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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기업, 로마에서 배운다

김경준 지음 | 원앤원북스
1. 적까지 포용하는 대담한 개방성



굴러들어온 돌이 정체된 조직을 살린다

시오노 나나미는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진다고 로마인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었음에도 로마가 1천 년 동안 번영할 수 있었던 것은 타민족에 대한 개방성과 유연함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로마인들은 건국 초기부터 정복한 부족을 죽이지 않고 유력자에게 원로원 의석을 제공해 로마의 지배계급으로 편입시키는 전통이 있었는데, 이것은 경쟁자의 역량을 로마의 역량으로 M & A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예를 들어 로마는 기원전 326에서 284년까지 삼니움족과 40년에 걸친 격전을 벌였는데 삼니움족이 항복한 지 불과 20년이 지난 시점에서는 삼니움족 평민 출신인 오타틸리우스를 집정관으로 선출해 제1차 포에니 전쟁의 지휘를 맡긴다. 과거의 적이었던 삼니움족의 전투 경험이 고스란히 로마군의 전략으로 흡수된 셈이다. 정복을 통한 영토확대가 로마의 하드웨어 M & A였다면, 개방성으로 패배자를 동화시키는 정책은 로마의 소프트웨어 M & A였다.



로마의 개방정책은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복 과정에서 두드러진다. 카이사르는 갈리아 유력자에게 원로원 의석을 주어 지도층에 편입시키고 자신의 씨족명까지 나눠줬다. 또한 형식적으로 볼모가 된 갈리아족의 지도자계급 자제들을 수도 로마로 보내 공부시켜 로마의 문화를 익히도록 했다. 카이사르가 추진한 갈리아의 편입은 성공적이어서 후일 갈리아에서 일어난 반란을 다른 갈리아족이 나서서 진압할 정도였다.

그리고 서기 1세기 중엽 클라우디스 황제의 경우, 결원이 생긴 원로원 의석을 갈리아 출신으로 보충하려고 했는데 야만족 출신을 원로원으로 영입하는 것에 대해 기존 의원들이 반대하자 "내 조상도 사비니족 출신이었다. 이탈리아 반도 전역에서 로마에 패배한 과거와는 관계없이 우수한 인재들이 로마로 모여들어 원로원 의석을 차지해온 것이 우리의 역사다. 스파르타인도 아테네인도 전쟁에서는 강했지만 짧은 번영밖에 누리지 못했다. 이는 과거의 적을 동화시키려 하지 않고 따돌리는 방식을 계속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로마가 개방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근본 배경은 실력 본위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로마인은 출신이나 인맥만으로 사회적 지위와 역할이 결정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아무리 좋은 집안 태생이라도 일정 단계를 거쳐 자신의 역량을 입증해야만 했다.

하지만 개방성이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출신과 관계없이 가장 능력 있는 자가 지도자로 선택되는 것을 조직 내에서 당연하게 생각해야만 개방성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개방성에 대한 태도는 신입사원 순혈주의와 경력사원 시민권 부여를 보면 알 수 있다. 개방성이 결여된 조직은 공채를 통해 입사한 신입사원이 아니면 실질적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는다. 이런 구시대적 조직에서는 중도 입사자를 잠시 왔다 가는 손님이나 이물질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새로운 피가 수혈되기 어렵고, 고인 물이 썩듯 침체되기 쉽다. 때문에 아무리 우수한 인재가 모여 있더라도 외부에 대한 개방성이 없다면 쇠퇴하는 것은 시간문제에 불과하다. 그러나 개방성만 있다면 실제로 외부인을 채용하지 않고서도 경쟁의 범위를 외부까지 넓힐 수 있다. 즉 우물 안 개구리 현상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실패의 경험을 공유하고 패자부활의 기회를 준다

로마는 발전 과정에서 많은 실패를 겪었다. 갈리아인에게 수도를 점령당하는 수모도 겪었고, 삼니움족과의 싸움에서 무장을 해제당하고 항복하는 치욕도 겪었다. 이러한 실패를 겪으면서도 로마는 책임론에 휘말려 소모적 논쟁을 벌이기보다는 실패의 경험을 살려 성공을 모색하는 길을 선택했다.



