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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다리꽃

문선희 지음 | 사계절
양조장

복실이와 영아는 고무줄을 하고 놀다가 축을 시작했다. '축'이란 작고 동글동글한 돌맹이를 수북이 쌓아놓고 돌 따먹기를 하는 놀이이다. 자기가 따먹은 돌멩이를 세면서 복실이는 다른 아이들이 하는 것처럼 무심결에 히라가나로 셈을 했다. 그러자 근처에서 잠자코 앉아 있던 민석이가 복실이를 보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너 지금 무슨 말 하고 있니?" 영아가 민석이를 보고 눈을 흘기는 동안 민석이는 복실이를 흘겨보고 있었다. 복실이는 그만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번 9월에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복실이는 며칠 전에 입학 시험을 쳤는데, 시험에 합격하려면 자기 이름과 숫자, 요일 등 일상생활에 많이 쓰는 낱말도 일본말로 할 줄 알아야 했다. 학교에 들어가서도 4학년이 되어야만 조선어를 배울 수 있었다.



복실이가 사과를 했으나 민석이는 화가 난 얼굴로 양조장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민석이 아버지 박떡쇠는 만주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동지를 모으기 위해 잠시 고향에 들렀다가 진작부터 독립 운동에 뜻을 두고 기회를 엿보고 있던 복실이 아버지 김성식과 함께 만주로 떠났다. 할머니의 손에서 자란 민석이는 언제나 말이 없고 슬픈 표정이었지만 복실이는 자기한테 민석이가 버럭 화를 낸 이유를 알았다. "내가 잘못했어. 우리 아버지는 만주에서 독립 운동을 하고 계신데 나는 일본말을 했으니까 민석이 오빠가 화를 내는 게 당연하지 뭐."



영아는 복실이 손을 잡고 양조장 안으로 들어가 잘 마르도록 널어놓은 찐쌀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었는데, 이 주사가 들어와 이 광경을 보고 호통을 쳤다. 영아는 이 주사를 올려다보면서 눈웃음을 살살 쳤다. 양조장 사장은 영아 아버지이지만 영아는 아버지가 전혀 무섭지 않았다. 아버지는 언제나 영아의 온갖 응석을 받아주었다. 하지만 남의집살이를 하는 엄마 밑에서 자라는 통에 여덟 살 아이답지 않게 일찌감치 철이 들어버린 복실이는 얼른 찐쌀에서 손을 떼고 검정 치마에다 손을 쓱쓱 문질렀다. 복실이는 영아를 데리고 양조장 마당으로 나왔다. 민석이와 이 주사의 아들인 상식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신대에 안 가려고 언니나 누이들이 나이 어린 신랑과 결혼하는 얘기를 들었다.

형과 아우

아버지가 경상북도 송라면에서 소문난 땅부자였지만 한일병합 이후 벌인 일본의 토지조사사업으로 땅을 거의 빼앗긴 후 남은 돈으로 양조장을 경영하는 이가 이태진이었다. 일본에게 땅을 빼앗긴 이후 울분으로 자리에 누워버린 아버지를 본 동생 이성진은 땅을 되찾고, 우리 집안과 고향을 보호하겠다며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순사가 되었다. 이로써 부자관계가 끊어진 후 이성진은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연락을 받지 못했고, 참석도 할 수 없었다.



꿈꾸는 사람들

이태진은 뒷짐을 진 채 새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천천히 걸었다. 빼앗긴 나라, 강제로 몰수당한 땅, 일본 순사가 된 아우, 아버지의 죽음, 결혼, 양조장 사업과 무역 상사…. 그동안 이런저런 일도 많았지만 열심히 살았다. 어느덧 태진도 불혹의 나이가 되었다. 결혼 이듬해 여름에 태어난 첫아들 영민이와 십 년 후 태어난 영아는 모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이다. 아까부터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내가 이태진에게 일본에서 아주버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마루에 앉아 있던 정일우는 집 안으로 들어서는 태진을 보자 벌떡 일어났다. 정일우는 태진의 외가 쪽으로 종형인데, 일본에 유학 가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둘은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방으로 들어갔다. 정일우는 일본에서 접한 새로운 사상과 학문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이태진에게는 종형이 새로운 문물을 접하면서 서구와 일본의 발달한 문화에 충격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종형이 혹시 서구를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신동이라 불렸을 정도로 명석한 사람인지라 종형의 말을 듣고 있는 태진은 지식의 소나기를 흠뻑 맞고 있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유쾌하게 즐긴 정일우는 다음에 또 많은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오마 약속하고 떠났다.



