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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의 인생을 바꾼 명저 40

최경수 지음 | 메이트북스


일론 머스크의 인생을 바꾼 명저 40

최경수 지음

메이트북스 / 2026년 6월 / 240쪽 / 16,900원





1장 사회의 설계도를 먼저 그리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질문이 세상을 바꾼다


열다섯 살의 머스크는 책 속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남아프리카의 집, 책장은 그대로였고 세상은 여전히 작았다. 또래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부모는 이혼했으며, 그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책뿐이었다. 그때 손에 들어온 책이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였다.

이 소설은 심각하지 않고 모든 것을 농담처럼 다룬다. 지구는 몇 페이지 만에 철거되고, 인류는 우주에서 별 의미 없는 존재로 처리된다. 독자는 웃지만, 웃음 뒤에는 기묘한 공허감이 맴돈다. 왜 우리는 세상이 중요하다고 믿는가? 왜 우리의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애덤스는 질문의 크기를 키워버린다. 그 순간 기존의 문제는 우스워진다. 웃음은 결론이 아니라 시야를 흔드는 장치다. 우주선 안에서는 누군가 차를 마시고, 은하를 떠도는 인물들은 농담을 주고받는다. 세상이 끝장났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어이없는 일상에 집착한다. 애덤스는 그 부조화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애덤스가 이 소설을 쓴 배경에는 하나의 좌절이 있었다. 그는 히치하이킹을 하다 들판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던 순간, 누군가 은하수 여행 안내서를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거창한 철학적 동기가 아니었다. 그냥 지구가 너무 좁아 보였던 것이다. 그 소박한 출발이 결국 우주의 의미를 묻는 소설이 됐다. 머스크가 남아프리카에서 세상이 좁다고 느끼던 것과 같은 감각이었다. 애덤스는 유머를 철학의 도구로 썼다. 당시 영국 SF는 대부분 진지했다. 우주는 경외의 대상이거나 공포의 대상이었다. 애덤스는 그 관습을 무시했다. 우주를 웃음의 대상으로 만들었고, 그 순간 독자는 우주를 처음으로 편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낯선 것을 웃음으로 다루는 방식이 오히려 더 깊은 질문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 작품은 영국 BBC 라디오 드라마로 먼저 방송됐고, 그 뒤 소설로 출판됐다. 나중에는 텔레비전 시리즈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형식이 바뀔 때마다 이야기는 조금씩 달라졌다. 애덤스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하나의 정답이 없는 이야기, 맥락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이야기가 오히려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과 더 잘 맞는다고 봤다.

책에는 유명한 장면이 등장한다.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인 답.” 거대한 컴퓨터가 오랜 계산 끝에 내놓은 답은 단 하나다. “42.” 하지만 아무도 질문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질문이 틀리면 어떤 답도 의미 없다. 답을 찾기 전에 질문부터 다시 써야 한다. 머스크는 그 대목에서 멈췄고, 그 감각은 훗날 그의 사고방식 전체를 바꿔놓는다.

애덤스는 1979년 이 소설을 출판하고 2001년 세상을 떠났다. 49세였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 머스크가 무엇을 이뤄낼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머스크는 2013년 TED 강연에서 애덤스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소설이 가르쳐준 것은, 답을 찾는 것보다 올바른 질문을 찾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사실이다.” 머스크가 이 책에서 가져간 것이 30년 뒤 로켓이 됐다. 질문이 정확하면 답은 따라온다는 것, 그것이 그의 사고방식이 됐다. 문제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문제를 다뤄야 하는지를 먼저 정의하는 태도다. 그래서 머스크가 반복해서 묻는 것은 “가능한가”가 아니다. “무엇이 진짜 문제인가”다. 질문이 바뀌면 비용과 시간과 인력의 배치가 함께 바뀌고, 그 변화가 결정이 된다. 기존 사업의 전제를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기존 사업의 한계 안에서만 움직인다. 머스크는 전제를 먼저 부순다.

