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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골 미륵이

김정희 지음 | 사계절
하얀 달빛이 맑게 흐르는 밤이다. 고요한 숲 속에서 갑자기 여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여야시골 외딴 갓지기집에서 잠을 자고 있던 미륵이는 여우 울음소리에 밤잠을 설쳐서 늦잠을 자고 말았다. 어머니가 어서 일어나라고 잔소리를 하는 바람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나서 할아버지를 따라가려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그때 아랫마을에 사는 영대가 미륵이를 부르며 뛰어왔다. 마을 사람들이 지주들은 다 때려잡아야 된다고 몽둥이를 들고 돌아다닌다는 영대의 말을 듣고 할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을 쪽으로 영대를 따라 나섰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은 물 흐르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만 들려왔다. 하지만 실개천을 따라서 골목길을 휘돌아 들어가자 웅성거리며 모여 있는 마을 남자 어른들이 보였다. 몽둥이를 든 사람들은 다나까 집에서 마름을 하던 억수 아저씨네 집으로 몰려가 억수 아저씨에게 한바탕 분풀이를 해댔다. 사람들은 산주인집, 묘목 농장을 가진 집들을 벼르고 있었다. 영대마저 어머니의 손에 끌려가버린 후 영대는 불안한 마음으로 산 속 외딴집으로 털레털레 걸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식민지에서 36년 만에 해방이 되었다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마을 잔치를 벌이던 게 사흘 전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저녁 무렵에 갑자기 마을 사람들이 몽둥이를 들고 떼로 몰려 다나까 집으로 쳐들어가 다나까가 보이지 않자 닥치는 대로 물건을 부수었다. 긴 칼을 차고 마을을 휘젓고 다니던 일본 순사나 일본 사람들 밑에서 행세를 하던 사람들도 해방이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감쪽같이 사라졌다. 마을 지주들도 몽둥이를 든 사람들 앞에서는 꼼짝도 못하고 벌벌 떨었다. 해방이 되니까 사람들 위치가 바뀌었다. 미륵이는 아랫마을 사람들이 갑자기 무서워졌다. 그래서 부리나케 집으로 내달렸다.피난 온 감나무집 식구들아랫마을에 다녀온 다음날 밤, 미륵이네가 경작하고 있는 산의 주인인 할아버지가 찾아왔다. 몽둥이를 든 사람들을 피해 집에서 나온 할아버지 가족들의 먹을 것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강냉이죽을 다 끓이자 할아버지와 어머니는 감나무집 할아버지를 따라서 죽 그릇을 들고 숲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할아버지를 따라 올무를 살피러 가려고 헛간에서 망태기를 꺼내오는데, 갑자기 아랫마을 사람들이 몽둥이를 들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이 산 주인을 찾으러 온 거였다. "산 주인 숨겨 줬다가는 갓지기 너거들도 모조리 죽을 줄 알아래이." 만식이 아저씨의 큰소리에 할아버지는 고개를 떨군 채 손바닥만 비벼댔다. 나이도 할아버지보다 스무 살쯤 아래인데, 꼬박꼬박 반말에 갓지기(남의 산을 지켜주는 사람)라고 불렀다. 아랫마을 사람들은 미륵이네 가족들을 갓지기라고 부르며 업신여겼다.

할아버지가 아랫마을 감나무집에 가서 양식을 가져온 후 이튿날부터 감나무집 식구들은 캄캄한 밤에 찾아와서 잠을 자고 다음날 새벽이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렇게 열흘쯤 지나자 감나무집 식구들은 아예 피난처를 미륵이네로 옮겼다. 감나무집 이쁜이 누나로부터 소련과 미국이 우리나라 땅을 반으로 갈라서 각각 점령한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미륵이는 누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몽둥이를 든 사람들의 감정이 한결 누그러지자 도망쳤던 사람들이 마을로 돌아왔다. 해방과 더불어 거친 바람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고 나서야 마을은 조용해졌다. 그러나 겉으로 조용한 마을은 예전 모습이 아니었다. 일본 사람들이 물러가고 대신에 미국 군인들이 해방군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와 미군정을 시작했다. 결국 일본 대신 미국과 소련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이다.눈 덮인 야시골 외딴집간밤에 소복하게 내린 눈이 산허리를 에워쌌다. 집 안에만 있으려니 몸이 근질거리는 미륵이는 할아버지가 만들어준 설피를 신고 아랫마을에 내려왔다. 미륵이는 썰매를 타고 노는 아이들 속에서 영대를 발견하고는 설피를 영대의 동생인 영수에게 내어주고, 자신은 영수의 썰매를 얻어서 탔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놀고 있는데 영대가 추운지 몸을 떨면서 썰매를 벗었다. 더 놀고 싶었지만 손발이 얼어터질 것 같아서 미륵이도 썰매를 벗었다. "내캉 쪼매만 더 놀다 가래이. 방학하이께네 심심해 죽겠구마." 미륵이는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 다니는 영대가 늘 부러웠다. 