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돌고래 섬과 지아
스콧 오델 지음 | 우리교육
거대한 태풍이 불어온 다음이면 우리 해변은 언제나 조그만 조개로 뒤덮이곤 했는데, 그럴 때면 나는 동생 만도와 함께 조개를 줍곤 했다. 오늘 아침에도 우리는 조개를 줍다가 파도에 떠 있는 회색 보트를 발견했다. 뒷부분에 영문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BOSTON', 그 다음에는 글자 'B', 페인트가 벗겨진 흔적, 그리고 글자 'Y'가 보였다. 만도와 나는 보트를 샌펠리페 석호로 밀고 가서 아무도 보지 못하게 덤불과 해초로 덮어놓고 선교원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부터 만도는 나무로 노를 만들었고, 보트에 적혀 있는 이름을 긁어내고 '섬소녀'라는 이름을 쓴 나무판을 보트에 달았다. 물이 새는 부분의 수리까지 마치자 만도에게 내가 말했다. "이제 아무 데나 나가 보자." "푸른 돌고래 섬에 가서 카라나 이모를 찾아서 모셔 오자." "이제 그 섬에 이모가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백인인 니데버 선장이 작년에 그 곳에서 모래사장에 발자국이 찍힌 걸 봤댔어." 그래. 우리는 갈 거다. 먼 남쪽 지방에서 살던 우리가 신부들을 따라 이곳 샌타바버라 선교원까지 온 것도 바로 이모를 찾기 위해서니까!
우리가 살게 된 샌타바버라 선교원은 푸른 돌고래 섬과 가까운 곳이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사람들은 나에게 이 섬에 오랫동안 이모 혼자 살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카라나 이모를 전혀 몰랐는데, 사람들 이야기에 따르면 이러했다. 알류트 사람들이 먼 북쪽 지방에서 배를 타고 와 푸른 돌고래 섬에 사는 우리 부족을 죽였으며, 큰 배가 우리 부족을 구해 육지로 데려오려고 할 때 카라나 이모가, 남동생이 마을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동생을 데려오려고 뛰어내렸다. 하지만 태풍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배를 모는 사람은 이모를 기다릴 수 없었고, 이모는 푸른 돌고래 섬에 남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카라나 이모를 찾겠다고 다짐하며 자랐다.
다음 날 나는 니데버 선장을 찾아가서 푸른 돌고래 섬에 가는 방법을 물었다. 선장은 내가 가기엔 너무 먼 곳이라고 했지만 내 마음을 바꿀 수는 없었다. 나는 선교원으로 돌아와 동생과 함께 떠날 준비를 했지만, 아무에게도 떠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며칠 후 니데버 선장이 선교원에 찾아와 섬에 가는 것을 말렸으나 우리를 설득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우리에게 나침반을 빌려 주었다. 그 날 오후 드디어 우리는 출발했다. 우리는 밤새도록 노를 저었다. 나는 배가 똑바로 가고 있는지 보기 위해 가끔씩 나침반을 들여다보았다. 만도는 큰 청새치를 잡겠다며 낚싯바늘을 밧줄에 연결해 던져 놓았는데, 정말 굉장히 큰 청새치가 걸렸다. 낚싯바늘에 꿰인 채로 우리 배에 끌려 다니던 청새치의 슬픈 눈동자를 보고 만도가 잠든 사이에 나는 밧줄을 끊고 청새치를 놓아 주었다.
어느덧 우리 보트가 산타크루즈 섬 남쪽 끝을 지날 때, 큰 포경선 한 척이 나타났다. 포경선 뒷부분에 적혀 있는 글씨가 보였다. 'BOSTON BOY' 순간 뭔가가 직감되었다. 나는 만도에게 나직이 말했다. "지난번 태풍에 이 보트를 잃어버린 배가 바로 저 배야.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이 보트가 자기네가 잃어버린 보트라는 사실을 모를 거야. 조용히 앞으로 저어. 배는 보지 말고." 우리는 노를 더 빨리 저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 순간, 우리 보트와 똑같은 보트 한 척이 이쪽으로 오는 게 보였다. 눈동자가 파란 사람이 우리에게 물었다. "그 보트 어디서 난 거니?" 내가 대답했다. "샌타바버라 선교원이요." "그 보트는 우리 거야. 태풍이 불 때 잃어버렸어." "이 보트는 우리 거예요." 하지만 결국 우리는 포경선으로 끌려갔다. 나는 포경선 주방에서 일을 해야 했고, 만도는 남자 선원들과 같은 일을 하게 되었다. 나는 만도를 찾아 함께 도망칠 계획을 짜야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갑판장이라는 사람이 우리를 보스턴으로 데려가서 신기한 인디안 아이들이라면서 사람들에게 보여 줄 거라고 말하는 걸 듣고는 더욱 결심을 굳혔다. 계속 기회를 엿보다가 3일째 되는 날 우리는 다시 우리의 보트를 타고 보스턴 보이에서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여러 번의 위기를 넘기고 결국 다시 샌타바버라 선교원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 니데버 선장이 찾아왔다. 내가 목에 걸고 있던 나침반을 내밀자, 선장은 말했다. "푸른 돌고래 섬에 갈 때 써야겠다." "언제 가실 건데요?" "곧 갈 거야." "저도 데려가실 거죠?" "한번 생각해 보자."
