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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명저)피터 드러커 자서전

피터 드러커 지음 | 한국경제신문사


피터 드러커 자서전

피터 드러커 지음

한국경제신문사 / 2005년 9월 / 699쪽 / 17,000원



프롤로그 - 한 사람의 구경꾼, 탄생하다


구경꾼은 자신만의 역사가 없다. 그들은 무대 위에 있지만 연극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심지어 관객의 역할도 하지 않는다. 연극과 거기에 참여한 모든 배우의 성공은 관객들의 반응에 달려 있지만, 구경꾼의 반응은 연극의 성공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단지 자기 내면에만 어떤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극장의 안전요원들이 그런 것처럼 구경꾼들은 무대 한쪽에 서서 배우나 관객이 미처 눈치 채지 못하는 것들을 본다. 무엇보다 그들은 배우나 관객들과는 다른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본다. 이 책은 ‘우리 시대’의 역사가 아니며, 그렇다고 ‘나의 시대’의 역사도 아니다. 그보다는 일종의 자서전이다. 여기서 다루는 사람이나 사건들은 내게 강한 느낌을 주었으며 여전히 그 영향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들로, 기록하고 검토하고 재현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그것들을 통해 나는 내 주변세계와 내면의 세계를 보았다.

구경꾼은 만들어진다기보다 타고난다. 나는 여덟 살 무렵인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열린 아이들만의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벌써 구경꾼이 될 자질을 보였다. 그해 가을에 최초의 커다란 ‘전쟁 폭리’ 스캔들이 터져서 여러 주 동안 신문의 일면을 장식했다. 빈에서 가장 좋은 호텔과 레스토랑의 소유주가 체포돼 암거래 혐의로 기소 당했던 것이다. 전쟁으로 고기가 대단히 귀해진 시절, 최고가 아니면 메뉴에 올리지 않았던 크란츠는 식당에서 사용할 고급육류를 암시장에서 구입했기 때문에 즉시 고발당했고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 나는 칭찬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악당 크란츠를 변호하며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는 식당주인으로서 자신의 명예를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다고.

내가 열변을 마쳤을 때 모두들 크게 당황했다. 아버지의 오랜 친구는 나를 한쪽 구석으로 끌고 가서 말했다. “크란츠에 대해서는 네 생각이 옳을지도 몰라. 하지만 네가 좀 특이한 사람이란 것도 확실한 사실이야. 그리고 조금 더 눈치가 있고 좀 더 주의 깊게 행동해야 할 필요도 있지. 스스로 관찰하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크게 칭찬 받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별난 생각을 내세워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행동은 절대로 칭찬 받을 만한 일이 아니야.” 이것은 구경꾼이 언제나 듣게 되는 충고다. 그들은 언제나 사물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충고는 적절하게 받아들였지만 나는 그 충고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는 않았다. 그것은 이 책도 마찬가지다.



1부 사라진 제국 아틀란티스



할머니 - 인간에 대한 예의를 깨우쳐 준 유쾌한 사람


할머니는 갓 40세가 되었을 때 남편이 죽고 미망인이 된 직후부터 오랫동안 병마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그 무엇도 할머니가 매일, 그것도 날씨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그녀는 아마 빈의 모든 곳을 전부 다녀봤을 것이다. 그녀는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대했다. 똑같이 친근하고 경쾌한 목소리로, 똑같이 구식 예절에 따라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자신이 만나고 있는 상대에게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항상 기억하고 있었는데, 설사 오랫동안 그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도 그러한 일들을 잊는 법이 없었다. 할머니는 창녀들에게도 똑같은 어투로 말을 걸었다. 가장 보수적인 조카 한 명이 할머니에게 항의했다. 그러자 할머니가 대답했다. “바보 같은 소리 마. 예의를 지키는 것은 결코 적절하지 못한 행동이 아니야.”

우리는 모두 그녀를 아주 존경했지만 한편으로 할머니가 대단히 웃기는 분이란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조카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없었던 할머니는 이렇게 전보를 보냈다. “전보를 보낼 때는 내용을 극도로 간결하게 적는 것이 적절하고 예의에 어긋나지도 않는다고들 하니 난 그저 이 말만 하련다. 무한한 행복이 있기를.” 가문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할머니는 전보에 단지 세 단어만 적었는데 우체국에서 너무 많은 비용을 청구했다며 불평했다고 한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서 직관적으로 20세기를 이해했다. 그녀가 푼수라는 증거로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할머니가 근본적인 가치라고 믿고 실천한 것들이었다. 할머니는 그 믿음을 20세기에 주입시키려고 노력했고, 적어도 자신의 힘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는 최선을 다했다.

