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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녀석이고 그 녀석이 나이고

야마나카 히사시 지음 | 사계절
야마나카 히사시 지음

사계절 / 2006년 12월 / 186쪽 / 7,500원

나는 그 녀석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모리야 시립 제4초등학교 6학년 3반의 '사이토 가즈오'인데, 나는 공부 시간에 손을 든 적도 거의 없고, 공부도 잘 못하고, 친한 친구도 별로 없다. 6학년이 막 되었을 때 전학생 한 명이 왔는데, 그 아이가 자기소개를 하자 반 아이들이 한꺼번에 나를 보며 웃었다. 그 여학생 이름이 세상에, 내 이름과 글자 하나만 다른 '사이토 가즈미'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그 사이토 가즈미라는 아이가 나를 빤히 보더니, "나랑 같이 자다가 오줌 쌌던 그 참외 배꼽 맞지?" 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번뜩 생각이 났다. 그 애는 어릴 적 국화 유치원에서 나랑 함께 놀았던 아이였다. 하지만 반 아이들에게 참외 배꼽에 오줌싸개가 되기 싫어 아니라고 했는데, 하필 그 애가 내 옆에 앉게 되었다.



가즈미는 계속해서 유치원 때 일을 말하더니, 결국 우리 둘만 아는 엄청난 비밀까지 들먹였다. 유치원 때 가즈미네 집에 놀러갔을 때 일이다. 가즈미 엄마는 안 계셨고 할머니가 입을 크게 벌리고 주무시고 계셨는데, 커다란 파리가 할머니 입 안을 들락날락 해서 내가 살충제를 할머니 입 안에 뿌렸다. 그리고는 우리 둘이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가즈미 엄마가 나를 부르더니,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다음에 놀러 오라고 했다. 가즈미는 살충제 때문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건 잊고 싶었던 우리 둘만의 비밀이었다. 내가 계속 모른다고 하자 가즈미는 우리 집에 따라와서 내가 생각나게 해주겠다고 했다. 방과 후에 나는 그 애를 따돌리기 위해 집과는 반대방향으로 전속력으로 도망갔다.

그 녀석의 침대에서

한참을 달리다 한숨 돌리고 보니, 그 곳은 '변신하는 지장보살당' 앞이었다. 옛날에 나쁜 사람들에게 쫓기던 아가씨가 지장보살당으로 뛰어 들어갔더니 지장보살님이 그 아가씨 모습으로 변신해서 숲 속으로 뛰어갔고, 나쁜 사람들이 지장보살님을 아가씨라 여기고 뒤쫓는 틈에 아가씨는 무사히 도망쳤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 바로 '변신하는 지장보살당'이다. "어머나! 가즈오! 우리 집이 여기라는 걸 잘도 알았네." 내 머리 위쪽에서 이런 소리가 났다. 위를 보니 돌담 위 울타리가 쳐진 곳에서 가즈미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럴 수가! 나는 모른 체하고 가즈미가 가까이 왔을 때, 지장보살당 툇마루에서 뛰어내리면서 가즈미를 들이박으려고 했으나, 실수로 툇마루에 정수리를 세게 부딪쳤다.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낯선 방 침대에 눕혀져 있었다. 책상 위에는 가즈미의 이름표가 붙은 손가방이 있었고, 나에겐 가즈미의 치마가 입혀져 있었다. 내 옷과 가방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가즈미의 집에서 뛰쳐나와 우리 집으로 달렸다. "다녀왔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목에서 이상한 소프라노 소리가 났다. 엄마가 나를 보고 누구냐고 했다. 문득 거울을 본 나는 기절할 뻔 했다. 거울에는 그 밉살스런 사이토 가즈미가 있었다. "엄마! 얘는 국화 유치원 같은 반이었던 사이토 가즈미야. 하지만 나는 사이토 가즈오라구." 엄마는 웃음을 터뜨렸다. "어째 낯이 익더니 가즈미로구나. 넌 항상 장난이 심해서 사람들을 자주 놀라게 했지. 근데 가즈오 녀석은 널 오라고 해 놓고, 왜 아직도 안 오니?" 나는 가즈오의 옷이라도 갈아입겠다고 둘러대고 내 방으로 들어와 옷을 벗다가, 문득 내 가슴을 보고는 놀라 펄쩍 뛰었다. 내 가슴이 부풀어 올라 있었다. 팬티 속을 확인했다. 내 몸이 아니었다. 사이토 가즈미의 몸이었다. 나는 입고 있던 옷을 다시 입었다. '나와 가즈미의 몸이 바뀐 거야. 가즈미를 만나야 해!' 나는 밖으로 뛰쳐나와 자전거를 타고 가즈미 집으로 가서 유리문으로 보니, 거실 소파에서 내가 울고 있었다. 나는 유리문을 열고 소리쳤다. "바보! 그만 울어!" 그러자 내가 된 가즈미가, 가즈미가 된 내게 말했다. "나구나! 가즈미야!" 나는 소름이 끼쳤다. "아줌마, 오랜만이네요." 내가 인사했더니 가즈미 엄마가 소리쳤다. "나쁜 장난 좀 그만 해!" 내가 마당으로 뛰어나오자, 가즈미도 울며 따라 나와서 말했다. "우리 엄마가 너희 집으로 가래." "내가 데려다 줄게." 나는 자전거 뒤에 가즈미를 태우고 달렸다. 가즈미가 내 등에서 울었고, 나도 울고 싶었다!



