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감동시킨 위대한 글벌레들
김문태 지음 | 뜨인돌어린이
시로 농민의 아픔을 그린 정약용
1819년(순조 19년), 내 나이 벌써 쉰여덟 살이 되었다. 난 전라도 강진에서 18년간의 유배 생활을 마치고 작년에 비로소 집으로 돌아왔다. "할아버지, 서당에 다녀왔습니다." 올해 열세 살 난 손자 대림이의 목소리가 밝고 명랑하다. "춥지? 그래 요즘 글공부는 잘되니?" "아버지께서 숙제를 너무 많이 내주셔서 어떤 땐 좀 힘들어요." "너를 많이 사랑해서 그런 것이란다. 네 아버지는 이 할아버지한테 그런 사랑을 못 받았거든. 네 아버지가 열아홉 살이고, 네 작은아버지가 열여섯 살 때에 내가 귀양을 갔단다. 그러니 살갑게 정을 나누진 못했지. 배우긴 했을지 몰라도……." "떨어져 살았는데, 어떻게 할아버지께 배울 수 있었죠?" "편지로 가르쳤지. 사실 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벼슬길에 나갈 수 없는 처지여서 글공부에 의욕이 없었단다. 내가 나라에서 금지하는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다는 이유로 귀양을 갔기 때문이지."
"그런데 글을 왜 가르치려고 하셨어요?" "글공부를 해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도리를 깨우칠 수 있기 때문이지." "아버지는 글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처음에는 의욕이 없었지만 내가 보낸 수많은 편지를 읽어가면서 나중에는 마음을 다잡았지." "할아버지께선 엄청나게 많은 책을 쓰셨다고 들었는데, 왜 그렇게 많은 글을 쓰셨어요?" "나는 한때 암행어사로 지방을 돌아보게 되었는데, 욕심 많은 관리들 때문에 백성들이 너무도 형편없이 사는 걸 보고, 그때부터 그런 농민들의 모습을 시로 써서 알리고자 했단다. 그 후 시골로 귀양을 가게 되어 주변을 관찰해보니, 그동안 못 보고, 못 듣고, 못 느끼던 것들이 한꺼번에 다가오더구나. 시인은 그 시대의 잘못된 점을 시에 담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서 세상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지. 모든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으로."
"할아버지! 그럼 작년에 다 쓰셨다는 『목민심서』도 그런 책인가요?" "아무렴. 관리들이 백성들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를 일러둔 책이지. 재작년에 쓴 『경세유표』도 정치, 경제, 사회 제도를 고쳐서 강하고 잘사는 나라를 만들려고 쓴 책이고, 올해 쓴 『흠흠신서』 역시 사람의 생명은 귀한 것이니 형벌을 담당하는 관리들에게 신중하게 하라고 당부한 글이지." "그런데 할아버지는 어려서부터 글을 잘 쓰셨어요?" "나의 어머니, 그러니까 네 증조할머니께선 내가 아홉 살 때 돌아가셨단다. 난 너무도 슬퍼서 힘들어 하다가 책에 푹 빠져들었어. 『자치통감』과 『십팔사략』 같은 역사책과 사서삼경을 읽고 그 책들을 본떠서 본격적으로 글을 짓기 시작했지. 그 글을 모아 지은 책이 『삼미자집』이란다. 그 후 난 스물두 살에 성균관에 들어가 체계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스물여덟 살에 대과에 합격해 벼슬길에 나아가기 전까지 과거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책을 읽고 생각하고 정리하며 쉼 없이 노력했단다. 그때 내가 생각하는 걸 조리 있게 표현하는 글 솜씨가 많이 늘었단다. 난 일 년에 네 번 보는 반제라는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정조 임금님께 상을 받기도 했단다."
"햐! 역시 우리 할아버지세요. 그런데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비밀이 뭐예요?" "비밀? 글쎄. 우선 진실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 핵심적인 내용을 콕 집어내야 한단다. 그 다음에 풍부한 내용과 깊은 뜻을 군더더기 없이 표현하는 게 좋은 시를 쓰는 비결이지. 장수와 병사가 칼로써 세상을 지배한다면, 학자와 작가는 글로써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야. 알겠니?" "네! 저도 멋진 글을 써서 모든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거예요." "우리 대림이가 다 컸구나. 이렇게 어른스런 말을 하는 걸 보니." 녀석의 얼굴이 발그레해진다.
