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굿바이 잭 웰치

김영한 지음 | 리더스북
프롤로그 : 잭 웰치 방식은 더 이상 경영의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지난 2003년 GE(제너럴 일렉트릭)가 커다란 충격에 휩싸이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5년 연속 차지해오던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1위 자리를 월마트(Walmart)에 내어주고, 5위로 내려앉은 것이었다. 1997년 이후 매년 설문조사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순위를 발표해오고 있는 <포춘>은 '왜 GE가 1등이 되지 못했나'라는 별도 기사에서, '엔론의 분식회계 사태 이후 월스트리트는 불투명한 회계 관행을 참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GE도 시장의 거센 비판을 받게 된 것으로 보인다. 또 그동안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CEO였던 잭 웰치 전 회장에 관한 당혹스러운 추문들도 한몫했다.'라고 분석했고, '온갖 악재에도 불구하고 GE가 5위라도 지켜낸 것은, 후임자인 제프리 이멜트(Jeffrey Immelt) 회장의 능력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참고로 이멜트는 2001년 9월 GE의 CEO로 취임한 후, 웰치가 남긴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웰치가 인수합병을 통한 몸집 불리기, 구조조정을 통한 비용 절감, 금융 부문의 확대 등을 통해 회사를 키우고 수익을 창출한 반면, 이멜트는 기계, 전자 등 핵심사업의 강화를 추구하고 있고, 또 신제품 연구개발과 마케팅 강화 등을 통해 제조업체 GE의 위상을 새롭게 구축한다는 전략 아래, GE캐피털을 본사와 분리하고,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처리했다.



웰치는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던 GE를 혁신하여, 시가총액 120억 달러의 기업(1981년)에서 4,500억 달러의 기업(2001년)으로 성장시켰는데, 전 세계 경영자들은 한동안 끊임없는 혁신을 향한 그의 열정에 찬사를 보냈고, 모두가 그의 방식을 따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었다. 물론 웰치가 이루어낸 위대한 업적을 폄하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방식이 무조건 옳다고 따라가는 자세는 옳지 않다. 왜냐하면 과거에 그가 성공을 거두었던 방식이라 해도, 지금의 우리에게는 유용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기업에서 이제 더 이상 과거 GE의 방식이 경영에 별 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한국의 기업인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많은 공감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신상훈 신한은행장은 2006년 8월 월례 회의에서 <포춘>에 실린 기사를 언급하면서 '이제 우리 기업도 타성을 깨고 새로운 경영원칙을 개발하고 받아들여야 할 때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분명 잭 웰치는 대단한 업적을 이루어냈지만 그의 방식이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며, 또한 모두가 틀린 것도 아니다. 확실한 것은 그가 주장했던 원칙과 전략들 가운데 상당수가 그 효력을 잃어버렸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제1장 잭 웰치 방식 : 아날로그 시대의 경영원칙



GE와 잭 웰치, 그리고 잭 웰치 방식

오늘날의 GE는 1878년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설립한 에디슨 전기 조명회사에서 시작하여, 1892년 에디슨 종합전기와 톰슨-휴스톤 전기회사가 합병한 회사인데, GE에서는 회장이 절대적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회장의 임기는 20년이다. 또 전임 회장이 후임을 지명하는 독특한 방식을 택하고 있다. 잭 웰치는 1960년에 GE에 입사하여 1981년, 전임 회장의 추천으로 최연소(46세) 회장이 되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고감도의 개혁을 추진했는데, '고쳐라, 매각하라, 아니면 폐쇄하라.'라는 전략에 따라 10만 명이 넘는 직원을 해고하면서 '중성자탄 잭(Neutron Jack)'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즉 그는 GE 사업들을 구조조정하고 인수합병을 통해 사업구도를 바꾸었으며, 20년간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GE에 잭 웰치 경영 방식을 정착시킨 후, 2001년에 제프리 이멜트에게 회장 자리를 물려주고 은퇴했다.