미륵이집 형편에 학교에 다닌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영대 어머니가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고, 영대도 들어가자고 했지만 미륵이는 빨갱이들은 무조건 때려잡아야 한다고 말하고, 아버지를 싫어하는 것 같아 미륵이를 보고도 웃지 않는 영대 삼촌이 마음에 걸려 영대네 집을 나섰다. 그리고 저녁 밥상 앞에서 할아버지는 다시는 아랫마을에 몰래 내려가지 말라며 혼을 냈다.잔인한 시월의 바람1946년 10월, 야시골 숲이 온통 붉게 물든 가을이다. 시월 초하룻날, 미군정이 쌀을 강제로 헐값에 사들여서 조금씩밖에 내놓지 않는 데다가 공장 근로자들이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굶주리게 되자 시위를 일으켰다. 공무원들조차 몇 달 만에 봉급 대신 받은 쌀자루에 온갖 쓰레기가 뒤섞여 있어서 미군정에 대한 감정이 폭발했다. 대구 시민들의 항의에 놀란 미군정은 발포 명령을 내렸고,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총을 맞아 죽게 되자 분노에 찬 시민들과 미군정에 반대하던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경찰과 맞섰다. 뒤에서 대구 시민들에게 총을 쏘라고 명령했던 미군정은 이 일을 기회로 삼아 미군정에 반대하는 사람을 모두 없앨 궁리를 했다.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폭도로 몰아붙여서 잡아들이거나 죽여도 된다고 경찰과 토벌대에게 명령을 내렸다.



할아버지가 대구에서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몹시 걱정을 하는 게 미륵이는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미륵이는 걱정을 떨쳐버리려고 땔나무를 해서 감나무집에 갖다주었다. 거기서 마을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았지만 어느새 미군정 소속인 토벌대 앞잡이가 되어 나타난 억수 아저씨를 보았다. 토벌대가 감나무집 식구들만 끌어내고는 다짜고짜 밧줄로 손을 뒤로 묶어 끌고 갔다. 한 사람이 미륵이에게 총구를 겨누고는 앞장서라고 해서 미륵이는 집으로 향했다. 미륵이네 집에 다다른 토벌대들은 미륵이 아버지의 행방을 묻고는 미륵이의 어머니와 할아버지를 끌고 나갔다.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와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미륵이와 동생들은 무서움과 두려움에 떨었다. 영대는 미륵이의 아버지가 빨갱이이므로 삼촌이 같이 놀지 말라고 했다는 말을 했다. 아버지는 억수 아저씨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도 아버지를 잡겠다고 온 집 안을 들쑤셔 놓았고, 아무 죄도 없는 할아버지와 어머니를 끌고 갔다. 미륵이는 여름에 마을 사람들이 억수 아저씨를 마을에서 내쫓아버리지 않았다는 것, 친일파들을 감옥에 처넣지 않은 것, 우리 힘으로 해방을 맞이하지 못한 것이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슬펐다.황금보다 더 귀한 똥물할아버지와 어머니는 토벌대에게 붙잡혀 간 지 일주일째 되는 날 고문을 당해 상한 몸으로 돌아왔다. 약 값이 없어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할아버지는 병원에 가야 했지만 약값은커녕 얼마 안 되는 양식조차 바닥이 났다. 용기를 내어 감나무집에 내려갔지만 그곳에서도 아무런 도움을 얻을 수 없었다. 몽둥이에 맞아서 장독이 오른 데는 오래 묵은 똥물이 약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 팔공산에 있는 동화사에 찾아가보기로 했다. 배고픔과 고단함을 이기고 동화사에 도착했지만 지서에 끌려가 맞은 사람들이 많아 똥물은 벌써 동이 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륵이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점심밥도 안 먹은 미륵이를 위해 노스님이 내어준 보리개떡과 백설기를 소중히 안고 오던 길에 배고픔에 찌든 거지 식구들을 만나 그것도 빼앗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약방에도 갈 형편이 되지 못하고 겨우 끼니를 잇는 형편에서 끝내 회복되지 못하고 죽음을 맞았다. 감나무집 덕만이 아재의 도움으로 간단하게 장례를 치렀다. 이제 미륵이에게 세상은 더 이상 즐거운 놀이터가 아니었다. 세상은 총을 든 전쟁터였고, 서로 미워하고 동무도 적으로 돌아서는 무서운 지옥이었다.이삭 줍는 아이들칼바람이 휘몰아치는 겨울이 되었다. 미륵이는 땔나무를 지게에 지고 십릿길을 걸어서 하양면을 오가면서, 그리고 어머니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감나무집에 허드렛일을 하면서 겨울에 먹을 양식을 모았다. 미륵이는 문득 한동안 거들떠보지 않았던 영대가 간절하게 생각났다. 할아버지가 지서에 끌려간 뒤부터 영대 생각만 하면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영대가 저지른 일이 아닌 줄 알면서도 영대 삼촌에 대한 미움이 곧장 영대에게 쏠렸다. 영대뿐만 아니라 아랫마을 아이들도 할아버지가 죽은 뒤에는 노골적으로 미륵이를 피했다. 아예 빨갱이라고 퍼붓는 아이도 있었다. 빨갱이라는 말은 갓지기라고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것보다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어쩌다 마을 골목길에서 마주치면 영대와 미륵이는 모른 척 지나쳤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영대와 예전처럼 이야기를 나누며 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영대는 유일하게 미륵이 이름을 불러 주고 늘 편이 되어 준 동무였다.