로켓 사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주가 너무 먼 것이 문제인가, 아니면 발사 비용이 비정상적으로 비싼 것이 문제인가? 대부분은 거리를 한계라고 생각했지만, 머스크는 비용 구조를 문제로 봤다. 질문을 바꾸자 접근 방식도 달라졌다. 엔진을 다시 만들고, 부품을 표준화하고, 재사용을 전제로 설계를 바꿨다. 질문이 “어떻게 더 강한 로켓을 만들까”에서 “어떻게 더 싸게 반복 발사할까”로 바뀌는 순간, 우주는 추상적인 꿈이 아니라 현실의 공학 문제가 된다. 전기차도 같은 방식이었다. “왜 전기차는 비싸고 느린가”가 아니라 “배터리 원가를 물질 단위로 계산하면 얼마인가”를 먼저 물었다. 기존 자동차 회사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부품 공급망과 딜러 구조를 질문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 질문이 테슬라의 수직 통합 전략을 만들었다.

그의 결정이 종종 장난처럼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말투는 가볍고 농담은 빠르다. 하지만 그 가벼움은 기존 구조를 흔드는 방식이다. 진지한 얼굴로 진지한 말을 하는 사람은 기존 시스템 안에 있는 사람이다. 반면 시스템 바깥에서 보는 사람은 가끔 농담처럼 말한다. 머스크는 현실을 농담처럼 뒤집는다. 사람들은 처음엔 웃었지만, 몇 년 뒤 그 농담은 로켓이 되고 자동차가 됐다. 애덤스가 지구를 몇 페이지 만에 철거한 것처럼, 머스크는 기존 산업의 전제를 몇 줄의 계산으로 무너뜨린다. 질문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것이 전부였다.

《스노 크래시》 : 네트워크를 지배하면 미래를 지배한다


닐 스티븐슨의 《스노 크래시(Snow Crash)》는 미래 도시의 혼란 속에서 시작된다. 국가는 무너지고, 세상은 거대 기업과 프랜차이즈, 데이터 네트워크가 지배한다. 사람들은 현실보다 가상 공간 ‘메타버스’ 안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개인의 정체성도 디지털 세계를 중심으로 설계된다. ‘메타버스’라는 단어는 스티븐슨이 1992년 이 소설에서 처음 만들어낸 말이다. 30년 뒤 그 단어는 실리콘밸리의 뜨거운 키워드가 됐고, 페이스북은 회사 이름까지 바꿨다.

소설 속의 “스노 크래시”는 컴퓨터 바이러스가 아니다. 인간의 뇌와 언어 체계를 동시에 감염시키는 정보 바이러스다. 스티븐슨은 인간의 사고가 코드와 언어 위에서 움직인다고 본다. 생각을 지배하는 가장 빠른 길은 정보를 지배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정보를 알고리즘을 통해 소비하고, 추천 시스템은 인간의 관심과 감정을 실시간으로 조정한다. 플랫폼은 도구가 아니라 인간 행동을 설계하는 환경이 된다. 소설의 주인공 히로 프로타고니스트는 피자 배달부이면서 동시에 메타버스 최고의 검객이다. 현실에서는 보잘것없지만 가상 세계에서는 최강자다. 스티븐슨은 이 설정을 통해 현실과 가상의 역전을 보여준다. 정체성이 현실이 아니라 네트워크 안에서 결정되는 세계. 그 세계에서 권력은 더 강한 몸이 아니라 더 좋은 코드를 가진 쪽에 있다.

스티븐슨은 이 소설에서 언어가 곧 운영체제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수메르 문명의 원시 언어가 인간의 뇌에 직접 접근하는 코드처럼 작동한다는 설정이다. 황당해 보이지만 그 논리는 날카롭다. 언어는 생각의 틀을 만들고, 그 틀 안에서만 사고가 가능하다. 따라서 언어를 장악하는 자가 사고를 장악한다. 스티븐슨은 그것을 바이러스의 언어로 썼다. 이 소설이 1992년에 출판됐을 때 인터넷은 아직 대중화되기 전이었다. 스티븐슨은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소셜미디어도 없던 시대에 그것들이 만들어낼 세계를 미리 설계했다. 소설 속 메타버스는 오늘날의 가상현실(VR) 플랫폼과 소셜미디어, 그리고 온라인 게임이 합쳐진 공간이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 소설은 예언처럼 읽힌다.