그리고 그날 밤 3·1 만세운동 이후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이곳저곳 은밀하게 다니면서 독립군 군자금을 모으는 김성식이 찾아왔다. 김성식은 집에 들러 복실이와 아내인 영천댁의 건강을 염려하고는 집을 떠난 길이었다. 그는 이태진을 만나 군자금을 조달해주는 것에 고마움을 표하고, 중국에 와서 필요한 일이 있으면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제 보니 김 장군은 약간 수척해지셨습니다. 고생이 여간 아닐 테지요? 부디 늘 몸조심하십시오." "그러지요. 조국은 반드시 해방될 겁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태진은 김성식의 소신과 용기에 새삼 감동을 받았다. 군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이태진의 집에서는 근검절약을 습관화하고, 하루에 한 끼는 밀가루 음식이나 죽을 먹었다.



해방

큰이모가 영아의 집에 오셔서 큰이모님이 좋아하는 탁주 심부름을 하던 영아와 복실이는 무거운 주전자를 들고 오다가 술을 조금씩 마셔보았다. 시원한 맛에 계속 먹다보니 두 뺨이 발그레할 정도가 되었는데, 저 멀리 순사가 오는 것을 보고는 얼른 나무 뒤로 숨었다. 그런데 순사는 아무 말도 없이 아이들이 숨어 있는 나무를 흘끔 보고는 그냥 지나갔다. 두 눈을 부라리며 사방을 휘둘러보던 평소 때와는 다르게 시무룩한 얼굴로 땅만 내려다보며 걸었다. '참 이상한 일이야.' 복실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시무시한 일본 순사가 야단도 치지 않고 그냥 지나가다니. 신작로까지 나가보니 사람들이 해방이 됐다면서 서로서로 부둥켜안고 춤을 추었다.



신비스러운 큰이모

입추가 지난 지 열흘이 됐는데도 더위는 마지막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유난히 무더운 해였다. 영아와 복실이는 큰이모와 함께 평상에 누워 별을 올려다보기도 하고, 큰이모가 들려주는 이야기도 들으면서 지냈다. 엄마는 큰이모가 다른 사람의 사주나 관상, 손금 따위를 봐주는 것을 아주 싫어해서 큰이모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곤 했다. 그래도 안주인이 없는 줄을 용케 안 일꾼들은 큰이모에게 찾아와 손금이나 사주팔자를 봐달라고 스스럼없이 졸라댔다. 고등 교육까지 받은 신여성이었지만 첫 아이의 죽음 후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등 언니의 평탄하지 않은 삶이 염려스러운 엄마는 큰이모에게 잔소리를 했고, 이 때문에 섭섭함을 느낀 큰이모는 훌쩍 떠나버렸다.



감이 붉게 물든 날

어느 날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분이 찾아오셨다는 소식에 복실이는 당장이라도 아버지를 만나려나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뛸 듯이 기뻐하며 안채로 갔다. 그러나 그 곳에서 복실이는 아버지가 일본군으로부터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울음을 터뜨렸다. 가을,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왔지만 남편의 죽음으로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눈물로 베개를 적시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영천댁은 끝내 죽음을 맞았다.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 한평생을 고단하게 살아온 영천댁을 태운 꽃상여는 뒷산 양지바른 명당 자리에 묻혔다. 영아는 엄마를 잃은 슬픔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하는 복실이를 토닥거리며 달랬다.



낯선 사람

어릴 때부터 춤을 잘 추었던 작은이모는 외할아버지의 반대로 무용가의 꿈을 포기하고, 국민학교 교원 자격 시험에 합격해 올 봄에 송라 국민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복실이네 담임 선생님이 마침 작은 이모였는데, 복실이는 작은 이모가 운동장에서 춤도 가르쳐준다고 자랑했다. 학교에서 배운 춤을 복실이가 유연한 동작으로 추는 것을 보면 작은이모의 타고난 춤솜씨를 알 수 있었다.



