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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가 기른 감나무

이상권 지음 | 사계절
외눈박이 암탉

시우는 재미삼아 다람쥐를 잡아 보려고 사흘 전부터 애를 쓰고 있다. 다람쥐가 막 잡힐 순간이 되면 흰 병아리가 호들갑스럽게 소리치며 나타나, 다람쥐가 달아나 버리곤 해서 계속 실패를 한 것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화가 난 시우는, 흰 병아리를 잡아 구정물 통에 거꾸로 처박아 버렸다가 대빗자루로 마구 두들겨 팼다. 그 뒤 흰 병아리는 시우만 보면 더욱 호들갑스럽게 소리를 지르며 달아났다. 다른 닭들도 흰 병아리를 미워했다. 심지어 어미 암탉까지도 흰 병아리가 가까이 오면 사정없이 머리를 쪼아 버려서, 흰 병아리 얼굴은 항상 피가 흘렀다. 하지만 시우는 조금도 불쌍하지 않았다. 할머니만이 흰 병아리 편을 들었다. 어제부터 오른쪽 눈을 뜨지 못하는 흰 병아리를, 할머니가 치료해 주며 말했다. "쯧쯧, 불쌍헌 것. 눈에 까시가 박혔네. 한쪽밖에 볼 수 없으니 얼마나 힘들겄냐? 너도 인제 삥아리 때리지 마라잉." 시우는 여전히 흰 병아리가 미웠지만, 더 이상 때리지 않기로 했다.

얼마 후 흰 병아리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할머니는 살쾡이나 솔개한테 잡아먹힌 것 같다고 했고, 시우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학교 갔다 온 시우에게 할머니가 말했다. "그 외눈박이 삥아리가 살어 있시야. 쩌기, 남새밭에서 아조 건강하게 살고 있더구나." "할매, 우리 남새밭에는 밤마다 살쾡이가 내려오는디 어떻게 잡아먹히지 않을 수가 있어요?" "글씨 하늘에 솔개가 나타낭께로, 남새밭에 있던 외눈박이가 금시 어디로 숨어 불고 없시야. 나중에 봉께로, 두엄을 덮어 놓은 비니루 옆에 가만히 앙거 있는 것이여. 비니루도 흰색이고, 외눈박이도 흰색잉께 눈에 띌 리가 없었제. 아조 영리한 놈이여." 봄이 되자 외눈박이는 병아리 아홉 마리를 데리고 당당하게 마당으로 들어섰다. 외눈박이가 여태 살아서 병아리까지 깐 사실은 마을 사람들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한편 외눈박이와 병아리들은 아무리 돌아다녀도 무사한 데 비해, 닭장 속으로 몰아넣은 병아리만 자꾸 사라지자, 할머니는 "오늘부터 닭을 외눈박이만이로 자유롭게 풀어 놔 보자. 어차피 닭장에다 둬도 다 잡아먹힐 판잉께"라고 말하곤 닭들을 풀어놓았다. 이튿날 닭들은 모두 무사했다. 시우는 닭들이 외눈박이를 따라다닌다는 사실을 알았다. 외눈박이는 후손을 육십여 마리나 보고는, 마을에서 가장 오래, 5년 2개월이나 살고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어머니와 시우가 외눈박이를 묻어주려고 하자, 뜻밖에도 할머니는 "집에서 기르는 짐승은 사람한테 잡아먹히는 것이 순리여"라며, 삶아 먹겠다고 했다. 시우는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다. 외눈박이를 가장 아낀 사람은 할머니였기 때문이다.