잭 웰치는 어떤 일을 추진할 때 혼자서 생각하고 용감하게 움직였다. 예로 회장으로 취임하자마자 그는 '세계 1, 2위가 되자. 그렇지 못한 사업은 매각하거나 정리하자.'라고 결심하고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자신의 경영이념을 전파하기 위해 연수원을 세워 전 조직원들을 끊임없이 교육했고, 주요 경영 이념 네 가지 -신속한 의사결정(speed), 업무 프로세스 단순화(simplicity), 사원의 자신감 회복(self confidence), 벽 없는 조직(boundarylessness)- 를 3S 1B라는 슬로건으로 만들어, 이것을 '워크아웃(Workout)'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전파시켜나갔다.



아울러 그는 단순한 혁신 프로그램을 만들고 칼날처럼 날카로운 평가방식을 도입하여 느슨해진 관료주의를 도려내었는데, 모든 직원들을 A, B, C 등급으로 분류하여, A급에게는 인센티브를 주고, C급의 10퍼센트를 도태시켰고, 혁신의 효과가 어느 정도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이를 시스템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식스시그마를 도입하기도 했다. 잭 웰치와 GE의 성공 신화는 아래 일곱 가지 원칙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원칙들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시장의 선두가 되어라

잭 웰치는 회장에 취임하면서, '세계 1, 2위가 되자. 그렇지 못한 사업은 매각하거나 정리하자.'라는 원칙을 내세웠다. 1983년 1월, 잭 웰치는 첫 부인인 캐롤린과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중, 떠오르는 생각을 냅킨에 메모했는데, 그것이 바로 GE의 개혁 방향을 결정짓게 될 유명한 '세 개의 원'이다.

첫 번째 원(핵심)은 GE의 핵심 사업(주요가전, 조명기기, 터빈, 운송설비)을 포함하고 있고, 두 번째 원(기술)은 GE의 하이 테크놀로지 사업(의료기기, 신소재, 산업설비, 항공우주, 항공기 엔진)을 나타내고 있으며, 세 번째 원(서비스)은 GE의 서비스 사업(금융서비스, 정보서비스, 건설 및 엔지니어링, 원자력)을 나타내고 있다. 이 세 개의 원 안에 들어 있는 사업들은 회사의 자원을 공급받을 수 있으나, 원 밖에 있는 사업(소형 가전, 스위치 기어, 전선 및 케이블, TV방송국, 냉난방기, 대형 변속기, TV 및 라디오, 소형 라디오, 반도체, 레드 석유화학 등)은 자원을 공급받지 못했다. 즉 GE가 어떤 사업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이 원만 들여다보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웰치는 어떤 기준으로 원 안에 넣을 사업과 밖에 넣을 사업을 구분했을까? 이에 대해 그는 "나는 사업을 구상하기에 앞서, 먼저 세계 경쟁무대를 설정하고, 시장 규모, 각각의 자리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경기 참여자, 시장점유율 등에 대해 밑그림을 그려보았다. 그러면 경쟁무대의 실체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면 누군가 단번에 우리를 밀어낼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별다른 대책이 없다. 이미 게임의 대열에서 탈락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몸집을 키워 시장을 장악하라

웰치는 1980년대 중반부터 몸집을 키우기 위해 GE와 비슷한 업종의 회사들을 인수하기 시작했는데 그런 인수합병을 통해 경쟁사를 제거하면서 동시에 손쉽게 기업 규모를 키울 수 있었다. 즉 웰치의 몸집 키우기 전략은 GE의 기존 사업을 확대하는 것보다는 외부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방향으로 추진 -GE 캐피털의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1,300건이 넘는 인수합병을 하고, 인수합병을 통해 외형 성장을 이루고, 인수한 기업의 인력을 줄여서 이익을 내는 작업-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주주가 최고다

