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를 향한 성공 DNA, 프로마니아
김종래 지음 | 크레듀
최고를 향한 성공 DNA, 프로마니아
김종래 지음
크레듀 / 2007년 6월 / 199쪽 / 12,000원
아주 특별한 체험이 시작이다비슷한 재능과 성장 배경이 주어지더라도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실패한 인생을 산다. 왜 그럴까? 성공과 실패를 가름하는 요소가 체험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기억이 쌓여 그 사람의 인격과 가치관을 형성하기 때문에, 어떤 체험을 하느냐에 따라 사고방식은 물론 그에 따른 행동과 인생 전반이 달라진다. 프로마니아는 인생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체험, 바로 그 결정적인 순간에 주목해야 한다.
죽음을 앞에 두고 절체절명의 순간을 체험함으로써 인생이 바뀐 사람이 있다. 때는 제정 러시아 시대 영하 50도의 혹한 속. 그러나 사형대에 묶인 세 청년은 엄습해오는 죽음의 공포 속에 추위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중 한 청년은 반체제 비밀 독서 클럽에 가입한 죄로 정치범이 된 28세의 문학도였다. 사형 집행을 앞두고 집행관은 죽음을 준비할 시간 5분을 허락한다. 청년은 함께 묶인 동료에게 인사하는 데 2분,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는 데 2분, 그리고 발붙이고 살아왔던 대지와 자연을 돌아보는 데 나머지 1분을 사용하기로 하였다.
그는 인사를 시작했고 2분은 금세 흘러갔다. 마침내 삶을 정리하려던 그는 문득 3분 뒤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매순간 아껴 쓰지 못했던 28년이 뼈아프게 후회되었다. "다시 삶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순간순간 정말 값지게 쓰련만!" 청년은 끝없이 한탄했다. 바로 그때,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차르의 특사였다. 사형을 중지시키고 대신 4년간의 강제노동을 명하는 내용이었다. 성탄절에 운 좋게 목숨을 건진 이 청년의 이름은 도스토예프스키이다.
그러나 시베리아에서의 유형생활은 사형의 공포 못지않게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고된 노동, 벼룩이 들끓는 감방, 무자비한 폭행, 도스토예프스키의 체험은 실로 가공할 만했다. 1,500명의 죄수들과 함께 한 4년, 끔찍한 환경은 그로 하여금 인간의 내면과 삶의 다양한 일면을 끊임없이 탐색하고 사색하게 만들었다. 고된 수형생활이 위대한 명작을 낳을 수 있었던 창작의 원천이 된 것이다. 수형생활 이후 그는 놀라운 대작을 연이어 발표한다. 모두 선과 악, 도덕과 양심 그리고 냉정한 현실을 날카롭게 그려낸 작품들이었다. 어떤 예술작품도 작가의 삶과 동떨어진 것은 없다. 세계적인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삶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섰던 절체절명의 순간, 공포 속에서 삶의 가치를 되새겨 보았던 사형장에서의 5분, 그 특별한 체험이야말로 평범한 청년을 대문호로 거듭나게 한 결정적인 계기,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순간이었다.
삶의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늘 생존과 도태라는 또 다른 사형장에 놓여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 절박함을 따지면 격동기를 살았던 도스토예프스키와 다를 바가 없다. 이곳이 영하 50도 혹한 속 사형장이라고 상상해 보라. 지금 이 순간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자. 누구에게나 내면세계 깊숙이 자신의 영혼을 일깨우는 특별한 체험이 반드시 있다. 지금이라도 그 특별한 체험, 도망가고 싶은 두려운 순간 앞에 다시 한 번 마주 서자. 그 체험 속에서 버려야할 과거의 나, 그리고 새로워질 미래의 나를 발견하자!