남은 여름 동안 니데버 선장을 만나려고 일주일에 한 번씩 해안으로 내려갔다. 어느 날 드디어 선장이 푸른 돌고래 섬에 타고 갈 배가 준비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배에 달 돛을 짜주겠다고 약속하고 섬에 갈 때 나를 데려가지 않을 거라면 비센테 신부님을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신부님은 니데버 선장처럼 무섭게 생기지 않아서 이모가 도망치지 않을 거라고 말했더니, 선장이 신부님을 모시고 와 보라고 했다. 나는 돛을 완성해서 비센테 신부와 함께 니데버 선장을 찾아갔다. 비센테 신부는 힘들어도 이모를 찾으러 같이 가겠다고 했고, 선장은 비센테 신부가 같이 가는 것을 허락했다. 나는 비센테 신부가 너무 고마웠다. 다음 주 금요일, 그들은 떠났다. 나는 그날 비센테 신부가 좋아하던 성당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비센테 신부가 뱃멀미에 시달리지 않고 푸른 돌고래 섬에 도착하기를, 카라나 이모를 찾아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푸른 돌고래 섬에서 카라나 이모를 찾아 선교원으로 데려왔는데, 이모가 이곳을, 혹은 우리를 싫어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다.
다음 날 우리는 멜론을 심기 위해 지토를 따라 계곡으로 갔다. 작업감독인 지토는 2년 전에 선교원에 왔는데, 근처 작은 부족의 추장 아들이었다. 지토는 선교원에 처음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불만이 많아서 계속 투덜거리고 있었는데, 인디언들은 모두가 지토를 친구로, 백인에 맞서 싸우는 전사라고 생각했다. 또 지토는 주먹이 돌처럼 단단하다고 해서 모두들 '돌손'이라고 불렀는데, 그날 돌손은 인디언들에게 탈출계획을 알렸다. "일요일 밤에 도망치는 거야. 열 시에 종이 울리면 젊은 사람만 한 사람씩 나오는 거야. 백인들은 우리 마을을 찾아와 우리에게 멋진 약속을 하고는 자기네 선교원으로 데려와 노예처럼 일을 시키고 있어. 내 말이 틀려?" 모두가 대답했다. "아니, 다 맞아." 정말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선교원 신부들은 우리에게 자기네 신을 믿으라고 강요하고, 일을 마구 시킨다. 돌손은 선교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에게 은밀히 말했다. "늙은 부인이 가지고 다니는 열쇠를 복사했어. 일요일 밤에 종이 울리면 숙소 문을 열어." 나는 돌손이 건네 준 열쇠를 숙소 내 침대 담요 밑에 숨겼지만, 나는 카라나 이모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지토를 따라 도망치지는 않기로 했다.
일요일 밤 종이 울리자, 나는 돌손이 준 열쇠로 숙소 문을 열었고, 다들 빠져나가고 나자 침대로 돌아가 열쇠를 담요 밑에 숨겼다. 아침에 바다에 던져 버릴 생각이었다. 아침이 되자 난리가 났다. 메르세드 신부는 내게 물었다. "아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아니?" "몰라요." "왜 떠났지? 잘해 주었는데." 바로 그때 코르도바 대장이 들어왔다. 주변에서 모여든 지원병을 지휘하는 우두머리로, 선교원을 보호한다면서 우리를 등쳐먹는 인물이었다. 코르도바 대장이 아이들의 행방에 대해 나를 다그쳤고, 메르세드 신부가 막아줘서 코르도바 대장은 돌아갔다. 그날 밤 나는 도망친 아이들과 카라나 이모를 위해 무카트 신에게 기도했고, 성모님에게도 기도했다. 아침이 되자 코르도바 대장이 다시 선교원에 와서는 메르세드 신부에게 나를 만나게 해 달라고 말했다. "이름이 뭐지?" "지아예요." "왜 같이 도망가지 않았지?" "곧 이모가 오실 거라서요." "이모가 안 오면 아가씨도 도망칠 생각이었나?" "전 안 갔어요.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요?" "아가씨, 인디언이 선교원 재물을 훔쳤어. 담요, 단지, 식량. 어디 숨었는지 아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코르도바 대장은 메르세드 신부의 저지에도 아랑곳 않고 부하들을 시켜 나를 강제로 요새로 끌고 갔다. 요새는 낮은 절벽 위에 있었고, 군인들은 나를 손바닥만 한 감방에 집어넣었다. 여자 감방의 간수인 고메즈 부인은 물 단지 하나와 옥수수 빵을 내려놓고 갔다. 나는 추워서 얼어 죽을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고메즈 부인이 다시 와서 말했다. "대장님이 네 마음이 바뀌었는지 물어보라고 하시더구나." "전 아는 게 없어요." 나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난 아무 말 안 하고 버틸 수 있어.'
