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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아저씨의 꿈의 힘

박성철 지음 | 글담어린이
오바마 아저씨의 꿈의 힘

박성철 지음

글담어린이 / 2008년 11월 / 208쪽 / 9,800원



첫 번째 이야기 - 외톨이 오바마


1960년 무렵, 미국의 하와이 대학에서 공부에 열중하고 있던 한 백인 소녀와 아프리카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케냐에서 하와이 대학으로 유학 온 한 흑인 대학생이 서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결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백인이 흑인을 노예로 사고팔던 시절이 있었던 미국에서 그것은 쉽사리 용납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사람들의 따가운 눈길을 이겨내고 결혼했고, 1961년 8월 4일, 그들 사이에서 귀여운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검은 피부를 가지고 태어난 그 아기에게 아버지는 자신과 같은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 이름은'버락 후세인 오바마'였습니다. 한편 오바마의 아버지는 행복한 결혼생활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겠다는 꿈과 가족과의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가족보다는 공부를 선택했고, 하와이를 떠나 하버드 대학이 있는 보스턴으로 떠났습니다.



그렇게 남편과 이혼을 한 후, 오바마의 어머니는 다시 대학에서 공부를 하다가 롤로 소에토로라는 인도네시아 출신의 유학생을 만나 재혼하게 되었고, 1967년 오바마와 어머니는 롤로를 따라 인도네시아로 건너갔습니다. 그곳 아이들은 까만 피부의 오바마를 놀리며 괴롭혔고, 어머니는 힘들어하는 오바마에게 흑인 인권 운동가의 책들을 사다 주곤 하였습니다. 그 책들을 읽은 오바마는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나는 흑인이 아니라 버락 오바마일 뿐이야.'얼마 후 재혼한 롤로와도 헤어진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계신 하와이로 오바마를 보내게 되었고, 오바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지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와이의 친구들 역시 오바마를 흑인이라고 놀려 댔습니다. 그러나 흑인이라서 차별받는 일은 오히려 오바마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고, 그러한 한계점을 당당히 뛰어넘을 준비를 해야겠다고 오바마는 결심했습니다.



꿈을 이루어주는 첫 번째 힘 -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마음

너희가 꿈을 이루기 위해 가져야 할 첫 번째 힘은'한계를 극복하는 마음'이란다. 나는 흑인이어서 받는 차별을 뛰어넘기 위해 리더십, 성실성, 연설 능력 등 여러 가지 능력들을 길렀어. 자신의 한계가 무엇이든 좌절하지 말고 실력을 쌓아 나갈 때, 너희들은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거야.



두 번째 이야기 - 희망을 찾아서

어느 날 사진에서만 보았던 오바마의 아버지가 오바마를 보러 하와이로 왔고, 인도네시아에 있던 어머니도 돌아오게 되어 오바마는 너무 기뻤습니다. 아버지는 오바마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아버지는 조국 케냐를 위해 열심히 공무원 생활을 했고, 관광부 장관까지 오르게 되었으며, 부패한 케냐의 정치인들에게 저항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습니다. 오바마는 자신을 떠나 조국으로 가야 했던 아버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다음날, 아버지는 담임선생님의 부탁으로 오바마가 다니는 학교에서 일일 선생님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와 케냐의 역사에 대하여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아이들은 박수를 보냈고, 오바마는 그런 아버지가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렇게 오바마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불어넣어 준 아버지는 곧 다시 케냐로 돌아갔습니다.

오바마는 다시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고, 하와이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어머니가 받는 장학금으로만 생활해야 했기에 가정 형편은 늘 어려웠습니다. 가난과 함께 오바마에게는 사춘기가 찾아왔고, 자꾸 마음이 어두워지고 불편했습니다. 한편 어머니는 하와이 대학에서 인류학에 대한 연구가 끝나자 다시 인도네시아로 돌아가게 되었고, 오바마는 하와이에 남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 어두운 오바마의 마음에 위로가 되어 준 것은 농구였습니다. 오바마는 농구에 커다란 재능은 없었지만, 농구를 하는 순간만큼은 백인친구들과도 잘 지냈기 때문에 농구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바마가 진지하게 자신에 대하여, 미국에 사는 흑인으로서의 삶에 대하여 고민할 때 그의 고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친구, 그것은 바로 책이었습니다. 오바마는 많이 읽으면서 동시에 많이 쓰게 되었고, 그것은 훗날 오바마의 연설 능력과 토론 능력을 길러 주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오바마의 방황은 계속되었고, 잘못된 길로 빠져 들기 시작했습니다. 불량한 흑인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순간적 실수로 마약에까지 손을 댔습니다. 방황이 계속되면서 오바마의 성적은 엉망이 되어 갔습니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어머니가 다시 하와이로 돌아왔지만, 오바마는 마음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런 오바마의 모습이 무척 걱정된 어머니는 다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닉슨 대통령은 가난해서 하버드 대학 입학 허가를 받아 놓고도 갈 수 없었어. 하지만 스스로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진학하고,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가 되었고, 결국에 대통령까지 된 사람이란다. 너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니?" 오바마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래. 그동안 나는 스스로를 너무 아낄 줄 몰랐어.' 오바마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시절 막바지에 최선을 다해 공부를 한 덕분에 1979년,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옥시덴탈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꿈을 이루어주는 두 번째 힘 - 긍정적인 생활 태도