호기심은 모든 것을 뚫는다인간은 호기심의 동물이다. 인간에게 재앙을 초래했다는 판도라 상자 이야기도 따지고 보면 호기심의 산물이다. 끊임없이 "왜?"를 생각하고 "어떻게?"를 규명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 없었다면, 아마도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 자리 잡지 못했을 것이다. 인류의 생활이 점점 편리해지는 데 기여한 것 중의 하나가 호기심이다. 일상 속의 편리한 물건들, 예를 들어 커피를 마실 때마다 사용하는 종이컵이나 음료수를 마실 때 쓰는 빨대 같은 것들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휴 무어는 1907년 하버드 대학에 입학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한 살 위 형 때문에 공부 대신 발명에 매달리게 된다. 당시 그의 형은 생수 자동판매기를 발명했는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자판기에 사용되는 컵이 도자기로 만들어져 쉽게 깨졌던 것이다. 이런 결함으로 인해 자판기의 인기는 점점 떨어졌고, 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휴 무어는 형의 고민을 해결할 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쉽게 파손되는 도자기 컵 대신 깨지지 않는 컵을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 정말 간단한 생각이었다. 그는 깨지지 않는 컵을 상상하던 중 종이를 떠올렸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있었다. 종이는 물에 젖는 데다 쉽게 찢어졌다. 컵을 만들기 위해서는 물에 젖지 않는 종이를 사용해야 했다. 그는 긴 연구 끝에 촛농을 묻혀 물이 새지 않도록 한 태블릿 종이를 발명한다. 그리고 대학을 자퇴하고 생수 자판기 사업에 본격 참여하게 된다. 그 무렵 한 자본가가 제안을 해 왔다. "20만 달러를 투자하겠으니 종이컵 생산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어떻겠소?" 그는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후 종이컵은 간편하고 안전하다는 슬로건 아래 본격 판매에 들어갔다.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20년엔 아이스크림 컵을 개발하여 인류의 생활을 더욱 편리하게 만든다. 휴 무어는 깨지는 컵이라는 실패에 호기심을 더함으로써 새 발명품을 개발하고 사업적인 성공을 거둔 사람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이다. 종이컵 안에 담긴 성공의 비밀, 그것은 바로 호기심이었다. 도자기보다 가볍고 깨지지 않는 컵은 없을까라는 단순한 호기심이 없었다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매일 사용하는 일회용 종이컵에 담긴 프로마니아의 정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자신의 인생을 새로이 쓸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못 말리는 호기심. 아이러니한 점은 호기심이 매번 우연히 싹튼다는 것이다. 길을 걷다가, 누군가를 만나다가, 무언가를 보다가, 상황에 관계없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곤 한다. 여기에 한 가지만 더하면 된다. 호기심을 풀어볼 마음을 먹는 것이다. 무언가 실천해 보는 것이다 우연을 호기심으로 발전시키고 특정한 완성품으로 창조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나 가능한 일이다. 어쩌면 프로마니아가 되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을 수 있다. 모든 것을 뚫는 탈출구, 바로 호기심이 있다면 프로마니아가 되는 첫걸음을 이미 내디딘 셈이다. 작은 물방울이 단단한 바위를 뚫듯, 호기심이 막연한 불안감과 안정되지 않은 미래의 벽을 뚫고 새로운 삶으로 안내해 줄 것이다.
세상을 떠나면 세상이 열린다내가 살고 있는 곳은 여기이다. 그런데 이 문밖을 나가 다른 곳으로 가보고 싶다. 간단하지 않은가. 문을 열고 나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선뜻 그렇게 되지 않는다. 왜일까? 두렵기 때문이다. "이곳에 있으면 안전할 텐데, 모든 것이 보장되는데 굳이 나가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매너리즘은 인간 생명을 단축시키는 보이지 않는 질병이다. 이 바이러스는 늘 소리 없이 다가와 눈치 채지 못하게 인간의 내면세계를 잠식한다. 이것으로부터 탈출을 원한다면 현재의 안일함을 과감히 포기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 떠나야 한다. 여기 인생 전반이 보장된 길을 두고, 거칠고 험한 행로로 겁 없이 뛰어든 한 젊은이가 있다.