1차 포에니 전쟁 당시의 이야기다. 카르타고와의 해전에서 승리한 로마군은 230척의 배로 지중해를 건너는 귀로에 올랐다가 엄청난 태풍을 만났다. 태풍을 만났을 때는 해안선에 접근하지 않아야 하는데 항해 경험이 없던 지휘관들은 공포심에 사로잡혀 배를 육지로 몰아갔고, 해안선에 접근한 배들이 암초에 부딪히면서 결국 6만 명의 병사가 수장되는 비극이 일어났다. 태풍을 만난 것은 불가항력이었지만 배를 육지로 몰아가게 한 것은 분명 지휘관의 잘못이었다. 그러나 해난사고가 일어난 다음 해에 카르타고와의 전쟁이 재개되자 로마가 전장에 내보낸 지휘자들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한 명은 카르타고에 붙잡혔다가 포로교환으로 귀국한 스키피오였고, 나머지 두 명은 1년 전 해난사고의 책임자였다. 포로 출신이나 해난사고의 책임자들이 지휘관이 된 로마군단은 전투에서 좋은 전과를 거두었고 그 해의 전투는 지휘관 세 명의 패자부활전이 된 것이다.



로마가 포로로 붙잡힌 사람, 또는 사고 책임자에게 다시 지휘를 맡긴 데에는 공동체의 이익이라는 현실적인 판단이 깔려 있다. 로마인은 패전 책임에 대해서는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귀족과 평민의 상호 견제심리 때문에 귀족 출신 장군이 처벌되면 귀족계급이 불만을 가지고, 평민 출신 장군이 처벌되면 평민계급이 납득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다. 객관적인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어설프게 책임을 추궁하다가는 귀족과 평민 간의 대립만 심화되고 국론이 분열되기 때문에 패전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공동체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로마인은 패전을 지휘관이 무능한 경우와 운이 나쁜 경우로 나누어 생각했는데, 전자의 경우에는 무능한 사람을 선택한 공동체의 책임이라고 여겼고, 후자의 경우에는 좋은 운을 만나면 이길 수 있기 때문에 기회를 주는 것이 옳다고 보았다. 로마인은 실패를 인정함으로써 세 가지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지휘관들이 잡다한 걱정에 시달리지 않고 임무에 전념할 수 있었고, 책임을 놓고 싸우면서 조직의 에너지를 소진시키지 않아도 됐으며, 실패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경험과 교훈을 조직의 무형자산으로 만들어 똑같은 실수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합리적인 조직은 실패의 책임을 물어 사람을 끝장내지는 않는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일을 그르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어떤 중소기업 사장의 경험담이다.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제품 불량이나 업무처리 지연 같은 문제가 발생했지만 아무리 직원 교육을 시켜도 나아지지 않았다. 해결 방법을 찾다가 실수한 사람을 꾸중하기보다 한 달에 한 번씩 전체 직원을 모아 놓고 실수 경연대회를 열었다. 여기서 경험한 실수를 말하게 하고 그것을 조직 전체가 공유했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사례를 말한 사람에게 상을 주었다. 이렇게 하자 시간이 지나면서 엄청난 효과가 나타났다. 사소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되었고, 실수가 두려워서 시도조차 하지 않던 분위기가 없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빌 게이츠는 이렇게 말했다. "실패할 때는 창조성이 자극되기 때문에 나는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채용한다. 앞으로 마이크로소프트도 실패를 겪을 테지만, 난국을 타개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어려운 상황일수록 빛을 발할 것이다."



추상적 이념이 아니라 현실적 목표를 추구한다

신의 뜻이 인간의 현실을 규율하는 형태가 일반적인 고대세계에서 로마인은 종교와 정치를 완전히 분리하는 독특한 종교관을 발달시켰다. 인간을 하늘의 신으로부터 독립시킴으로써 신의 권위를 빌린 비현실적 교리와 이념이 인간의 현실을 왜곡하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졌고, 무엇보다 자신들의 종교를 절대화하지 않아 다른 민족의 종교에 대한 유연성을 가질 수 있었다.