멧돼지가 기른 감나무

샘골 시우네 밭 위에는 수남이 아재네 유일한 땅인 세 마지기 밭이 있었다. 사람들은 전과 10범인 수남이 아재를 슬슬 피했는데, 시우 할머니만이 수남이 아재 말벗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수남이 아재 밭의 고구마를 누군가 훔쳐 가기 시작했다. 범인은 멧돼지였다. 숨어서 엿보던 수남이 아재는 멧돼지와 마주쳐도 전혀 쫓지 않고 계속 모르는 체 했다. 안심한 멧돼지는 며칠 후에는 암컷 한 마리와 새끼 두 마리까지 데리고 나타났다. 수남이 아재는 수컷 멧돼지가 마을 어귀에 있는 뜸돌을 들 만큼 힘이 세다고 해서 '뜸돌양반'이라고 불렀다. 암컷은 당연히 뜸돌댁이었다. 수남이 아재는 뜸돌양반이랑 친해지려고 애를 썼고, 그런 수남이 아재를 동네 사람들은 미쳤다며 비웃었다. 한편 뜸돌댁은 사람들한테 잡힐까 불안해서 뜸돌양반한테 다른 곳으로 떠나자고 했다. 뜸돌양반은 수남이 아재를 떠올리며 말했다. "나도 사람을 믿지 않지만, 그 사람은 다르오. 우리를 잡으려고 하는 사람들 눈에는 붉은 핏덩이가 꿈틀거리는데, 그 사람 눈은 아주 고요해." 아무튼 뜸돌양반네 식구들은 날마다 배불리 먹었고, 뜸돌댁도 더 이상 떠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보름 만에 수남이 아재네 밭은 엉망이 되어 버렸고, 밑에 있는 시우네 고구마밭까지 피해를 입자, 시우 할머니가 수남이 아재에게 오랫동안 참았던 말을 했다. "이보게, 곡식은 사람이 먹기 위해서 키우는 것이라네. 멧돼지는 산에서 도토리나 칡뿌리를 먹고 살아야제. 사람덜이 심어 놓은 곡식을 먹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멧돼지 피해가 늘어 가자, 수남이 아재도 뜸돌양반을 깊은 산 속으로 돌려보낼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마을 사람들이 모여 대책을 세웠고, 이장님이 수남이 아재에게 사람들 뜻을 전달했다. 며칠 뒤, 다리를 저는 사람이 지프차를 타고 나타났는데, 수남이 아재는 그 사람을 보고 '쌍칼'이라고 했고, 쌍칼은 수남이 아재를 '대추벌'이라고 불렀다. 쌍칼은 수남이 아재에게 뜸돌양반을 죽여 줄 테니 걱정 말라고 했고, 수남이 아재는 잡지 말고 멀리 쫓아 보내라고 했다. 쌍칼은 총을 메고 일본도라는 긴 칼까지 차고 뜸돌양반을 잡으러 나섰는데, 칡밭에서 뜸돌양반을 보았다. 뜸돌양반은 천천히 도망치다가, 쌍칼이 총을 겨누려고 하면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기를 되풀이하며 쌍칼을 골려 주었다. 화가 난 쌍칼은 다음 날 사냥개 두 마리를 데려왔지만, 뜸돌양반을 쫓던 사냥개들은 계곡에서 등가죽이 갈기갈기 찢긴 채 발견되었다.



다음 날부터 쌍칼은 뜸돌양반네 식구들이 자주 다니는 길에 덫이랑 올가미를 설치했으나, 뜸돌양반은 수남이 아재네 밭가에서 오줌을 싸고 있던 쌍칼을 뒤에서 공격했다. 쌍칼은 가까이 있는 소나무로 간신히 올라가, 나무 위에서 총을 겨누었다. 하지만 뜸돌양반이 소나무를 들이받아 나무가 뿌리째 뽑히며 기울어졌고, 쌍칼도 나무에서 떨어졌다. 칼도 놓쳐 버렸다. 뜸돌양반은 단숨에 쌍칼을 해치울 수 있었지만, 그냥 돌아섰다. 며칠 후 쌍칼은 수남이 아재네 밭 위쪽 무덤가에다 굴을 파고 숨었다. 그날 밤, 쌍칼이 쏜 총알에 새끼 한 마리와 뜸돌댁이 쓰러졌다. 죽은 식구들을 가로막은 뜸돌양반을 향해 쌍칼은 계속 총을 쏘았지만, 뜸돌양반의 매서운 눈빛에 기가 질려서인지 이상하게도 총알은 계속 빗나갔다.