웰치는 외형을 키우고 이익을 내서 주식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했는데, 최고경영자로서의 자신의 임무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내 임무는 자원을 배분하고 비용과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적합한 인재를 찾아, 그들에게 올바른 사업을 맡기고, 적당한 자본을 투자하고, 적절한 아이디어를 신속하게 제공하는 것이 내 임무다. 즉 나는 능력 있는 이들의 도전적인 자세를 믿고 기술을 자체 개발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회사로부터 구매할 것인가를 결정하면 된다. 만약 투자 액수가 2,500만 달러 이하면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즉, 어떻게 돈을 쓰든지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몇 십억 달러의 자금을 마련하여 각 사업부로 나눠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최고의 인재를 등용하라

GE는 전기 관련 산업인 발전기, 송배전 시스템 대부분의 특허를 보유하면서 기술 우위를 점하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이 100년 이상 지속되었으니 직원들의 자부심은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모든 기술은 우리만이 할 수 있다는 자기교만에 빠져 있었는데, 이를 타파하기 위해 웰치는 조직의 건강도를 나타내는 활력곡선(Vitality Curve)을 만들어냈고, 모든 사업부에서는 해마다 이 활력곡선으로 직원들을 평가하여 서열을 결정해야만 했다. 즉 각 책임자들은 그들의 조직에 속해 있는 직원들을 상위 20퍼센트, 중위 70퍼센트, 하위 10퍼센트로 분류해 평가했고, 하위 10퍼센트에 속하는 직원들은 회사를 그만두는 게 일반적인 순서였다. 아울러 잭 웰치는 급여 인상, 스톡옵션, 승진 등과 같은 보상체계도 이 활력곡선에 따라 결정했다. 또 잭 웰치는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를 위해 워크아웃 프로그램을 실시했는데,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모든 사업부에서 수백 가지의 불필요한 일들을 제거하고 벽 없는 조직을 만들고자 했다.



리더의 결단력을 강화시켜라

그는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4E 리더십을 주장한 바 있는데, 활력(Energy, 리더는 에너지가 넘친다), 동기부여(Energize, 리더는 에너지를 불러일으킨다), 결단력(Edge, 리더는 결단력이 있다), 실행력(Execute, 리더는 실행한다)이 이에 해당한다. 웰치는 이 중에서 특히 결단력을 강조했는데, 그의 결단력은 인력 감축과 인수합병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그는 회장으로 취임한 후 5년 만에 GE의 직원 중 4분의 1을 해고하였으며, 재임 기간 동안 1,300여 건의 인수합병이 이루어졌다.

가볍고 날렵한 조직으로 혁신하라

웰치는 대기업의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해고 -능력이나 성과가 부진한 직원은 물론, 변화에 저항하는 직원도 해고- 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하였는데, 먼저 해고를 통해 조직의 몸을 가볍게 한 후에 혁신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참고로 웰치의 혁신 프로그램은 20여 년 동안 체계적으로 이루어 졌는데, 처음에는 구조조정과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개선하는 데 주력했고, 다음에는 업무의 프로세스 개선과 전략과제 개선 쪽으로 확산하였으며, 후기에는 품질개선으로 연결하였다.



능력을 소중히 여겨라

기업 경영자나 비즈니스 지도자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잭 웰치는 "그것은 분위기, 풍토, 기회, 능력에 따른 승진 기회 부여 등 보상체계를 마련하는 것이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성장할 수 있는 자원을 마련해주며, 성장을 위한 교육수단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게 하여, 그들의 지평을 최대한 확장시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기업의 경영자나 비즈니스 지도자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라고 답변했다.



웰치는 자신의 리더십에 대한 추종자를 양성하기 위해 크로톤빌 연수원을 개축하고 기능을 강화했는데, 크로톤빌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프로그램 중 리더십에 관한 과정은 성장 가능성이 높은 임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EDC(Executive Development Course, 임원 개발 과정), 중간관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BMC(Business Management Course, 경영 관리 과정), 경력이 오래지 않은 직원들 중 우수한 인재들을 대상으로 하는 MDC(Management Development Course, 경영 개발 과정) 과정 등이 있었다.

