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저 하늘에도 슬픔이

이윤복 지음 | 산하
어머니가 없는 살림



어머니가 보고 싶어요 - 1963년 6월 2일 일요일 비

어머니,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비가 내리니 유난히 어머니가 보고 싶어집니다. 나는 가만히 자리에 누워서 어머니가 우리를 두고 집을 나가신 것은 무슨 마음으로 나가셨나 하고 생각합니다. 어머니만 계시면 우리 식구는 지금 이 고생은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머니, 순나는 어머니 얼굴을 기억하지만 윤식이와 태순이는 어머니 얼굴도 알지 못하고 매일 배가 고프다고 먹을 것밖에 찾지 않습니다. 어머니, 우리는 지금 양식이 없어 밥을 해 먹지 못하고 순나와 내가 껌장사를 해서 번 돈으로 국수를 사다 끓여 먹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식구에겐 즐거운 생활은 없고 모두 슬픔 속에 싸여 눈물뿐입니다.



어머니, 나는 어머니 손을 잡고 놀러 가고도 싶고 어머니가 해준 밥을 먹고도 싶어요. 그러나 지금 어머니가 없으니까 이런 생각은 소용없겠지요. 나는 어머니만 돌아오시면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동생들은 어머니를 보지 못해서 어머니 소리도 안 합니다. 어머니가 돌아오시면 온 집안이 얼마나 기쁘겠어요. 어머니, 아버지가 미웁더라도 하루 빨리 집으로 돌아와서 같이 살아요. 아버지는 지금 어머니를 얼마나 기다리는지 몰라요.



방세 없는 움집에서 - 6월 4일 화요일 흐림

남산동에서 앞산 밑 지금의 움집으로 이사 온 지가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돈이 없어 방세를 내지 못해 이 곳으로 쫓겨왔는데 이 움집은 방세가 없으니 돈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누워서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이렇게 고생을 하는 것은 어머니가 집을 나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나는 남산동에서 쫓겨난 일을 생각하면 아버지가 자꾸만 미워지고 어머니가 얼마나 원망스러운지 모릅니다. 지금 우리 식구가 살고 있는 모습은 짐승들이 살고 있는 것과 꼭 같습니다. 그러니 나는 어머니가 하루 속히 돌아와 주셨으면 하고 얼마나 가슴을 태우는지 모릅니다.



새 방으로 이사 와서 - 6월 11일 화요일 맑음

움집에서 이사를 했습니다. 지금 이사 온 집은 움집과 마주 붙기는 했습니다만 그러나 사람 사는 집으로는 훌륭한 집입니다. 방이 두 개인데, 한 방은 다른 사람이 살고 또 하나는 우리가 살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 이 움집의 주인이 찾아왔을 때 아버지께서 집주인한테 사정 이야기를 하고 한 달에 이백 원씩 내고 이 방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돈을 어떻게 벌어서 방세를 물려고 이리로 이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염소 냄새나는 외양간에서 구린내를 맡지 않게 되었으니 다행한 일입니다.



선생님이 공책을 주셨어요 - 6월 20일 목요일 맑음

점심 시간이었습니다. 직원실 앞에서 동무들과 놀고 있을 때 복도에서 우리 선생님이 "윤복아." 하고 부르기에 나는 선생님 손짓에 따라 직원실로 들어갔습니다. 선생님이 공책 한 권을 주시면서 "윤복이 이 노트에 일기를 계속해서 적어." 하시기에 나는 "예." 하고 대답했습니다. 선생님은 "하루에 생긴 일을 또박또박 적어 봐." 하시면서 일기 쓰는 방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밖으로 나와 우리 교실로 돌아오면서 생각하니 일기를 다시 계속해 쓰게 되어 기뻤습니다. 문방구에서 사면 삼십 원짜리 공책입니다. 오늘 저녁부터 일기를 적게 된다니 선생님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선생님이 돈이 많아서 사 주시는 것이 아니고 나를 보니 하도 딱해서 사 주시는 것일 거라 생각하니, 나는 우리 선생님의 마음을 생각해서라도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적어야 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순나가 남긴 종이 쪽지 - 6월 22일 토요일 맑음