총소리를 듣고 달려온 수남이 아재가 쌍칼에게 말했다. "내가 괜히 자네를 불렀구먼. 인제 떠나게." "아닐세, 대추벌. 저 놈하고 나,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해." 다음 날 쌍칼은 총을 쓰지 않고 당당히 싸워 이기겠다며 달랑 일본도만 들고 샘골로 올라갔다. 수남이 아재도 말리지 않았다. 뜸돌양반은 쌍칼이 몸을 숨겼던 무덤 옆에 있었다. 쌍칼은 일본도를 들고 옆으로 움직였다. 뜸돌양반은 빙글빙글 돌면서 공격해 왔고, 쌍칼은 자꾸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가 뜸돌양반은 쌍칼의 옆구리를 들이받았고, 둘의 대결은 끝이 났다. 쌍칼이 죽었는데도 뜸돌양반은 샘골을 떠나지 않고 수남이 아재네 밭 주변을 얼쩡거렸다. 수남이 아재와 시우 할머니, 마을 사람들 모두 뜸돌양반이 죽은 아내 넋을 찾아서 헤매고 있다고 생각했다. 뜸돌양반은 더 이상 고구마를 훔쳐 먹지도 않으면서, 수남이 아재네 밭이랑 시우네 밭 주위에서 무언가를 찾는 듯이 자꾸만 두리번거리며 다녔다.



며칠 후 쌍칼의 동생이 밀렵꾼 세 명을 데리고, 열 마리가 넘는 사냥개를 몰고서 마을에 들이닥쳤다. 수남이 아재가 아무리 말려도 그들은 눈에 보이는 모든 동물을 마구 잡아들였다. 뜸돌양반은 새벽마다 수남이 아재네 밭에 나타났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뭔가 호소하듯이, 자꾸만 땅을 파고, 먼 산을 보며 소리치기도 했다. 밀렵꾼들은 숨어 있다가 뜸돌양반이 나타나면 일제히 사격을 가했지만, 아무리 총을 쏘아도 총알은 빗나갔다. 어느 날은 밀렵꾼 두 명이 뜸돌양반에게 공격을 당해 크게 다치기도 했다. 다음 날 읍내에 갔던 수남이 아재는 손에 쇠창을 들고 돌아와서 밀렵꾼들에게 말했다. "인제 내가 잡을 것잉께, 다들 돌아가시오!" 수남이 아재는 샘골로 올라갔다.



수남이 아재는 감나무 밑에서 감을 먹고 있는 뜸돌양반 뒤통수에 창을 내리찍었다. 뜸돌양반은 몸부림치며 뒹굴다가 일어나서, 수남이 아재를 노려보았다. 수남이 아재는 바위에 몸을 기댄 채 말했다. "인제 나를 알아서 허게. 내가 자네를 죽이지 못했응께." 뜸돌양반은 바위만 들이받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수남이 아재는 겨우 몸을 일으켜 샘물가로 걸어가는데, 샘물가에 뜸돌양반이 죽어 있었다. 수남이 아재는 뜸돌양반을 끌어 내다가 샘물 속에서 썩은 동물 가죽과 뼈를 발견하고는, 그제야 뜸돌양반이 샘골을 떠나지 않았던 이유를 알았다. 뜸돌양반의 새끼 두 마리 중에 총에 맞지 않은 나머지 한 마리가 도망가다 샘물에 빠져 죽었는데, 그 새끼를 찾으려고 뜸돌양반은 총부리 앞에서도 도망치지 않았던 것이다. 수남이 아재는 그 샘물 아래에다 뜸돌양반과 새끼를 묻어 주고, 무덤에 감나무 한 그루도 심어 주었다. 뜸돌양반이 감나무로 다시 태어나면 다른 멧돼지들이 와서 그 감을 먹고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집토끼가 기른 산토끼