내가 꿈을 위해 길러야 할 두 번째 힘으로 말해 주고 싶은 것이 바로'긍정적 생활 태도'란다. 세상 일 중에 한 번 만에 이루어지는 일은 드물단다. 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은 사람만이 결국에는 승리하는 법이지. 모든 순간에'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활 태도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렴.



세 번째 이야기 - 늦깎이 공부벌레

하와이를 떠나 미국으로 건너간 오바마는 각오를 새롭게 하고 점점 공부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대학생이 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그 후 1981년,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으로 옮겨 정치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에는 회사에 취직했다가 1985년, 시카고의 빈민촌에 있는 시민단체로 직장을 옮겼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그가 거리에서 보아 온, 못 배우고 가진 것 없는 흑인들로 가득 찬 시카고에서 그들의 인권을 돕는 운동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시카고의 낙후된 지역을 개발시키기 위해 뛰어다녔는데, 오바마는 힘겨운 현실이었지만 늘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한편 오바마는 자신의 핏줄인 아프리카에 대해서도 더 많은 것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고, 1987년 처음으로 아버지가 있는 케냐로 향했습니다. 그 여행은 원망스럽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했던 아버지라는 존재와 화해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후 오바마는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더 넓은 곳에서 더 많이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하고 시카고를 떠났습니다. 그리하여 1988년 오바마는 하버드 대학 로스쿨에 진학하였습니다. 오바마는 그곳에서 자신의 주장을 당당하게 내세웠으며, 인간적인 따스함도 가지고 있었기에 많은 친구들로부터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버드를 다니면서 오바마는 한 가지 큰 도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버드 법대의 유명한 학술지인 《하버드 로 리뷰》의 편집장이라는 자리에 도전하여 수많은 후보들을 제치고 편집장에 뽑힌 것입니다. 세계 최고의 천재들만 모인다는 하버드 대학교의 법학대학에서 발행하는 권위 있는 잡지 《하버드 로 리뷰》의 편집장이 흑인이 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마음먹은 것은 곧바로 행동에 옮겨 실천하는 오바마의 실천력이 이루어낸 것이기도 합니다.



꿈을 이루어주는 세 번째 힘 - 계획을 행동에 옮기는 실천력

'계획을 행동에 옮기는 실천력', 이것이 꿈을 위해 길러야 하는 세 번째 힘이란다. 내가 무언가 되고자 한다면 또 무언가 하고자 한다면 간절하게 원하고, 지금 바로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실천해야 해.



네 번째 이야기 -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

하버드를 졸업한 오바마는 금융회사에 취직하여 많은 월급을 받았지만, 늘 뭔가 채워지지 않은 듯 고민에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법을 전공한 이유는 법이 필요한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직장에 사표를 냈고, 시카고의 빈민가로 가서 인권 변호사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카고는 예전보다 상황이 더 안 좋았습니다. 그곳의 흑인들은 가난했고, 질병에 걸려 있었으며, 많이 배우지도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오바마는 지역 사회 활동가로서의 경험과 하버드 로스쿨에서 배운 많은 것들을 그들을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바마는 시카고에서 일하면서 키가 크고, 성격이 밝은 미셸 로빈슨이라는 흑인 여성 변호사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고, 그녀와 1992년에 결혼하였습니다. 오바마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면서 지역 사회를 위해 더욱 열심히 일했는데, 너무도 슬픈 일이 찾아왔습니다. 인도네시아와 하와이를 오가며 연구를 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했던 어머니가 난소암에 걸려 1995년, 53세의 나이로 하늘나라로 가신 것입니다. 오바마는'어머니의 정신은 제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거예요. 저도 어머니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정치인이 되겠습니다'라고 굳게 다짐하였습니다.



꿈을 이루어주는 네 번째 힘 -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

모든 인간관계는 한 쪽만 잘해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자신만의 행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힘쓸 때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지는 거란다. '나'보다 '우리'가 왜 더 소중한지 그 의미를 깨달아 가는 삶. 그것보다 더 멋진 삶은 없단다.



