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이 누나
권영상 지음 | 사계절
돌아가신 아버지 / 엄마의 입원
보리가 패는 4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네 살 무렵부터 앞을 보지 못했다는 형의 눈을 고쳐주기 위해 힘든 농사일에다 고기잡이 일까지 마다하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더 이상 형에게 '세상 좋은 빛'을 보여 주지 못하고 우리 오동나무집을 떠나고 말았다. 아버지를 잃고 나서 우리 가족은 저마다 슬픔에 빠졌지만, 누구보다 가장 슬픈 건 빛을 잃은 형이었다.
내가 다니는 송정초등학교는 집에서 10여 리나 떨어져 있고, 누나는 훨씬 먼 읍내 중학교에 다닌다. 아침에 누나가 학교에 간 지 10여 분 되었을 때, 전쟁통에 다쳐 다리를 저는 먼 친척인 바가지 아저씨가 집으로 와서, 학교 가는 둥글이 누나와 얘기가 다 끝났다며 사랑방에 사람을 들이면 어떻겠냐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어린 누나에게 그런 말을 했느냐며 딱 잘라 거절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벌써 누나가 와 있었다. "학교 그만뒀어요. 사랑방에 사람도 칠래요." 누나의 말소리는 단호했다. "사람? 누구 마음대로!" 그러나 엄마 말엔 아무 힘이 없었다. 아버지는 공부 잘하는 누나를 늘 대견스러워했다. 그런 누나가 학교를 그만두다니! 그 날 밤, 엄마가 가슴을 붙잡고 괴로워하며 쓰러졌다. 누나가 바가지 아저씨한테 부탁해서 택시를 불러, 엄마를 태우고 병원으로 갔다. 엄마는 병원에 입원을 하고 말았다. 누나는 계속 병원과 집을 오가다가, 하루는 형을 병원에 데리고 갔고, 또 며칠 뒤에는 나도 병원에 데리고 갔다. 집에 오는 길에 나는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는 왜 학교 그만뒀어? 공부도 잘했으면서." "우리 신해, 신구도 돌봐야 하고, 또…… 아버지 안 계시는 우리 오동나무집을 누군가 지켜야지. 엄마가 됐든 누나가 됐든."
고생하는 누나 / 소설가가 되겠어
밤에 바가지 아저씨가 술에 취한 채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둥글아, 너도 알다시피, 니 엄마 입원해 있는 병원 원장이 이 아저씨 친구잖냐? 고생하는 네가 불쌍해 내가 병원비 뚝 깎아 달라고 했다. 너 미안하다만 내 술값 좀 만들어……." 아저씨는 무슨 일만 생기면 그걸 빌미로 돈을 얻어 내려고 했다. "일 있을 때마다 제가 드리잖아요. 아저씨 고마운 건 알고 있으니 오늘은 돌아가세요." 누나는 그 말만 딱 하고는 일어섰다. 바가지 아저씨는 할 수 없이 그냥 갔다. 누나는 엄마 옷장을 열고 신문지에 싼 것을 꺼냈다. "누나, 그게 뭐야?" "땅재 논 등기." 한숨을 쉬던 누나가 말을 이었다. "엄마를 낫게 해 드리려면……." 다음날 누나는 결국 신문지에 싼 걸 들고 나가 돈으로 바꿔 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누나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 다음 날 누나는 읍내에 나갔다가, 읍내 병원에 며칠 가 있던 형과 함께 돌아왔다. 형 손에는 공책이 들려 있었다. "누나, 엄마 언제 온대?" "오래 기다려야 될 것 같더라. 심장이 안 좋다는 말만 들었어. 자, 신해는 형 글씨 공부 시켜 주고……." 그러고 보니 형이 들고 있는 새 공책은 글씨 쓰기를 위한 거였다. 누나는 논으로 나갔다. "신해야 이제 너한테 글씨 배우기로 했다." 형이 말했다. 나는 연필 쥔 형의 손을 꼭 잡고, 아주 큼직하게 '엄'자와 '마'자를 써 보였다. 고개를 끄덕이던 형이 저 혼자 '엄마'를 썼다. "글씨가 아니고 그림이다, 형!" "글씨 좀 안다고 까불지 마." 형은 어렵게 더 써 보다가, 갑자기 연필을 내던졌다. "글씨 공부 따위 해 봐야 아무 소용없어." 그 날 저녁, 형이 보이지 않았다. 누나가 말했다. "형한테 글씨 공부 좀 가르쳐 주잖구." "해 봐야 아무 소용없다면서 연필을 분질렀어. 형 눈 못 고치면 형은 영영 책도 못 읽는 거야? 글씨도 못 읽는 바보가 되면 어쩌지?" 그때 위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났다. "뭐어? 바보라구! 책 못 읽으면 바보냐?" 형이 오동나무에 올라가 있었다. "형한테 미안하다고 해. 얼른!" 누나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미안해, 형. 내가 잘못했어!" "신구야! 신해가 빌잖아. 어서 내려와." "떨어져 죽을 거야. 다 거짓말이야. 내 눈 고칠 수 있다는 말도 모두." "이 누나가 아버지 대신 어떻게 해서든 네 눈은 고쳐 줄 거다." "누나가?" 형이 내려왔다. 아직도 울음이 진정되지 않은 형을 누나가 껴안았다. "눈 고쳐 주면 나…… 꼭 소설가가 되고 말 거야." "그래. 우리 신구 꼭 훌륭한 소설가가 될 거다." 모깃불이 밤하늘을 향해 솔솔 오르고, 논에서 개구리가 울었다.