엘자와 소피 - 교육의 길을 제시한 노처녀 자매 선생님


나는 지금까지 뛰어난 선생들이 현역에서 활동하는 광경을 여러 번 봤고, 그들 가운데 몇 명은 최고였다. 하지만 나를 가르쳤던 분들 가운데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는 선생님은 미스 엘자와 미스 소피가 전부였다. 두 분 모두 4학년 때 나의 담임을 맡았다. 미스 엘자는 하루 만에 모든 학생들의 이름을 외웠고 한 주가 지나면 학생 개개인의 성격과 그들의 장점을 모두 파악했다. 미스 엘자는 학생 한 명 한 명을 일주일에 한 번씩 면담했다. 그 시간을 통해 그녀는 지난주의 성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주의 계획을 작성했는데, 아이들에게 문제가 될 만한 것이면 무엇이든 그 시간에 다루었다. 미스 엘자는 공부에 필요한 규율과 계획을 세우는 방법에 관한 지식을 전수했다.

미스 소피는 전적으로 아동 중심적이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언제나 아이들이 몰려다녔다. 그녀가 자신의 무릎에 아이들을 앉혀놓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는지 나는 기억할 수 없다. 아이들은 기쁜 일이나 자랑스러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녀를 향해 달려가곤 했으며, 미스 소피는 그들에게 격려나 칭찬의 말과 함께 어깨를 다독여주거나 키스를 해 줄 준비가 항상 되어 있었다. 대신 그녀는 단 한 번도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한 적이 없었다. 미스 소피가 대하는 학생은 그 대상이 남학생이든 여학생이든 언제나 ‘아이들’이었다. 미스 소피는 당시로서는 대단히 혁명적인 교육관을 갖고 있어서 남학생도 바느질과 요리를 배우고, 여학생은 연장을 다루고 고장 난 물건을 고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때때로 학부모들의 반대에 부딪쳤다.

오랜 시간에 걸쳐 나는 다른 종류의 선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쩌면 학습을 하게 만드는 선생을 발견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선생’이 됨으로써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학생들을 학습하도록 이끄는 방법을 사용해 가르침을 전수한다. 이런 사람들은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시절 미스 엘자가 썼던 방법을 사용한다. 그들은 개개의 학생이 가진 장점을 찾아내고 그들의 장점을 개발하기 위한 단기 목표와 장기 목표를 설정한다. 이 작업을 끝낸 뒤에 비로소 그들은 학생들의 단점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 그런 단점은 학생들이 자신의 장점을 완벽하게 발휘하는 데 제한사항으로 등장하게 마련이다. 그들은 학생들의 성취에 항상 피드백을 제공함으로써 학생들이 자제력을 발휘하고 스스로를 이끌어가게 한다.

이런 선생들은 비난보다는 칭찬을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매우 드물게 칭찬함으로써 칭찬이 학생의 동기를 유발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거나 또는 학생이 스스로 느껴야만 하는 성취감과 만족감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주의한다. 그들은 효과적 학습을 계획할 뿐 ‘가르치지’ 않는다.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사람은 어떤 학생을 만나도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비록 그들이 많은 학생들을 맡더라도 결국은 학생 개개인을 대상으로 자신의 방법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미스 엘자 같은 선생들에게 가르침은 방법의 문제이며, 미스 소피 같은 선생들에게는 성격의 차원이다. 결과를 놓고 보면 두 접근법은 대단히 유사하다. 가르침의 최종산물은 결국 선생에게서 어떤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학습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두 방식이 모두 학습효과를 초래한다.

선생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자신의 재능 가운데 가르치는 재능이 포함돼 있는 선생이 있는가 하면, 학생에게 학습을 프로그램해서 넣는 방법을 알고 있는 교육자가 있다. 선생은 타고난다. 그리고 타고난 선생은 자신을 향상시키고 더 좋은 선생으로 거듭날 수 있다. 하지만 교육자는 가르치는 방법을 갖고 있고, 그것은 학습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아마 어떤 사람이든 그 방법을 습득할 수 있을 것이다. 미스 소피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미스 엘자는 방법을 갖고 있었다. 미스 소피가 깨달음을 주었다면 미스 엘자는 기술을 제공했다. 미스 소피는 비전을 전달했고, 미스 엘자는 학습을 이끌었다. 미스 소피가 선생이었다면 미스 엘자는 교육자였다.