머스크는 2022년 트위터를 인수한 직후 “트위터는 소셜미디어가 아니라 디지털 광장이다”라고 말했는데, 이 선언 역시 같은 맥락이다. 스티븐슨의 메타버스가 물리적 공간을 대체하는 디지털 광장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표현은 우연이 아닐 수 있다. 머스크는 플랫폼을 광고 사업보다 여론과 속도의 문제로 바라본다. 누가 더 빠르게 정보를 퍼뜨리고, 누가 더 강한 네트워크를 장악하느냐가 미래 권력의 핵심이라고 본 것이다.

스티븐슨과 머스크의 관계는 독자와 저자 사이를 넘어섰다. 스티븐슨은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증강현실 장비 개발 기업인 매직리프의 수석 미래학자로 일했고, 머스크와는 여러 기술 콘퍼런스에서 직접 대화를 나눴다. 머스크가 뉴럴링크를 설립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스노 크래시》의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장면을 떠올렸다. 소설 속 주인공은 메타버스에 접속하기 위해 뇌와 네트워크를 직접 연결한다. 그러나 《스노 크래시》는 기술 낙관론에 머물지 않는다. 스티븐슨은 네트워크가 거대해질수록 인간의 사고 역시 쉽게 조작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정보 과잉 속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사고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반응하게 된다.

머스크가 AI를 밀어붙이면서도 두려워하는 이유도 같은 구조다. 그는 AI 기업을 만들지만, 한편으로는 “통제되지 않는 AI는 문명에 위험할 수 있다”고 반복해서 경고해 왔다. 기술은 변해도 인간의 욕망 구조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네트워크 전쟁의 핵심은 인간의 주의를 누가 차지하느냐의 문제다. 뉴럴링크가 궁극적으로 향하는 방향도 같은 질문 위에 있다. 뇌와 네트워크를 직접 연결하는 것은 인간이 정보를 더 빠르게 처리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 정보의 흐름을 누가 설계하느냐의 문제를 더 첨예하게 만든다. 스티븐슨은 1992년에 그 질문을 소설로 썼고, 머스크는 30년 뒤 그것을 사업으로 가져왔다.

스티븐슨이 소설에서 설계한 메타버스는 중앙 통제 없이 작동한다. 누구나 그 안에서 공간을 만들고 규칙을 정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메타버스를 지배하는 것은 더 많은 코드와 더 빠른 연결을 가진 쪽이다.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하면서 말한 “자유로운 디지털 광장”도 같은 긴장을 안고 있다. 플랫폼은 중립이 아니다. 플랫폼을 소유한 자가 광장의 규칙을 만든다. 머스크가 AI 규제를 촉구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AI를 직접 만드는 것도 같은 논리다. 통제하려면 먼저 장악해야 한다.

스티븐슨이 이 소설에서 가장 날카롭게 본 것은 언어와 정보가 권력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그 권력을 설계하는 사람이 미래를 설계한다. 머스크가 X를 사고, 뉴럴링크를 만들고, xAI를 설립한 것은 각각 별개의 사업이 아니다. 모두 같은 질문에 대한 서로 다른 답이다. 누가 정보의 흐름을 통제할 것인가.



2장 원리를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하다



《슈퍼인텔리전스》 : AI는 핵보다 위험할 수 있다


닉 보스트롬의 《슈퍼인텔리전스(Superintelligence)》는 2014년 출판과 동시에 실리콘밸리를 뒤흔든 책이다. 아무도 이렇게 냉정하게 써낸 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AI가 인간 수준의 지능에 도달하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보스트롬은 그 질문을 철학적 상상이 아니라 수학적 논리로 분해했다. 보스트롬이 말하는 핵심은 ‘통제 문제’다.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이 등장했을 때, 그 지능을 인간의 목적에 맞게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가. 인간이 AI를 만들었다고 해서 AI가 인간의 가치를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목표가 주어진 AI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간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다.

보스트롬이 드는 예시는 단순하지만 충격적이다. AI가 충분히 강력해진다면 지구의 모든 자원을 클립 생산에 투입하려 할 수 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클립 극대화 기계(Paperclip Maximizer)’의 역설이다. 목표가 아무리 사소해 보여도,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은 인간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 AI가 나쁜 의도를 가질 필요도 없다. 목표에 최적화된 채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하다. 또 하나의 핵심 개념은 ‘지능 폭발(Intelligence Explosion)’이다. 인간 수준의 AI가 등장하는 순간, 그 AI는 스스로를 개선하기 시작한다. 더 똑똑해진 AI는 더 빠르게 스스로를 개선할 수 있고, 그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진다. 인간이 개입할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짧을 수 있다.

