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올트먼: AI 제국의 설계자
저우헝싱 지음 | 지니의서재
샘 올트먼: AI 제국의 설계자
저우헝싱 지음
지니의서재 / 2025년 9월 / 384쪽 / 22,000원
Prologue.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사람샘 올트먼이 실리콘 밸리에 들어온 지 벌써 20년이 흘렀다. 그 시작은 그의 저택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가량 떨어진 스탠퍼드대학교 기숙사였다. 18살에 미국 미주리주를 떠나 스탠퍼드대학에 입학한 샘 올트먼은 별 볼 일 없는 평범한 대학생에서 세계적인 IT 분야 리더로 성장했다. 2005년, 스탠퍼드대학에 입학한 지 1년 만에 학교를 자퇴한 그는 룸메이트와 함께 소셜미디어 플랫폼, 루프트(Loopt)를 만들었다. 루프트는 친구의 위치를 공유하는 애플리케이션이었다. 같은 해, 루프트는 실리콘 밸리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YC의 첫 번째 창업 캠프에 합류한다. 비록 루프트가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회사를 매각해 얻은 수익으로 샘 올트먼은 벤처 투자를 시작할 수 있었다.
2014년, YC의 공동 창업자 폴 그레이엄과 제시카 리빙스턴은 당시 28살이었던 샘 올트먼을 그레이엄의 뒤를 이어 YC를 맡을 후계자로 발탁했다. 올트먼은 YC를 이끌면서 누구보다 먼저 AI 분야의 거대한 가능성을 포착한다. 그리하여 2015년, 일론 머스크와 함께 인공지능 연구소 오픈AI를 세운다. 그러나 2018년, 머스크는 오픈 AI 합병 시도를 했고, 이는 직원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분개한 머스크는 결국 오픈AI를 떠나고, 이후 올트먼은 2019년 YC를 떠나 오픈AI의 CEO 자리에 오른다.
2022년 말, 챗GPT의 충격적인 등장은 올트먼을 단숨에 실리콘 밸리의 전설로 만들었다. 챗GPT의 탄생은 2007년 아이폰 출시와 나란히 인류 기술사에 기록될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후 오픈AI는 눈부신 속도로 성장하며 메타, 애플, 아마존 등 빅 테크의 임원들을 스카우트했고, 올트먼은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거듭났다. 2023년 5월, 올트먼은 전 세계 순회 강연을 시작한다. 애초에 챗GPT 개발자들과 만나는 자리로 기획된 일정은 곧 외교적 방문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그는 22개국 25개 도시를 숨 가쁘게 돌며 프랑스, 한국, 이스라엘의 대통령, 영국·스페인·독일·인도의 총리 등 각국 지도자들을 만났다. 정상들은 앞을 다투어 그에게서 AI가 불러올 기회와 도전을 엿보려 했다. 2023년 10월, 올트먼은 X에 이렇게 적었다. “2023년이고 나는 서른여덟 살이다. 삶은 멋지다.”
오픈AI 탄생에서 챗GPT 개발까지
슬며시 다가온 AI 혁명
언젠가 이 컴퓨터는 생각할 수 있을 거야: 어린 샘 올트먼은 SF 소설과 영화 <스타워즈>를 좋아하는 책벌레였다. 그는 SF 작가가 만들어 낸 세계를 탐닉하며, 인류와 AI 시스템이 공존 또는 경쟁하는 이야기들을 읽고 또 읽었다. 언젠가 컴퓨터가 인류에 견줄 만해지거나, 심지어 인류를 초월하는 날이 올 거라는 생각에 어린 샘의 가슴은 세차게 뛰었다. 샘의 8살 생일에 부모님은 애플 매킨토시 LC II 컴퓨터를 사 줬다. 당시 샘은 프로그래밍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밤, 늦게까지 컴퓨터를 가지고 노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이 컴퓨터는 생각할 수 있을 거야.’
