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양반은 못 말려

권정현 지음 | 생각의나무
양반은 못 말려

권정현 지음

생각의나무 / 2008년 8월 / 112쪽 / 9,000원



양반은 못 말려(양반전)


옛날 옛적, 강원도 정선 고을에 찢어지게 가난한 한 양반이 살았습니다. 그는 책 읽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여 하루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습니다. 양반은 밤낮으로 책을 읽다가 곡식이 떨어지면 관아로 달려가서 고을 원님을 찾아뵙고 쌀과 보리를 꾸어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세월이 흐르자 나라에서 꾸어 먹은 곡식은 어느덧 천여 가마로 불어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강원도를 다스리는 감사가 정선 고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감사는 곡식을 꾸어 주고 다시 받은 것을 기록한 장부와 창고에 남은 곡식의 양을 일일이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양반이 천여 가마의 곡식을 갚지 않은 것을 알게 되자 감사는 화가 나서 양반을 잡아다가 곡식을 갚을 때까지 옥에 가두라고 명령했습니다. 양반은 옥에 갇힌 뒤에도 자신이 읽던 책의 내용을 중얼거릴 뿐이었습니다.



한편 양반이 곡식을 갚지 못해 옥에 갇혔다는 소문이 퍼지자 신이 난 사람이 생겼습니다. 그는 같은 마을에 살고 있던 부자 농사꾼이었는데, 가족들을 모아놓고 물어보았습니다. "양반은 아무리 가난해도 존경을 받으며 살 수 있는데, 우리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항상 천한 대접을 받는구나. 듣자하니 아랫집 양반이 곡식을 갚지 못해 옥에 갇혔다던데, 우리가 대신 빚을 갚아주고 양반을 돈으로 사면 어떨까?" 부인과 자식들은 모두 찬성했습니다. 다음날, 부자는 양반을 찾아가 빌린 곡식을 대신 갚아줄 테니 양반의 지위를 팔라고 말했습니다. 옥에서 하루라도 빨리 나가고 싶었던 양반은 기뻐하며 허락했습니다. 신이 난 부자는 그 길로 곧장 원님을 찾아가서 양반의 곡식을 모두 갚아주었습니다.

원님은 양반을 풀어주긴 했으나 부자가 대신 곡식을 갚아준 것이 이상하여 양반의 집으로 가 보았습니다. 원님이 소리쳐 양반을 부르자 상민들이 쓰는 벙거지를 머리에 쓰고 소매가 짧은 옷을 입은 양반이 맨발로 뛰어나왔습니다. 원님이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그대는 어찌하여 이리 상민처럼 행동을 하는가?" 양반이 부자에게 양반의 지위를 팔았다고 고하자 원님은 부자네로 향했습니다. 부자는 마당으로 나가 원님을 맞았고, 원님은 부자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그대는 과연 진정한 양반이로다. 이웃이 어려운 일을 당하자 모른 체 하지 않고 곡식을 내어 도와주었으니 참으로 그 마음이 따스하구나. 그런데 이보게. 양반을 샀다는 내용은 종이에 적어놓아야 하네. 내가 고을 사람들을 모아 증인을 세우고 종이에 양반을 사고 판 내용을 자세히 적어 도장을 찍어 주겠네." 부자는 고마워하며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원님은 관아로 돌아와 고을의 양반들을 초대하고 아울러 돈 많은 장사치들과 땅이 많은 농민들을 모두 불러 모았습니다. 원님은 부자가 양반을 사고 판 이야기를 글로 적어서 문서를 만들고 양반이 지켜야 할 도리를 문서 뒤에 덧붙여 아전(조선 시대에 각 관아의 벼슬아치 밑에서 일을 보던 사람)에게 부자가 보는 앞에서 읽으라고 했습니다. "……양반이 되면 남을 해롭게 하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하며, 옛사람의 뜻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 새벽이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등불을 밝히고, 옛 어른들이 지은 책을 꺼내 막히지 말고 줄줄 외워야 하며, 가난해도 굶주림과 추위를 잘 참을 수 있어야 한다. 세수를 할 때 얼굴을 세게 문지르지 말아야 하며, 양치질을 하더라도 지나치게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덥더라도 버선을 벗지 않고, 식사를 할 때에도 맨상투 바람으로 밥상에 앉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을 한 가지라도 지키지 않으면 양반을 도로 빼앗길 수 있다."아전이 읽기를 마치자 부자의 얼굴이 새까맣게 변했습니다. "양반이 되면 신선이나 다름없을 줄 알았는데, 온통 해서는 안 되는 것 투성이군요. 이대로는 억울하여 견딜 수가 없으니 좀 더 제게 좋은 일이 있도록 문서를 고쳐 주십시오." 원님은 빙그레 웃고 나서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양반이 되어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알려 주겠네." 원님은 아전으로 하여금 양반이 되면 좋은 점들을 읽게 했습니다. "……양반은 밭을 갈지도 않고 장사를 하지도 않는다. 글을 잘하여 과거에 급제하면 나라에서 증표를 받게 되는데, 이 증표는 마술주머니와 같아서, 마음만 먹으면 어떤 물건이든 가질 수 있다. 가난한 선비가 되어 시골에 살아도 자기 맘대로 할 수가 있으며, 이웃의 소를 끌어다가 자기 밭을 먼저 갈고, 마을 일꾼들을 불러다가 자기 논부터 돌보게 할 수 있다." "자, 잠깐 멈추시오." 부자가 돌연 소리를 질렀습니다. "남의 소를 끌어다가 먼저 자기 밭을 갈고 자기 논부터 돌보다니? 나를 도둑놈으로 만들 작정이시오? 그런 게 양반이라면 나는 필요가 없소!" 부자는 밖으로 뛰어나가 버렸습니다. 이후, 부자는 죽을 때까지 '양반'이란 말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습니다.