다음날 고메즈 부인이 코르도바 대장 사무실로 나를 데려갔다. 대장이 말했다. "다시 묻겠다. 인디언들이 어디 있지?" "몰라요." "선교원에 있는 부인한테 물어봤는데, 남자 숙소와 여자 숙소의 문을 인디언이 도망치던 밤에 단단히 잠갔다는 거야. 그리고 작업장에 있는 늙은이가 열쇠 만드는 데 쓰던 쇳조각 하나가 없어졌다고 하더군. 혹시 돌손이 열쇠를 훔쳐 직접 열쇠를 만들어서 너한테 준 거 아니야?" "난 몰라요." 대장은 고문기구인 쇠장갑을 집어서 나사를 돌리며 나에게 겁을 주었지만 나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나는 다시 감방에 갇혔고 밤에 고기잡이에서 돌아온 만도가 찾아와 말린 고기를 쇠창살 사이로 몰래 주고 갔다. 6일째 되는 날 나는 다시 대장에게 불려갔다. "브라스 코리엔테스 선생이 그러는데, 자기네 목장을 가로지르는 개울 상류에 돌손 일행이 숨어 있다는군." 대장이 책상 서랍에서 물건 하나를 꺼냈다. "숙소 네 담요 밑에서 이 열쇠가 나왔어. 돌손 일행이 도망칠 수 있게 문을 열어 준 바로 그 열쇠." "네. 제가 그걸로 문을 열었어요." 바다에 버리려고 했는데 그럴 기회가 오기도 전에 들키고 만 것이다. 고메즈 부인이 다시 나를 감방까지 데려갔다.
아침이 되자 항구로 들어오는 니데버 선장의 보트가 보였고, 여자가 내리는 것이 보였다. 내가 이모를 큰 소리로 부르자 이모도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같이 온 비세테 신부는 나에게 왜 갇혀 있느냐고 물었다. 나의 간단한 설명을 들은 신부는 당장 코르도바 대장 사무실로 갔고, 다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모는 엄마의 젊었을 적 얼굴이었다. 이모도 내가 엄마와 닮았기 때문에 나를 한눈에 알아본 게 분명했다. 이모는 쇠창살 사이로 내 손을 꼭 잡았다. 이윽고 비센테 신부가 고메즈 부인과 함께 나타났고, 나는 두 사람과 함께 선교원으로 갔다. 뒤에서 이모가 데려온 개가 쫓아왔다.
이모는 침대에서 자는 게 익숙하지 않아 밤새 여러 번 일어나 맨바닥에 누웠고, 이모가 론투 아루라고 부르는 개는 주인 곁에 가만히 누웠다. 갈리고스 감독 부인은 이모가 바닥에서 자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개가 실내에서 자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다음날 밤에는 감독이 남자 몇 명을 데리고 와서 개를 간신히 꽁꽁 묶어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날 밤 이모는 마당에서 잤고, 개는 이모 곁에서 잤다. 이모와 나는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려웠다. 이모와 똑같은 부족 출신이지만 너무 어릴 때 엄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는 아는 단어가 몇 개 없었고, 그나마 알고 있던 단어도 잊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이모가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참고로 이모는 말과 조개와 멜론과 방직실을 좋아했지만 개와 함께 해안을 따라 걷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한편 메르세드 신부는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어 사망하고 말았다. 멕시코 시에 있는 본부는 비센테 신부를 선교원 임시 원장으로 임명했다. 마라테스타 신부가 나타나 원장 자리를 차지하기 전까지, 비센테 신부가 선교원을 돌보는 동안에 몇 가지 큰 변화가 있었다. 첫 번째 일은 고메즈 부인이 가져갔던 내 팔찌를 돌려받은 것이다. 비센테 신부가 두 번째로 한 일은 이모가 개와 함께 지낼 숙소를 만들어 준 것이다. 마당의 딱딱한 돌 위에 돗자리를 깔아 편하게 지낼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이모는 동이 틀 무렵, 일어나 담요를 잘 개서 숙소를 정돈한 다음 해안으로 내려가 조개껍질을 줍거나 조개를 잡고, 야생마들을 구경하거나 모래사장을 돌아다녔다. 사람들은 이모를 좋아하면서도 약간 이상한 사람으로 여겼다. 그리고 비센테 신부가 한 가장 중요한 일은 돌손 일행을 다시 돌아오게 한 것이다. 코레인테스 목장 위 협곡에 숨어 있던 돌손 일행을 잡아 오겠다는 코르도바 대장을 만류하고, 비센테 신부는 나를 데리고 돌손 일행을 찾아가서 설득하여 결국 선교원으로 돌아오게 했다.