장마 / 기차
오늘도 형에게 글씨를 가르쳐 주었다. 바다, 별, 해, 불, 이슬, 아버지. 저번과는 달리 형은 글씨 쓰기에 의욕을 보였다. 저녁에 다락논에 물꼬를 열어 놓아야 한다며 맨발로 빗속으로 나간 누나가, 잠시 후 바가지 아저씨 등에 업혀 왔다. "논두렁 아래 쓰러져 있더라. 느들이 힘든 누나 좀 도와주지 못하고……. 아저씨가 느이 논 물꼬 열고 올 테니, 깨거든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라." 바가지 아저씨가 절름거리며 나갔다. 형과 나는 누나를 방에 눕히고 나서, 부엌으로 나가 아궁이에 불을 지펴 처음으로 누나를 위해 죽을 쑤었다. 12월로 들어서면서부터 눈이 왔다. 아직 방학이 되려면 멀었다. 아침에 나는 누나가 우물물을 길어 오는 우물가까지 눈을 치우다가, 종구 아저씨가 바가지 아저씨에게 살기가 힘들어 도계라는 곳에서 광부일을 하기로 했으며, 다음 달에 이사할 거라고 얘기하는 걸 들었다. 도계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종구 아저씨의 마음은 이미 우리 버드실에서 멀리 떠나가 있었다.
아침에 학교에 들어서자, 교실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오늘 기차가 온다는 것이다. 다섯째 시간 공부가 막 시작될 때, "기차 온다!"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우리는 잽싸게 교실을 뛰쳐나가, 철둑길을 향해 달음박질쳐 갔다. 달려가던 기차가 기찻길 옆 너문집 곁에 멈췄다. 기차는 대숲집 기왓등보다도, 바닷가 죽도보다도 컸다. 기차 구경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형에게 내가 본 기차를 설명했다. "나도 볼 수 있었으면." 형은 머리칼을 꾹 움켜잡았다. "누나가 좋은 안과 병원을 알아보고 있어. 서울 사시는 고모할머니라는 분한테." 누나가 안방에서 뜻밖의 말을 했다. "서울에 있는?" 형이 소리쳤다. "응" 형보다 내가 들떴다. 그리고 며칠 뒤에, 경포대 해수욕장까지 기찻길이 연결되었고, '경포대역'이라는 팻말과 함께 신식 철도역 건물이 세워졌다.
누룽지죽 / 사랑방 경섭이 아저씨 / 볼우물이 있는 순지
엄마가 병원에 입원한 지 반 년이 훨씬 넘었다. 겨울은 길고 길었다. 저녁을 먹고 난 뒤, 누나가 구멍난 양말을 꿰매며 말했다. "사랑방에 하숙 손님이 오실 거다. 포도밭을 만든다더라. 앞으로는 포도 같은 특수 작물을 재배해야 농촌도 잘살 수 있어. 누나도 닭을 쳐 볼까 해." 그 후 봄이 왔고, 엄마가 퇴원해서 집으로 왔다. 그리고 이틀 뒤, 온다던 사랑방 아저씨가 파란색 삼천리 자전거를 타고 왔다. 자신을 오경섭이라고 소개한 아저씨는 선물이라며 형에게는 라디오, 나에게는 하얀 볼펜 한 자루를 주었다. 경섭이 아저씨는 포도밭에다 아저씨가 살 집을 지을 거라고 했는데, 경섭이 아저씨는 공부도 많이 했고, 서울에서 회사도 다녔다고 한다. 나는 짬만 나면 경섭이 아저씨가 일구는 포도밭으로 가서, 아저씨의 얘기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벽돌집이 다 지어지자, 경섭이 아저씨는 그 집으로 이사했다. 섭섭해 하는 형에게, 아저씨가 곧 서울 큰 병원에 형을 데리고 가기로 했다고 누나가 말해 주었다. 경섭이 아저씨가 이사 간 다음날, 우물가 살구나무집 종구 아저씨도 끝내 이사를 갔다.