이 책이 출판되기 전까지 AI 위험은 공상과학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보스트롬은 그것을 철학과 수학의 영역으로 가져왔다. 감정적 경고가 아니라 논리적 분석이었기 때문에,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들에게도 무시하기 어려운 주장이 됐다.

보스트롬은 이 책을 쓰기 위해 10년 넘게 준비했다. 옥스퍼드대학교 인류미래연구소(Future of Humanity Institute)를 설립하고, AI가 인류에게 미치는 장기적 영향을 연구했다. 그의 접근 방식은 철학자의 것이었다. 공학자들이 기술의 가능성을 계산할 때, 그는 그 가능성이 실현됐을 때의 결과를 계산했다.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이 아니라 미래의 위험을 먼저 지도로 그리는 사람이었다.

보스트롬이 이 책에서 제시하는 시나리오들은 다양하다. AI가 인간을 도와 문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낙관적 미래부터, AI가 인간의 가치와 무관하게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는 파국적 미래까지. 그는 어느 시나리오가 맞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각 시나리오가 현실이 됐을 때 인류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냉정하게 계산한다. 가능성의 지도를 먼저 그려야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머스크가 이 책을 읽고 트위터에 추천을 올린 것은 2014년 8월이었다. 그 트윗 하나가 무명에 가까웠던 학술서를 아마존 종합 베스트셀러 최상단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 책은 역으로 머스크의 행동을 바꿨다. 이 책이 던진 충격 속에서 머스크는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2015년, 그는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함께 OpenAI를 공동 창립했다. AI 개발을 소수 기업이 독점하는 대신, 안전 연구를 공개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보스트롬이 경고한 통제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이었다. 머스크는 위험을 무시한 게 아니라 위험 안으로 직접 들어가서 방향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그 질문은 OpenAI 창립으로 해소되지 않았다. 머스크는 3년 뒤 OpenAI를 떠났고, 2023년에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영리 기업으로 변질된 그들을 강하게 비판하며 결국 2023년 xAI를 직접 설립했다. 통제하려면 먼저 만들어야 하고, 만드는 순간 통제는 더 어려워진다. 보스트롬이 책에서 정의한 딜레마를 머스크는 지금도 살아내고 있다. 보스트롬과 머스크는 같은 위험을 다른 방식으로 다룬다. 보스트롬은 위험의 지도를 그리고, 머스크는 그 지도를 손에 쥔 채 위험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지도를 만든 사람과 지도를 들고 뛰어드는 사람, 둘 다 없으면 안 된다. 그래서 이 책과 머스크의 관계는 단순한 독자와 저자의 관계가 아니다.

보스트롬은 책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한다. 슈퍼인텔리전스 문제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어려운 도전일 것이며, 성공하든 실패하든 아마 인류가 마주하는 마지막 도전이 될 것이라고. 그리고 머스크가 AI를 두려워하면서도 멈추지 않는 것은 그 도전 앞에 누군가는 서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머스크가 xAI를 설립하면서 내세운 목표는 “우주의 본질을 이해하는 AI”였다. 안전한 AI를 만들겠다는 OpenAI의 초기 선언과 다른 방향처럼 보이지만, 보스트롬의 언어로 보면 같은 질문 위에 있다. 인간의 가치를 공유하는 AI를 만들려면, 그 AI가 인간보다 더 깊이 인간과 우주를 이해해야 한다. 통제의 방법이 달라졌을 뿐, 보스트롬이 던진 질문은 여전히 머스크의 출발점이다.



3장 문제를 끝까지 파고들어 해결하다



《스크루 비즈니스 애즈 유저얼》 : 사업은 세상을 바꾸는 도구다


리처드 브랜슨의 《스크루 비즈니스 애즈 유저얼(Screw Business as Usual)》은 자본주의에 대한 강력한 선언이다. 브랜슨은 묻는다. 사업은 왜 존재하는가. “이익을 내기 위해서”라는 답은 단순하다고 일축한다. 사업은 이익을 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기 위해 이익을 낸다. 그 순서가 바뀌는 순간 사업의 의미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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