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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낮은 집

임정진 지음 | 푸른숲
지루함 - 경마장에 사는 경미

길고 지루한 장마였다. 나는 지붕만 새지 않는다면 비가 오는 날 집 안에 있는 것은 오히려 다른 날보다 더 아늑해서 좋았다. 한시도 가만 있지 않는 동생 혜은이와 혜선이는 살이 부러진 비닐 우산 하나를 둘이서 들쳐 쓰고 나갔다. 골목에는 작은 도랑이 생겼고, 물 내려가는 소리가 요란하였다. 슬레이트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도 요란하긴 마찬가지였지만, 늘상 듣는 소리라 그다지 귀에 거슬리지는 않았다.



이틀 동안 끊임없이 쏟아지던 폭우가 그치고 희숙이가 경마장에 물이 찼다며 구경가자고 찾아왔다. 경마장에 살고 있는 경미네 집을 찾아가보니 집이 마치 통째로 물에 담갔다가 꺼낸 두루마리 휴지 같았다. 교과서며, 장롱, 찬장, 책상 등이 다 물에 불어 있었다. 물이 허리까지 찼는데, 어른들은 기와집 보다 비싼 말을 구하러 가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은 이불만 하나씩 안고 관중석 위로 올라갔다고 경미가 말했다. 경미의 남동생 둘은 그 전쟁통 같은 상황에서도 막대기를 휘두르며 전쟁놀이를 하고 있었고, 동네 아줌마들은 비슷하게 생겨 누구 것인지도 확실하게 알 수 없는 장독을 놓고 자기 것이라며 서로 다투었다.



나는 줄기찬 비가 우리 집 슬레이트 지붕을 시끄럽게 때리는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줄은 몰랐다. 그런데 경미네 동네에 와 보니, 물난리가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알 듯했다. 나는 경마장 앞을 지나칠 때마다 거기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의 흐리멍덩한 눈빛이 싫었다. 그런데 그 안에 집채 만한 말들을 돌보기 위해 하루하루 긴장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니, 경마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대가 높아서 걸핏하면 수돗물이 잘 안 나와 괴로웠지만, 물은 잠기는 일은 없는 우리 동네가 자랑스러워 보였다. 며칠이 지나 또 비가 오자 우리 집 천정에도 비가 새기 시작했다.



쓸쓸함 - 천국에는 가지 않은 강희 언니

"너, 교회 안 갈래?" 같은 골목 아랫집에 사는 강희 언니는 나만 보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일요일마다 일찍 일어나서 교회에 가야 한다는 게 싫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골목길에서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려와 나가보니 강희 언니가 울고 있었다. "언니, 왜 울어?" 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질겨서 지루한 울음이었다. 나는 아마도 누군가에게 억울한 소리를 들었나 보다, 하고 막연하게 추측했다. 가난한 이들은 억울하고 서러운 게 많은 법이다. 가난한 동네에 살면서 나는 그런 걸 저절로 알게 되었다.



언니가 한참 운 다음날 강희 언니가 산부인과 병원에서 나오더라는 소문이 동네에 쫘악 돌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 강희 언니는 계단에 앉아 오래도록 울었다. 그 여름이 지나도록 강희 언니는 밤마다 그렇게 울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 울음소리가 날마다 작아지고, 조금씩 낮아졌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른 척하고 참아 주었다.



나는 강희 언니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 교회에 나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일요일이 되자 일어나는 게 귀찮아져 연거푸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교회에 가지 않았다. 강희 언니는 그렇게 3주가 지나자 나를 데리러 오지 않았다. 그리고 두 달 후 언니는 굴비 두 마리를 들고, 전도사 아저씨와 결혼하고 개척교회를 하러 떠난다며 인사를 왔다.



우리 동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결심이 있다. 평생 뜨지 못한다면 할 수 없지만 만약 이 동네를 뜨게 된다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것은 우리 모두가 가진 최후의 자존심이었다. 공동 수도에서 물을 한 통씩 길어다 먹고, 공동 화장실 앞에서 싸움질을 하면서 살지만 언젠가는 여기를 뜨리라. 그러므로 우리 동네에서의 가장 큰 죄악은 그 희망을 짓밟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착한 강희 언니가 시집간 지 2년 만에 우리 동네로 돌아왔다. 전도사가 폐병으로 죽어버리자 강희 언니는 혼자서 개척 교회를 꾸려갈 수 없어서 되돌아왔다. 남편 잡아먹을 년, 앞으로 팔자가 더 드셀 것이라고 저주한 우리 동네 사람들이 생각한 강희 언니의 진짜 죄는 우리의 희망을 짓밟고 이 동네로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돌아온 강희 언니는 광신도가 되어 있었고, 훗날 나는 결국 그 교회에 나가게 되었지만, 서로 목례만 할 뿐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