선생과 교육자는 열정을 공유한다. 선생의 열정은 자기 자신에게 있고, 교육자의 열정은 학생들의 내면에 존재한다. 학생의 얼굴에 떠오르는 깨달음의 미소는 어떤 마약이나 약물보다 중독성이 강하다. 교실에 만연된 무시무시하고 학생을 고사시키는 전염병인 교사의 권태감을 치유하는 것이 바로 이 열정이다(교사의 권태감은 가르침과 학습을 완벽하게 가로막는 장애요인이다). 가르침과 학습은 언제나 열정이고, 그 열정은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거나 다른 사람의 열정에 자신이 중독되는 것이다. 선생과 교육자가 공유하고 있는 특징이 또 하나 있다. 그들은 학생의 실패를 언제나 자신의 책임으로 생각한다. 진정한 선생과 진정한 교육자에게는 게으르다거나 열등하다거나 멍청한 학생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선생이 잘했거나 능력이 없었을 뿐이다.

프로이트 - 프로이트에 대한 프로이트적 분석


빈에서 살던 어린 시절 당시 우리 부모님은 모두 프로이트와 몇 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의대생이었던 어머니는 결혼하기 한참 전인 젊은 시절에 프로이트의 책을 사기도 했었다. 내가 프로이트에게 직접 소개된 것은 여덟인가 아홉 살 때였다. 그때 부모님이 하신 말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오늘 일은 잊어선 안 된다. 넌 방금 오스트리아에서, 아니 아마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만난 거야.” 여기서 우리 부모님이 프로이트의 추종자가 아니었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사실 어머니는 프로이트와 그의 이론 모두에 아주 비판적이었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그가 “오스트리아, 아니 아마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대한 세 가지 ‘사실’을 거의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첫째, 거의 빈곤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는 것, 둘째 반유대주의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는 것, 셋째, 빈 의학계가 프로이트를 무시하고 경시했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사실’은 모두 완전한 허상이다. 어린 시절 프로이트는 유복했으며, 처음 의사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수입이 좋았다. 프로이트가 세상을 떠나기 몇 해 전 히틀러가 그를 망명 보내기 전까지는 인종차별로 고통을 받은 적도 결코 없었다.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빈 의학계에서 프로이트만큼 많이 논의되고 연구되고 논쟁의 대상이 된 사람은 없었다. 다만 그를 ‘거부’했을 뿐이었다. 사실 이러한 허상을 만들어낸 것도, 그것을 퍼뜨린 것도 프로이트 자신이었다.

사실 프로이트가 유대인이라는 것이 빈 의학계가 프로이트를 용인할 수 없었던 주된 이유이기는 하다. 그에 대해 가장 먼저 제기되는 비판은 그가 치료사로서의 기본적인 ‘유대인 윤리’를 어겼다는 점이다. 프로이트는 무료 환자를 받지 않았으며, 환자가 상당한 진료비를 지불할 때만 진료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는 의학을 ‘장사’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빈 의학계를 괴롭혔던 것은 의사가 환자에게서 감정적으로 분리돼야 한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이었다. 의사가 환자를 인간적으로 대하면 환자는 의사에게 의존하게 되고, 그러면 회복과 치료가 더뎌질 수밖에 없으므로 의사는 고통을 받는 환자를 형제가 아닌 사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의사를 치료사에서 기계공으로 강등시키는 것과 같았다. 이는 많은 의사들이 의사를 꿈꾸었던 이유에 대한 정면 부정이자, 그들의 소명에 대한 자부심을 모욕하는 것이었다.

프로이트 자신의 ‘프로이트적 실언’에서 가장 중요하고 충격적인 점은 자신이 빈 의사들에게 무시를 당했다는 것이다. 그는 빈 의사들이 자신을 거부하는 것을 참아야만 했다. 그는(특히 자기 자신에게) 그들이 자신에 대해 논의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자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함으로써 빈 의사들이 자신을 거부하는 것을 참아냈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의 방법론에 대해 마음속으로는 빈 의사들의 의구심을 상당 부분 공유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그런 의구심에 대해 논의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의 중대한 업적 가운데 하나인 잠재의식의 영역으로 나아갔던 이론을 포기해야 할 상황에 놓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분명 자신의 입지가 얼마나 좁은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빈 의사들을 무시하기 위해 빈 의사들이 자신을 무시하는 척해야만 했던 것이다.