일기는 나의 힘 이순신
1597년(선조 30년) 봄, 일본군이 쳐들어와 우리나라를 짓밟은 지 벌써 5년이나 되었다. 그러나 나는 올 초 나의 공로를 시샘하는 자들의 모함으로 수군통제사 자리에서 쫓겨났고, 이 어려운 때에 나라를 위해 어떤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슬프다. "할아버진 누구세요?" 정자에 앉아 무술 연습을 하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아이들이 나를 발견하고 어느새 내 곁에 모여들었다. "그냥 동네 할아버지란다. 너희들은 왜 이 좋은 봄날에 놀러 다니지 않니?" 아이들이 화난 얼굴로 목소리를 높인다. "지금이 놀러 다닐 때예요?" "왜놈들이 우리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데 놀다니요?" "미안하구나. 그런 줄도 모르고." "저희들은 왜놈들이 쳐들어온 뒤로부터 우리 손으로 우리나라를 지키려고 작년부터 매일 이렇게 모여서 무술 연습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부모님께서는 이런 어수선한 때에 왜 서당은 다니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너희들의 생각은 기특하다만 잊고 있는 게 하나 있구나. 나라를 지키는 장수가 되기 위해서는 글공부, 마음공부, 무술 훈련을 다 잘해야 한다. 장수는 슬기롭게 머리를 쓰고, 백성과 부하를 먼저 생각하며, 몸을 던져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거든."
이때 전쟁터에서 나를 보좌하던 송희립 군관이 말을 타고 나타났다. "장군님! 장군님의 누명이 벗겨져서 죄를 사한다는 사면령이 내려왔습니다요." "그래? 그렇다면 이 무명옷을 입고라도 다시 거북선을 타고 나가 왜놈들을 무찔러야지." "언제든 명령만 내리십시오." 나와 송 군관의 대화를 듣고, 내가 이순신임을 알아차린 아이들이 마구 환호성을 지르더니, 그중 한 아이가 말했다. "저는 장군님처럼 훌륭한 장수가 되고 싶은데, 글공부는 정말 꼭 해야 하나요?" 그래서 글공부로 얻은 지혜를 이용하여 왜적을 물리쳤던 얘기를 해 주었더니 아이들이 박수를 쳤다.
이때 송 군관이 거든다. "우리 장군님은 시도 많이 지으시고, 전쟁터에서도 매일 일기를 쓰세요." "네에? 전쟁 중에 일기를 쓰신다고요?" "난 일기를 쓰면서 오늘 전투에서 승리하고 패배한 까닭이 무엇인지, 지휘관의 임무를 다했는지, 사람으로선 제대로 살았는지 등을 돌이켜보았어. 그리고 화나고 슬픈 일이 있을 때, 남에게 쉽게 할 수 없는 말이 있을 때, 일기에 자기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마음도 편해지거든."
"지금도 그 일기를 갖고 계세요?" "아무렴. 보여줄까?" 아이들과 함께 집에 돌아와 일기장을 꺼내어 보여 주었다. "우와! 왜놈들을 모조리 무찌르셨네요?" "야! 적의 배가 13척이나 침몰했대." 승리의 기록을 보며 아이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감탄한다. "오 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마치 생생한 전쟁의 현장을 보는 것 같지 않니? 훌륭한 장수라면 전투 경험을 기록해서 나중에 되돌아볼 수 있는 자료를 만들어 놔야 해. 일기는 바로 자신의 역사책인 셈이야. 사실 이날 전투는 아군의 대승리였지만, 내가 좀 더 시간을 갖고 치밀한 작전을 세운 뒤에 적들을 공격했다면 우리 편의 희생을 줄였을 거야. 이날의 일기를 볼 때마다 다음부턴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곤 하지." 아이들이 내 말을 가슴으로 느끼는 듯하다. "장군님같이 훌륭한 분도 자신을 꾸짖고 반성하시는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마당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이렇게 평화로움만 누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갑옷과 장군 칭호가 없으면 어떤가. 지금 바로 전쟁터로 나가야겠다. 백의종군이다.
편지로 마음을 그린 화가 고흐
내 나이 어느덧 35살. 네덜란드 출신인 내가 좀 더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프랑스에 온 지도 2년이 됐다. 난 그간 파리에 머물다가 복잡한 도시생활이 싫어져서 올 2월, 남쪽에 있는 이곳 아를에 왔다. "어머, 아저씨! 노란 집 아저씨 맞죠?" "아니, 너 룰렝 씨 딸 아니니?" 난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됐지만, 소박하고 꾸밈없는 몇몇 사람들을 만났다. 그중에서도 우편집배원인 조제프 룰렝 씨 가족과의 만남은 더욱 특별하다. 그들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그 집 식구들과 친해졌고, 이 소녀 역시 나를 마치 삼촌 대하듯이 한다. "우아! 어쩜 이렇게 아름답게 그릴 수 있죠?" "칭찬해주니 고맙구나." "그런데 왜 아저씨 그림엔 노란색이 많아요?" "그림은 자신을 표현하는 거야. 화가마다 세상을 달리 보고, 그걸 달리 표현하지." "그럼 아저씬 그림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거네요. 그럼 혹시 그림으로만 마음을 표현해요?" "난 그림뿐이 아니고 편지로도 내 마음을 표현해왔어."