28세 조영일 씨는 요식업에 종사한다. 직함은 대리, 주 종목은 설렁탕이다. 사실 그는 80평 규모에 25명의 직원들이 일하는 설렁탕집 사장이다. 어린 사장에 비해 직원들은 모두 연세 지긋한 아저씨 또는 아주머니뻘이다. 어른들 모시고 장사하기에 사장 직함이 부담스러워, 영일 씨는 대리가 되기를 자처한 것이다. 그는 원래 의대생이었다. 아버지를 포함하여 사촌 이내의 가까운 친척만 의사가 20명에 달하는 집안의 자손이다. 이 가운데 몇몇은 이름만 대면 아는 유명한 종합병원 원장 또는 이사장이다. 다니고 있던 의대만 졸업해도 창창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영일 씨는 메스 대신 식칼을 잡았다.
영일 씨는 인턴을 시작할 무렵 "의사로서 평생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휩싸였다. 스스로 생각해도 공부에 취미가 없었다. 그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예전부터 먹는 것을 좋아했고 그에 관련된 장사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솟아올랐다. 그는 외도를 결심했다. 의대에 다니면서 틈틈이 식당 일을 배운 것이다. 뚜렷한 포부를 안고 영일 씨가 가게를 차린 곳은 근처에 4군데 설렁탕집이 영업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개업 후 광우병이 돌았고, 설렁탕이며 고기, 저장해 놓은 김치까지 모두 버려야 했다. 영일 씨가 가게를 비우면 직원들이 술을 먹고 싸우거나 식자재를 빼돌리는 일도 발생했다. 영일 씨는 개업 한 달 만에 전 직원을 해고하고, 이후 교체된 직원들과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지금 그곳에서 살아남은 설렁탕집은 영일 씨 식당뿐이다.
그야말로 눈부신 성장이다. 그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우습게도 성공비결은 너무 평범하다. 성실함과 겸손, 누구나 아는 비결이다. 나이 많은 직원들에게 자신의 허리를 낮추는 겸손함, 그리고 직원들보다 부지런한 사장의 모습을 잃지 않는 것. 더불어 중요한 것은 일을 즐기는 프로마니아다운 태도다. 장사를 하겠다고 결심한 날부터 지금까지 그는 아무리 힘들어도 놀고 싶다는 유혹을 느낀 적이 없다. 조 대리가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사업 성공 비결이 아니다. 진짜 메시지는 현실의 한계, 즉 눈앞에 보이는 것에 갇혀 살지 말라는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는 자리를 떠나봐야 그곳이 우물이었음을 깨닫는 법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 두려워서 차마 떠나지 못하는가. 먼저 떠나보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것이 보일 수도 있다. 조 대리의 성공을 부러워하기 전에 의사의 길을 버린 용기, 자신의 일에 죽어라 미칠 수 있는 열정, 남몰래 땀 흘릴 각오가 되어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현실의 한계, 기득권은 닫힌 문과 같다. 닫힌 문 너머 새롭게 열리는 세상을 바라보자. 닫힌 문을 열어야만 볼 수 있다.
숨 쉬는 한 무한 상상하라"상상력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좌우된다. 경영에 상상을 접목하라." 주식회사 남이섬 강우현 사장의 말이다. 그는 경제 혹은 경영과는 무관했던 자신이 남이섬을 하나의 성공 상품으로 이끈 비결은 상상경영에 있다고 강조한다. 1953년생인 강 사장은 홍익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한 뒤 대학원에서 광고디자인을 전공했다. 2001년 남이섬 대표이사로 취임하기 전까지는 광고 분야에서 다채로운 경력을 쌓았다. 그런 그도 처음 남이섬을 맡았을 때는 암담했다. 손님도 돈도 없는 절망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남이섬을 살린 것은 황무지에서 전혀 다른 미래를 꿈꾸었던 그의 상상력이었다.
사장 취임 후 그는 과감한 경영 혁신과 환경 경영을 통해 남이섬을 한국의 대표 관광지로 확립시켰다. 먹고 마시는 유원지에서 문화 예술과 자연 생태가 어우러진 안식처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취임 5년 만에 회생불가 낙인을 깨고 관광객 수를 6배 이상, 매출을 100억 원대로 5배 늘려 놓았다. "남이섬에 IT가 없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상상 테크놀로지(Imagination Technology)가 우리의 IT이다. 이는 문화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미래 경쟁력이다." 아들과 함께 남이섬에 놀러갔다가 단돈 100원으로 연봉 계약을 하고 남이섬의 대표가 된 그는 "앞으로 1억 달러 이상의 규모를 자랑하는 상상펀드를 만들어 문화 마을을 조성하는 데에 쓰겠다."고 기염을 토한다.
