없네요……." 내가 그곳을 떠날 때, 원숭이 양은 이렇게 애원했다. "아, 제발, 지금 어떤 여배우가 가장 인기 있는지 가르쳐 주세요, 네?"
개가 남긴 한마디카슴은 동정심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동물들을 몹시 사랑하여 집에는 늘 고양이와 개가 바글거렸다. 여러 동물들 중에서도 그가 각별히 사랑했던 것은 '카라바쉬'라는 열네 살이 된 개였는데, 카슴과 마음이 무척 잘 맞아서 말을 하지 않고도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모두 헤아릴 정도였다. 사실 가족도, 친구도 없었던 카슴은 꼬박 십사 년 동안 카라바쉬와 함께 보냈는데, 늙고 병이 든 카라바쉬는 끙끙 앓다가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너무도 슬픈 카슴은 카라바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마지막으로 보여주기 위해,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마을로 이사를 가서, 이웃과, 이장, 이맘(이슬람 사원의 예배 지도자)에게 자신의 아이가 죽었다고 말하고는, 카라바쉬의 장례식을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카슴은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카라바쉬의 관을 묘지로 옮겼다.
그런데 바로 거기서 예기치 않은 일이 생기고 말았다. 바야흐로 카라바쉬의 관을 구덩이에 넣으려는 순간, 갑자기 이상한 것이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 관 한쪽에 옹이 진 부분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 난 구멍 밖으로 두 뼘 길이의 개꼬리가 늘어져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놀라 황급히 관 뚜껑을 열었고, 그 안에 있는 카라바쉬의 주검을 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카슴을 재판관 앞으로 끌고 갔다.
정황을 들은 재판관은 카슴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개한테 왜 사람처럼 수의를 입힌 건가? 우리 종교의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란 걸 몰랐나?" "아! 존경하는 재판관님, 카라바쉬가 어떤 동물인지 아신다면 저를 죄인 취급하지 않으실 겁니다." "아니, 개에게 어떤 미덕이 있기에 무덤에 매장까지 한단 말이냐?" 궁지에 몰린 카슴은 자신이 했던 일들을 카라바쉬가 한 것처럼 꾸며대기 시작했다. "선행을 많이 했답니다. 자선 기부금도 꼬박꼬박 내고, 공공 우물도 보수하고, 신학교에 양탄자를 선물했습니다." 재판관이 윽박질렀다. "개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한단 말이야?"
위기에 몰린 카슴은 계속해서 거짓말을 했다. "그 개가 죽기 전에 저에게 유언을 남겼는데, 자신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했습니다." 카슴은 허리춤에서 쌈지를 꺼냈다. "그리고 이 금화 오백 냥을 재판관님께 드리라고 부탁했습니다." 카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재판관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신의 이름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겠네. 카슴 선생! 고인이 무슨 말을 더 남겼나요? 고인의 유언을 모조리 실행합시다. 그건 참으로 훌륭한 선행이지 않습니까?"