제2장 잭 웰치 뒤집어 보기 : GE의 파괴자인가, 영웅인가



GE의 파괴자

잭 웰치가 원한 GE의 성장은 기존 소비자들이 가지고 있던 GE의 좋은 이미지와 위배되는 것일지라도 상관이 없었는데, 웰치를 GE의 파괴자로 평가하는 이들이 생겨나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적극적인 인수합병 정책은 GE의 외형 성장을 이끌었지만, 그 때문에 미국의 상징인 GE의 이미지를 파괴했다고 평가되어지기도 한다.



GE를 은행으로 만들기

GE의 외형을 키우기 위해 웰치가 주력한 분야는 금융사업이었는데, 금융사업 부문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GE는 에디슨 시절부터 갖게 된 전기제품 생산회사의 이미지 대신, '은행의 이미지'로 변모해갔다. 웰치는 1977년에 소비자 섹터 총괄 책임자가 되면서 금융 사업도 함께 맡게 되었는데, 회장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외형을 키워야 했고, 그러려면 금융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이때부터 그는 금융 사업에 눈을 뜨게 되면서 -기존의 사업들과 비교할 때 금융 사업은 상대적으로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분야 같았는데, R&D를 위해 많은 돈을 투자할 필요도 없고, 공장을 짓거나 매일같이 금속 따위를 제련할 필요도 없었으며,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규모를 키울 필요도 없었음- 금융사업 부문을 비약적으로 키우게 되었다.



금융 사업은 자본을 가지고 돈을 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똑똑하고 창조적인 사람들을 찾아낸 다음, GE의 탄탄한 재무구조를 이용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두뇌의 힘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은 고생해서 물건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었다. 참고로 웰치는 회장이 된 후, 금융사업 부문을 더욱 키웠는데, GE캐피털은 48개 국가에서 24개 부문의 사업을 운영하는 3,700억 달러의 자산을 가진 거대 다국적 기업이 되었다.



인수합병의 귀재

돈이 되는 사업은 모두 GE의 인수합병의 대상이 되었는데, 톰 피터스는 GE를 '잡동사니 모음'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GE의 인수합병에 있어 큰 역할을 한 부문은 금융 사업이었는데, 그래서 GE캐피털은 다른 사업 부문과 달리 회장 직속으로 분리 운영되었으며, GE캐피털은 1990년대에 걸쳐 10년 동안 2,000억 달러 이상의 자산과 관련된 400건의 M&A를 실행했다. 그리하여 GE캐피털의 자산 규모는 50억 달러(1987년)에서, 3,700억 달러(2000년)로 늘어났으며, 2000년 캐피털이 올린 이익은 52억 달러였는데, 이는 GE 전체 수익의 41퍼센트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골프장에서 경영하기

웰치는 평생을 골프와 함께했는데, 골프장에서 여러 인사들을 만나 사업으로 연결했고, 많은 중요한 사업적 결정들이 골프장에서 이루어졌다. 참고로 그는 골프가 인간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완벽해질 수 있다고 부추기는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특A급 홍보 전문가

오늘날 웰치가 모든 경영자들이 존경하는 CEO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그의 업적 때문이었다. 하지만 '중성자탄' 같은 냉혹한 이미지를 걷어내고, 현재의 이미지로 포장된 것은 확실히 홍보 전문가 - GE가 외부에서 영입한 최초의 임원은 조이스 헤르겐한이었는데, 그녀는 MBA 출신으로 외향적이고 냉철한 여성으로 콘 에디슨의 수석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가, GE로 옮긴 후 웰치의 열렬한 대변자가 되었음- 의 솜씨 덕분이라 할 수 있다.



회장 되고 두 번 이혼

경영자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로 윤리를 들 수 있는데, 퇴임 후 잭 웰치의 행보는 그의 윤리의식을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