네 시쯤 되어 집에 돌아오니 태순이가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내가 방에 들어가니 반가워하며 "오빠." 하고 나의 몸을 잡고 매달렸습니다. "태순아, 아버지랑 순나 모두 어디 갔노?" 하니 태순이는 방 한구석에서 순나의 책보를 뒤져 흰 종이 하나를 가져와 나에게 주었습니다. 나는 태순이가 준 종이를 펴 보았습니다. 거기에는『아버지, 오빠. 나는 돈을 많이 벌어 갖고 집에 돌아오겠어요. 순나를 찾지 말아요.』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나는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나는 그 길로 순나를 찾으러 시내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순나가 갈 만한 곳을 아무리 찾아 다녀도 결국 순나를 찾지 못했습니다. 첫 고동이 불어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와 윤식이, 태순이 셋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주무시는 아버지를 흔들어 깨워 순나의 이야기를 했더니 아버지께서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꺼져 가는 등불 밑에서 일기를 적는데 눈물이 자꾸만 흘러내렸습니다.



염소를 먹이면서



염소를 치게 되다 - 7월 7일 일요일 흐림

아침에는 아버지 병이 조금씩 낫는 것 같더니 점심때가 되자 또 앓기 시작하셨습니다. 나는 문득 이웃집 염소 생각이 났습니다. 이웃집에 가서 염소를 먹이를 주고 번 돈으로 아버지 약이라도 사다 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냅따 아저씨네 집으로 뛰어갔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아저씨가 집을 고치고 있었습니다. 곁에 가서 인사를 하고 "아저씨, 우리 아버지가 병으로 않고 계셔서 우리 집 이제 다 굶어 죽게 되었어예. 아저씨 집 염소라도 좀 먹이게 해 주이소." 하니 주인 아저씬 나를 쳐다보며 "어린놈이 고생이 많겠다. 그라문 오늘부터 우리 염소를 먹이러 다녀라." 아저씨는 찬찬히 염소 치는 방법을 나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열여덟 마리의 염소를 몰고 앞산 밑 넓은 풀밭으로 갔습니다. 염소들은 이리 저리 열심히 풀을 뜯고 다닙니다. 저녁 노을이 붉어 올 때쯤 되어서 염소들을 모아 집으로 몰고 왔습니다. 아저씨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돈 오십 원을 주셨습니다. 나는 그 돈을 받아들고 약방으로 뛰어가서 아버지 약 삼십 원어치를 산 다음, 나머지로 가게에서 국수를 사서 들고 집으로 뛰어왔습니다.



다시 학교로 - 7월 16일 화요일 흐림

열흘 쯤 학교를 빠지다 오늘은 학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교실에 들어가려고 하니 부끄러워 몇 번인가 머뭇거리다가 용기를 내어 문을 열고 교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얼굴을 붉히며 내 자리에 가서 앉으니 마음이 푸근했습니다. 조금 있으니 우리 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셨습니다. 선생님은 출석을 다 부르시더니 공부가 시작될 무렵 나의 곁으로 오셨습니다. "윤복아, 왜 이때까지 결석했지?"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자리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계속 물으시기에 대답을 하려고 했지만 말은 나오지 않고 눈물이 책상 위에 뚝뚝 떨어져 낙숫물처럼 퍼졌습니다. 선생님은 한참 동안 계시더니 "윤복이 일기장 가지고 왔어?" "예." 책상 속에서 일기장을 꺼내 선생님께 드리니, 선생님은 앞으로 갖고 나가 동무들에게 나의 일기를 읽어 주셨습니다. 한참 동안 읽어 가시던 우리 선생님은 내가 염소를 먹이던 일을 읽다 그만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재미나게 듣고 있던 반 동무들은 모두 조용해졌습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나의 숨소리만 들으며 앉아 있었습니다.



팔월은 비와 함께



구두닦이를 해 보자 - 8월 6일 화요일 맑음

날씨는 덥고 껌을 잘 팔리지 않고 더 이상은 껌 장사를 못 할 것 같습니다. 또 껌 장사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 잘 팔리지도 않습니다. 거기다가 희망원에서 잡으러 다녀 안심할 수도 없고 다방에 들어가면 마담과 레지가 막 야단치며 밀어 내어 쫓겨 나오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내일부터 구두를 한번 닦아 볼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전부터 선생님이 말씀은 하셨지만 그 땐 학교 때문에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방학이니 상관이 없었습니다. 껌 팔아 벌어 논 칠십 원으로 솔과 구두약을 사고 구두통은 아버지께 만들어 달라고 해야겠습니다.