비센테 신부가 선교원 원장이 되어 새 규칙을 정한 다음부터는 상황이 훨씬 좋아졌다. 우리는 하루 종일 작업할 필요도 없었고, 날마다 즐겁게 보냈다. 그런데 한순간에 모든 게 바뀌었다. 멕시코 시가 비센테 신부 대신 선교원을 관리하도록 마라테스타 신부를 보냈고, 비센테 신부는 몬터레이로 떠난 것이다. 새 신부는 메르세드 신부보다 더 늙은 것 같았다. 이제 우리는 더 힘들게 일하게 되었고, 새 규칙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돌손은 다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나쁜 변화는 바로 카라나 이모에게 찾아왔다. 마라테스타 신부는 이모에게 숙소에서 잘 것과 론투 아루를 벼룩 때문에 마당에서 지내게 할 것을 명령했다. 그날 밤 론투가 짓는 소리 때문에 아무도 잠을 잘 수가 없어서 결국 새 신부는 개를 다른 곳으로 치우라고 했고, 론투와 이모는 둘 다 사라졌다.
다음 날, 정오에 나는 점심을 거르고 이모를 찾아 나섰고, 바닷가 동굴에서 카라나 이모를 찾아냈는데, 이모는 론투를 쓰다듬으며 독특한 방언으로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우리끼리 만든 소리로 이모에게 인사했다. 그곳에서 이모를 보니 나는 이모가 개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방에서 결코 잠을 이룰 수 없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다음 날 다시 찾아갔을 때 카라나 이모는 창백한 얼굴로 아프다는 몸짓을 했다. 선교원에는 훌륭한 여자 주술사도 있고, 여러 가지 병을 치료해 주는 할아버지도 있었지만, 동굴에 있는 카라나 이모를 선교원까지 데려갈 방법이 없었다.
어느 화창한 봄날, 돌손은 마라테스타 신부의 새로운 운영방식을 싫어하는 젊은 사람들을 모아 북쪽으로 떠났다. 만도도 그들과 함께 갔다. 만도는 떠날 때 이렇게 말했다. "몬터레이에는 양키 배가 많으니까 내가 일할 만한 배를 찾을 수 있어." 그렇게 만도는 세상을 정복하러 나섰다. 그날 밤, 카라나 이모는 병이 더 심해졌다. 나는 모닥불을 붙이고 이모 곁에 앉아 손을 잡아 주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다시 동굴로 가니, 이모가 나에게 차가운 손을 내밀었다. 이모는 나를 처음 만날 때부터 하고 있던 목걸이를 내 목에 걸어 주었다. 조금 있으니 이모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모가 추운 곳에서 자다가 감기에 걸려서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이모는 자신이 태어나 거의 한평생을 살아온 푸른 돌고래 섬을 그리워했다. 그 그리움이 사무쳐 이모는 병이 들었을 것이다. 다음 날 저녁, 미사가 끝난 뒤 우리는 이모를 선교원 근처에 묻었다. 개는 내 옆에 엎드려 있었다. 이제 나도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다음날 새벽 선교원을 떠났다. 나는 론투 아루에게는 말로 명령할 수 없어서 목걸이에 밧줄을 맸다. 밖으로 나와 문을 닫는 데 무슨 소리가 났다. 마라테스타 신부였다. "일찍 일어났구나." "네. 갈 길이 멀거든요." "어디로 갈 건데, 아가씨?" "오래전에 살던 곳으로요. 오래전에 제 발로 왔다가 이제 제 발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동안 제게 베풀어주신 것에 고마워하고 있어요." "그걸로 충분하지 않아?" "충분해요. 하지만 하느님은 산에도 계세요. 그래서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거예요." 그러자 마라테스타 신부가 천천히 다가와 손에 들고 있던 책을 주며 말했다. "잘 가거라." 나는 해안으로 내려갔다. 고향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수백 킬로미터도 넘는 길이었다. 그래도 즐거웠다. 여름이 막 시작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