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제국의 탄생
마크 버겐 지음 | 현대지성
유튜브, 제국의 탄생
마크 버겐 지음
현대지성 / 2024년 4월 / 560쪽 / 25,000원
1부
보통 사람들(Everyday people)때는 2005년 초반, 채드 헐리(Chad Hurley)는 북부 캘리포니아에서 온종일 컴퓨터 앞에 몸을 말고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얼마 전, 시장에 나온 제품들이 대체로 따분하고 예쁘지도 않다는 것을 파악한 그는 마음 맞는 친구 하나와 남성용 노트북 가방 사업을 시작한 터였다. 하지만 웹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헐리는 진짜 돈이 될 만한 비즈니스는 가방이 아니라 컴퓨터에 있다는 것을 알았고, 프로그래머 친구인 자웨드 카림(Jawed Karim), 스티브 첸(Steve Chen)과 함께 그 산업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싶었는데, 당시 스물여덟 살인 그는 한 살 차이로 맏형이자 실질적인 리더가 되었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왕족 집안에 장가를 들어 어린 아들이 있었고, 장인은 유명한 인터넷 기업가인 짐 클라크였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꾸려나가는 웹사이트 환경인 웹 2.0이 태동하던 무렵, 헐리는 자신의 회사를 차리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웹 서퍼들이 온라인에 몰려들어 일기와 사진 앨범, 시, 요리법, 장황한 글 등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올리고 있었다. 그는 이들을 ‘보통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몇 달간 헐리와 친구들은 그의 집이나 근처 카페에 모여 새로운 인터넷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논의했고, 프렌드스터 등 유명 웹 2.0 사이트와 잡초처럼 무섭게 자라던 블로깅 웹사이트의 어떤 점을 모방해야 할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 주제로 자주 오른 ‘핫오어낫(Hot or Not)’은 템플릿으로 만든 사이트로 사람들이 얼굴 사진을 올리면 매력 여부를 투표하는 곳이었는데, 조악했지만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세 사람은 예전 직장을 다닐 때 갔던 커피숍에서 만난 인연으로 핫오어낫을 만든 사람 중 한 명을 알고 있었고, 그가 사이트로 괜찮은 수입을 얻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좀 멋져 보였다. 세 사람은 결국 사람들이 영상을 공유하고 시청하는 웹사이트를 만들기로 했다. 밸런타인데이에 이들은 차고에 붙어 앉아 잠도 자지 않고 자신들이 구상한 사이트의 이름을 지었다. 개인용 텔레비전을 상기시키는 여러 단어를 떠올린 헐리는 텔레비전을 가리키는 옛 속어, ‘붑 튜브(boob tube)’를 변형하기 시작했다. 당신을 위한 튜브. 구글에 해당 단어를 검색했다. 아무런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그날 저녁, 세 사람은 YouTube.com 도메인을 구매했고, 이로써 확고한 계획의 첫 발걸음을 뗐다.
그로부터 8일 후, 헐리는 “전략: 의견 부탁해”라는 제목으로 카림이 보낸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이메일을 받았다. ‘사이트가 번듯해 보여야 하지만 너무 전문적인 느낌은 아니었으면 좋겠어. 몇 명이서 뚝딱 만든 것처럼 보여야 해. 핫오어낫과 프렌드스터도 사용하기 쉽고 너무 전문적이지는 않아 보이는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잖아. 너무 전문적으로 보이면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할 거야…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사용의 편이성이야. 우리 엄마들도 이 사이트를 쉽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해. 타이밍은 완벽한 것 같아. 작년부터 디지털 영상 녹화가 흔해진 데다 이제는 디지털카메라 대부분이 녹화 기능을 갖추면서 그 흐름에 힘을 실어주고 있으니까. 내가 아는 사이트가 하나 있는데, stupidvideos.com도 영상을 올리고 시청자들이 평가하는 곳이야. 다행스럽게도 이 사이트는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왜 우리 사이트가 더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지 논의해 봐야 할 것 같아. 우리가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은 절대적으로 데이트가 되어야 해. 핫오어낫처럼. 핫오어낫이 그리 데이트 사이트 같아 보이지 않다는 데 주목해야 할 것 같아. 그 점을 사람들이 부담스럽지 않게 느끼는 거니까. 내 생각에는 데이트에 중점을 둔 영상 사이트가 stupidvideos.com보다 큰 관심을 끌 것 같아. 왜냐고? 미혼인 사람들 대다수는 데이트와 여성을 찾는 것이 주된 관심사니까.’ 카림의 이메일은 유튜브의 론칭 목표 날짜로 끝이 났다. 바로 2005년 5월 15일이었다. 참고로 헐리는 결혼을 했지만 사람들이 영상을 만들고 시청하는 데 데이트가 동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동의했다.