2003년, 18살에 스탠퍼드대학에 입학할 때도 샘은 어릴 때 했던 생각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AI 과목을 선택해 이수하고 저명한 컴퓨터 과학자 우언다의 AI 연구소에서 실습했다. 이를 통해 샘 올트먼은 기계지능 개발이 대부분 ‘적합도 함수’와 관련이 있음을 알아냈다. 적합도 함수는 프로그램이 최종적으로 이르러야 하는 상태나 해야 할 임무를 알려 준다. 예를 들어 진화 알고리즘에서 적합도 함수는 개체의 ‘적합도’, 즉 특정 환경에서 생존하고 번식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우언다는 귀로 입력된 정보든 눈으로 입력된 정보든 대뇌의 처리 방식은 모두 같다고 했다. 만약 대뇌가 이런 정보를 처리하는 일반적인 알고리즘을 알아낸다면, 컴퓨터가 이런 일반적인 처리 메커니즘을 학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올트먼은 연구소 실습에 대한 기대가 컸으나 별 소득을 얻지 못했다. 2003년, 우언다의 연구는 물론이고 AI 분야 전체는 여전히 ‘AI의 겨울’이라 불리는 침체기에 빠졌다.
AI의 기원과 겨울: 지난 50여 년 동안, AI 연구는 1974년부터 1980년까지, 그리고 1987년부터 1993년까지, 두 번의 겨울을 보냈다. AI 기술 연구가 진척을 보이지 않고 실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자 믿음과 흥미를 잃은 투자자들이 연구비 지원을 대폭 줄이면서 AI 연구는 두 번이나 침체의 늪에 빠진다. ‘AI 겨울’은 AI 연구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을 뿐 아니라 AI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까지 심었다.
샘 올트먼, 폴 그레이엄과 YC: 다행스럽게도, 올트먼이 실리콘 밸리에 뛰어들 무렵부터 AI는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2005년, 그는 스탠퍼드대학을 중퇴하고 친구와 함께 루프트라는 위치 기반 소셜 네트워킹 앱을 만들었다. 루프트는 YC가 처음으로 자금을 조달한 스타트업이며, 이후 YC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가 되었다. 그리고 2012년 올트먼은 자신의 첫 번째 스타트업인 루프트를 매각하고 1년 동안 휴식기를 가졌다. 그런데 마침 이때 AI 분야에 엄청난 지각 변동이 일어나,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수많은 연구가 놀라운 진전을 보이면서 기술 혁신이 이루어진다.
2013년, 1년간의 휴가를 마친 그는 정식으로 YC에 합류했다. 샘 올트먼은 블로그를 즐겨 쓰는데, 이는 아마도 그의 스승이었던 YC 창업자 폴 그레이엄의 영향으로 보인다. 폴 그레이엄은 뛰어난 해커이자 프로그래머이면서 환상적인 글솜씨를 갖춘 수필가다. 프로그래머와 IT 종사자 중에도 그의 수필집인 『해커와 화가』에 열광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YC는 온라인상에서 스타트업과 관련된 글의 링크를 공유하는 ‘해커 뉴스(Hacker News)’라는 이름의 글로벌 스타트업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샘 올트먼은 자신의 블로그뿐 아니라 해커 뉴스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2014년 2월의 어느 날, 친구가 올트먼에게 물었다. “가장 주목 받아야 함에도 간과되고 있는 과학 기술 분야는 뭐라고 생각해?” 올트먼은 곧바로 답했다. “AI지.” 그날 밤, 집에 돌아온 올트먼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정리해 블로그에 올리기로 한다. 글은 다음과 같이 ‘예언’에 가까운 말로 마무리된다.
‘내게 가장 큰 문제는 AI 자체가 아니라 인공의식, 창의력, 욕망 또는 그 외에 당신이 부르고 싶은 그것의 이름에 관한 것이다. 나는 우리가 복잡한 특정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할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은 어떻게 만들까? 이런 창의력은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어떤 방식으로 학습된 자연 파생적 특성일 가능성이 높다. 진화 과정에서 발생한 어떠한 변화로 인해 인류의 뇌와 파충류의 뇌가 달라졌고, 파충류의 뇌는 탁구 치는 컴퓨터에 더 가까워졌다. 우리는 이런 식의 의식을 가진 기계를 만들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긍정적인 결과는 ‘컴퓨터가 매우 효율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고, 인류는 훨씬 더 심오한 사고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약 컴퓨터가 창의력을 갖게 할 수수께끼를 끝내 풀지 못한다면, 인류와 기계는 자연스럽게 조화로운 노동 분업을 이루게 될 것이다.’ 공교롭게도 올트먼이 블로그에 글을 올린 지 이틀 뒤, 폴 그레이엄은 자신의 블로그에 누구도 예상치 못한 공고를 올린다. 이제 겨우 28살인 샘 올트먼이 YC 차기 대표 자리를 수락했다는 내용이었다.