며칠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비 내리는 날, 누나 심부름으로 우물가에 물을 길러 갔을 때, 파란 비닐우산을 쓰고 양 볼에 볼우물이 진 여자애가 우물가에 서 있었다. "너 여기 사니? 나는 순지야. 수원에서 이사 왔어." 살구나무집으로 이사 온 아이였다. 순지의 새까만 눈 안에 수줍어하는 내가 있었다. 며칠 후 드디어 형이 서울로 가게 됐다. 경섭이 아저씨가 와 있었고, 모레 열 시 버스라고 누나가 차편을 알려 주었다. 형은 기차를 타 보고 싶어 했지만, 서울까지 가는 데 버스는 여덟 시간이 걸리고, 기차는 열두 시간이나 걸린다고 했다. "서울에 사시는 고모할머니가 그쪽에서 처리할 일을 해 주신댔어요. 예약하는 데 비용이 든다 해서 돈도 삼만 원 보냈어요." "예약하는 데 무슨 비용이? 그 돈이면 황소 한 마리 값인데……." 경섭이 아저씨는 자꾸 고개를 저었다.
이틀 뒤, 형은 아침 일찍 일어나 새 옷을 입었다. "꼭 눈 떠 가지고 오너라." 엄마는 한참이나 형을 껴안고 울었다. "형! 꼭 눈 떠 가지고 와!" 나는 형을 향해 소리쳤다. 우물가로 나가니, 순지가 나와 있다가 경포대역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 순지와 나는 새로 지어진 경포대역까지 걸어갔다. 전근 오신 순지 아빠라는 역원 아저씨에게 나는 인사를 했고, 순지 아빠는 우리에게 주스를 사 주고는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다. "근데 말이다. 조금 전 뉴스에서, 버스가 굴러 사람들이 다쳤다 그러더라. 대관령이랬지?" 나는 정신없이 집을 향해 뛰었다. 누나랑 병원으로 찾아가 보니, 다행히 경섭이 아저씨와 형은 몇 군데 가벼운 상처만 난 상태였다. 그 뒤로 형은 버스나 기차 타는 걸 무서워했고, 엄마는 형의 일로 충격을 받아서 그런지 또 아팠다. 누나는 엄마를 읍내 명주병원에 입원시켰다.
경섭이 아저씨네 포도밭
그 날 이후로 형은 말수가 적어졌고, 좀체 바깥을 나다니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나서 형은 뜻밖에도 뭘 사러 간다며 솔밭말로 갔다. 누나와 함께 양계장 짓는 데 필요한 흙벽돌을 찍고 있는데, 방송 소리가 났다. "아, 여기는 동사무소입니다. 지금 사무소 종각 꼭대기에 오동나무집 눈먼 아가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고 애를 먹이네요. 누구든 이 방송 듣는 대로 빨리 데려가 주세요." 누나가 말했다. "신구인 모양이다." 자전거를 타고 누나와 나는 달려갔다. 동사무소 앞 높은 종대 위에 형이 한 손으로는 라디오를 안고 한 손으로는 종대의 사다리 칸을 위태롭게 잡고 있었다. 누나와 내가 형에게 내려오라고 울며 소리쳤지만 형은 죽겠다고 아래쪽을 향해 소리치며 울었다. "니는 죽고 싶어 죽겠지만, 그라믄 동장인 나는 모가지다." 동장 아저씨의 말에 누나가 덤벼들었다. "아저씨 동장 모가지가 그렇게 중요해요? 내 동생 목숨은 아저씨의 동장 자리보다 몇 백 배나 귀하다구요." 동장 아저씨가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고, 그제야 형이 내려왔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앞 우물가에 경섭이 아저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형이 라디오를 땅에 놓고 경섭이 아저씨에게 안겼다. "라디오 속엔 여기보다 더 큰 세상이 있다. 그 세상에서 빛을 찾아라." 경섭이 아저씨가 형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 날 밤, 형과 나는 경섭이 아저씨 집으로 가서 함께 포도제를 지냈다. 형과 나는 아저씨를 따라 포도 이랑마다 촛불을 켰고, 아저씨는 형과 나에게 세상을 밝힐 수 있는 촛불 같은 사람이 되라고 했다. 형이 행복한 표정으로 그러겠다고 했다.