"네에? 편지요?" 소녀는 편지라는 말에 얼굴이 금세 굳는다. 며칠 전 술집에서 만난 룰렝 씨는 한숨을 쉬며 나에게 고민을 털어 놓았다. 룰렝 씨는 자기의 직업을 자랑스러워했으나, 요즘 사춘기에 접어든 딸이 우편집배원인 자신을 부끄러워한다며 슬퍼했다. "난 따스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전해주는 네 아버지 같은 우편집배원에게 무척 감사하며 살고 있어. 그 일이 부럽기도 하고." "전 아저씨 같은 미술가가 부러워요. 솔직히 아저씨가 우리 아빠였음 좋겠어요." "사람들은 미술가의 어려운 삶과 창작의 고통에 대해선 아는 게 없어. 눈에 보이는 작품의 아름다움만을 생각하기 때문이지. 난 젊었을 때 벨기에에 있는 브뤼셀 미술학교에 등록했는데, 학교에서는 가르치는 대로 똑같이 그리지 않은 독창적인 나의 그림은 무시하더군. 그래서 난 미술학교를 그만두고 나만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 특히 정직하고 진실하게 사는 농민들을 그렸지."
"어떻게 그려야 멋진 그림이 돼요?" "농부를 그리려면, 마치 자기가 농부인 것처럼 보고 생각해야지. 난 1885년에 그린 〈감자 먹는 사람들〉이 좋아. 음식과 노동의 거룩함을 표현하려고 노력했거든. 난 그 그림으로 이름이 좀 났지." "그럼 아저씨 그림은 잘 팔려요?" "사람들이 내 그림의 예술성을 아직 모르고 있어서 내가 내 그림을 세상에 내놓지 않고 있지.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날 실패한 사람 취급하는 게 견디기 어려워." "아저씬 힘든 걸 어떻게 견디세요?" "어려서부터 내겐 책이 큰 힘이 돼주었지. 낮엔 독서하거나 그림을 그리고, 밤엔 편지를 썼어. 난 힘들고 지칠 때마다 가족들에게 편지를 쓴단다. 편지는 꾸밈없는 마음을 표현하는 화판과 같아. 또 내가 하고 있는 일과 세상에 대한 내 생각을 당당하게 밝힐 수도 있고. 여기 동생에게 보낼 편지가 있는데, 한 번 보겠니?" 호롱불 곁에서 편지를 읽은 소녀가 감동적인 표정을 짓는다.
"그럼 편지는 어떻게 써야 해요?" "우선 첫머리에 받을 사람의 이름을 쓰고, 안부 인사를 해. 날씨나 상대방의 건강을 묻고, 하고 싶은 말이나 용건을 쓰면 돼. 그리고 끝에 작별 인사를 하고, 날짜와 서명을 하면 마무리되지. 만약 빼먹은 게 있으면 '추신'이라는 말을 쓰고 덧붙이면 되고." "어렵진 않네요." "그럼. 그러나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내 가슴속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겸손한 마음,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어떠한 고통도 이겨내려는 꿋꿋한 마음,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순수하고도 뜨거운 마음……. 그림이나 편지나 마음을 표현하는 건 똑같지. 그래서 내겐 그림과 편지 둘 다 소중하고, 내 편지를 전달해주는 네 아버지를 난 존경해. 네 아버진 사람들에게 기대와 희망과 꿈을 전해주는 분이지." 고개를 숙인 소녀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어둠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나지. 가족만큼 빛나는 별은 없어." 고향 떠난 나그네의 밤이 풀벌레 소리와 함께 깊어간다.
