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대나무처럼 자란다
변봉덕 지음 | 다니비앤비
인생은 대나무처럼 자란다
변봉덕 지음
다니비앤비 / 2020년 8월 / 265쪽 / 16,000원
진심 경영 - 진심을 다해야 길이 열린다
진심의 다른 이름은 ‘열심’ ‘열심’이란 말이 진부하게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오래도록 익고 익은 말에는 그만큼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게 마련이다. ‘열심(熱心)’이 무엇인가? 한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뜨거운 마음이다. 뜨거운 마음이 무엇인가? 그것은 간절한 마음이다. 간절한 마음이 있으면 안 될 일도 되게 만들고, 때론 막힌 길도 뚫어낼 의지가 생긴다. 그것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생각이 아니라, 비논리적인 마음이자 의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비논리적인 마음이나 의지가 참 많은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을 살아오면서 직간접적으로 여러 번 경험했다.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가 그랬다.
내가 중앙전업사를 창업했을 때가 1968년 4월 1일, 스물아홉 살 무렵이었다. 그때 나는 이미 사업에 여러 번 실패한 상태였다. 나이는 자꾸 먹어 가는데, 손대는 사업마다 실패를 거듭하자 상당히 초조해져 있었다. 가족, 친지, 친구 등 주변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돈을 빌려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이미 빚더미에 앉아 있던 터라, 그 많은 빚을 다 갚기 위해서라도 사업을 포기할 수 없었다.
중앙전업사는 그런 진퇴양난의 상황 속에서 시작되었다. 청계천 4가 허름한 한옥의 방 한 칸을 빌려 사무실로 썼다. 자본금이라고는 전화 한 대를 포함해 200만 원이 전부였다. 그러나 돈보다 더 큰 자본은 “무엇이든 돌파하고 말겠다!”는 각오였다. “이번에는 절대로 실패할 수 없다!” 이런 각오와 의지가 내 안에 가득했다. 그만큼 나는 절박했다. 처음에 손댄 것은 ‘전화교환기’였다. 전화기 한 대를 놓기가 힘들던 시절이었다. 웬만한 가정집에서 전화기를 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고, 주로 여관이나 호텔, 빌딩, 사무실에서 전화국으로부터 국선을 끌어와서 교환기를 통해 전화를 사용하던 때였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나는 전화교환기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지만,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앞으로는 통신 분야다”라는 확신을 갖고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단 하나, 전화교환기를 새로 짓고 있는 건물에 팔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건축설계를 하는 친구를 찾아가 물었다. “새로 짓는 건물들은 어떻게 알 수 있나?” 친구는 말했다. “건축사 관련 협회에서 모든 설계를 심의해서 정부에 건설 허가를 받아야 공사에 들어갈 수 있다네.”
나는 바로 협회 사무실로 달려갔다. 아무도 나의 문의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건축대장이라는 것이 있어서, 어느 지역에 어떤 건물이 언제 공사를 진행하는지 상세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담당자에게 계속해서 부탁하고 공을 들인 결과 마침내 건축대장을 복사해 올 수 있었다. 사무실에서 그 건축대장 복사본을 딱 펼쳐놓으니 서울 지역 공사 현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마치 작전지도와도 같았다. 내가 어디로 달려가야 할지 훤히 알 수 있었다.
다음 날부터 나는 그 작전지도를 옆에 끼고 공사 현장을 돌았다. 한 공사 현장을 갔을 때의 일이다. 공사 자재가 잔뜩 쌓여 있고 공사가 한창이었지만 집주인은 만날 수 없었다. 매일같이 찾아가 자재 지키는 직원에게 담배도 사주면서 말문을 텄다. 그리고 슬슬 집주인에 대해 물었다. 집주인이 언제 오는지, 성격은 어떤지, 어떤 사업을 하는 사람인지…… 나는 자재 지키는 직원으로부터 집주인이 새벽에만 잠깐 들른다는 정보를 얻어내어 그 시간에 맞춰 공사 현장으로 갔다. 과연 집주인이 일찍부터 나와서 인부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하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돌아가려는 집주인을 놓칠세라 재빨리 다가갔다.