로마 종교조직의 특징은 최고 제사장부터 사제에 이르는 모든 신관이 민회에서 선거로 결정되고 이들이 사실상 국가 공무원이었다는 점이다. 제사장이 되는 데에도 특별한 능력이나 훈련을 필요로 하지 않았으며, 법적으로 평민에게도 최고 제사장의 지위가 개방이 되었다. 제사장은 명예직이었기 때문에 계급을 보전하기 위하여 종교의 권위를 높이는 데 집착할 필요도 없었다. 제사장들이 초월적인 권위로 무장해 현실 문제에 개입할 소지를 아예 없애버린 것이다.



티베리우스 황제의 통치 기간에 로마 시내를 관통하는 테베레 강이 범람한 일이 있었다. 도심이 물에 잠기는 사태가 벌어지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원로원에서는 황제에게 『시빌의 예언집』을 펴서 신탁을 구해볼 것을 청원하기로 결정했다. 이 소식을 들은 황제는 홍수 대책은 인간의 일이라면서 제안을 일축하고 대신 관련 인사들로 위원회를 설치해 대책을 세웠다. 이처럼 로마의 지도자들은 개개인을 보호하는 것은 신의 역할이지만 공동체를 보호하는 것은 정치의 역할로 보았다.



한편 로마인들은 사람들이 신을 믿어 현세의 삶이 풍요로워진다면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는 한 어떤 신이라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종교적 개방성의 결과 지역이나 직업별로 다양한 수호신을 모시게 되었고 각종 외래 신들이 수입되었는데, 이를 두고 '로마인은 패배자가 믿는 신들에게도 시민권을 줄 만큼 너그러웠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정치와 행정의 역할에서도 로마인들은 추상적 가치와 구체적 현실을 분명히 구분했다. 로마인들은 식량의 안정적 확보, 외침으로부터의 안전 유지, 사회간접자본 정비라는 세 가지를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지도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이해했다. 이 같은 요건을 국가가 확보해주면 나머지는 개인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어떤 종교를 믿거나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무엇을 추구하든 그것은 개인이 선택할 문제로 인식했던 것이다.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통해 추상적 가치와 현실적 목표를 구분했던 로마 사회의 모습은 기업경영 관점에서도 분명한 시사점이 있다. 기업의 본질과 상관없는 추상적 가치에 매몰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로마 황제의 기본 책무가 식량과 안전이라면 경영자의 기본 책무는 고객 확보와 수익 창출이다. 기업이 아무리 거창한 명분을 내걸어도 종업원에게 월급을 주지 못하고 은행에 이자를 내지 못한다면 존재 가치가 없다. 기업이 투명성이나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목표는 생존에 있다. 따라서 기업의 사회적 기여는 기부금이나 사회봉사 활동이 아니라 사업을 성장시켜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라는 기본적인 관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2. 힘의 윤리가 뒷받침된 탁월한 리더십



핵심인재를 키워내는 단계별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와 조직을 이끌어가는 지도층의 역량은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역량 있는 지도층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좋은 자질을 가진 인재를 발굴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을 기회를 주며, 능력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인재 양성 시스템 아래에서 만들어진다. 천년 제국 로마에는 왕정, 공화정, 제정의 구별 없이 체계적으로 인재를 양성하는 시스템이 있었으며 명문가 출신일지라도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면서 자신의 역량을 입증해야 공동체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로마 명문가 자제의 사회 경력은 군대에서 시작된다. 원로원 계급에 속하는 청년의 경우 일정한 견습 기간이 끝나면 군단 고위 장교급인 수석 대대장에 기용됐다. 아무리 명문가 출신이라도 경험 없는 20대 초반의 풋내기가 백전노장인 동료들을 지휘하려면 중압감이 상당했을 것이다. 직위를 통해 얻는 표면상의 경의를 실질적인 존경심으로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20대 후반이 되어 군복무를 마치면 명예로운 경력의 첫 번째 단계로 매년 20명을 선출하는 회계 감사관에 출마한다. 미래의 지도자는 회계 감사관 임무를 통해 공동체를 꾸려 나가는데 있어 돈의 의미를 이해하고 효율적 재정운영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또한 전방의 로마 군단에 소속되면 물자의 조달, 병사들의 급료 지급 등 군단 운영 전반을 책임지면서 병참의 중요성을 이해하게 된다. 또한 공공시설물을 관리하고 서민생활을 돌보는 안찰관이란 행정직을 맡았는데, 안찰관의 임무 중에는 공창제도가 건전하게 기능하는지 감시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수석 대대장, 회계 감사관, 안찰관이라는 직책을 경험한 후 30대가 자격 연령인 원로원에 들어가면 비로소 국가대사에 관해 의사결정을 하는 지도자 그룹에 포함되는 것을 의미했다.

