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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는 왜 얼굴 가운데 있을까

정채봉 지음 | 샘터
코는 왜 얼굴 가운데 있을까

정채봉 지음

샘터 / 2008년 10월 / 88쪽 / 7,500원

콩형제 이야기


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산자락에 콩밭이 있었습니다. 7월이 되자 콩밭에는 보송보송한 콩꽃이 피었습니다. 얼마 지나 콩꽃이 하나 둘 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콩꽃이 지는 자리에는 가는 털이 덮인 콩깍지가 맺혔습니다. 이 이야기는 밭콩나무네 한 콩깍지 속의 형제 콩 사연입니다.



"너희 형제는 헤어지지 말고 살아야 한다." 엄마가 늘 일렀습니다. 콩형제들은 대답했습니다. "엄마, 걱정 마세요. 우리는 어디든지 꼭 함께 갈게요." 가을이 되어 여름 동안 푸르렀던 콩잎이 노랗게 물들었습니다. 콩깍지도 노랗게 익고 그 속의 콩들도 노란 빛깔을 띠었습니다. "애들아, 이제 너희들과 헤어질 때가 되었구나." 엄마는 눈물을 흘리면서 콩형제에게 말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주인아저씨가 신이 나서 낫으로 콩나무를 베었습니다. 그러고는 탈곡기에 넣고 알콩을 골라냈습니다. 형 콩과 동생 콩은 엄마한테 약속한 대로 꼭꼭 붙어 다녔습니다.



콩형제가 곡물 가게에 나갔을 때였습니다. 동생 콩한테 옆에 있던 친구가 귓속말을 하였습니다. "너는 어디로 가고 싶니?" "나는 형 콩을 따라갈 거야. 엄마 콩이 꼭 같이 다니라고 했거든." "어유, 바보. 우리 앞길은 우리가 찾아가야 하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니?" 동생 콩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습니다. "나도 들은 얘긴데, 아주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있대." "정말이야?" "그래. 온실 속에 들어가면 실컷 받아먹기만 하면 되고, 따뜻한 곳에서 편히 잠만 자면 된다고 했어." 동생 콩은 친구 콩의 말에 귀가 솔깃하였습니다.



밤과 낮이 여러 번 지나갔습니다. 곡물 가게에 콩나물 장수가 콩을 사러 나왔습니다. 동생 콩은 친구 콩이 이끄는 대로 얼른 그쪽 되 속으로 흘러들어 갔습니다. 형 콩이 부르는 소리가 저 멀리 들렸지만 이미 자루 속에 꼭꼭 갇힌 몸이 되었습니다. 콩나물 장수는 콩들을 깨끗이 목욕시킨 다음 시루에 넣고는 방을 따뜻하게 한 다음 흠뻑흠뻑 물을 주었습니다. 친구 콩의 말대로 아주 따뜻하고 편안했습니다. 편한 만큼 키도 무럭무럭 자란 동생 콩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콩나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한 끼 국거리로 팔려갔습니다.



형 콩은 곡물 가게에서 농부한테로 팔려갔습니다. 농부는 형 콩을 햇빛이 내리쬐는 밭에다 심었습니다. "밤엔 춥더니 낮이 되니까 왜 이렇게 더울까. 아, 목말라." 형 콩은 참고 또 참아 땅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밖으로 떡잎도 내밀었습니다. 형 콩은 힘껏 일해서 먹는 만큼씩 솔솔 자랐습니다. 콩나무로 자란 형 콩한테 수많은 꽃봉오리가 맺혔습니다. 머지않아 콩깍지가 맺히고 콩이 여물어 열 배 백 배 수확을 올리게 될 겁니다. 그러면 콩형제들은 또 어떤 길로 갈까요?