호소문으로 환경을 지킨 레이첼 카슨
"자연을 살리자고, 이 연사, 강력히, 강력히, 외칩니다!" 내 조카의 아들인 로저 크리스티가 연설을 마치고 의젓하게 단상에서 내려온다. 로저의 할머니와 엄마인 내 언니와 조카는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고, 난 로저를 친손자처럼 키우고 있다. 1963년, 화창한 봄날이다. 워싱턴 D. C.에서 열린 〈전국 어린이 웅변대회〉에 참가한 로저와 난 열차를 타고 메릴랜드 주의 실버스프링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올해 열한 살 난 로저가 내게 묻는다. "이모할머닌 사람들 앞에서 말씀도 또박또박 잘하시잖아요. 이모할머닌 저만할 때부터 그렇게 씩씩하셨어요?" 사실 난 몇 년 전부터 유방암으로 고생하고 있다.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몸으로 오늘도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환경을 지키기 위해 굳건히 버티고 서 있을 따름이다. "글쎄다. 난 씩씩하진 않았지만, 자신은 있었단다."
"어떻게 하면 자신이 생겨요?" "음. 꿈을 갖는 거야. 난 어렸을 때 자연을 만나는 게 가장 행복했어. 그리고 책도 많이 읽었지. 난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단다. 또 난 학교에 가기도 전에 아버지를 위한 열 쪽짜리 그림책을 만들었단다. 숲속에서 만난 친구들을 크레파스와 색연필로 그린 거야. 그리고 몇 년 뒤에는 그때 아주 유명했던 〈성 니콜라스〉라는 잡지를 보면서 다른 어린이들의 글도 많이 읽었지. 그 잡지에는 글 솜씨를 겨루는 리그가 있었는데, 나도 몇 번 글을 보내서 상을 받았단다." "우아, 정말요? 그럼 그 뒤에도 계속 글을 쓰셨어요?" "난 문학을 공부하려고 대학에 갔는데, 어느 날 생물학에 재미를 느껴서 그때부터 쭉 해양생물학 공부를 하게 됐단다. 하지만 가난 때문에 박사 과정을 마칠 수는 없었어. 난 돈이 필요해서 몇 군데의 잡지사에 내가 쓴 시를 보냈는데,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어. 그런데 다행히 1935년 어업국에서 연락이 왔어. 〈바닷속 로맨스〉라는 해양생물에 관한 칠 분짜리 라디오 프로그램의 대본을 써 달라는 거였어." "와, 잘됐네요."
"그 이듬해엔 어업국 수상생물학자로 뽑혔어. 난 야생동물 관리국 홍보실의 수석편집자가 돼서는 자연보존활동 시리즈를 제작했지. 인간이 자연보호 구역에서 잘못해서 일어나는 새 서식지 감소, 오염, 전염병, 불법사냥 같은 문제들을 파헤쳤어." "에이, 그건 이모할머니 이름으로 나가는 글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난 1951년에 바다의 신비로움과 핵 쓰레기를 버려서 생기는 바다오염문제를 파헤친 『우리를 둘러싼 바다』라는 책을 써서 그 책으로 좀 유명해졌지. 그 이듬해 글을 더 열심히 쓰기 위해 공직에서 퇴직했고, 작년에 『침묵의 봄』이라는 책을 썼는데, 농림부에서 해충을 없애기 위해 아주 독한 화학약품을 써서 우리 자연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를 세상에 알린 책이란다. 그 책 때문에 한 살충제 회사는 나를 법원에 고소했지만, 법원은 내 자료가 정확하다며 내 손을 들어줬어. 그러나 곧이어 미국 농화학 협회에서는 내 글이 잘못됐다는 걸 알리려고 소책자를 만들었어. 여기 다음 달 청문회에 나가서 말하려고 뽑아놓은 『침묵의 봄』 원고가 몇 장 있는데, 한번 읽어보겠니?"
살충제 때문에 동물들이 처참하게 죽어가는 내용의 원고를 읽던 녀석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이런 글을 왜 쓰는지 이제 알겠니? 모든 생물들이 제대로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우리 인간들도 잘살 수 있는 거란다." "이모할머니! 저도 세상에 호소하는 글을 써서 자연을 보호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자연을 진지한 마음으로 대해야 하고, 그 다음엔 자연을 정밀하게 관찰하고, 통계를 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생물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있어야겠지." "이모할머닌 글 쓰는 게 행복하세요?" "글쓰기는 외로운 모험이야. 난 내가 쓴 글을 읽어보고 좋은 글이 되도록 계속 고쳐 쓰는데, 무척 힘들 때가 많단다. 하지만 난 글을 쓸 때 마음이 제일 편해.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으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삶을 바꿀 수 있다면 그보다 신나는 일이 또 어디 있겠니?" 기차가 실버스프링에 거의 다 왔다. 그동안 세상의 악과 맞서 싸우느라 몸은 몹시 지쳤지만, 미래의 희망인 로저 같은 어린이들이 있기에 마음만은 상쾌하고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