총리를 뽑는 아주 특별한 기준아주 먼 옛날, 어느 나라에 파디샤가 살았다. 파디샤는 곳곳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에 두루두루 참석했으며, 다른 사람이 쓴 연설문을 자기가 쓴 것처럼 태연하게 읽어 내려가기도 하고, 먼 나라의 왕을 예방하기도 하는 등 여느 통치자들처럼 중요한 국정을 무리 없이 수행해 나갔다. 시간이 있을 때에는 사냥을 즐기기도 했는데, 파디샤는 사냥을 나가기 전에 매번 최고의 점성술사를 불러들여 그 날의 날씨가 어떻겠냐고 묻곤 했다. 그러면 점성술사는 항상 같은 대답을 들려주었다. "숭고하신 폐하, 폐하 덕분에 날씨가 늘 화창합니다." 파디샤는 의심이 많아서 총리에게 다시 날씨에 대해 물었고, 총리는 넙죽 엎드려 대답했다. "폐하 덕분에 나라 안팎의 날씨는 물론, 정치적 날씨까지 두루 좋습니다." 그래도 믿지 못한 파디샤는 다른 장관들에게도 날씨를 일일이 물었고, 그들도 늘 같은 대답을 들려주었다. 그제야 마음이 놓인 파디샤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사냥을 나서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마찬가지로, 파디샤는 점성술사, 총리, 장관 등등에게 그날의 날씨를 묻고 사냥을 나섰다. 파디샤가 사냥을 나설 때는, 그가 지나가는 길은 어느 누구도 지나다닐 수 없도록 통제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날은 커다란 나무 아래에 농부가 당나귀와 함께 앉아 있는 것이었다. 파디샤는 다 해진 옷을 걸친 채 맨발로 서 있는 농부가 기괴하게만 보여 물었다. "너는 대체 누구냐? 괴물이냐, 귀신이냐?" "저는 당신과 같은 사람입니다." 파디샤는 발끈했다. "이런 건방진 놈을 봤나! 감히 나와 같은 사람이라니! 여봐라, 당장 이놈의 목을 쳐라!" 호위병이 농부의 목을 칼로 내리치려는데, 파디샤가 갑작스레 손을 쳐들며 소리쳤다. "잠깐! 이 발칙한 놈아, 네가 보기에 오늘 날씨가 어떨 것 같으냐?" "조금 뒤 거대한 폭풍이 몰아치고 많은 비가 퍼부을 겁니다." 농부의 말에 화가 치민 파디샤는 이렇게 소리 질렀다. "이 고약한 놈! 파디샤가 사냥을 하는데, 어떻게 감히 비가 올 수 있겠느냐!" 화가 난 파디샤는 농부를 노새 꼬리에 묶으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구름이 끼고 천둥 번개가 치더니,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삽시간에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가 버렸다. 파디샤는 힘겹게 궁전으로 돌아갔고, 잘못된 정보를 준 점성술사와 총리, 장관들은 모두 파면되었다. 파디샤는 날씨가 나빠질 거라고 예언한 농부를 곧장 궁전으로 불러들여 총리로 임명했다. 농부는 총리의 업무를 수행해 나갔는데, 어느 날, 파디샤가 농부에게 물었다. "그때 비가 오리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당나귀의 귀를 보면 날씨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비가 올 무렵이면 당나귀의 귀가 아래로 축 늘어집니다." 파디샤는 생각했다. '그러니까 날씨를 안 건 농부가 아니라 당나귀였구나.' 파디샤는 곧장 새로운 총리로 당나귀를 임명했고, 여행이나 사냥을 다닐 때는 물론이고, 심지어 선전 포고를 하고 원정을 떠날 때도 당나귀의 귀와 꼬리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살폈다. 그때부터 그는 당나귀, 아니 총리의 이야기만 무조건 믿고 따랐다.
삐뚜름한 모델개미 부부는 새끼 개미들을 한곳에 불러모아서, 개미로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다. 아빠 개미는 수업을 끝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개미다운 개미가 되도록 항상 노력하거라." 새끼 개미들이 물었다. "진짜 개미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빠 개미가 대답했다. "우리를 모델로 삼아라.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그대로 믿고 따르려무나." 새끼 개미들은 아빠 개미와 엄마 개미를 그대로 따랐다. 그들은 여름이면 부지런히 먹이를 모아 땅 밑에 쌓아 놓았고, 겨울엔 겨울잠을 쿨쿨 잤다. 개미 부부는 다시 자식들을 불러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나는 이제 죽는단다. 너희가 아주 자랑스럽구나. 너희는 모두 개미의 본성에서 벗어나지 않았어."