질김 - 새우젓 파는 만수 엄마

우리 집의 연탄광은 여느 집 창고보다 컸고, 나와 동생 둘이 같이 쓰는 건넌방보다 훨씬 더 컸다. 아버지의 시큰둥한 반응에도 아랑곳없이 엄마는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더니 주인집의 허락을 얻어서 결국은 연탄광을 고쳐 방으로 만들고야 말았다. 어쨌든 빈방이 하나 생겼으므로 월세를 받을 수 있다는 꿈에 젖어 엄마는 연탄의 거취에 대해서는 잠시 모른 척했다. 그 방에는 부엌이 없었는데, 엄마의 소원대로 혼자 살면서 밥을 안 해먹어도 되는 사람은 쉽게 구해지지 않았고, 결국 그 방에는 나의 외사촌인 소희 언니가 들어와 엄마는 월세는 고사하고, 소희 언니의 밥까지 해줘야 하는 일을 떠맡았다.

연탄가스를 마시고 박씨 아저씨가 죽자 아줌마는 장사를 치르자마자 서둘러 방을 빼 이사를 했고, 박씨 아저씨가 살던 그 방에 만수 엄마가 이사를 왔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날이 똥 푸는 날이었다. 만수 엄마의 원앙금침 이불 보따리 중 하나가 똥지게와 부닥치는 바람에 그만 똥물이 묻었고, 이를 본 만수 엄마가 화를 내며 똥지게를 진 아저씨와 싸움을 했다. 이를 지켜보던 우리는 싸우는 소리를 정확하게 듣기 위해 15미터 가량 앞으로 전진해야 했고, 우리의 코는 곧 마비되어 더 이상 똥지게 냄새 때문에 괴롭지 않았다. 똥지게를 진 아저씨와 만수 아줌마의 싸움을 말리려던 통장 아저씨가 과부가 무슨 원앙금침이냐는 소리를 꺼내자 만수 아줌마는 분을 참지 못해 악을 쓰다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래서 만수가 간신히 아줌마를 끌어 집으로 들어갔다.



그날 저녁에 만수 엄마는 언제 목청 터지게 울었냐는 듯 말짱한 얼굴로 시루떡을 든 채 우리 집으로 왔다. 아까 길바닥에 주저앉아 악을 쓰던 그 험악한 여편네는 어디 가고 인심 좋고 마음 넓은 귀부인이 온 듯했다. 만수 엄마가 돌아가자 엄마는 아버지에게 드린다며 우리가 먹고 있는 떡을 뺏어 따로 두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떡을 먹기 위해 통금이 가까워질 때까지 졸음을 참았다.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의 손에는 태극당 과자점의 식빵이 있었고, 나는 동생들 몰래 식빵을 여섯 쪽이나 먹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우리 셋은 굳어서 다시 찌는 바람에 축 늘어진, 그 모양 없는 떡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식빵이 있는 날이었으니까.



만수 엄마가 하루가 멀다 하고 다른 사람들과 싸움을 하는 동안 만수는 아랫동네에 있는 만화 가게에서 가끔 학교도 조퇴하면서 죽치고 앉아 있었다. 나는 만수 엄마에게 그걸 이를까 망설이다가 만수가 만화 가게에 앉아 있을 때엔 너무 행복해 보여서 그 기쁨을 뺏으면 안 될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리고 얼마 뒤 만수가 목덜미를 잡힌 채 집으로 끌려가는 것을 창문 너머로 보게 되었다. 만수는 골목길을 끌려 올라가면서 내내 중얼거렸다. "엄마도 만화책 한번 봐봐. 싸우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어. 진짜야." 만수는 미련하게도 엄마한테 등을 얻어맞으면서도 계속해서 만화책을 옹호했다. 바보! 철썩철썩, 등짝을 얻어맞을 때마다 만수의 옷에서 나는 먼지와 함께 만수 엄마가 팔고 다니는 새우젓 냄새가 온 동네로 퍼져 나가는 듯했다.