북곽 선생을 떨게 만든 호랑이(호질)

호랑이는 지혜로울 뿐만 아니라 어질고 자상한 동물입니다. 또한 굳세고 용맹하여 하늘 아래 당할 상대가 없는 동물의 왕입니다. 호랑이가 사람을 먹으면 죽은 사람이 호랑이 몸에 붙어 귀신이 되는데, 이를 굴각이라고 부릅니다. 굴각은 호랑이의 겨드랑이에 붙어 다니면서 호랑이를 남의 집 부엌으로 이끌어 솥단지를 핥게 하는데, 그러면 주인이 배고픈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밥을 짓도록 시킵니다. 호랑이가 또다시 사람을 먹으면 죽은 사람은 귀신이 되어 호랑이의 광대뼈에 붙는데 이를 가리켜 이올이라고 부릅니다. 이올은 높은 곳에 올라가 아래를 살피며 호랑이가 앞으로 달려갈 때 함정이 있거나 숨어 있는 사냥꾼이 있으면 먼저 달려가 함정과 사냥꾼을 치워버립니다. 호랑이가 세 번째로 사람을 먹으면 죽은 사람은 귀신이 되어 호랑이 턱에 붙습니다. 그 귀신을 육혼이라고 부르는데, 육혼은 죽은 사람이 평소에 알고 지내던 친구의 이름을 밤낮으로 불러대는 특징이 있습니다.



어느 날 호랑이가 자기 몸에 매달린 귀신들에게 물었습니다. "어흥, 날이 저무는데 어디 가서 먹을 것을 구할까?" 굴각이 대답했습니다. "제가 미리 점을 쳐 보았는데, 뿔도 없고 날개도 없으며 검은 머리카락을 지닌 놈이 걸릴 것입니다. 뒤통수에 꼬리가 붙어 그것을 제대로 감추지도 못하는 바보 같은 놈입니다." 이올이 굴각의 말을 가로막고 나섰습니다. "그럴 게 아니라 오늘은 별미로 사람을 드셔 보시지요. 동쪽 문으로 가면 약방에서 약을 짓는 의원이 있는데, 입으로 온갖 약초를 다 먹어서 살과 고기가 향기롭지요. 서쪽 문에는 무당도 있는데 온갖 귀신에게 아첨하려고 날마다 목욕을 하여 고기가 매우 깨끗하지요." 호랑이가 엄하게 말했습니다. "의원이란 자들은 자기 솜씨만 믿고 함부로 약을 써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죽인다. 무당이라는 것들은 거짓으로 사람을 속여 재산을 빼앗고 죽게 만드니 그 숫자가 또한 헤아릴 수 없다. 억울하게 죽은 자의 분노가 뼈에 사무쳐 온몸에 독이 가득하니 어찌 그들을 먹을 수 있겠느냐?"