시우가 애지중지 기르던 암토끼가 드디어 새끼를 다섯 마리나 낳았다. 암토끼가 새끼를 낳은 지 사흘째 되는 날, 시우는 아버지와 함께 꼴망태를 메고 거북봉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솔개에게 잡아먹히다가 버려진 산토끼를 발견했다. 살펴보던 아버지는 방금 새끼를 낳은 어미토끼라고 했다. 아버지와 시우는 산토끼 새끼들을 찾아내었고, 시우는 안 된다는 아버지를 졸라 새끼들을 집으로 가져왔다. 엄마 젖을 먹지 못해 두 마리는 하루 만에 죽었고, 또 한 마리는 도망가다 개한테 물려 죽었다. 한 마리 남은 줄무늬 토끼는 어미 집토끼의 젖을 먹고 자랐으나, 결국 야생의 본능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줄무늬 토끼는 본능적으로 산을 향해 뛰어 거북봉까지 무사히 돌아왔다. 자신이 산토끼라는 사실을 깨닫고,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평화로워 보이던 숲에 막상 들어가 보니 이미 자리 잡고 있는 다른 동물들이 자기 집을 뺏기지 않으려고 사납게 굴었다. 줄무늬 토끼는 숲이 참 무서운 곳이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하늘 저편에서 솔개가 날아왔다. 토끼는 누가 도망치라고 가르쳐 주지도 않았지만, 온 힘을 다해서 무덤 옆 찔레 덤불로 뛰어들었고, 이내 정신을 잃었다. 솔개도 찔레 덤불에 처박혀 발버둥치다가 마침 그 곳을 지나가던 사람에게 잡히고 말았다.



줄무늬 토끼가 눈을 떠 보니, 나이 든 절름발이 산토끼가 옆에 있다가 물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넌 어디서 왔냐?" "마을에서 왔어요. 집토끼들과 살다가……. 혹시 우리 엄마를 아세요?" "아, 네가 그 줄무늬로구나. 알고말고. 네 엄마는 내 친구였단다. 너희들이 태어난 지 며칠 안 되어 안타깝게도 그 할망구 솔개한테 당하고 말았어. 어제 너를 공격하다가 사람한테 잡혀간 그 늙은 솔개 말이야!" "아, 불쌍한 엄마! 산이 이렇게 무서운 줄은 몰랐어요." "괜찮다. 누구나 자신감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너도 아직 너의 자신감을 찾지 못했을 뿐이야. 살기 위해서는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절름발이 토끼는 애써 어린 산토끼를 안심시켰다.



다음 날부터 줄무늬 토끼는 절름발이 토끼에게 굴을 파는 법, 숨는 법, 도망치는 법 등의 삶의 지혜를 배웠다. 사람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어느 날은 학교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토끼몰이를 하러 몰려 왔고, 또 어느 날은 사람들과 사냥개들이 나타났지만 줄무늬 토끼는 매번 영리하게 위기를 모면했다. 한편 날씨가 추워지면 산토끼들이 사람 사는 집으로 내려온다는 사실을 아는 이웃의 성민이 형은 개구멍에 올가미를 묶어 놓았다. 성민이 형은 마을에서 산토끼를 가장 잘 잡았지만, 줄무늬 토끼를 몇 번이나 잡으려다 실패했다. 어느 날, 올가미에 걸려 죽은 산토끼를 본 아버지는 성민이 형을 불러 마을로 찾아오는 짐승을 잡으면 죄를 받는다고 타일렀고, 성민이 형은 더 이상 덫을 놓지 않았다.



동짓날 거북봉에 까만 안경을 쓴 밀렵꾼들과 무시무시한 사냥개들이 나타났다. 절름발이 토끼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돌아다니며 찔끔찔끔 오줌을 쌌다. 사냥개들은 그 오줌 냄새를 따라 산을 빙글빙글 돌게 되었다. 어둠이 깔리자 밀렵꾼들은 거북봉을 내려갔다. 절름발이 산토끼와 줄무늬 토끼는 밀렵꾼들을 한껏 비웃어 주고는 각자 새로운 집으로 옮겨 안심하고 잠을 잤다. 그러나 밀렵꾼들이 밤 사냥을 더 잘 한다는 사실을 산토끼들은 몰랐다. 절름발이 토끼가 먼저 사냥개 소리를 들었다. 사냥개는 줄무늬 토끼가 자는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절름발이 토끼는 일부러 사냥개들이 올라오는 쪽으로 뛰쳐나가 아래쪽으로 튀었으나, 결국은 강둑에서 밀렵꾼의 총에 맞아 죽었다.



