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바다
예룬 판 하엘러 지음 | 세용
예룬 판 하엘러 지음
도서출판 세용 / 2008년 1월 / 80쪽 / 9,800원
주름살투성이 로요내가 태어나긴 했나 보다. 그런데 그때 일을 내가 기억하지 못하다니 정말 이상하지? 어쨌든 나는 태어났다. 그것도 이른 아침에. 이 사실 말고는 달리 덧붙일 만한 얘기도 없다. 왜냐하면 내가 태어났다는 사실이 특별히 중요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십 년 뒤에 내 여동생이 태어났다. 그건 정말 특별한 일이었다. 다들 엄마의 침실이 있는 위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내가 의아하게 쳐다보자, 아저씨는 내게 눈짓을 했다. 아저씨는 나와 함께 아래층에 남아 있었다. 나는 어차피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지만, 그 순간 내 귓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고요했다. 그때까지 나는 아빠가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있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빠는 마치 울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내가 보기에 아빠는 전혀 울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아빠는 한 마디로 몹시 불쾌한 사람이었다.
내 여동생의 이름은 '라우라'였다. 나는 그 애를 '로요'라고 불렀다. 그런데 다들 흐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울면서도 매우 기뻐했다. 나는 그들이 내가 태어났을 때도 그렇게 기뻐서 울음을 터뜨렸는지 궁금해졌다. 틀림없이 그러지 않았을 거라고 나는 장담할 수 있다. 로요가 태어난 다음 날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이웃에 사는 마라갈 씨 댁과 모데하 씨 댁, 그리고 하비에르 아저씨가 꽃을 보내 왔다. 우리 엄마는 울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로요는 자지러지게 큰 소리로 울어 댔다. 나는 어차피 아무 소리도 들리지가 않아서 별 상관이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 차츰 조용해졌을 무렵, 내가 동생이 듣고 말할 수 있는지를 묻자, 우리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나는 다들 왜 그렇게 울었는지 그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따뜻한 하비에르 아저씨 / 바다 소리를 들을 수 없어아빠가 집을 나간 이후로 아저씨는 늘 좋은 친구였다. 아빠는 로요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져 버렸다. 처음에 마을 사람들은 분명히 배가 침몰해서 아빠가 죽었을 거라고 수군거리곤 했다. 그리고 얼마 후, 하비에르 아저씨가 우리 집에 와서 술 취한 아빠를 라스칼라에서 보았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은 엄마는 마구 화를 내다가 결국은 주저앉아 울어 버렸다. 그 날 이후로 하비에르 바스게츠 씨는 날마다 놀러 왔다. 그는 때때로 별다른 이유 없이 구멍가게 문을 닫고 우리 집에 잠시 들렀다. 혹시나 도와 줄 수 있는 일이 없나 하면서 찾아왔던 것이다. 아저씨와 나는 나란히 앉아 무언가를 조용히 바라보곤 했다. 또 엄마가 바쁠 때면 하비에르 아저씨는 나를 데리고 바다로 나가곤 했다. 나는 바다도 요란한 소리를 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저씨는 바다가 "쏴아쏴아거린다"고 설명해 주었다. 나는 아저씨랑 파도를 따라 뛰어다니며 즐겁게 노는 것이 너무 좋았다.