코는 왜 얼굴 가운데 있을까

동그라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그라미 바깥으로 눈, 코, 잎, 귀가 서로 가운데에 자리를 잡겠다고 다투고 있었습니다. 두 눈이 먼저 동그라미 가운데에 들어가 앉아서는 말했습니다. "얼굴 가운데는 내가 이렇게 앉아 있어야 해. 아무것도 못 보고서 무엇을 할 수 있어?" 입이 얼른 눈 위로 올라가서 자리를 잡고 으스댔습니다. "내가 더 중요해. 내가 아니면 말을 할 수 있니? 먹을 수가 있니?" 두 귀도 냉큼 아랫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소리를 듣지 않고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 동그라미 바깥에는 욕심 없는 코만이 남아 있다가 동그라미 귀퉁이에라도 붙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코가 동그라미 귀퉁이에 붙자마자 동그라미가 기울어졌습니다.



할 수 없이 동그라미 바깥으로 물러나온 눈, 코, 입, 귀는 이제 누가 더 필요한지를 생각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입은 꾀를 냈습니다. "우리 모두 문을 닫아 보자." 입은 먹지 못하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문을 닫아걸었습니다. 눈이 말했습니다. "보이지 않으니 갑갑하지?" 귀가 말했습니다. "안 들리니까 어때? 바보 되지?" 입은 씩 웃기만 했습니다. 코는 잠자코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내 모두들 소리쳤습니다. "왜 이렇게 숨을 쉬지 못하지? 죽을 것 같아 정말." 이때 비로소 코가 말했습니다. "내가 문을 닫고 있기 때문에 숨을 쉴 수 없는 거야."



눈, 입, 귀는 코를 동그라미 한가운데에 앉히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멀리 내다보는 일을 하는 눈을 맨 위로 올리고, 입은 아래편에 앉히고, 두 귀는 동그라미 양쪽 귀퉁이에 자리 잡게 하였습니다. 멀리서 벌 소리가 '애앵' 귀에 들려서 소리나는 쪽으로 눈을 돌리자 아름다운 꽃밭이 보였습니다. 꽃밭에서 달려온 향기를 머금은 코 아래에서는 입이 방긋 웃음을 문 동그란 얼굴입니다.



나팔꽃

리태의 이불과 베개를 건넌방으로 옮겨 주시며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부터 리태의 방은 여기야. 리태도 이젠 혼자서 자고 혼자서 일어나는 버릇을 들여야 해요." "싫어. 엄마 방에서 잘 테야." 리태는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리태를 달래 주지 않고 안방으로 건너가 버리셨습니다. 아빠도 리태 편을 들어주시지 않고 신문만 계속 뒤적이셨습니다. '엄마는 놀부 아줌마야. 아빠도 평강 공주님 아빠를 닮았어. 내가 더 울면 바깥으로 내쫓아 버리고 찾지 않겠지.' 리태는 살며시 마루로 나와서 안방 문 앞을 기웃거려 보았습니다. 순간 전깃불이 깜박 꺼져버렸습니다. 리태의 눈에서는 다시금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엄마 아빠는 정말 깍쟁이들이다…….'



건넌방으로 돌아온 리태는 유리문 가에 앉아서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다 말고 마당 가운데에 있는 꽃밭을 보았습니다. 그 꽃밭에는 보름달 빛이 환히 뿌려지고 있어서 꽃 색깔이 연하게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꽃 이름을 하나하나, 알아맞혀 가는 동안에 리태의 마음은 저도 모르게 조용히 가라앉았습니다. 그러니까 지난 삼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리태는 마당에서 고무줄놀이를 하다가 그만 호주머니 속의 꽃씨를 잃고 말았습니다. 꽃씨를 찾지 못한 리태는 제가 뛰어놀던 마당 자리에 둥글게 금을 그어 놓았습니다. 꽃씨가 밟혀 죽을까봐 아무도 금 안으로 못 들어가게 하였습니다. 끝내는 리태의 떼에 못 이겨 엄마 아빠가 그 마당의 귀퉁이를 일구어 꽃밭을 만들었습니다.