만수 엄마는 김장철이 끝나자 새우젓 대신 북어채랑 마른 오징어를 이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만수 엄마가 버스 정류장 앞에서 쓰러졌다. 그날도 만화 가게에서 만화책을 읽다가 그 소식을 들은 만수는 얼굴이 하얗게 되어 병원으로 달려갔다. 만수 엄마가 병원에서 돌아온 이후부터는 우리 동네가 한결 조용해졌다. 만수 엄마가 더 이상 아무와도 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만수 엄마는 앉아서 놀 형편은 아니어서 장사를 나갔다. "엄마, 그러다 길에서 죽어. 나가지 마." 우리는 만수가 아침마다 울면서 매달리는 걸 봐야 했다. 동네 사람들이 몇 번 나서 보기도 했지만 아무도 만수 엄마를 말리지 못했다. 만수는 아침마다 엄마를 말리다가 결국엔 울면서 학교에 갔다. 그리고 만화 가게도 끊었다. 학교 갔다 오면 집에서 공부를 하다가 해질 녘이 되면 버스 정류장까지 내려가서 엄마를 기다렸다. 만수 엄마가 그렇게 계속 장사를 하고 다녀서 그런지 우리는 만수 엄마가 아픈 사람이라는 사실을 차차 잊어갔다.



엄마가 김장 김치 몇 포기를 만수네로 보낸 날 그걸 갚으려고 만수 엄마가 만수 편에 그동안 팔고 다니던 오징어채를 한아름 보냈다. 만수는 엄마가 자기를 인천에서 작은 엄마랑 동생이랑 사는 아버지에게로 보내려고 한다며 좀 말려달라고 우리 엄마에게 부탁했다. "엄마가 아픈데, 내가 가면 우리 엄마는 누가 돌봐줘요?" 만수는 목 놓아 울었다. 하지만 결국 며칠 후 인천에서 만수를 데려가기 위해 만수 아버지의 차가 우리 동네로 왔다. 만수가 간 날, 엄마는 오래도록 만수 엄마와 함께 울었다면서 눈이 빨개가지고 늦게 집으로 왔다. 만수 엄마는 만수가 떠난 다음날 조용히 요양원으로 떠났다. 그후 동네가 다 적막하였다. 나는 다시는 그리 푸짐하고 맛나보이는 찰시루떡을 본 적이 없었다. 그때 먹었어야만 했다. 그때는 그걸 몰랐다.



마중물 - 펌프 물 속에 여름을 담근 외삼촌

여름 방학이 되면서 동네가 한결 조용해졌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시골에 있는 아이들이 그리로 여행을 많이 떠났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은 친가에도 외가에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없었다. 외삼촌 댁에 다녀오지 그러느냐는 소희 언니의 제안에 자못 솔깃해진 엄마는 아버지의 허락을 얻어 우리 셋과 함께 외삼촌 댁에 갔다. 엄마는 아버지 저녁을 챙겨야 한다며 다음날 외숙모가 챙겨주는 풋고추와 가지, 토마토 따위를 한 보자기 싸서 들고 갔고, 나와 동생들은 외삼촌네 집에서 펌프 물에 담가 놓았던 수박이랑 참외를 실컷 먹으며 일 주일을 지냈다.



외삼촌에게는 우리 집에 올라와 사는 딸 말고 아들이 둘 더 있었다. 그 중 큰오빠는 건달이어서 외숙모가 틈만 나면 야단을 쳤고, 작은오빠는 고등학생이었는데, 방학이랍시고 온종일 집안에 들어앉아 기타 연습만 하였다. 외숙모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열무를 뽑아 단을 만들어 그걸 이고 팔달문 앞으로 팔러 나갔다. 점심은 작은오빠가 밥상을 차려 주었고, 나는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를 하려면 마당의 펌프에 달린 머리통 속에 마중물을 먼저 한 바가지 붓고, 손잡이를 삐꺽삐꺽 오르내리게 해야 물이 와르르와르르 나왔다. 마중물로 쓰기 위해 펌프 밑에 놓인 큰 함지박에 물이 차있게 해야 하는데, 그걸 잊고 다 쏟아버릴 때가 많아 작은오빠에게 놀림을 당하기도 했다.



오빠들 방에는 주간 잡지 「선데이 서울」이 굴러다녔는데, 오빠들이 나가고 나면 그걸 슬쩍 들고 나와 평상에 엎드려 읽었다. 그걸 열다섯 권쯤 독파하고 나니 세상을 다 알아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왜 학교에서 꼬박꼬박 방학을 하는지 알 듯했다. 학교에서는 체면 때문에 「선데이 서울」 읽을 시간을 줄 수 없었다. 그래서 방학을 만든 것이다. 방학 때 시골에 있는 친척집에 가서 보라고. 거기에서 배워야 할 또 다른 세상이 있었으므로. 그렇게 일 주일 동안 외삼촌 댁에 있다가 집에 올라왔는데, 명철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떠남 - 형제만 남은 명철이 3

엄마가 싸 준 열무김치를 들고 명철이네 집으로 갔다. 이제 명철이와 동생 명식이가 둘이서만 살아야 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애들 둘이서 산다는 것일까. 찬장 위에 김치통을 내려놓고 떨리는 손으로 쌀통을 열어보니 바구미가 기어 다니는 쌀이 두 되 가량 들어 있었다. 나는 급하게 쌀가게로 뛰어가 외삼촌이 주신 용돈으로 쌀 다섯 되를 사서 부뚜막에 올려 놓았다.