내 걸 마음대로 만지지 마 / 그 녀석이 자살하겠다고 협박했다

내가 벨을 누르자 엄마가 나왔고, 가즈미를 보더니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가즈오, 너! 이렇게 늦게까지 어딜 쏘다녔어?" "엄마! 그쪽은 가즈미고 가즈오는 나라구." 내가 가르쳐 주었다. 엄마는 장난 그만 하라며 나를 내쫓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가즈미 집으로 갔다. 나는 오빠들도 못 알아보고, 말투가 거칠다고 야단맞고, 내 방도 어딘지 몰라 헤맸다. 오늘 있었던 일을 가족들에게 얘기해도 아무도 믿지 않았다. 우리는 바뀐 몸으로 살아야 했다. 끔찍했지만 서로의 몸에 대해 모르는 것을 물어보았다. 가즈미는 죽고 싶다고 했다.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을 소중하게 다뤄 달라고 했다.

내가 날자 교장 선생님도 날았다 / 그 녀석이 내 가슴을 잡았다

나, 사이토 가즈오는 원래 공부를 잘 못하는데, 원래 공부를 잘하는 가즈미, 즉 가즈오가 된 가즈미가 선생님 질문에 척척 대답하자 선생님은 놀란 표정으로 칭찬해 주었다. 그러나 가즈미가 된 나는 선생님이 시킨 쉬운 계산 문제도 못 풀자, 가즈미는 화가 나서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나와 싸우게 되었다. 그러다 실수로, 나는 지나가던 선생님의 뺨을 때리게 되었고, 도망가다 계단에서 교장선생님과 부딪쳐 정신을 잃고 병원으로 실려 갔다. 교장선생님과 나는 48시간 동안 나란히 누워 있어야 했고, 교장선생님은 나에게 끝없는 잔소리를 했다. 둘째 날 밤에 교장 선생님이 "아이코, 아이코!" 하고 잠꼬대를 했다. 잠이 깬 교장선생님에게 아이코 씨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당황하길래, 나는 내일 사모님께 여쭤봐야겠다고 했다. 갑자기 친절해진 교장 선생님은 못 들은 걸로 해 달라고 부탁했다.



퇴원한 나에게 가즈미가 병문안을 와서는 나더러 곧 있을 2박3일 현장학습에 가지 말라고 했다. 이유는 가즈미가, 아니 내가 생리를 할 때가 되었으므로 어설픈 내가 실수할지 모르니 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다친 일도 있고 해서 현장 학습을 가지 않았다. 그런데 가즈미도 아파서 현장학습을 못 갔다며 집으로 오자, 가즈미 엄마는 우리에게 시장을 보고 오라고 내보냈는데, 문 앞에서 엿들으니 우리 엄마한테 전화해서 가즈오를 집에 오지 못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걸 듣고 나와 같이 나간 가즈미가 공원벤치에 엎드려 울고 있는데, 바퀴벌레처럼 머리에 기름을 떡칠한 젊은 남자가 실실 웃으며 내 손목을 우악스럽게 잡아끌었다.