"리태야! 리태야!" 누가 부르는 것일까, 리태는 귀를 세웠습니다. 꽃밭에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어머, 너 나팔꽃이구나." "그래. 나는 네가 바로 여기에다 흘려버렸던 그 씨앗이야." "정말?" "나는 네가 아니었다면 다른 사람들 발에 밟히거나 아니면 물을 못 먹어서 말라죽고 말았을 거야. 나는 그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그런데 너는 오늘 왜 울었니?" "엄마 아빠하고 함께 자고 싶어서……. 밤인데 무서워서 혼자 어떻게 잔단 말이니?" "바보같이. 밤이 뭐가 무섭다고 그래. 이리 와서 밤에 열심히 일하는 아침나라 식구들을 보렴."



리태는 나팔꽃이 하라는 대로 나팔꽃 뒤에 눈을 대고 멀리 내다보았습니다. 아침나라 식구들은 동해 너머 빈 산에 있었습니다. 맨 앞에 있는 먼동은 고기비늘 같은 수천 개의 푸른 깃을 가지고 날개를 엮느라 바빴고, 무지개 폭포 아래에서는 수만 개의 이슬방울들이 몸을 씻고 있었습니다. 빈 산 꼭대기에서는 해님이 불을 집어먹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습니다. "리태야, 보았지? 이렇게 밤은 아침나라 식구들이 준비하며 지내는 시간이야. 그러니 무서울 게 하나 없어." 나팔꽃이 일러주는 말에 리태는 부끄러워 얼굴을 두 손바닥으로 가리고 웃었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리태의 웃음소리를 듣고 안방에서 건너와 보니 리태는 유리문 가에 코를 대고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웃음이 방긋 물려 있는 리태의 입 모양은 나팔꽃 봉오리하고 똑같았습니다.



멍멍이 왈츠

여러분 대부분은 서커스를 알고 있겠지요. 이 이야기는 재미있는 재주를 보여 주는 들풀 서커스단에서 얼마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여러 가지 묘기 중에서도 들풀 서커스단이 제일 자랑하는 구경거리는 '멍멍이 왈츠'입니다. 멍멍이 왈츠란 하얀 바탕에 검은 점이 있는 바둑이가 하얀 양복을 입은 청년의 바이올린 연주에 맞추어서 추는 춤을 말합니다. 이 프로가 생기게 된 것은 실로 우연이었습니다.

어느 날 소년이 무대에 나와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데, 난데없이 바둑이가 뛰어나와서 춤을 추었던 것입니다. 그 바둑이는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어느 날, 소년이 다리 밑에서 주워 와 키우고 있던 강아지였는데, 관객들은 바둑이의 별난 춤에 우레 같은 박수를 보내 주었던 것입니다. 다음 날부터 멍멍이 왈츠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고, 들풀 서커스단이 가는 곳마다 손님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니 바둑이가 전처럼 춤을 추려 하지 않았습니다. 단장이 매를 들었습니다. 연주자를 소년에서 소년의 형으로 바꾸었습니다. 소년은 도무지 바둑이를 길들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소년은 연습하다가도 바둑이가 싫증내는 표정을 지으면 먼저 그만두었고, 바둑이의 춤이 박자에 맞지 않아도 꾸중할 줄도 몰랐습니다. 도리어 음악을 바둑이의 춤에 맞추려고 하니 악보를 잊어먹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소년의 형은 바이올린 연주는 서툴렀지만 바둑이를 곧잘 길들였습니다. 바둑이가 발을 조금만 잘못 떼어놓아도 매질을 하고, 심지어는 밥을 굶기기까지 하였습니다. 무대에는 날마다 소년의 형만 나갔고, 소년은 그저 무대 뒤에서 심부름이나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소년의 형이 갑자기 배탈이 나서 오랜만에 소년이 바이올린 연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단장이 소년을 연습시키는데 소년의 연주는 도무지 음정이 맞지 않았습니다. 특히 한 군데서는 음이 너무 높았습니다. 단장이 화를 내며 몇 번을 다시 시켜 보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때 공연감독이 헐레벌떡 달려왔습니다. "단장님, 다음이 멍멍이 왈츤데요." "집어치워! 이런 돌대가리를 내보냈다가는 손님들의 웃음거리밖에 안 된다." "그렇지만 단장님, 우리 서커스를 구경 오는 사람들은 거의 멍멍이 왈츠를 보려고 오는 사람들인데, 오늘 이 프로를 뺐다가는 난리를 당할 겁니다." 단장은 할 수 없이 소년한테 무대에 나갈 것을 명령하며 말했습니다. "내가 객석 뒤에 있는 가 있을 테니까 넌 내 손을 잘 봐. 알았지!" "네……." 소년의 대답 소리는 그리 시원치 않았습니다.