공부를 잘했던 명철이가 돈이 없어 학교도 가지 못한 채,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국수 가게로 가보았다. 국수 가게로 들어갈 용기가 없어서 국수 건조대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멀거니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명철이가 국수 다발을 담은 상자를 들고 나와 짐 자전거에 실었다. 명철이가 나를 발견하고는 씩 웃었다. "외삼촌네 잘 다녀왔니? 얼굴이 탔다, 너." 명철이가 오빠라도 되는 것처럼 말했다. "응, 아까 왔어. 니네 부엌에 김치 갖다 놓았다. 열무김치야. 엄마가 갖다 주라 했어." "고마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갑자기 마음이 왈칵 뒤집어져 눈물이 저절로 나왔다. 명철이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했다. "난… 괜찮아. 울지 마. 나, 잘 할 거야. 걱정 마." 명철이의 목소리는 아주 편안했다.



'건방진 놈, 괜찮긴 뭐가 괜찮아. 복도 지지리도 없는 놈이. 이제 그나마 버팀목이 되어 주던 할머니도 안 계신데. 넌 이제 겨우 열네 살이라고. 게다가 3학년짜리 명식이는 아직 철도 없는데. 넌 중학교도 못 가고, 그 엉터리 같은 야학에나 다니면서 뭘 잘 해. 뭘 잘 할 수가 있느냐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그만두었다. 그걸 모르는 명철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철이는 잘 할 수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뭐 하니? 어서 배달 가라." 가게 안에서 주인 아줌마가 소리를 질렀다. 나는 명철이를 위해 길을 비켜 주었다. "너도 교회에 나와라. 나도 열심히 다니기로 했어." 명철이는 페달을 밟으며 길 끝으로 사라졌다. 명철이는 갈 길이 바빴다. 명철이가 갈 길은 아주 멀어 보였다.



설렘 - 이마가 반듯한 민재 오빠

그해 겨울, 학생부에서는 한 달 전부터 성탄절에 공연할 성가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성탄절 예배는 특별히 학생부가 주도하여 음악 예배로 진행하는 것이 그 교회의 전통이었다. 중학생이 열다섯 명에다 고등학생이 열두 명이었는데, 고등학교 1학년인 민재 오빠가 학생부 성가대를 지휘했다. 민재 오빠는 공고에 다녔는데, 청계천에서 전자 부품들을 사다가 늘상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우리 동네 입구에 있는 환희 전파사 아저씨는 민재 오빠를 천재라고 불렀다. 환희 전파사에서는 날마다 라디오를 크게 틀어 놓았는데, 민재 오빠가 그 가게에 들어가 있을 때면 주로 팝송이 흘러나왔다. 환희 전파사에서 팝송이 나오면 나는 그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노래가 사람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는 걸 배워가던 때였다. 친구들 중 몇몇은 라디오 방송국에 엽서를 보내서 신청곡이 나오나 안 나오나로 내기를 하면서 나날을 보냈다.



성가 연습 시간은 지루하고 따분했다. 몇몇은 너무 우아한 곡만 선택한 민재 오빠가 문제라고 수군거렸지만 대놓고 그런 말을 하지는 못했다. 민재 오빠는 우리와 다른 고귀한 피가 흐르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며칠 후 성가 연습 시간에 민재 오빠가 야외 전축을 가져와 소중히 들고 온 레코드판을 전축에 걸었다. 지지직거리는 잡음이 적당히 섞인 레코드 판에서 어떤 여자가 천상에서 울려 나오는 듯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노래를 할 때는 노래가 창으로, 문 틈으로, 마룻바닥 새로 살살 다 새어나가는 기분이었는데, 그 여자의 노래는 달랐다. 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허공을 채워나갔다. 무슨 노래인지도 몰랐지만 우리는 그 목소리에 서서히 빨려 들어갔다.

노래를 다섯 곡쯤 들은 것 같았다. 멍하기도 하고 황홀하기도 하였다. 민재 오빠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마리아 칼라스라고 말하면서, 혼으로 노래하기 때문에 혼자 부르는데도 엄청난 힘이 느껴지는 거라고 했다. 노래를 들은 후 그날 밤 우리가 부른 성가는 예전의 노래와 사뭇 달랐다. 우리는 가슴 깊은 곳에서 노래를 끌어내려고 애썼다. 그러자 우리가 듣기에도 소리가 달랐다. 사람이 만든 아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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