우리 엄마는 마귀할멈

작은 공원 반대쪽 입구에 자동차가 한 대 서 있었다. 바퀴벌레 형은 나를 그 차에 태우고 어디론가 데려가려는 듯 했다. "안 돼! 이상한 짓 하지 마!" 가즈미는 울면서 바퀴벌레 형을 붙잡고 늘어졌다. 바퀴벌레 형은 가즈미를 밀어젖히더니 가랑이 사이를 찼다. 가즈미는 비명을 지르며 데굴데굴 굴렀다. 그 때, 내가 바퀴벌레 형의 가랑이 사이를 힘껏 걷어찼다. 두 방을 더 날렸다. 바퀴벌레 형의 얼굴색이 하얗게 변하더니 눈에 흰자위를 드러내며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제 시장을 볼 처지가 아니었다. 나는 괴로워하는 가즈미를 부축해서 작은 공원에서 도망쳐 나와 우리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때 전화가 와서, 나도 모르게 수화기를 들었더니, 가즈미 엄마였다."어머, 너 가즈미지? 지금 교장 선생님 사모님이 오셨어. 너랑 가즈오가 공원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기에 교장선생님 자제분이 타일렀더니, 네가 교장 선생님 자제분의 중요한 곳을 찼다는구나. 그런데 거기에 내출혈이 나서 큰일이 난 모양이야. 얼른 집으로 오너라." 내가 막 나가려는데 우리 엄마가 왔고, 곧 교장 선생님이 찾아왔다. 내가 교장선생님에게 말했다. "교장선생님 아드님이 저를 차로 끌고 가서 이상한 짓을 하려고 해서 가즈오가 말렸는데, 아드님이 가즈오의 거시기를 차길래 되돌려준 것뿐입니다." 그리고 나는 가즈오와 엄마한테 자리를 비켜 달라고 하고서, 교장선생님에게 아이코 씨 얘기를 꺼냈더니, 교장선생님은 떨떠름한 얼굴로 이번 일은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하며 돌아갔다.

그 녀석 대신에 비키니를 입었다

시장을 봐 가지고 가즈미 집으로 돌아온 나는, 가즈미 엄마에게 가즈오가 변태 같은 교장선생님 아들한테서 나를 구해 주었다고 말해, 가즈오가 된 가즈미가 다시 집에 올 수 있도록 점수를 따 놓았다. 그런데 가즈미 엄마는 가즈미의 생일에 히로시를 초대해 주겠다고 했고, 내가 별 반응이 없자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았다. 나는 곧 가즈미에게 전화를 걸어 히로시가 누구인지 물었다. 가즈미는 말하기 싫다고 버티다가, 전에 학교에서 5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애인데, 히로시는 아케미라는 여자애를 좋아한다고 했다. 며칠 후, 날씨가 더워지자, 가즈미 엄마가 비키니 수영복을 사 주었다. 나는 학교수영시간에 그 비키니 수영복을 입었다. 내가 비키니를 입다니!



내가 모르는 내 남자 친구가 온다 / 우리가 되돌아갈 수 없는 까닭

어느새 여름 방학이 되고, 마침내 가즈미의 생일이 되었다. 히로시와 아케미라는 여자 친구가 올 예정이었다. 나는 역에서 만날 시간보다 훨씬 일찍 가즈미를 만나, 역 앞 광장에서 히로시를 맞는 특별 에티켓 훈련을 받았다. 표정 연습에 지칠 무렵, 아케미라는 여자애가 먼저 나타났다. 가즈미가 히로시를 마중하러 개찰구쪽으로 가자, 아케미가 말했다. "너 사실은 가즈오라는 아이지?" 아케미는 진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너, 우리 일 다 알고 있냐?" "편지로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죽고 싶다'고 써 보냈잖아. 난 가즈미가 공상 과학 소설에 빠져서 이상한 이야기를 지어낸 줄 알았지." "근데 지금 생각은?" "글쎄, 반반이야." 잠시 후 가즈미와 어리둥절해하는 히로시가 나타났고, 다같이 가즈미 집으로 갔다. 아케미는 가즈미 엄마에게 말했다. "요즘 여학생이 남자같이 말하고 행동하는 게 유행이에요. 저도 버릇이 돼서 늘 엄마한테 혼나는데, 가즈미는 어때요?"



아케미 덕분에 가즈미 엄마는 나를 특별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히로시는 잘난 척하며 우쭐대는 녀석이었고, 가즈미도 그런 히로시를 보며 실망한 것 같았다. 가즈미의 생일 파티가 끝난 후로 가즈미는 집에 오지 않았다. 2학기가 시작했을 때 가즈미는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 집 근처에 사는 마사네코에게 가즈미가 결석한 이유를 아는지 물어보다가, 가즈미가 여자같이 행동해 남자애들 여럿이서 가즈미의 바지를 벗겨 보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화가 난 나는 그 녀석의 바지를 끌어내려 버렸다. 나는 방과 후에 가즈미의 집으로 가보았다. 가즈미는 우울한 얼굴로 혼자 집을 보고 있었다. 나는 마사네코를 혼내 주었다고 말하고, 가즈미를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가즈미가 우리 가족이 내년 3월에 이사 가게 되었다는 얘기를 했다.