백 스무 마리의 오동나무 / 돌아온 소도둑 비작이
6학년의 마지막 겨울 방학이 다가오고 있었다. 형은 마음을 달래러 이모 집에 가서 아직 오지 않았다. 누나가 뜨개질하던 손을 멈추고 말했다. "저번에 신구 눈 고치러 서울에 사는 고모할머니한테 보낸 돈으로 병아리를 사는 게 어떨까? 누나도 많이 생각해 봤는데, 눈을 고친다고 해도 겨우 그 돈으로 쉽게 고칠 수 있겠니?" 누나의 눈꺼풀이 순간 떨렸다. "형 눈 고치는 걸 잠시 뒤로 미루는 거라면, 누나 생각이 괜찮을 것 같아." 내 대답에 누나는 큰 힘을 얻는 모양이었다. 이모네 가 있던 형이 돌아왔고,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읍내 병원에 다녀오는 누나를 길에서 만났는데, 어깨에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더니, 서울에 계신 고모할머니에게 연락이 전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전화도, 편지도 소용이 없단다. 누나의 희망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 날 밤, 한동안 잘 보이지 않던 바가지 아저씨가 술에 취해 우리 집에 와서는, 취직이 되어서 버드실을 떠날 거라고 말하고는, 가려다가 누나에게 귀엣말을 했다. "읍내에서 느이 밤골 이모부를 만났는데, 너희 엄마 고모 되는 분 있잖냐? 사업하다 망해서 종적을 감췄다더라." 다음 날 누나는 우리 집의 상징이던 오동나무를 팔았다. 그리고 그 날, 누나는 읍내로 가서 병아리 120마리를 차에 싣고 돌아왔다. 누나는 뒷방에 자리를 걷고 병아리를 풀었다. 형을 바라보며 누나가 말했다. "120마리의 오동나무다. 모이도 네가 주고 잘 키워 봐라." 오늘 형에게 '120마리의 오동나무'를 맡긴 걸 보면, 누나는 형 자신이 숨은 빛을 찾아내기를 바라는 게 분명했다. 가만히 있던 형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누나, 나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마. 아버지가 계신대도 내 눈 고치는 건 어려웠을 거야." 그 후로도 서울 고모할머니한테서는 영영 소식이 없었고, 병아리들은 정말 잘 컸다.
빛나는 졸업식
"바가지 아저씨 이사 가셨다." 졸업식 예행연습을 하고 집에 돌아오자 누나가 말했다. "종구 아저씨가 저번에 왔었는데, 그 아저씨 돈 번다는 자랑에 떠나실 결심을 더 굳힌 모양이더라." "술값 술값 하던 바가지 아저씨, 이제 술 한없이 마시게 생겼네 뭐." 누나가 교복이 든 종이 가방을 내놓았다. 형 보기가 미안했지만, 나는 들뜬 마음으로 교복을 입었다. "형, 이제 나 중학생 된다!" 순간 형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좀 전에 바가지 아저씨보고 네가 한 말, 귀에 거슬리는구나. 얼마나 사는 게 괴로웠으면 맨날 술을 마시며 주정을 했겠어? 불편한 다리로 돈벌이하기도 어려웠을 거 아냐? 그런 마음도 못 헤아리고. 중학생이 되면 뭐 해?" 형은 꼿꼿이 서서 꽤 길게 말했다. "미안해, 형! 늦었지만 이 교복, 형이 한번 입어 봐. 아깐 정말 미안했어." "그래, 이 누나도 생각이 모자랐다." 누나는 형에게 내 교복을 입혔다. "정말 멋있구나!" 형의 어깨가 들먹거렸다. "형! 형도 못 가는 중학교에 내가 가는 게 나도 싫어." 나는 형을 껴안고 눈물을 쏟았다. 누나도 훌쩍였다.
졸업식에 누나도 형도 왔다. 교실에서 졸업장과 상장을 다 나눠준 후 담임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며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선생님은 "육 학년 마지막 국어 시간에 했던 여러분의 글짓기 중에서, 이신해 군의 '가족'이라는 글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빛이 없는 형에게 빛 대신 글씨를 가르쳐 주고……. 아버지를 잃고 또 입원해 계시는 엄마를 대신해, 절망하지 않고 오동나무집의 꿋꿋한 아버지로 살아가는 누나의 모습에서 참된 가족애를 보았습니다"라고 말하곤, 창가로 가서 종이로 싼 어린 나무 한 그루를 안고 내게로 와 내밀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상'이다. 이 호두나무 묘목이 새봄이 되면 푸른빛을 키워 올릴 거다. 그 빛을 소중하게 가꾸어라." 나는 집으로 돌아와 베어 낸 오동나무 곁에 어린 호두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며칠 후 드디어 전기가 들어왔다. 병아리를 새로 지은 닭장으로 옮기고 전등도 달았다. 형에게 누나가 말했다. "이 닭들은 신구, 네 거다." "알았어, 누나." 형의 얼굴이 환했다. 이튿날 나는 앞뜰의 호두나무에서 희망의 푸른빛을 보았다. 내일이면 엄마가 퇴원한다. 주머니에서 경섭이 아저씨가 졸업선물로 준 나침반을 꺼냈다. 내가 나아갈 방향이 어렴풋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