어느 날, 시동생이 아내될 사람이라며 여자를 데리고 와서 며칠간 데리고 있어 달라고 부탁하고는 떠났다. 장경옥과 시어머니 정씨는 박옥례라는 그 여인을 따뜻하게 대하였으나 그녀는 당돌하고 쌀쌀맞은 사람이었다. 영아는 숙모가 될 그 사람을 썩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 분은 작은이모와는 단짝이 되어 잘 지냈다. 작은이모를 숙모에게서 지켜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작은이모를 졸졸 따라다니던 영아는 귀를 쫑긋 세우고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숙모가 외할아버지의 반대 때문에 무용가의 꿈을 접은 작은이모를 애석해하고, 작은이모의 꿈을 자꾸만 들추어낼 때마다 작은이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제 작은이모는 침울한 표정으로 며칠 간이고 자기 방에 틀어박혀 지냈다.

꿈은 사라지고

이성진은 박옥례를 고향 집에 데려다놓고는 일제 때 남몰래 모아놓은 돈으로 포항에서 제재소를 사들인 뒤 다시 고향으로 왔다. 그리고는 어머니에게 정식으로 혼인을 인정받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하지만 박옥례를 며느리로 흔쾌히 맞아들이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태도를 보고서 박옥례를 낚아채듯 데리고 나와 집을 나섰다. 이성진이 가장 믿고 있는 것은 몰래 간직해둔 제법 많은 돈이었다.



그 뒤로 사람들은 일부러 찾아와서 은근히 나쁜 소식을 전해주고 갔다.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장경옥은 새살림을 차린 시동생이 걱정되었다. 경옥에게 걱정거리를 갖다주는 사람은 남의 일에 호기심이 많은 동네 사람들과 온갖 장사치들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방물장수가 으뜸이었다. 가끔씩 찾아오는 방물장수의 말을 듣고 나서 엄마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질수록 영아는 방물장수가 점점 싫어졌다. 방물장수가 왔던 바로 그날, 마음의 갈피를 못 잡고 갈팡질팡하던 작은이모는 편지 한 장만 달랑 남긴 채 집을 떠나고 말았다. 엄마는 작은이모의 편지를 잃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들 앞에서 무용을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바로 우리 이모라고 자랑하고 싶었던 영아의 꿈은 영영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씨앗 하나

해방된 지 삼 년째 되는 초봄이었다. 해방 뒤에는 봄에 입학하는 제도로 바뀌어서 그토록 학교에 가고 싶어하던 영아도 입학하게 되었다. 제법 따스한 봄바람이 옷깃을 스치는 때가 오자 바람 같이 떠돌던 큰이모가 모처럼 집에 들렀다. 영아와 복실이를 위한 학용품을 들고서. 햇살이 따사로운 봄날 오후, 큰이모와 붓꽃 씨앗을 심고, 영아 얼굴에 핀 마른버짐을 보고 놀리는 달수와 티격대격하면서 지내다보니 벌써 10월이 되었다. 영아가 입학할 때쯤에 온 큰이모는 아직까지 머무르고 있었다. 마을에 찾아온 곡마단 구경도 큰이모와 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큰이모는 보따리를 쌌다. 큰이모가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는 것을 이제는 영아도 잘 안다. 엄마는 떠나려는 큰이모의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였다. 전 같지 않게 엄마는 큰이모에게 떠나지 말라고 자꾸만 애원했지만 큰이모는 영아를 꼭 품에 안은 후 집을 나섰다.



혼란

중학생이 된 민석이가 책보를 메고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다. 학교에서 일등을 놓치지 않는 민석이였지만 올 봄에 민석이가 중학교에 진학하자 동네 사람들은 민석이를 철없는 놈이라고 나무라기도 했다. 아버지도 없이 할머니 혼자 힘겹게 살아가는데 할머니를 도와 생계를 꾸려야지 무슨 공부냐는 것이었다. 민석이도 중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떡쇠 어멈은 힘 닿는 데까지 민석이를 공부시키고 싶어 말 많은 동네 사람들을 나무랐다. 민석이 아버지 박떡쇠는 아직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소문만 무성하게 나돌았다.



영아는 엄마와 함께 들길을 걷다가 앞서서 걷는 민석이를 보았다. 빠른 걸음으로 민석이를 따라잡은 영아에게 민석이는 아버지의 소식을 곡마단 아저씨가 전해주는 편지를 통해 알았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아버지가 편지에 뭐라고 쓰셨는 줄 알아? '민석아, 공부 잘해라. 네가 기를 펴고 잘 사는 세상이 되도록 지금 아버지는 열심히 일하고 있다. 조금만 있으면 우리처럼 못사는 사람과 잘사는 사람이 모두 평등해지는 좋은 세상이 온단다.' 이렇게 쓰셨어. 아버지는 독립을 위해 싸웠는데, 무엇 때문에 마을 사람들 앞에 당당히 나타나지도 못하는 걸까? 죽도록 고생만 하시는 할머니는 왜 부자가 되지 못할까? 나는 어떻게 될까? 이런저런 생각에 나는 항상 슬프단다."