프로마니아의 길을 찾아 나섰지만 빈손이라 시작도 못 하고 망설이고 있는가? 돈도 많지 않고 특별한 권력이나 배경이 없다고 절망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더욱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남들이 발을 들여놓지 않은 새로운 땅, 남들이 선점하지 못한 블루오션을 발견하고 항해해 나가야 한다. 블루오션으로 나아가는 방법은 상상력에 있다. 남다른 상상력만이 다른 사람이 미처 생각지 못한 나만의 신대륙으로 안내할 것이다.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부술 때, 발상은 신선해진다.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관습이나 규격화된 제도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신비한 체계여서 상상력을 발동시키지 않으면 창조적 기능이 퇴화될 수 있다. 벽을 깨는 참신한 두뇌와 그것을 실현코자 하는 의욕만 있다면 프로마니아로서의 성공은 어렵지 않다. 무한 상상하라. 그것이야말로 치열한 무한경쟁 시대에 남들보다 한 발 앞설 수 있는 성공의 열쇠이다.
나만의 것이 아니면 가짜다인간에게는 개성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고유성으로 함부로 숨길 수도 없고, 숨겨지지도 않는다. 비즈니스 사회에서 화합은 필수적이지만 개성이 존중되지 않는다면 화합은 이루어질 수 없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자 하는 인간의 소망이 너무 강력하기 때문이다. 물론 창조의 길은 멀고 험하다. 그러나 인간은 창조의 과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모른 척 살아가기엔 인간이 지닌 욕망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창조행위는 인간에게 불가피한 선택인 셈이다. 나만의 것이 아니면 견딜 수 없는 숙명을 갖고 태어난 것이다.
"함께 또 따로" 인간의 특징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한 말은 없을 것이다. 이 말은 프로마니아의 길을 택해 자신만의 미래를 준비하려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포인트를 제공한다. 프로마니아가 남의 성공이나 부러워하며 성공한 사람이 거쳐 간 길을 무조건 따라나선다면 죽는 길로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미 탄탄대로를 뚫은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한 분야에 미친 전문가로 평가될 수 있겠는가? 한 분야에 미친 전문가가 아니라면 나만의 미래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는 그런 의미에서 나만의 것이 아니라면 가짜라는 신념 속에 살다간 프로마니아다.
건축 역사상 유일하고도 독창적인 새로운 세계를 꿈꾸던 가우디에 의해 건축의 장식화, 건축 기하학 화, 건축의 자연화는 태어났다. 스페인은 사그라다 파말리아 성당을 비롯해 그의 17개 작품을 국립문화재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하나같이 하늘, 구름, 물, 바위 같은 자연의 모습에서 기상천외한 영감을 얻어 지은 건축물이다. 자연 외에 그의 작품 모티브는 환상의 세계이다. 사람의 뼈를 흉내 낸 기둥, 스테인드글라스를 떡 주무르듯 만든 집, 네 개의 팔이 달린 십자가 등, 어찌 보면 정신상태가 뒤틀려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보는 이를 몽상의 세계로 안내하는 작품이라 평가할 수도 있다. 이런 건축물들은 그의 꿈이 얼마나 원대하고 엉뚱했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그 어느 것도 비슷한 것이 없는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가우디는 바르셀로나 시립 건축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건축가의 길로 나섰는데, 졸업식 날 학장이 그에게 남긴 말은 유명한 일화로 전해 내려온다. "우리가 건축사 칭호를 천재에게 주는 것인지, 아니면 미친놈에게 주는 것인지 모르겠다." 가우디는 자유롭게 흐르는 선의 형태를, 3차원의 표현력을 갖춘 건축으로 전환한 아르누보(Art nouveau) 건축가 중 가장 독창적인 인물이다. 자연은 물론이고 인체의 골격에서도 디자인의 모티브를 얻었다는 가우디의 작품은 시대와 양식을 모두 초월하고 있다. 188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