엄마 같은 절름발이 토끼의 죽음은 줄무늬토끼에게 삶의 의욕까지 잃게 했다. 많은 토끼들이 거북봉을 떠났다. 줄무늬 토끼는 절대로 거북봉을 떠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여기는 내 고향이야. 우리 엄마가 태어난 곳이고, 우리 엄마의 엄마가 살았던 곳이고…….' 산 아래 강가에서 귀에 익은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강둑으로 낯익은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시우하고 성민이 형이었다. 그들도 밀렵꾼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줄무늬 토끼는 강둑 아래 논으로 뛰어갔다가, 독약이 든 번데기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그것들을 산으로 날랐다.



이튿날 오전, 시우와 성민이 형은 산 아래쪽부터 토끼가 다니지 않는 길에다 올가미를 놓았고, 눈에 띄는 함정을 크고 깊게 파서 그 산에 사는 동물들은 다 피해 갈 수 있었다. 그날 밤 밀렵꾼들이 다시 들이닥쳤다. 줄무늬 토끼는 사냥개들이 달려오는 쪽으로 뛰어가더니, 오줌을 갈기며 자기 냄새를 남기기 시작했다. 사냥개들은 산토끼 오줌 냄새를 맡을 때마다 주춤거렸고, 근처에 떨어져 있는 독이 든 번데기를 집어 먹고 죽었다. 다른 사냥개들도 올가미와 덫에 걸려 죽었고, 한 마리는 줄무늬 토끼를 쫓다가 함정 속으로 떨어져 대나무 창에 찔려 죽었다. 밀렵꾼들은 얼이 빠져서 산을 내려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경기도 문산으로 이사 갔던 시우네 식구들은, 시우가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 다시 돌아왔다. '아직까지 줄무늬 토끼가 살아 있을까?' 시우는 성민이 형부터 찾아갔다. 성민이 형은 아버지보다 키가 큰 어른이 되어 있었다. 시우가 방에 들어가자 성민이 형이 벽에 걸린 토끼 가죽을 보여 주었다. 줄무늬 토끼 가죽이었다. "너 오면 줄라고 박제해 놨다. 슬퍼 마라. 거북봉 터줏대감은 아주 오래 살고 수명이 다해 작년 겨울에 죽었단다." 시우는 약간 허탈했다. 시우는 힘들 때마다 꿋꿋하게 살아남던 줄무늬 토끼를 떠올리며 힘을 얻곤 했었다.



"아무튼 영리한 토끼였어. 내가 번데기에다 청산가리를 넣어 강가에 놓으면, 그 토끼가 물어다 사냥개를 죽이는 데 썼제. 나하고는 잘 통했어. 첨에는 이곳 사람 누군가 일부러 사냥개를 죽인다고 했제. 나는 속으로 웃었제. 내가 함정을 파 놓으면 터줏대감이 그걸 이용하니까. 어쨌든 그 토끼가 죽고 나니 거북봉에 가도 무척 쓸쓸하드라. 근디 엊그제 터줏대감하고 똑같이 생긴 줄무늬 토끼를 봤다. 터줏대감의 후손이겠제. 아, 을매나 반갑던지……." "와, 정말요? 형, 근데 어디서 죽었어요?" "참 이상허드라, 일부러 그랬는지 내가 가장 잘 다니는 길 옆에 죽어 있드라. 아무튼 내가 주서다가 삶아 보았는디. 아이고 찔겨서 먹을 수가 없드라. 살하고 뼈는 묻어 주었고, 털가죽은 남겨 놨제." "고마워요, 형. 그 시절이 좋았는데……." 시우는 성민이 형 손을 꼭 잡았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시우는 하얀 눈에 찍힌 토끼 발자국을 따라가는 상상을 하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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