YC의 CEO로 부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올트먼은 기자인 스티븐 레비를 만난 자리에서 YC는 단순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가 아니라고 했다. 올트먼은 YC가 탄생시킨 유니콘 기업의 이윤은 동업자들의 자산이 늘어난 것으로만 보아서는 안 되고 더 위대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자원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더 높은 차원의 트랜스포밍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AI가 모든 분야를 지배할 혁신의 왕이라고 생각했다. 올트먼은 또 이렇게 예언했다. “범용 AI는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만약 범용 AI가 실현된다면, 과학사에서 가장 중대한 발전이 될 것이 분명하다.”
겨울이 끝나다: 샘 올트먼이 옳았다. AI 겨울 속에서도 근성 있는 연구자들은 뒤에서 묵묵히 연구에 매진했다. 이들은 새로운 방법과 분야를 탐색하며 AI 부흥의 기반을 다졌다. 그중 가장 중요한 기술이 바로 딥러닝이다. 딥러닝은 머신 러닝(ML)의 하위 개념으로, 인공 신경망 기술을 활용해 머신 러닝을 진행한다. 인공신경망은 본질적으로 인간 뇌의 식별 메커니즘을 모방했다. 이론적으로 보자면, 인간의 뇌가 이룬 지능은 컴퓨터도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뇌에는 약 1,000억 개의 신경 세포, 뉴런이 존재하고 이 신경 세포가 맞닿는 부위에 있는 노드, 시냅스 개수는 조 단위다. 이는 극도로 복잡한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에 비해 2012년 구글의 인공신경망은 내부에 총 10억 개의 노드가 있는 16,000개의 CPU를 사용해 구현됐다. 이는 당시로서는 가장 복잡한 딥러닝 시스템이었다.
오픈AI의 설립
하루는 길지만 10년은 짧다: 2015년 4월, 샘 올트먼의 친구들은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이한 그에게 서른 해를 산 느낌과 삶의 조언을 말해 달라고 했다. 며칠 뒤, 샘 올트먼은 <하루는 길지만 10년은 짧다>라는 제목의 다음과 같은 글을 블로그에 올린다. ‘계획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다면 붙잡아야 한다. 조금 무모한 짓을 하기를 두려워하지 마라. 똑똑하고 재미있고 야심 찬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려고 노력해라. 그들을 위해 일하거나 그들을 고용하라(사실 일하면서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 중 하나가 정말로 뛰어난 사람들과 깊이 관계 맺는 일이다). 당신의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이거나 전혀 모르는 분야에서 엄청난 잠재력을 보이는 사람들과 어울릴 시간을 내라. 그러면 정말로 당신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의 평균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
과학 기술의 새로운 물결은 기술과 자본, 인재의 복합 작용으로 일어난다. 진정한 모험가들의 낙원은 실리콘 밸리다. 이곳에서는 대략 10년을 주기로 상징적인 기업이 상장된다. 1980년대의 애플, 1990년대의 아마존, 2000년대의 구글이 바로 그들이다. 2012년 5월, 페이스북의 나스닥 상장은 인터넷 물결이 정점에 이르렀음을 상징했다. 그러자 주머니가 두둑해진 과학 기술계의 리더, 벤처 캐피털은 물론이고 상장 기업의 직원들까지 다음 물결을 고대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이미 거세게 끓어오르는 AI 산업이었다. 실리콘 밸리는 필연적으로 AI에 끌릴 수밖에 없었다. 과학 기술계 종사자치고 SF에 빠진 적 없는 사람이 있을까?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로봇과 인간의 애증은 SF 세상에서 무한히 반복되는 주제였다. 실리콘 밸리의 최신 동향을 가장 잘 아는 YC의 대표인 샘 올트먼은 YC 리서치를 준비하고 있었다. 샘 올트먼이 가장 긍정적으로 전망하는 분야가 AI였다.