소리를 듣고 싶어요이따금씩 '나는 왜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걸까?' 하는 의문이 자꾸 들었다. 나는 사람의 귀로 소리를 실어다 주는 것이 바로 바람이라는 사실을 하비에르 아저씨한테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바람이 구멍을 뚫을 수 없는 아주 단단한 물체처럼 보였다. 어쩌면 영원히 그 속에서 구멍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참고로 세뇨라 안나를 알게 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엉뚱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내 귓속이 막혀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어느 날 막대기로 피가 날 때까지 십 분 가량이나 양쪽 귓속을 쑤셔 댔다. 귓속에 들어 있는 피만 전부 흘러나오면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기뻐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이내 의식을 잃고 말았다. 나는 도시에 있는 병원으로 가야 했고 그곳에서 수술을 받았다. 나는 이 주일 동안이나 병원에 있어야만 했다. 그곳 음식은 맛이 없었지만 하비에르 아저씨가 가끔씩 초콜릿을 가져다주었다. 병원에서의 마지막 날은 의사 선생님이 찾아와서 우리 엄마에게 나를 아동 심리학자에게 데리고 가봐야 한다고 말했다. 아동심리학자라는 게 뭔지도 몰랐지만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세뇨라 안나우리 엄마는 나를 데리고 도시로 갔다. 내가 원해서 갔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우리 엄마는 여자 선생님(아동 심리학자는 여자였다)이 나한테 몇 가지를 물어볼 거라고 일러 주었다. 우리 엄마는 내가 일주일 동안 그 여자 선생님 집에서 지내야 하고, 그러고 나면 하비에르 아저씨가 나를 데리러 올 거라고 했다. 그녀의 이름은 세뇨라 안나였다. 그녀는 친절하고 예뻤다. 우리는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커다란 칠판과 큰 종이뭉치가 놓여 있는 이젤이 있었다. 칠판과 종이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있는 거라고 안나가 말해줬다. 안나는 하비에르 아저씨를 한번 그려 보라고 했다. 나는 바다와 해변, 마지막으로 그 위에 빨간 입술도 그려 넣었다. 바다가 쏴아쏴아거리는 소리를 흉내 내는 아저씨의 입술 말이다.
그러고 나서 세뇨라 안나는 아빠를 한번 그려 보라고 했다. 나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서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다. 아니 화가 치밀어 이젤에서 큰 종이를 떼어 낸 다음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그리고는 안나에게 아빠가 내가 못 듣고 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 것을 창피해 하며, 나를 무시했던 일들을 얘기했고, 내가 비정상이냐고 물어 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내 볼을 쓰다듬어 주면서 내가 사랑스러운 아이라고 말해 주었다. 한 주가 지나고 하비에르 아저씨가 나는 데리러 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세뇨라 안나가 보고 싶었다. 나는 안나도 우리 마을에 함께 오기를 바랐다. 해변으로 같이 가고 싶었다. 함께 춤추기 위해서.
궁둥이찜질놀이 / 말하는 물고기 / 나 홀로 / 떠남하비에르 아저씨는 너무나 사랑했던 테레사 아줌마와 사별하고 혼자 사는데, 하비에르 아저씨는 내가 정확히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를 알고 있었다. 언젠가 한번 아빠는 귀머거리 사내애를 키우는 게 힘겨운 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이 말을 듣고 하비에르 아저씨는 내가 그 어떤 다른 아이보다도 잘 자랄 거라고 말해 주었다. 그렇게 말해 준 하비에르 아저씨가 나는 자랑스러웠다.
어느 날 엄마는 나를 보자 하비에르 아저씨가 병원에 입원했다고 알려 주었다. 의사에게 진찰을 받으러 갔다가 쓰러졌다는 것이다. 아저씨의 병명이 뇌졸중이라고 했다. 우리 엄마는 더 이상 얘기를 안했지만 얼굴에는 몹시 걱정하고 있는 빛이 역력했고, 아저씨가 살아날 가망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로요를 미라 이모에게로 보내고, 엄마와 나는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아저씨는 몹시 하얗고 아주 창백했다. 참혹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하비에르 아저씨는 웃고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수천 번은 웃었을 것이고 지금도 웃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평상시와 다른 웃음이었다. 아저씨는 마치 내가 여기에 와 있는 게 기쁘다는 말을 하려는 듯이 두 눈을 깜빡였다. 아저씨는 내 손을 잡고 그 다음에는 우리 엄마의 손을 잡았다. 우리 엄마는 울음을 터뜨렸고 나도 울음이 나왔다. 아저씨는 "나한테 가장 소중한 두 손"이라고 속삭이더니 잠이 들고 말았다. 하비에르 아저씨는 다시 깨어나지 않았다.아저씨의 죽음을 나는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아마 그때 나는 아저씨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비에르 아저씨는 아직 살아 있었다. 하비에르 아저씨는 웃고 있었다. 아저씨는 테레사 아줌마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었고, 말을 한다는 작은 물고기 이야기도 들려 주었다. 하비에르 아저씨는 살아 있었다.