내가 죽인 할머니의 법회

나는 심한 충격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년 3월까지 무슨 수를 내야 한다. 가즈미는 학교에서 그런 소식을 나에게 계속 전해 주었고, 나는 더욱 우울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가와하라 게이코한테서 가즈오에 관한 일로 할 이야기가 있으니 놀러 오라는 전화가 와서, 게이코네 집으로 갔다. 게이코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게이코가 본 가즈미는 학기 초에 비해 너무 우울해졌고, 재미있고 친절하던 가즈오는 딴사람처럼 말도 없어졌고, 늘 혼자 있더라는 것이었다. 우리 두 사람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자기가 도울 일이 있으면 돕고 싶다고 했다. 주변 친구의 눈에 우리가 어떻게 보이고 있었는지 새삼 깨달은 나는 우리에게 맡겨 달라고, 그리고 고맙다고 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 보니, 가즈미 엄마가 친척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는데, 이번 일요일에 할머니 7주기 법회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돌아가시게 한 할머니의 법회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법회를 하면 가즈미의 친척들이 잔뜩 올 것인데, 나는 누가 누군지 모르니까 어떤 실수를 저지를지 모른다. 나는 가즈미 엄마에게 말했다. "할머니는 어떻게 돌아가셨어요?" "심장 발작으로. 할머니가 기침을 이상하게 하시기에 가보니, 벌써 숨을 거두신 뒤였어." "그렇지만 우리가 유치원에서 돌아왔을 때 할머니는 의자에 앉아 계셨는데." "그 때는 벌써 돌아가셨지. 엄마가 주치의 선생님을 부르러 갔을 때 너희가 돌아왔던 거야. 그러고 보니 그 때 가즈오도 함께 있었지." 나는 맥이 풀렸다. 가즈미와 내가 오해하고 있었던 비밀을 엄마에게 얘기했다. "저런!" "가즈오를 법회에 오라고 해서 할머니에게 향이라도 피우라고 해야겠어." 가즈미 엄마는 웃으며 그러라고 했다.



내가 나라면 그 녀석은 그 녀석으로

나는 가즈미를 할머니 법회에 데려가는 데 성공했다. 나는 가즈미 옆에 딱 붙어 서서 가즈미의 지시대로 친척들과 인사를 했다. 그런데 친척 중에 다케미라는 중학생이 나에게 음흉한 말을 던져서 내가 그 녀석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옆에서 가즈미가 어른들에게 내 편을 들었는데, 그 일로 다케미에게 붙잡혀 곤욕을 치르고 있는 가즈미를 내가 구해 주었다. 나는 가즈미 엄마에게 가즈오 몸이 좀 안 좋으니 바래다주겠다고 하고, 가즈미와 함께 우리 집으로 갔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즈미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고, 나도 울었다. 울음을 그친 가즈미가 말했다. "오늘 정말 고마웠어. 난 이제 가즈오가 정말 좋아졌나 봐." "나도 네가 좋아. 그래서 널 지켜 주고 싶어."

그리고 나서 가즈미는 또다시 결석하기 시작했다. 걱정이 돼서 집으로 가 보았더니, 엄마가 나를 보고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가즈미, 너 때문이야! 가즈오는 열에 시달리며 영문도 모르는 말을 하고 있어. 네 탓이야!" 엄마는 쾅 하고 문을 닫았다. 나는 가즈미 걱정을 하며 걸어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한 달이나 입원한 후에 연말이 다 되어서야 퇴원했다. 1월 2일 이른 아침이었다. 내 방 창문을 누가 두드려서 보니 가즈미였다. "큰일났어! 곧 이사 간대. 문 앞에선 들킬지 모르니까 지장보살당으로 와." 내가 지장보살당으로 다가가는데, 가즈미가 뭔가 하얀 알약을 입에 넣고 있었다. '안 돼! 죽으면 안 돼!' 나는 가즈미에게로 후다닥 달려가다가 뭔가에 걸려서 허공으로 휙 날았고, 그대로 가즈미의 몸에 부딪치고 말았다. 눈에서 불꽃이 튀면서 정신을 잃었다.



정신이 들자 입 안에서 박하 맛이 났다. 내가 언제 박하사탕을 먹었지? 나와 가즈미는 지장당 툇마루 아래 쓰러져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내가 가즈미의 옷, 그러니까 가즈오의 점퍼를 입고 있었다. 가즈미도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보더니, 미친 듯이 외쳤다. "돌아왔어! 우리가 원래대로 돌아왔다구!" "뭐?" 우리는 얼싸안고 펄쩍펄쩍 뛰었다. 그제야 우리의 몸이 바뀐 곳도 바로 여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들 거기서 뭐 해!" 머리 위에서 가즈미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가즈미가 말했다. "엄마, 오랜만이야! 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가즈미 엄마의 얼굴이 어땠는지 나는 모른다. 아무튼 나는 그대로 달려서 우리 집으로 돌아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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