빅 테크 중에서 구글과 페이스북은 인터넷 분야의 가장 강력한 리더로, 각각 검색과 SNS를 지배하며 부동의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또한 구글과 페이스북의 업무는 자연히 AI와 겹칠 수밖에 없었기에 두 기업이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섰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는 PC 시대의 지배자로, 인터넷 시대에는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지 못해 시대의 패자가 되었다. 한편 실리콘 밸리의 새로운 지배자 일론 머스크도 이제 막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늪지에서 건져 올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AI 물결에 몸을 실었다. 아무튼 큰 이변이 없다면, AI 물결은 빅 테크가 주도하는 게임이 될 것이며, 그 당시의 구글과 페이스북도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스토리 전개를 선호하는 실리콘 밸리에서는 스타트업이 거목을 쓰러뜨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오픈AI가 등장한 것이다. 이는 일론 머스크가 이를 악문 결과였다. 오픈AI는 당시만 하더라도 허무맹랑한 몽상으로 치부되던 ‘범용 A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AGI로 세계적인 인재들을 끌어들였다. 샘 올트먼은 치밀한 포석과 신중한 운영으로 이 비영리 연구소를 업계 거목들 틈에서 무럭무럭 키워 냈다. 그리하여 오픈AI는 단시간 내에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막강한 존재로 급부상한다.
실리콘 밸리의 아이언맨, 일론 머스크: 2015년 초, 머스크는 올트먼을 찾아갔다. 샘 올트먼과 일론 머스크는 몇 년 전에 YC의 공동 창업자를 통해 얼굴을 익혔다. 그렇다면 일론 머스크는 왜 젊다 못해 어리기까지 한 샘 올트먼을 만났을까? 첫째, 실리콘 밸리 스타트업 분야에서 대단한 인맥을 자랑한다는 점과 남을 돕는 데 망설이지 않는다는 평판을 좋게 산 듯하다. 둘째, 당시 실리콘 밸리에서는 머스크를 제외하면 AGI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드물었는데, 올트먼도 그중 한 명이었다. 실리콘 밸리의 오피니언 리더인 올트먼은 오래전부터 AGI와 그것이 인류의 미래에 가할 잠재적 위협을 공개적으로 거론해 왔다. 셋째, 샘 올트먼도 일론 머스크와 마찬가지로 구글의 ‘패권’을 우려했다.
일론 머스크와 샘 올트먼은 구글의 폐쇄성에 대항하려면 ‘오픈 소스’가 답이라고 생각했다. 훗날 공개된 문서에 따르면, 2015년 5월 25일에 샘 올트먼이 일론 머스크에게 보낸 이메일에 이런 내용이 있다. ‘나는 인류의 AI 개발을 막아야 하지 않을까 줄곧 고민했다. 아마 이는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AGI가 언젠가는 실현된다면, 구글 외의 다른 기관이 먼저 해내는 편이 나을 것이다.’
샘 올트먼은 YC가 AI ‘맨해튼 프로젝트’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이런 구조를 만들어 볼 수 있다. 비영리 단체를 통해 기술을 전 세계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일단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여기에 참여한 연구진도 스타트업 수준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물론 모든 규제 규정을 준수하고 적극 지지할 것이다.’ 이에 대해 머스크는 이야기해 볼 만하다고 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샘 올트먼은 비영리적 AI 연구소를 함께 만들어 AGI 경쟁에서 구글을 뒤쫓되, 구글과 전혀 다른 방식을 취해 보자고 제안했다.
2015년 6월, 올트먼은 머스크에게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보낸다. ‘우리의 사명은 최초의 AGI를 만들어 더 많은 사람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즉 가장 안전하고 분산돼 보이는 AI 버전을 만드는 것이다. 아무튼 안전성이 AGI에 가장 바라는 것이다. (…) 기술은 재단이 소유하고 전 세계의 이익을 위해 쓰일 것이다.’ 올트먼은 일단 7~10인 규모로 시작해 점차 늘리자고도 했다. 머스크는 ‘모두 동의한다’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머스크는 새 연구소의 이름을 ‘오픈AI 연구소’, 줄여서 오픈AI라고 지었다.
머스크에 따르면 당시에 소위 ‘합의서’까지 썼다고 하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오픈AI는 비영리 단체이다. 오픈AI가 개발한 제품은 오픈 소스가 될 것이다. 이 연구소는 AGI 시합에서 구글 딥마인드와 경쟁할 것이고 주요한 견제 세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오픈AI의 목표는 인류를 이롭게 하는 것이지, 영리를 목적으로 회사 주주들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 아니다.’ 몇 년 뒤, 일론 머스크는 샘 올트먼이 이 합의서를 위반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샘 올트먼은 합의서의 존재를 완강히 부인했고, 일론 머스크도 샘 올트먼이 이 합의서에 서명하거나 동의했다는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