“저는 중앙전업사의 변봉덕이라고 합니다. 전화교환기가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전화교환기? 그게 뭔데?” 전화교환기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별로 없던 시절이었기에 나는 전화교환기가 뭔지, 어떻게 설치해야 하는지 자세히 설명했지만 어르신은 잘 들으려 하지 않았다. 손사래를 치며 돌아서는 그의 등에 대고 간절함을 담아 이렇게 말했다. “어르신! 세를 잘 놓을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건물을 지을 때부터 전화교환기를 설치하면 됩니다. 그래야 입주자들을 유치하기 쉽고, 건물 가치도 올라갑니다. 또 전화기 임대사업을 함께 하면 수익성도 높습니다. 전화교환원 인건비는 빠지고도 남지요.”
그제야 그가 나를 돌아보더니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의 첫 고객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첫 고객은 먼저 중앙의 전화교환기를 턱 하니 설치하더니 다음에는 지인들에게 전화교환기를, 아니 변봉덕을 소개해주었다. 전화교환기 사업은 그렇게 벼랑 끝에서 시작되었다. 벼랑 끝이 있기에 더 절박할 수 있었고, 그 절박함이 반드시 해내겠다는 투지가 되어 타오를 수 있었다. 당시 나는 건설이나 전화교환기에 대해 아는 것은 적었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판매’를 이뤄낼 수 있었다.
프런티어 경영 - 꿈을 향한 도전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꿈을 이룰 수 있는 첫 번째 조건, 도전 알렉산더가 넓은 영토를 차지하게 된 이유는 그가 원정을 떠났기 때문이다. 자기 나라 안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그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도 그가 목숨을 건 먼 항해를 떠났기 때문이다. 이처럼 꿈을 이룰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은 도전하는 것이다. 꿈만 꾸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꿈을 이룰 수 없다. 도전도 하지 않았는데 무슨 성공이 있겠는가. 물론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겠지만 말이다. 성공과 실패는 적어도 무언가에 도전했다는 증거인 셈이다.
사람들은 가끔 내게 해외 영업 성공의 비결을 묻곤 한다. 그 대답의 첫 번째는 “도전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가 될 것이다. 또 사람들은 묻곤 한다. 고객은 어떻게 구했느냐고, 소개를 받거나 해서 계약이 성사된 것이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나의 고객은 100% 개척이었다. 해외에서 소개받고 개척한 고객은 없었다. 우선 첫발을 디뎠을 때는 양손에 커다란 가방을 들고 맨해튼 메인스트리트를 무작정 걸으며 전자상가들을 일일이 찾아 들어가 영업을 했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시간과 에너지를 너무 소진하는 것 같아 전화번호부와 지도를 하나 구해서 밤마다 호텔방에서 작전지도를 만들었다. 전화번호부에 나오는 전자 관련 상점 번호와 주소를 확인하고 지도에 표시를 해둔 것이다.
과거 군 시절 그러니까 카투사로 옮기기 전에 작전병을 맡아 진지 구축을 기획하며 전술을 짜곤 했었는데, 바로 그때처럼, 진지하게 고심하며 여기저기 점을 찍어두었다가 날이 밝으면 그 점을 찍어둔 곳을 향해 쏜살같이 가방을 들고 영업을 나가곤 했다. 다행히 맨해튼 메인스트리트 쪽에 우리 인터폰에 관심을 보이는 상점들이 몇 곳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현금거래를 원했다. 수출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현금이 아니라, 신용장이 필요했다. 알고 보니 그들은 소매상들이었다. 전광석화처럼 그들이 어디서 인터폰을 구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도매처를 물어보았더니 다음과 같이 답했다. “롱아일랜드나 뉴저지 쪽에 수입업자들, 무역 도매상들이 많이 있소. 우린 거기서 물건을 싸게 들여와서 파는 것이오.” 내가 갈 곳은 여기가 아니라 바로 거기였다. 그래서 한달음에 달려가 전화번호부에서 롱아일랜드나 뉴저지 쪽에 있는 무역상, 도매상들을 찾아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아예 통화 자체를 거부하는 곳도 있었고 귀찮아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30분이면 됩니다. 딱 30분만 설명할 기회를 주십시오”라고 생떼를 쓴 적도 많았다. 어렵게 기회를 얻으면 30분이 곧 1시간이 되고, 또 1시간을 2시간으로 만들면서 조금씩 배팅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물론 첫 대면부터 물건 사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사전에 그 나라의 역사, 스포츠, 문화 등을 많이 공부해서 갔다. 