처음 구두를 닦던 날 - 8월 8일 목요일 맑음

아침 일찍 구두통을 둘러메고 시내로 나갔습니다. 새 구두통을 메어서 그런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반월당 앞을 지나가는데 길 옆 양복점에서 어떤 아저씨가 "야!" 하고 부르셔서 나는 곧바로 뛰어가 "아저씨, 신 닦으셔예?" 하니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끄덕 하였습니다. 처음 구두를 닦는 거였지만 나는 역전에서 구두 닦는 것을 많이 보았기에 잘 닦는 척하고 구두를 닦았습니다. 손이 잘 움직이지 않았지만 침을 뱉어가면서 윤이 나게 닦았습니다.



갑자기 아저씨가 "니 구두 닦는 것 보니 아직 신마이(초보)구나?" 나는 뜨끔해서 "오늘 아침 처음 구두닦이를 시작했어예. 아저씨, 잘 바 주이소." "그래? 우야다 구두닦이가 되었노?" "학교 다니면서 껌 장사했는데 장사가 안돼서 먹고 살길이 없어예. "그래? 그럼 니 우리 집에서 양복 기술 배워 볼래?" 나는 귀가 번쩍 띄어 얼른 대답했습니다. "그럼 니 며칠 있다가 우리 집에 한번 와 바라." 나는 아저씨께 십 원을 받았습니다. 나는 뒷골목으로 살금살금 다니면서 구두를 닦았습니다. 왜냐면 큰 아이들에게 걸리면 매를 맞을 듯 싶어서입니다. 결국 하루종일 여섯 켤레를 닦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와 헤어지고



아버지는 떠나고 - 9월 14일 토요일 맑음

아버지와 헤어지는 날입니다. 아버지는 울산과 경주로 돈을 벌러 가신다고 합니다. 언제 준비하셨는지 둑구네 간장 한 되와 배급 탈 돈도 구해놓으셨습니다. "동생들 울리지 말고, 이 돈 가지고는 오늘 둑구 엄마 배급 타러 가는데 니도 같이 따라가 타 오느라." 하시면서 백 오십 원을 나에게 주셨습니다. 나는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아버지예, 빨리 돌아오셔야 해예." "오냐." 하시며 아버지께서도 눈물을 글썽거리셨습니다. 울면서 집에 돌아와 동생들이 자고 있는 것을 보니 더욱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보리 이삭도 없어지고 - 9월 23일 월요일 맑음

학교에 갔다 오니 윤식이가 전번 아버지가 떠나실 때 얻어 주고 간 간장병을 깨어 버렸습니다. 나는 화가 나서 때려 주려고 했지만, 윤식이가 벌벌 떨면서 겁을 먹고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울 듯이 "씨야, 방에 놔 둔 보리 이삭도 없다."고 하기에 나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방에 들어가 보니 정말로 보리 이삭 주워 놓은 것도 없어졌습니다. 나는 갑자기 눈물이 확 쏟아졌습니다. 올 여름 동안 내내 배고픔을 참아가면서 주워 모은 보리 이삭이 모두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속이 상해서 떨리는 소리로 윤식이를 불러 앞에 세워 놓고 "니 집 안 보고 어데 갔드노?" 하며 때리려고 하니 윤식이는 벌벌 떨면서 "씨야, 내일부터 집 잘 볼게." 하고 눈물을 흘리기에 나는 때리지도 못하고 꾹 참았습니다.



쌀 갖고 오신 선생님 - 10월 23일 수요일 맑음

늦은 아침. 학교를 못가고 걱정스러워 하고 있는데 밖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났습니다. 나가보니 김동식 선생님이 자전거에서 내렸습니다. "선생님, 오셨어예." 하고 인사를 하니 "윤복이 학교에 왜 안 와. 안 오기에 오늘 선생님이 일부러 다니러 왔다. 니 아침은 먹었나?"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데 가셨노?" "일찍 일어나서 시전에 나가셨는데 어데 가셨는지 몰라예." "그럼 솥하고 그릇하고 내 온나. 밥하자." 하셨습니다. 밥을 하기 위해 물을 길러 왔더니 선생님이 나무를 해 놓지 않았다고 꾸중을 하셨습니다. 방안을 들여다보니 선생님이 가지고 오신 쌀을 윤식이와 태순이가 집어먹으며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선생님 보기에 부끄러워 동생들에게 야단이라도 치고 싶었습니다만 꾹 참았습니다.