감독이 막 앞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여러분, 저희 들풀 서커스단의 자랑인 멍멍이 왈츠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갑자기 앓아누운 관계로 오늘은 이 프로를 쉬게 할까 했습니다만, 여러분의 열화 같은 성화에 못 이겨 다른 연주자를 대신 내보내게 되었습니다. 실수가 있더라도 현명하신 관객 여러분께서 이 점을 이해하시고 보아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막이 올라갔습니다. 소년은 팔을 부들부들 떨며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했습니다. 바둑이가 무대 뒤에서 깡충깡충 뛰어나왔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바둑이의 발걸음은 나는 듯 가벼워 보였습니다. 바둑이는 리듬에 맞추어 두 발로 걷기도 하고 빙글빙글 원을 그리기도 하였습니다. 관중들은 모두 입을 벌리고 감탄했습니다. "저 아이도 잘 하는데 뭘." "그러문요. 정말 훌륭합니다." 관중들 사이에 끼여 있던 소매치기도 한 마디 거들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 객석 뒤의 단장은 가슴이 조마조마하였습니다. 연습할 때 소년이 잘 틀리던 소절이 가까워진 것입니다. 단장이 손을 번쩍 들어서 아래로 내려 보이는 순간, 소년은 음을 솟아 올렸습니다. "망했다." 단장은 그만 눈을 꼭 감아 버렸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소년이 음을 올리기 시작하자 선율을 따라서 바둑이가 왕왕왕 짖은 것입니다. "왕왕왕 왕왕왕 왕왕왕……." 관중들, 남의 주머니를 뒤지려던 소매치기도 깜짝 놀랐습니다.



바이올린 연주는 계속되었습니다. 바람은 갈대를 쓰다듬으며 갈매기를 하늘 높이 솟아 올렸습니다. 또 한 번 악보에도 없는 선율이 폴폴 울렸습니다. 바둑이가 또 한 번 '왕왕왕' 짖었습니다. 단장의 눈이 탱자만큼 크게 떠졌습니다. 이번에는 선율이 바다에 폭풍이 휘몰아치는 것처럼, 악보를 벗어나서 마구 올라갔습니다. "왕, 왕, 왕." 바둑이가 눈을 부릅뜨고 이빨을 내보이며 맹렬히 앞으로 내닫고 뒤로 물러가고 하였습니다. 관중 가운데 있던 소매치기가 떨었습니다. "저 놈의 개가 미쳤군. 미쳤어." 저를 물까 봐 소매치기가 도망갔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앙앙'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바다에 내리는 눈송이처럼 선율이 한결 부드러워졌습니다. 바다보다 넓게 내리는 눈, 눈, 눈……. 그것은 소년과 바둑이 사이에 달빛처럼 펼쳐진 뜨락이었습니다. 바둑이가 가만가만 발끝걸음으로 무대를 돌았습니다. 아이들이 울음을 그쳤습니다. '드르릉' 소리를 마지막으로 연주가 끝났습니다. 바둑이가 뒷다리를 들고 물구나무를 섰습니다. 잠시 정적이 감돌았습니다. 서서히 막이 내려갔습니다. 박수와 함성이 둑을 밀어뜨리고 나오는 봇물 같았습니다. 하늘이 한층 더 높이, 더 넓어 보이는 정월 어느 날의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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