작년 7월에는 남북이 모두 존경하는 여운형 선생이 암살당했다. 그리고 김구 선생을 중심으로 한 임시 정부 인사들이 좌우 세력을 통합하여 자주적인 정부를 수립하자고 했을 때도 좌파나 우파나 양보하지 않았다. 결국 남쪽에서는 지난 8월 총선거에서 이승만이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북쪽에서는 9월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선포하고 김일성이 주석이 되었다고들 했다. 서로의 의견을 받아들여 서로 양보하고 합쳤더라면 지금쯤 독립 국가가 되었을까…. 신탁 통치에 반대하면서 좌우를 합치려고 애쓰던 조만식 선생도 신탁 통치 반대 운동에 침묵했던 공산당과 결별하고 말았다. '같은 나라 사람들이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게 이렇게도 어려운 일일까? 그동안 숱하게 외세의 침략을 당한 걸 생각하면 이래서는 안 되는데….' 집에 자주 들르는 정일우와 남편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던 경옥은 들바람을 깊이 들이마셨다.



어두운 골짜기

여름 해가 중천에 떴다. 점심상을 물린 이태진과 정일우는 오동나무 아래에서 장기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서 서가 내린 보도연맹 가입자들을 모이라는 명령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선인민공화국에 호의적이었던 정일우는 일찌감치 인민위원회에 들어갔고, 뒤이어 이태진도 종형의 권유로 지방인민위원회에 가입했다. 그러다가 미 군정청이 인민위원회를 없애버린 뒤에는 어쩔 수 없이 두 사람도 좌파로 몰리게 되었다. 그런데 정부가 작년 6월에 조직한 보도연맹에 가입하면 예전에 좌파에 가담했던 사람들의 과거를 묻지 않고 애국 국민으로 포용해주겠다고 해서 둘은 올 봄에 보도연맹에 가입했다. 올해 초까지 보도연맹에 가입한 사람들은 30만 명쯤이었는데, 6월에 이르러서는 100만 명이나 됐다고들 했다.



그런데 보도연맹 가입자들은 모이라는 명령을 듣고 서에 간 영아의 아버지와 삼촌은 그곳에 있었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경찰이 쏜 총에 맞아 돌아가셨고, 뒤늦게 찾으러 간 영아의 어머니와 할머니도 죽음을 맞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현실 앞에 이성진은 망연자실 넋을 잃어버렸다.

북한군이 마을 가까이 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모두들 피난 준비를 서둘렀다. 아무도 남겨진 이 아이들을 데리고 갈 생각은 없는 듯, 안채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찾아오는 사람도, 말을 붙여주는 사람도 없었다. 다만 민석이 할머니가 하루에 한 번씩은 들려서 먹을거리를 챙겨주긴 했지만 민석이 할머니는 마을을 떠나지 않을 거라고 했다. 불안한 나날이 이어지던 중 영민이에게 징집 통지서가 날아왔다. 이제 영아와 복실이만 남게 되었다. 이 넓은 세상에 둘만 달랑 남겨진 듯한 외로움이 뼛속 깊이 파고들었다.



서늘한 여름 밤

영아와 복실이는 포항에 있는 작은아버지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전쟁은 점점 치열해졌고, 귀청을 찢을 듯 날카로운 총 소리를 들으며 둘은 흥해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거지나 다름없는 몰골로 제재소를 찾아간 두 아이를 보고 작은아버지는 잘 왔다고 반가워했으나 숙모는 전혀 반기지 않는 눈치였다. 복실이와 영아는 숙모가 시키는 대로 쌍둥이를 하나씩 맡아 분유를 먹이기도 하고 업어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일꾼들이 삽으로 두 개의 구덩이를 파는 것을 보고 겁을 먹고는 소지품들을 챙겨서 그 집을 나왔다. 어둠 속에 빛나는 반딧불이를 따라 둘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간밤에 지칠 대로 지친 두 아이가 쉬려고 들어간 집은 주인이 이미 피난을 떠나고 없는 빈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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