아저씨는 지금 어디에 계실까?8월의 마지막 주였다. 나는 약속대로 세뇨라 안나에게 갔다. 내가 가장 바랐던 것은 평생 안나와 함께 지내는 것이다. 물론 안나 역시 그러기를 원한다면 말이다. 안나는 내게 말하는 법을 배우지 않겠냐고 물어 보았다. 나는 내가 이미 손으로 말을 할 줄 안다고 대답했다. 또 내가 비록 듣지는 못해도 입술 모양을 보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세뇨라 안나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녀가 단어를 말하면 그녀의 얼굴과 목과 가슴과 배에 차례차례 손을 대고 어떤 느낌인지 한번 느껴 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소리 내어 말하고 싶지가 않았다. 내가 음을 몇 개 소리 내 볼 수 있었던 유일한 상대는 오직 하비에르 아저씨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또 아저씨는 사람들이 문장이라고 일컫는 그 바보 같은 것들 없이도 나를 이해할 줄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는 절대로 하비에르 아저씨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하비에르 아저씨를 생각하면 때때로 가슴이 아려오면서 마치 온몸에서 기운이 쑥 빠져 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안나는 하비에르 아저씨가 내게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한번 몸으로 표현해 보라고 했다. 나는 일어서서 두 팔로 내 몸을 감싸 안고 눈을 감은 채, 머리를 오른쪽 어깨 위로 비스듬히 기댔다. 눈을 다시 뜨자 안나의 눈에 글썽거리는 눈물이 보였다. 안나는 지금 이 순간 하비에르 아저씨가 옆에 있다면 나한테 무슨 말을 할 것 같으냐고 물어 보았다. 아저씨는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 나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나는 하비에르 아저씨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아아아, 오오오." 하비에르 아저씨는 내가 말을 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당신과 함께 춤을 그 해 여름이 지나간 지도 벌써 한참 되었다. 그 후로 나는 차근차근 말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삼 년 뒤에는 우리 엄마 역시 하비에르 아저씨처럼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로요와 나는 세뇨라 안나와 함께 도시에서 살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어릴 때 살던 마을에 갈 수 없었지만, 하비에르 아저씨와 우리 엄마는 늘 내 머릿속에서 나와 이야기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안나는 내가 어렸을 적에 살았던 마을에 한번 가보지 않겠느냐고 물어 보았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나는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구름 속에 우리 엄마 얼굴을 그려 본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아이들이 놀고 있다. 나는 뒤돌아서 세뇨라 안나를 향해 손짓을 한다. 안나는 저편의 모래언덕 위에서 나를 기다려 주고 있다. 나는 바다가 꼭 하늘같이 푸르다고 외친다. 수백만 리터의 바닷물이 파도에 휩쓸려 힘차게 해변으로 밀려오더니 어느새 다시 뒤로 밀려나면서 모든 것이 고요해지는 듯하다. 그러나 바다는 절대로 침묵하지 않는다. 바다는 쏴아쏴아거린다. 마치 수천 개의 물방울이 바람을 따라 춤을 추듯이. "세뇨라 안나?" "에밀리오, 왜 그러니?" "당신과 함께 춤춰도 될까요?" "여기엔 음악도 없잖아." "아뇨, 세뇨라, 있어요. 바다에 귀를 기울여 봐요. 쏴아쏴아거리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