2부 명멸하는 시대의 사람들



헨슈와 셰퍼 - 나치즘이 불러온 개인의 비극


히틀러의 독일이 무너졌을 무렵 《뉴욕 타임스》에 짤막한 기사가 실렸다. 내용은 대강 다음과 같았다. ‘중요 나치 전범인 라인홀트 헨슈가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폭격 당한 자기 집 지하실에 숨어 있다가 미군에게 잡히자 자살했다. 중장으로 나치 SS의 제2인자였던 헨슈는 악명 높은 인종말살부대의 지휘관이었다. 그는 잔인하고 피에 굶주린 자로, 동료나 부하들 사이에서도 ‘괴물’로 알려져 있었다.’ 1933년 겨울에 독일을 떠난 뒤로 내가 헨슈의 이름을 듣거나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따금 그를 생각했다. 독일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나는 그 ‘괴물’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을 떠나기 일 년 전인 1932년 봄, 나는 나치가 정권을 잡으면 독일에 남아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망설이다가 이곳에 남는 일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1933년 1월 31일,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프랑크푸르트 대학을 통제하기 시작하자 나는 진저리가 쳐졌다. 빈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기로 한 전날 밤, 히틀러 돌격대의 복장을 한 사람이 집 밖에 서 있는 걸 확인하고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그가 동료 편집자인 헨슈임을 알았다. 헨슈는 특별히 친한 친구는 아니었다. 그에 관한 특이사항은 공산당과 나치당의 당원증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모두 공정한 신문기자의 신분으로는 불온적인 데다가 정도를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헨슈는 흥분하며 말했다. “당신은 이해하지 못해요. 난 권력과 돈을 갖고 싶은 거요. 이제 나는 앞 번호 당원증을 갖고 있고, 곧 중요한 사람이 될 거란 말이오! 내 말 잊지 마시오. 곧 나에 대해 듣게 될 거요.” 그 말과 함께 그는 방을 뛰쳐나갔다. 갑자기 세상에 몰려오고 있는 무섭고 피비린내 나는, 그러면서 천박하고 잔인한 일에 대한 환영이 떠올랐다.

셰퍼를 만난 것은 그로부터 한 달 뒤인 1933년 4월 초였다. 《베를리너 타케블라트》는 약 반세기 동안 독일과 독일어 사용국가에서 미국의 《뉴욕 타임스》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 그동안 줄곧 성실성과 독립성으로 이름난 창립자 겸 편집자인 테오도어 볼프가 운영해 왔다. 그러나 그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가 쫓아내자 셰퍼에게 어서 돌아와 빈자리를 맡아달라고 청했다. 셰퍼는 이렇게 말했다.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입니다. 나치는 나와 《베를리너 타케블라트》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내게 의존하고, 미국이 내게 기대를 걸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어리석은 나치 당원이라도 그걸 존중하고 받아들여야 할 겁니다.” 그가 《베를리너 타케블라트》의 편집장으로 임명되자마자 나치는 곧바로 그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런 봉사에 대해 때때로 약간의 포상이 내려졌고 2년이 지나 이용가치가 없어지자 《베를리너 타케블라트》와 셰퍼 둘 다 제거되어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

악은 절대로 평범하지 않다. 악행을 하는 사람이 평범할 뿐이다. 악은 극악무도하고 사람은 평범하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악은 헨슈나 셰퍼 같은 사람을 통해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어떤 조건으로든 악과 흥정해서는 안 된다. 그 조건은 언제나 악의 조건이지 인간의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헨슈처럼 악을 자신의 야망에 이용하겠다고 생각할 때 인간은 악의 도구가 된다. 그리고 셰퍼처럼 더 나쁜 것을 막기 위해 악과 손을 잡을 때 인간은 또한 악의 도구가 된다. 나는 가끔 이 둘 가운데 어느 편이 더 해로울까를 생각한다. 권력을 탐한 헨슈의 죄와 셰퍼의 자기과신과 오만의 죄 가운데 어느 편이 더 나쁜 것일까를 생각한다. 그러나 가장 커다란 죄는 아마도 이 두 가지 고전적인 죄가 아닐 것이다. 가장 커다란 죄는 20세기에 새로 나타난 무관심의 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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