어느 날 밤 문 밖에서 발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여러 사람들이 총으로 미륵이네 가족을 위협하며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 사람들은 백성들이야 굶어 죽든 말든 제 욕심만 채우는 미국놈들과 친일파로부터 우리나라 우리 백성을 우리 힘으로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미국과 소련한테서 우리나라를 지켜야 자유롭게 살 수 있어. 안 그러면 자손들까지 영영 노예가 되어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대신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단다. 그래서 우리 산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미군정과 싸우는 거란다."



그 사람들은 가을 내내 미륵이가 어머니와 함께 품팔이를 해서 모아놓은 곡식을 한 톨도 남김없이 가지고 사라졌다. 어머니는 미륵이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내준 것이라고 하면서 그 사람들을 너무 원망하지 말라고 했다. 며칠 후 어머니는 도시에 나가 돈을 벌어오겠다며 미륵이에게 동생들을 부탁했다. 미륵이는 어머니를 기다리는 동생들을 달래면서 밭에 나가 논에서 사람들이 캐가지 않은 이삭을 찾아보았다. 그때 영대가 나타나 그동안 미안했다며 미륵이 몰래 들순이에게 고구마 한 소쿠리를 들려보냈다. 미륵이는 영대를 고마워하면서 집에 돌아와 고구마 몇 개를 쪄서 동생들과 함께 베고픔을 달랬다.꽃잎은 떨어지고미륵이는 숲을 하얗게 뒤덮으며 내리는 눈을 보면서 가슴이 미어졌다. 부지런히 땔나무를 해서 팔면 단 몇 푼이라도 벌어서 양식을 사 올 수 있을 텐데, 길이 미끄러워 면에까지 땔나무를 지고 갈 수가 없었다. 붙들이는 배가 고파서 그러는지, 어머니가 안 계셔서 그러는지 틈만 나면 미륵이와 들순이 눈을 피해서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뜯어먹었다. 하루는 붙들이가 헛간에 놓아둔 쥐덫에 걸려든 쥐를 뜯어먹고 있었다. 미륵이는 얼른 썩은 쥐를 빼앗았고, 손가락을 입 안에 넣어 먹은 것을 토하게 했다. 미륵이는 입 안의 찌꺼기를 다 긁어내고도 찜찜해서 붙들이를 발가벗기고 정신없이 찬물을 퍼부었다. 그리고는 붙들이를 방에 눕히고 군불을 지폈다. 붙들이 몸에 열이 오르자 미륵이는 수건을 찬물에 적셔 이마에 얹어서 열을 내리게 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붙들이는 죽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끙끙 앓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 미륵이도 들순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방 구석에 붙들이의 시체를 밀어놓고 지내다가 덕만이 아재의 도움을 얻어 붙들이를 묻었다. 미륵이는 자기 식구들만 세상에서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도 산 속에 남아 있는 미륵이와 들순이의 아픔을 알지 못했다.