세 사람은 행동을 개시했다. 헐리는 YouTube.com이 방문자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고민했다. 첸과 카림은 사이트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줄 코딩 작업을 진행했다. 한편 3월 20일 야후가 플리커를 인수한다는 발표가 나왔는데, 야후는 연간 10억 달러를 긁어모으는 기업이었다. 참고로 세련된 웹 2.0 서비스인 플리커는 디지털 사진을 업로드하는 사이트였는데, 야후가 인수에 무려 2,500만 달러를 들였다는 보도가 전해졌다. 이 플리커 인수가 불을 지폈다. 카림은 “새로운 방향”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또 다른 메일 한 통을 발송했다. ‘채드와 오늘 이야기를 나눴는데, 사이트의 초점을 플리커 쪽으로 맞춰야 할 것 같아. 기본적으로는 온갖 개인적인 영상들을 올리는 인터넷 저장소로.’
이후 헐리와 첸, 카림은 더욱 매진하며 사이트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할지 새롭게 논의했다. “데이트 사이트처럼 가야 할까, 아니면 사진 사이트로 가야 할까?” 첸은 한 이메일에서 핫오어낫은 “호르몬이 날뛰는 힙한 대학생”의 관심을 끄는 사이트인 반면, 플리커는 “디자이너와 아티스트, 창의적인 사람”에게 닿을 것이라고 적었다. “누가 유튜브를 사용할까? 사이트를 두 개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헐리는 영상을 온라인상에서 올리는 것도 편집하는 것도 까다롭다는 점을 우려해 플리커 모델을 고민했지만, 유튜브 사이트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4월 3일, 헐리는 두 사람에게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갈지는 알아가면 된다면서 사이트를 일단 세상에 내보내야 한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열흘 후 한 가지 걸림돌이 나타났다. 구글이 아마추어 비디오를 올릴 사람들을 모집하는 온라인 공고를 낸 것인데, 이후 구글이 해당 영상을 온 세상 사람들이 보도록 공유할 수도 있었다. 구글은 야후보다 두려운 존재였다. 참고로 2004년 4월 1일 만우절 날, 구글은 이메일 서비스인 지메일을 출시했는데, 전례 없는 규모의 무료 저장 용량을 제공한 나머지 사람들이 장난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자금 수도꼭지와 뛰어난 프로그래머를 보유한 구글이 이번에는 유튜브를 잡으러 다가오고 있었다. 이후 헐리와 두 친구들이 만났을 때는 새로운 안건이 등장했다. “포기해야 하는 거 아닐까?”
참고로 2005년 초, 헐리와 첸이 영상 웹사이트라는 새 아이디어에 대해 말할 당시 이들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편 4월 첸은 테스트 웹사이트를 예전 동료들에게 보냈다. 페이팔 동료가 답장을 보내왔다. “잘 돌아간다. 그런데 파르노는 어떻게 관리할 거야?” (‘포르노’의 오타였다). 첸은 잘 관리하겠다고 안심시키고는 이렇게 물었다. “영상 올려 볼래??????” 당시는 인터넷이 아직 거대한 공개 무대로 자리 잡지 않았을 때였고, 정제되지 않은 개인의 모습을 올린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던 시기였다. 첸의 전 동료는 이렇게 보내왔다. “내가 영상이 없을 거 같은데.”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미적지근한 반응이 유튜브 창립자들을 단념시키지는 못했다. 아마추어 웹 영상에 진입하려는 구글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구글만 있었던 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도 영상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었고, 레버, 메타카페와 같은 수많은 스타트업들, 빅보이스와 이바움스월드와 같이 도를 넘는 충격을 선사하는 포털 사이트도 있었다. 전부 자사의 웹사이트나 어플로 영상을 게시할 수는 있었지만, 영상이 인터넷 어디서나 재생되도록 하지는 못했다. 유튜브는 바로 그 방법을 찾았다.
카림은 파티 자리에 참석했다가 알고 지내던 페이팔 코더 유 팬(Yu Pan)을 만나 자랑하며 말했다. “플래시로 할 수 있어요.” 텍스트와 오디오, 비디오 그래픽을 렌더링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인 플래시를 통해 유튜브는 자사의 비디오 플레이어 박스를 다른 웹사이트에 삽입할 수 있었다. 바로 이것이 유튜브 3인조의 가장 뛰어난 수이자 유튜브가 다른 모든 경쟁사를 뛰어넘을 수 있게 한 혁신이었다. 파티에서 카림은 팬에게 테스트 영상을 로딩해 보여주었다. 페이팔에서 플래시를 잠깐 고려한 적이 있었던 팬은 그 기술적 잠재력을 이해하고 있었다. 화면에는 헐리가 디자인한 단순한 직사각형과 작은 삼각형의 플레이 버튼이 픽셀로 등장했고, 이 미니어처 TV는 온라인 어디서나 켤 수 있었다.