명예로운 경력의 두 번째 단계는 법무관이었다. 재판과 입법을 담당하는 법무관 업무를 수행하면서 공정한 법 집행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법률을 다루는 능력을 키운다. 법무관 임기를 마치면 속주 총독으로 파견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역 책임자 역할을 수행하는 총독으로 속주의 행정과 방위라는 중책을 수행하고 여기서 역량을 인정 받아야 로마 최고위관직인 집정관에 출마할 수 있었다. 명예로운 경력의 마지막 단계인 집정관은 매년 두 명이 선출되며, 40세가 넘어야 출마할 수 있는 경력이 갖춰졌다. 평민 출신은 평민계급의 대변인이자 일종의 사회복지사 역할을 담당했던 호민관을 지낸 뒤, 원로원에 들어가 법무관을 거쳐 집정관에 도전하는 길이 정치 경력의 코스였다.

이처럼 로마제국의 지도층을 형성한 사람 가운데에는 최고 학부인 그리스 아테네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수학한 사람은 거의 없다. 이는 지도자에게 요구된 것이 학교에서 배운 고상한 이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에 부딪치면서 얻은 체험이었음을 드러낸다. 단계별 인재 양성 시스템을 통해 로마는 우수한 지도자를 끊임없이 충원했을 뿐 아니라 현실과 유리된 이상론에 빠져든 선동가가 지도자가 되어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로마인이 지도자를 양성하는 과정에서 적용한 현장경험 중시, 단계별 인재 육성은 현대의 기업경영에도 적용되고 있는 원칙이다. 경영진에게 필요한 능력은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는 통찰력을 바탕으로 기업과 조직의 생존을 위한 합리적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경영자라는 평판을 얻고 있는 GE의 잭 웰치는 후임으로 외부의 거물급 경영자를 영입하지 않고 GE에서 20년 가까운 경력을 쌓은 제프리 이멜트를 CEO로 임명했다. 이는 GE의 장기적이고 치밀한 경영자 양성 시스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GE는 1970년대 초부터 단계별 리더 양성 프로그램(초급 관리자 → 중간 관리자 → 영역전담 관리자 → 사업총괄 관리자 → 그룹 관리자 → 기업 관리자)을 개발하여, 미래의 지도자들이 각 단계를 차근차근 밟으면서 CEO로 성장할 수 있도록 했다. 기업은 곧 사람이다. 좋은 자질을 가진 사람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길러지고, 단계별로 검증된 인적자원이 풍부하게 있는 조직은 번영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원리를 바로 천 년 제국 로마의 인재양성 시스템이 증명하고 있다.



현장책임자에게 절대적 권한을 부여한다

비즈니스는 현장에서 나오는 정보가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능력 있는 현장 책임자에게 의사결정의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불필요한 혼선을 막는 첩경이다. 현장과 멀리 떨어진 본부에서 시시콜콜 간섭하는 것은 현장 책임자를 속박하고, 조직을 관료주의에 물들게 할 뿐이다.



로마에서는 전쟁터로 떠나는 총사령관에게 원로원의 결의로 절대 지휘권을 부여하는 것이 관례였다. 절대 지휘권은 전투행위에 관련된 것뿐 아니라 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에 대한 거의 무제한의 의사결정권을 의미했다. 로마군 지휘관은 절대지휘권을 바탕으로 군대를 강력하게 통솔했고, 일단 전장으로 나가면 본국의 정치 상황을 무시하고 전투에 집중할 수 있었다.

로마공화정 최대의 시련은 지중해의 강자 카르타고와 맞붙은 60년간의 포에니 전쟁이었다. 기원전 241년 시칠리아 근해에서 두 나라 사이에 대규모 해전이 벌어졌다. 집정관 카툴루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승리했지만 아군의 피해도 적지 않아 전쟁을 지속할 수 없었다. 강화를 결정한 카툴루스는 카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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