물고기 부부도 새끼 물고기들을 집에 불러모아서는, 물고기로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다. 아빠 물고기는 수업을 마치면서 물고기다운 물고기가 되라고 새끼 물고기들에게 말했고, 새끼 물고기들은 진짜 물고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물었다. 아빠 물고기가 대답했다. "우리를 모델로 삼아라." 새끼 물고기들은 아빠 물고기와 엄마 물고기를 똑같이 따라 했다. 그들은 부지런히 헤엄을 치다가 자기들보다 몸집이 작은 물고기를 발견하면 부지런히 삼켰고, 틈틈이 알을 낳기도 했다. 물고기 부부는 다시 자식들을 불러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너희가 이제 다 컸구나. 너희는 모두 훌륭한 물고기로 자라 주었어. 우리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
이 밖에도 소, 물소, 멸치, 뱀, 등등.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종의 동물들이 새끼들을 불러 놓고 자기처럼 될 것을, 그러기 위해 자기들을 그대로 따라 할 것을 당부하였다. 새끼들도 부모를 제대로 따라 해서 그들의 종족다운 동물로 자라났다. 그들의 부모는 숨을 거둘 때 자식들에게 그들이 자랑스럽다며, 자신들은 도리를 다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아빠와 엄마가 아이들을 한곳에 모이게 했다. 부부는 자식들에게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다. 아빠는 수업을 끝내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얘들아, 인간다운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거라." 그러자 아이들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거예요?" 아빠가 대답했다. "우리를 모델로 삼아라. 엄마 아빠만 본받는다면 자연스럽게 되는 거란다."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대로 고스란히 따라 했다. 아이들은 부모를 쏙 빼닮으며 자랐다. 세월이 흐르자, 부모는 자식들을 한자리에 불러 놓고, 이렇게 소리쳤다. "안타깝구나! 너희 중 어느 누구도 온전한 인간이 되지 못했구나. 됨됨이 역시 형편없어. 신이 너희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아이들은 화들짝 놀라며 이렇게 항변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나요? 우리는 엄마 아빠를 모델로 삼은 채 살아왔어요. 엄마 아빠가 무엇을 하시든지 그냥 그대로 따라 했을 뿐이라고요!"
기차를 물리친 개드넓게 펼쳐진 초원에서 양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양치기 개는 언덕 위에 서서 혹시라도 양떼에게 위험이 닥칠까 싶어 사방을 살피고 있었다. 초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철로가 놓여 있었다. 터널을 빠져나온 기차는 이 철길을 따라 언덕 위로 지나갔다. 새끼 양 몇 마리가 놀다가 무리에서 벗어나 철로 쪽으로 걸어가자, 양치기 개는 곧장 달려가 새끼 양들을 무리가 있는 쪽으로 몰았다. 다른 곳에서는 양 두 마리가 습지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양치기 개는 재빨리 달려가 그 두 마리도 제자리로 되돌려 놓았다.
다시 언덕배기에 자리를 잡고 엎드려 있는데, 어디선가 큰 소리가 들려왔다. 기차가 기적을 울리며 터널에서 막 빠져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양치기 개는 기차가 자기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크고 강하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양떼를 보호하기 위해 기차를 향해 무작정 돌진하였는데, 양치기 개가 철로에 들어서기도 전에 이미 기차의 뒷바퀴가 보란 듯이 그의 앞을 지나치고 있었다. 양치기 개는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기차의 뒤를 계속해서 쫓았다.
양치기 개는 달리면서 컹컹 소리내어 짖기 시작했다. "자신 있으면 도망치지 말고 멈춰 서 봐!"양치기 개는 자꾸만 숨이 찼다. 기차는 갈수록 멀어졌고, 또 작아졌다. "점점 작아지고 있네. 나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저렇게 줄어드는 거야." 양치기 개는 계속해서 기차를 쫓았다. 얼마 후 기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양치기 개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내가 물리쳤어. 그 거대한 기차가 겁에 질려 꽁무니를 뺐다고." 양치기 개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이윽고 가까스로 언덕에 다다랐는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초원에는 새끼 양의 시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늑대 떼가 습격한 것이었다! 양치기 개는 기차가 사라진 곳을 내려다보며 스스로 마음을 달랬다. "그래도 내가 엄청난 위험을 제거했어. 내가 그 거대한 기차를 없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