따뜻한 사람들



고마운 동무, 혜자 - 11월 14일 목요일 맑음

점심시간이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우유를 주는데 나는 받아먹을 그릇이 없었습니다. 나는 너무 배가 고파 당장이라도 먹고 싶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근데 저쪽에서 혜자가 "윤복아, 내 컵 빌려 줄까?" 하기에 "니는 안 받아 먹나?" "나는 안 먹는다. 윤복아, 니 받아 먹어라." 하면서 깨끗한 컵을 빌려주었습니다. 나는 우유를 받아 맛있게 마셨습니다. 다 마시니 상규가 옆에서 "윤복아, 니 점심도 안 싸왔을 텐데 더 받아먹어라." 하니 혜자가 옆에서 "윤복아, 그 컵 인도고. 내 더 받아줄게." 혜자가 한 컵 철철 넘치게 갖다줘서 저는 또 맛있게 우유를 마셨습니다. 전에도 혜자는 교회에서 탄 강냉이가루로 빵을 만들어 학교에 가져와서 나에게 준 일이 있습니다. 혜자는 정말 고마운 동무입니다. 아마도 혜자는 내가 날마다 떨어진 옷을 입고 점심도 못싸 오는 것이 퍽 불쌍하게 여겨지는 모양입니다.

김 선생님의 옷차림 - 11월 29일 금요일 맑음

동무들과 교실에서 청소를 하고 있을 때입니다. 김동식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신 다기에 나는 직원실로 곧장 뛰어갔습니다. 직원실에 들어가니 선생님께서 다른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계셨습니다. 다른 선생님은 자리를 옮기려는지 오버를 입으셨지만 김 선생님은 오버도 안 입고 검은 작업복 차림에 누덕누덕 기운 운동화를 신고 계셨습니다. 나는 며칠 전 선생님이 자취하는 방에서 바지를 바꿔 입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 김 선생님은 다 떨어진 내복을 입고 계셨습니다. 왜 김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처럼 옷도 잘 입지 못하고 계실까? 선생님이 적은 월급으로 가난한 아이들을 열다섯 명이나 공부시키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정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저렇게 험한 옷을 입고 계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이 나가시고, 김선생님과 나는 숙직실로 걸어갔습니다. 나는 선생님도 오버를 입고 구두를 신으셨다면 몇 배나 더 잘나 보였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 있을까요?



저 하늘에도 슬픔이 - 12월 20일 금요일 맑음

하늘을 쳐다보니까 참말로 맑았습니다. 아무리 구름을 찾아보려고 해도 구름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식구도 저 하늘처럼 말끔하면 얼마나 좋을까? 저 하늘에도 슬픔이 있을까요? 순나는 지금 어디 있을까? 어느 하늘 밑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순나야, 나는 기쁜 일이 있어도 순나 네 생각만 하면 슬픔이 소복이 가슴에 모여 눈물이 난다. 순나야, 살아 있으면 집으로 돌아와 같이 살자. 순나야, 너는 왜 집에 안 들어오느냐. 나는 네 마음을 안다. 왜 집에 안 들어오는지 알지. 돈벌고 성공해서 들어오려고 하는 거지? 순나야, 내가 오늘 껌장사를 하러 나갔다가 대구 백화점 앞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아이들 셋을 데리고 백화점에서 나오는 것을 봤는데, 정말 행복해 보이더라. 한참을 바라보며 우리들도 어머니가 있는데 왜 이렇게 고생만 하고 있을까 하고 생각하니 껌 장사도 하기 싫더라. 순나야, 우리도 잘 살 날이 있지 않겠니? 굶더라도 서로 헤어지지 말고 한 집에서 같이 살자, 순냐아. 살아 있으면 어서 집으로 돌아오렴.



껌팔이 소년의 크리스마스 - 12월 25일 수요일 맑음

오늘은 즐거운 크리스마스날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아기 예수가 태어난 날이라고 합니다. 아침부터 배가 아파서 아버지께서 사 오신 활명수 한 병을 마셨는데 약은 쓰지 않고 맛이 좋았습니다. 하루 종일 누워 있다가 몸이 가뿐하기에 껌 장사를 하러 시내에 나갔습니다. 시내의 상점들은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기 위해 전깃불들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거리엔 둘씩 둘씩 남녀가 짝을 지어 코트를 입고 지나가고, 선물인지 무엇인지 상자를 옆에 끼고 오고 가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오늘따라 더욱 힘이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