설이 가까워오자 병색이 완연해보이는 어머니가 돌아왔다. 어머니는 붙들이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몸져누웠다. 1947년 봄이 되어 밭 두렁에 불을 놓아야 하는데도 어머니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들순이와 미륵이가 불을 놓고 밭을 가꾸었다. 아버지가 식구들 얼굴이라도 보고 가겠다며 들른 다음날 품팔이를 하러 미륵이는 아랫마을에 내려갔다. 군복을 입은 토벌대가 떼를 지어서 총을 들고 마을을 휘젓고 다녔다. 얘기를 들어보니 지난 밤, 빨갱이들이 지서에 불을 질러서 자고 있던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는데, 영대 삼촌도 그 와중에 죽었다고 했다. 미륵이는 온 힘을 다해 뛰어 집으로 와서 어머니와 들순이를 데리고 숲으로 도망쳤다. 숲에서 지켜보니 토벌대들이 집에 불을 질러 지붕은 타 버리고 흙벽과 바닥은 검게 그을었다. 어머니가 하늘을 보며 소리쳤다. "도대체 빨갱이가 뭐꼬! 토벌대가 뭐꼬! 그기 먼데 이래 사람을 못살게 괴롭히노. 그기 사람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하나? 사람 목숨보다도 더 중요하나?"운문산 시체들집이 불 탄 뒤에 식구들은 광에서 살며 불안한 나날을 보냈다. 그나마 미륵이가 품팔이를 다닐 수 있어서 다행히 굶어죽지 않고 하루하루 힘겹게 목숨을 이어갔다. 덕만이 아재와 시장에 갔다가 돌아온 날 저녁 아재가 운문산에서 산사람들이랑 토벌대랑 큰 전투를 치러서 많은 사상자가 생겼는데, 미륵이 아버지도 있을지 모르니 찾아보라고 알려주었다. 다음날 어머니와 함께 운문산에 올라가 가마니로 덮어놓은 시체들 속에서 아버지를 찾아보려고 애썼다. 파리와 개미가 달려들어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시체들을 보는 일도 익숙해져갔다. 하지만 끝내 아버지를 찾지 못하고 사람들이 시체를 불태우는 것을 지켜보며 어머니는 합장을 했고, 미륵이는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이른 봄에 들불을 피우다겨우내 굳게 얼어 있던 땅이 서서히 녹아 산 속 여기저기서 새 봄을 알리는 꽃망울을 터뜨렸다. 할아버지가 밭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기 전 밭 두렁에 불을 놓자 불길은 순식간에 사방으로 번져 나가 하늘이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아랫마을에서도 논이나 밭에 불을 놓는다고 잔치가 벌어졌다. 한꺼번에 불을 놓아야 벌레나 벌레 알이 옆 논과 밭으로 옮아가지 않는다. 마을 부잣집에서는 개를 한 마리씩 내놓아서 불을 놓고 난 뒤면 개장국을 끓여서 나눠 먹었다. 이때만은 지주도 머슴도,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함께 어울렸다. 할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아랫마을로 내려온 미륵이는 아이들과 함께 숨어서 술을 마시다가 잠이 드는 바람에 맛있는 고깃국과 전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안타까워서 발걸음도 제대로 떨어지지 않는 미륵이에게 개장국이 줄곧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날 밤 아버지가 찾아왔다. 야시골에 숨어 있다가 해방되기 두 달 전쯤에 말도 없이 사라진 아버지였다. 그동안 소식도 전하지 않고 지낸 아버지의 무심함에 화가 난 할아버지는 호통을 쳤고, 아버지는 못 배우고 가난한 사람도 괄시받지 않고 업신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미국놈과 소련놈을 우리 땅에서 다 내쫓고 우리 힘으로 정부를 세우는 날까지 기다려달라고 할아버지에게 부탁했다. 아버지는 땔나무를 한 짐 해서 집 마당에 늘어놓고 다시 나갔다. 아버지가 하룻 동안 머물다가 간 집은 텅 빈 것 같았다. 할아버지와 어머니는 밤이 되어도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세상 구경을 나가서햇살이 야시골을 따스하게 덮어주는 봄이다. 할아버지는 날이 밝기가 바쁘게 산기슭 숲을 불태운 거친 땅을 밭으로 일구어 나갔다. 미륵이도 할아버지 곁에서 밭을 일구는 데 손을 거들었다. 어머니 역시 품팔이가 생기는 대로 밭이며 논이며 과수원, 묘목 농장, 집 안 허드렛일을 하러 아랫마을에 가서 저녁 무렵에야 돌아오곤 했다. 그런 틈틈이 할아버지는 겨울 내내 짚으로 만든 망태기나 짚신을 이웃 마을에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조금씩 내다 팔았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미륵이에게 함께 장 구경을 가자고 했다. 짚신을 팔고 생긴 돈으로 여동생들의 고무신을 사주고 싶다고 말하자 할아버지는 미륵이를 기특하다며 칭찬했고, 이 때문에 미륵이는 괜스레 어깨가 으쓱했다. 하양면에 들어서자 미륵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길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녔다. 차가 쌩쌩 달리는 거리에 소달구지가 짐을 짓고 느릿하게 가고 있었다. 차 경적 소리와 소 울음소리와 사람 소리가 뒤섞여서 혼이 달아날 지경으로 거리는 시끌벅적했다. 오일장이 열리는 시장으로 가는 길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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