그러자 육혼이 말했습니다. "마을로 가시지 말고 숲으로 가 보시지요. 숲에 숨어 사는 한 선비가 있는데 늘 책을 읽어 마음은 어질고 충직하며, 등살이 두둑하고 몸이 기름져 다섯 가지 맛을 두루 겸비하고 있습지요. 선비라는 자들은 나쁜 짓보다는 옳은 일에 앞장서며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먼저 생각하니 매우 의로운 인물들이지요." 호랑이가 육혼을 나무랐습니다. "자신은 행동하지 않고 방 안에 편히 앉아 글을 가지고 헛소리를 지껄이니 선비라는 자들은 피가 깨끗하지 못하여 고기 또한 맛이 없을 것이다. 좀 더 깨끗하고 또한 향기로우며 입에 살살 녹는 맛있는 인간을 추천해 보거라." 귀신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습니다. "그런 인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요."



한편, 정이라는 고을에 한 선비가 살았습니다. 그는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책만 읽었는데,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북곽 선생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동안 옛 책을 다시 고쳐서 낸 책이 만 권이요, 뜻을 보충하여 다시 지은 책이 만 오천 권이나 되었습니다. 북곽 선생이 사는 마을 동쪽 끝에는 얼굴이 아름다운 여인이 살았는데, 그 여인의 이름은 동리자였습니다. 동리자는 일찍이 과부가 되었으나 남편을 그리며 홀로 살아 사람들은 동리자를 열녀라고 칭송했습니다. 그러나 동리자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었는데 성씨가 다 제각각이었습니다.



어느 날 밤, 동리자가 잠든 방에서 남자의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다섯 아들이 몰래 문틈으로 엿보니 어머니 방에 몰래 숨어든 남자는 북곽 선생이었습니다. 다섯 아들은 서로에게 말했습니다. "북곽 선생은 어진 분이신데 어머니 방에 몰래 숨어들었을 리가 없다." "여우가 천 년을 묵으면 사람으로 변한다던데, 그 여우가 북곽 선생으로 둔갑한 것이 분명해." "우리 힘을 합쳐 여우를 죽이고 우리 형제들끼리 나누어 갖도록 하자." 다섯 아들은 소리를 지르며 방으로 쳐들어갔습니다. 당황한 북곽 선생은 후닥닥 대문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뒤에서 동리자의 아들들이 몽둥이를 들고 쫓아오자 북곽 선생은 귀신으로 보이기 위해 한쪽 다리를 들고 뛰다가 그만 발을 헛디딘 나머지 농부들이 들판에 파 놓은, 똥이 가득한 거름 구덩이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북곽 선생은 황급히 똥구덩이를 빠져 나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바라보니 호랑이 한 마리가 눈을 빛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북곽 선생이 벌벌 떨며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호랑이가 말했습니다. "선비라는 놈들이 그중 깨끗하다고 하여 달려왔거늘 더럽고 구역질만 나는구나. 너를 먹느니 차라리 굶고 말겠다." 북곽 선생은 넙죽 엎드린 뒤 세 번 절하고 말했습니다. "과연 듣던 대로 호랑이님은 덕이 많으십니다." 호랑이가 얼굴을 찡그리며 꾸짖었습니다. "이놈, 어디서 아첨이냐. 너는 평소에 온갖 책을 지어 되지도 않는 말로 사람들을 현혹하더니 막상 위험이 닥치자 간사한 말로 살 길을 찾기에 바쁘구나. 너희 인간이라는 자들은 자신들을 위해 평생 뼈가 빠지도록 일한 소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잡아먹으면서 우리 호랑이들이 노루나 사슴을 잡아먹는다는 이유로 사나운 맹수라며 손가락질을 잘도 하더구나. 또 호랑이는 가뭄을 알지 못하니 인간처럼 하늘을 원망하지도 않고, 원한과 은혜를 모르니 다른 동물에게 미움을 받을 까닭이 없으며, 오직 순리대로 살다가 죽을 뿐인데, 누가 호랑이를 욕한단 말이냐?" "말씀을 들으니 과연 호랑이야말로 인간보다 뛰어난 동물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부끄러운 마음으로 호랑이님을 존경하며 살겠습니다."



아무튼 북곽 선생은 혹시라도 호랑이가 자신을 잡아먹지 않을까 겁을 집어먹고는 식은땀을 흘리며 머리를 땅에 박고 벌벌 떨었습니다. 날이 밝아 아침 햇살이 북곽 선생을 비출 무렵, 거름을 주러 나왔던 농부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무슨 일로 아침 일찍 들판에 나와 절을 하십니까?" 북곽 선생이 놀라 그제야 고개를 드니 호랑이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당황한 북곽 선생은 농부를 향해 이렇게 둘러댔습니다. "하늘과 땅이 없으면 사람이 어찌 살 수 있겠는가. 이렇듯 고마운 존재가 바로 하늘과 땅이니 아침 일찍 나와 절을 하며 올해에도 곡식이 잘 여물게 해 달라고 정성껏 기도를 드리고 있었네." 말을 마친 북곽 선생은 똥 냄새를 풍기며 집을 향해 어기적어기적 걸어갔습니다.