참고로 플래시로 영상을 재생시키는 것은 쉬웠다. 하지만 영상과 소리의 싱크를 맞추는 것은 쉽지 않았다. 첸은 자신이 말하는 모습을 담은 4초짜리 영상을 제작하고 작성한 코드로 다시 돌아가길 수없이 반복하며 입술과 소리가 함께 움직이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세 사람이 싱크가 잘 맞는 것을 확인한 뒤에는 카림의 어설픈 눈짓이 담긴 다음과 같은 18초짜리 클립을 첫 정식 영상으로 사이트에 올렸다. ‘카림은 검은색 스키 재킷을 입고 샌디에이고 동물원에 서 있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때문에 그의 목소리가 거의 묻힐 정도지만, 그의 입술은 음성과 딱 맞게 움직이고 있다. “네, 그러니까 저희는 지금 코끼리 앞에 있는데요.” 카메라를 곧장 바라보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코끼리들이 멋진 점은 코가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잠시 멈춤- “길다는 거죠. 네, 딱히 더 할 말은 없네요.”’
이후 사이트를 채우기 위해 카림은 747 여객기가 이착륙하는 클립을 올렸다. 첸은 튜나팻이라는 닉네임으로 반려묘 PJ의 클립을 올렸다. 하지만 더욱 많은 자료가 필요했다. 이들은 여전히 데이트 사이트 아이디어를 놓지 않고 있었고, 그것이 가능하려면 여성들의 영상이 많이 필요했다. 결국 첸은 크레이그스리스트에 다음과 같은 게시글을 올렸다. “유튜브는 창의적인 콘텐츠를 찾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여성이거나 18~45세의 창의적인 남성이라면, 짧은 영상 클립을 만들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를 보유하고 있다면, 다음 단계를 거쳐 20달러를 수령하실 수 있습니다.” 참여 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Youtube.com 사이트를 방문하고, 계정을 개설하고, 자신의 모습을 담은 영상 3개를 올리면 되었다. 방문자들은 “18~45세의 남성을 찾는 여성입니다”라고 적힌 드롭다운 메뉴를 선택할 수 있었다. 이들은 해당 게시글을 라스베이거스와 로스앤젤레스 지역에 올렸다. 아무런 반응도 얻지 못했다. 다시 시작 단계로 돌아간 헐리는 창의성을 강조한 메시지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거라 판단했고, “보통 사람들이 찍은 아주 개인적인 클립”을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보기에 사이트의 단점은 명확한 목적이 부재하다는 것이었다. 개인의 의견을 과시하는 곳인가, 아니면 성적 매력을 과시하는 곳인가?
대단히 화가 난 그는 메일에 이렇게 적었다. “너희 때문에 자꾸 헷갈려서 그러는데 우리 블로그로 가는 거야, 아니면 데이트로 가는 거야?” 카림이 답장을 썼다. “블로깅은 잊어. 자신의 영상을 올릴 수 있는 사이트가 되어야 해. 당신의 모습을 방송하세요, 이거라고.” 세 사람이 정했던 초기 슬로건 “보다, 연결되다”는 통하지 않았다. 이제 카림은 새로운 슬로건 “당신의 모습을 방송하세요.”를 사이트의 모토로 제안하고 있었고, 그것으로 결정이 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림의 직설적인 성격이 두 공동 창립자의 신경을 거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결단력과 모토가 그해 5월 세상에 공개된 사이트에 도움을 준 것만큼은 분명했다. 하지만 유튜브의 진짜 동력은 한 달 후 세 사람이 선견지명을 발휘해 사이트에 변화를 준 데서 비롯되었다. 이들은 사람들이 댓글을 남기는 기능과 친구들에게 클립의 링크를 쉽게 보낼 수 있는 작은 버튼을 추가했다. 또한 영상을 클릭하면 관련 콘텐츠가 페이지 우측으로 죽 등장해 더 많은 영상을 시청하도록 유도했다.
두 명의 제왕2006년 1월 첫 주에 열린 국제 가전제품 박람회에서 구글의 공동 창립자이자 최고 비전가인 래리 페이지가 무대로 나와 구글의 발명품들을 소개했다. 신입 구글러(구글 직원들이 스스로를 칭하는 단어임)인 조지 스트롬폴로스는 군중 속에 앉아 구글 비디오가 등장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1년 전 구글은 첫 디지털 영상 실험을 시작했다.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혁신에 대한 갈망이 강했던 구글은 TV와 영화 홈비디오가 온라인으로 옮겨 가는 분위기를 감지했고, 이는 기업이 향후 수십 년 동안 타당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포착해야만 하는 트렌드였다. 다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다.