다섯 번째 이야기 - 정치에 도전하다

어느 날, 오바마는 아내에게 평소에 자신이 고민했던 생각들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동안 여기 시카고에서 인권 운동을 해오면서 많은 한계를 느꼈어. 비록 내가 법을 많이 알고 있고,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은 열망이 많다고 하더라도,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결코 그런 것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 정치에 도전해보고 싶어."아내는 정치를 하겠다는 오바마가 걱정되었지만, 그를 믿고 있었기에 열심히 돕기로 마음먹었습니다. 1996년, 민주당원으로서 35세의 나이로 정치에 첫발을 디딘 오바마는 다른 후보에 비해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며 선거 운동을 했습니다. 그의 열정적인 선거 운동에 감동하고, 그의 리더십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 그의 지지자는 점점 늘어만 갔습니다. 결국 1996년, 오바마는 일리노이 주 의회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높은 득표율로 당선되었고, 2년 후에는 재당선까지 되었습니다. 2000년에는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도 도전장을 던졌지만, 오바마는 그 선거에서 쓰라린 패배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패배를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자신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서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2004년 오바마는 민주당의 전당대회 기조연설을 하는 행운을 잡게 되었습니다. 기조연설이란 국회나 당의 전당대회에서 기본 취지와 정책 방향을 밝히는 연설로, 당에서 가장 촉망받고, 연설을 잘하는 사람이 하는 중요한 연설이었습니다. 민주당원들과 정치인들은 유명하지도 않은 오바마가 어떻게 그런 중요한 연설을 하느냐며 걱정했지만, 텔레비전을 통해 미국 전역에 방영되었던 감동적인 그의 연설은'버락 오바마'라는 정치인이 전 미국인들에게 처음으로 인정받는 감격의 순간이었습니다. 다음 해인 2005년,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오바마는 압도적인 표를 얻으며 당선되었습니다. 흑인이 연방 상원의원으로 뽑힌 일은 미국 역사상 다섯 번째 일이었습니다.



꿈을 이루어주는 다섯 번째 힘 - 기회를 잡기 위한 준비성

우리는 늘 기회를 놓치고 난 후에 후회를 하지. '기회를 잡기 위한 준비성'이 꿈을 위해 길러야 할 다섯 번째 힘이란다. 인생에선 몇 번의 기회가 찾아오는데,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그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는단다. 내가 평소에 어떻게 하면 더 연설을 잘할지, 어떻게 하면 더 글을 잘 쓸 수 있을지 고민하고 연습하지 않았다면, 나에게 찾아온 기조연설의 기회를 잘 살릴 수 없었을 거란다.



여섯 번째 이야기 - 인생의 선생님

흑인 오바마가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미국의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세 명의 선생님의 영향이 있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 존 F. 케네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그들입니다. 이들은 미국 역사상 위기와 침체의 시대에 도전과 희망의 리더십으로 미국을 변화시킨 인물로 평가되고 있는데, 오바마는 늘 이 세 명의 선생님이 가르쳐 준 것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정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꿈을 이루어주는 여섯 번째 힘 - 본보기가 되어 줄 나만의 선생님

멘토(mentor)란 말이 무엇인지 아니? 멘토란 쉬운 뜻으로 하면 인생의 스승, 즉 인생의 선생님이란 뜻이란다. 너희 인생에는'인생의 선생님'이 꼭 필요하단다. 그 선생님은 현실 인물이어도 되고, 지금은 살아 있지 않은 역사 속의 인물이어도 돼. 그리고 선생님으로 삼을 만한 인물을 정했으면 그 사람의 삶 속에서 배울 점을 찾아내어 그와 닮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단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모습도 서서히 인생의 선생님들처럼 멋진 모습으로 닮아 가고 있다고 느끼게 될 거야.



일곱 번째 이야기 - 꿈은 이루어진다!

오바마는 미국 제44대 대통령 선거 민주당 경선에 출마하면서'변화, 희망, 통합'이라는 세 가지 단어를 내세웠습니다. 그것이 지금 미국에 가장 필요한 이상들이라며 자신의 선거 운동에서'변화를 믿어라(Believe in change)'라는 표어도 내걸었습니다. 마침내 2007년 1월 16일, 오바마는 일리노이 주 의회에서 대통령 출마 선언을 했습니다. 오바마에게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힐러리 클린턴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었지만,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선거 운동을 하였고, 2008년 6월 3일 결국 그는 민주당의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되었습니다. 그의 강한 도전 정신이 마침내 결실을 거둔 것입니다.

꿈을 이루어주는 일곱 번째 힘 - 더 큰 목표를 향한 도전 정신

나는 어릴 때부터 흑인이라는 점 때문에 수없이 좌절했고, 공부도 그다지 잘하지 못했어. 하지만 그랬기에 난 꿈을 꿀 수 있었단다. 첫 번째 도전은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되었지만 수많은 도전이 모여 지금의 나의 도전을 만들어 온 거란다. 아저씨는 너희가 꿈을 위해 길러야 할 힘들을 가슴 깊이 새기고 점점 더 큰 꿈을 멋지게 이루어 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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