바보 광문 이야기(광문자전)

옛날 한양에 광문이라는 소년이 살았습니다. 광문은 남에게 음식을 구걸해 살아가는 비렁뱅이였습니다. 광문은 또래들보다 힘이 세서 따르는 비렁뱅이들이 많았습니다.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어느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거지들이 저마다 밥그릇을 들고 시장으로 나갔지만 한 아이만 아파서 나가지 못했습니다. 병에 걸려 신음하던 아이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더니 눈을 감고 몸을 떨었습니다. 당황한 광문은 의원을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이미 죽은 뒤였습니다. 마침 밥을 빌러 나갔던 아이들이 돌아왔는데, 광문이 병에 걸린 아이를 죽였다고 의심한 아이들은 힘을 합쳐 광문을 두들겨 팼습니다. 광문은 엉금엉금 기어서 흙집을 도망쳐 나왔습니다.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뒤쫓자 광문은 담장을 넘어 가까운 집으로 숨어들었습니다.



그때 마침 밖으로 나오던 집주인에게 광문은 걸려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집주인은 광문을 도둑으로 잘못 알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새끼줄로 꽁꽁 묶었습니다. 광문이 도둑이 아니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하소연하자, 집주인은 불쌍한 나머지 묶었던 새끼줄을 풀어주었습니다. 집주인은 광문에게서 아이가 갑자기 죽은 일이며 그로 인해 오해를 받아 거지굴에서 쫓겨난 일을 듣고는 자기 집으로 데려가 옷을 주고 밥을 먹였습니다. "이제 거지 생활일랑 그만두고 일을 해 보는 게 어떤가?" 집주인은 광문을 약방에서 일하도록 소개해 주었습니다. 일을 하게 된 광문은 아침 일찍 일어나 열심히 약방을 쓸고 닦으며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약방 주인은 광문을 완전히 믿고 모든 일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외출했다가 돌아온 약방 주인이 금고를 열어보니 돈이 없어진 것이었습니다. 주인은 분명 광문이 돈을 가져갔을 것이라고 의심하며 며칠 더 지켜볼 작정으로 모른 척 했습니다. 며칠 뒤 약방 주인의 처조카가 약방으로 찾아왔습니다. "며칠 전 돈을 꾸러 왔다가 안 계시기에 허락도 없이 금고를 열어 돈을 가져갔습니다. 마침 갚을 돈이 생겨 이렇게 달려온 것이지요." "허허, 그런 줄도 모르고 난 일하는 아이를 의심했었네." 약방 주인은 부끄러운 나머지 광문을 불러 사과했습니다. 그날 이후, 약방 주인은 보는 사람마다 붙잡고 자기 집에서 일하는 광문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서울 전체로 퍼져 임금이 계신 궁중까지 광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광문은 길에서 싸우는 이들을 만나면, 싸움을 말렸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면 갈 길이 아무리 바빠도 짐을 거들어 주었습니다. 인사성도 밝아 누구에게나 웃으며 인사를 했고 항상 가게 주변을 쓸고 닦았습니다.



그렇게 성품이 어질고 착했지만 광문의 외모는 볼품없고 초라해서 나이 마흔이 넘도록 총각머리를 하고 지냈습니다. 사람들은 광문에게 장가를 가라고 몇 번이나 부추겼지만 그때마다 광문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돈도 없으니 무엇으로 살림을 차린답니까? 내겐 하늘이 지붕이고 땅이 방바닥입니다. 어디든 누우면 그곳이 내 집이지요." 약방을 그만둔 뒤에도 광문은 바람처럼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살았습니다. 배가 고프면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밥을 얻어먹고 기분이 좋으면 콧노래를 부르며 골목을 오르내렸습니다. 한편, 한양 동쪽에는 운심이라는 아름다운 기생이 살았습니다. 운심은 어느 누구 앞에서도 춤을 추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근처를 지나던 광문이 콧노래로 장단을 맞추자 술자리에 말없이 앉았던 운심이 벌떡 일어나 학처럼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자리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기뻐하며 광문을 불러 술을 권하였습니다. 광문은 그들과 어울려 흥겹게 놀다가 간다는 말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