구글은 이용자 제작 영상으로 무언가를 시도하는 방안도 고려했지만, 고위 경영진은 전문적인 미디어를 온라인에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로빈 윌리엄스가 라스베이거스의 무대를 떠난 후 페이지는 그 프로젝트를 세상에 발표했다. 퀴퀴한 케이블 박스에 인터넷이 전해주는 해답이 될 새로운 구글 비디오 스토어가 바로 그것이었다. 페이지는 사람들이 구글 스토어에 방문하면 NBA 경기부터 영화 《록키와 불윙클》까지 모두 시청할 수 있다고 약속했다. CBS의 회장 레스 문베스가 무대에 올라 자사의 네트워크에서 제공하는 방송도 시청할 수 있다고 발표하자 스트롬폴로스는 진심으로 놀라 박수를 쳤다. 하지만 아직 신참 구글러였던 그는 불안함을 떨칠 수 없었다.
그는 온라인에서 성행하는 아마추어 미디어를 대단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는 유튜브에서 ‘레이지 선데이’를 시청했고, 젊은 층이 무리를 지어 그곳에 모여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이들은 구글 비디오로 넘어오지 않고, CBS의 황금 시간대 프로그램을 보러 넘어오기 시작하는 일도 없을 터였다. 다만 그를 포함해 구글러 대다수가 몰랐던 사실은 페이지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참고로 래리 페이지는 세르게이 브린과 함께 구글을 창립했고, 구글에서는 다들 두 사람을 래리와 세르게이라는 이름으로 불렀고, 언론에서 두 사람을 ‘더 구글 보이즈’라 불렀다. 구글 보이즈는 미래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여러 계획을 세우거나, 아니면 이를 위해 싸워야 했지만, 두 사람이 고된 일을 직접 감당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선지자이지 매니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투자자들은 베테랑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이자 경영자인 에릭 슈미트를 CEO로 들이자고 두 사람을 설득했다.
이후 슈미트와 두 창립자는 고위 경영진으로 긴밀하게 구성된 핵심 집단에 의지했다. 힘든 일 대부분은 두 여성에게, 마리사 메이어와 두 사람에게 차고를 빌려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열여섯 번째 직원으로 구글에 합류한 수전 워치츠키에게 돌아갔다. 참고로 또 다른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생인 마리사는 구글 북스를 이끌었고 워치츠키는 구글 비디오를 맡았는데, 직원들은 이들을 “미니 창립자들”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페이지와 브린의 바람을 실현시킬 수 있는 똑똑하고 야망 있는 오퍼레이터였다. 구글이 성장해가면서 두 여성은 구글 창립자들의 관심을 받는 소수의 사람으로 자리 잡았다.
한편 2006년 여름, 아마추어 비디오에 신중하게 접근하던 워치츠키에게는 한 가지 아주 분명한 문제가 있었다. 유튜브가 구글을 완패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1월에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졌던 구글의 무대 이후, 온라인 매거진 《슬레이트》의 기술 작가인 폴 부틴은 구글의 비디오 스토어가 곧 케이블을 대체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4개월 후 그는 이렇게 적었다. “내 생각이 틀렸다. 구글은 단순한 이유 하나로 인기를 얻는 데 실패했다. 바로 유튜브보다 사용이 번거롭다는 점이다.”
그래서 구글 CEO인 에릭 슈미트는 심기가 불편했다. 그는 해당 기사를 워치츠키에게 전달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가 유튜브와 마이스페이스에게 맥을 못 추는 이유가 이것 때문인가 보군요.” 워치츠키는 블랙베리 자판을 바쁘게 누르며 답장을 보냈다. 이런 성가신 기사들은 대부분 사라질 거라고 그녀는 상사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녀의 직원들 가운데 몇몇은 승리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 예를 들면, 자기 자신을 개혁하는 과정을 거친 뒤 구글에 입사한 쉬바 라자라만 등이었다. 한편 유튜브의 장막 뒤에서는 헐리가 자신의 자리를 잃기 직전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비즈니스가 성장해나가자 세쿼이아의 투자자로 유튜브에서 영향력이 큰 보타는 이제 다른 CEO를 들여야 할 타이밍이라고 판단했다. 1년 전 그는 투자 제안서에 유튜브는 CEO를 “신속하게 채용”해야 한다고 적었다. 참고로 세쿼이아는 구글에도 같은 요구를 했었고, 그렇게 창립자들 옆에 슈미트가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