바이어를 만나면 우선 그 나라의 역사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네들에 대해 칭찬해주면,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온 세일즈맨이 자기네 나라에 대해 그렇게 많이 알고 있다는 점에 놀라는 동시에, 칭찬에 기분이 좋아져서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대화가 무르익고 나에 대한 호감도가 생겼을 때 제품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우리 제품은 가격 경쟁력이 있었다. 아직은 국내 인건비가 저렴할 때라 다른 나라의 제품보다 가격을 저렴하게 맞출 수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마지막까지 걸림돌이 된 것은 우리 제품의 품질에 대한 우려였다. ‘검증이 안 된 나라의 물건을 덥석 샀다가 고장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우려부터 불식시켜야 했다.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한국은 작은 나라이고 우리 회사도 작은 기업이지만, 품질만은 CEO인 내가 책임지고 감독하기 때문에 세계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한번 믿어보십시오. 우수한 제품을 저렴하게 잘 구했다 생각하게 되실 겁니다.” 진심을 다해서 말하면 마음이 통한다.
나의 진정성에 그들도 점차 나를 믿고 물건을 보내달라며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이처럼 아는 사람 하나 없고 거래처도 하나 없는 타국에서 내가 잡은 동아줄은 옐로우페이지(업종별 전화번호부)였다. 나는 그것을 ‘전화번호부 영업’이라고 부른다. 전화번호부 영업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나 다름없는, 가본 적이 없는 미지의 땅을 하나씩 공략해 들어가는 것이었다. 1970년대 초반에 중소기업이 고유한 브랜드로 전 세계에 수출을 한 경우는 아마 우리 중앙전자공업사가 유일했다는 사실이 지금도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각자에겐 각자의 프런티어가 있다. 누군가의 프런티어는 거대한 사막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프런티어는 작은 숲 하나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꿈이 있고, 그 꿈을 향해 도전한다는 것이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다.
위기 경영 - 바람이 불면 풍차를 돌려라
전량 리콜로 도약의 기회를 얻다 코맥스 역시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고비를 넘기며 성장했다. 창업 초기 때의 일이다. 지인들에게 큰 빚을 지면서까지 힘들게 도어폰을 개발했지만,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당하자 직원들도 하나둘 떠나가고 침체에 빠진 적이 있었다. 실의에 빠진 나머지 한때 자살까지 시도하려 했다가 마음을 다잡고 남산에서 내려와 다시 도어폰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였다.
하늘이 도왔는지, 판매가 이뤄지기 시작하더니 주문이 끊이지 않고 밀려들었다.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의 사고가 터졌다. 불량 신고가 주문보다 더 밀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사무실에서는 불량 신고 전화벨 소리가 요란스럽게 계속 울려대고, 심지어 설치 기사가 고객의 집에 도어폰을 설치해주고 채 사무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작동이 안 된다!”며 불량 신고가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2개월 동안 생산한 제품이 모두 불량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알아보니 새롭게 교체한 스위치 부품이 문제였다. 고객들의 원성이 대단했다. 쌍욕을 해대거나 삿대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모욕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사생결단으로 다시 만든 도어폰 제품이 전량 다 불량이라니. 그 현실 앞에서 쓰디쓴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결단을 내렸다.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전량을 다 교체해주기로 했다. 나의 결단에 반대하는 직원도 있었다. 생산한 제품을 전량 교체해주면 손실 규모가 커져서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한다며 다들 만류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상황에서 2달치 생산 물량을 다 교체해주면 어떻게 버틸 수 있겠는가. 그러나 무엇보다 고객과의 신뢰가 가장 중요한데, 당장 눈앞의 이익 때문에 신뢰를 잃을 수는 없었다. 나는 일일이 고객의 가정에 방문해서 불량으로 불편을 끼친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도어폰을 모두 새 제품으로 교체하는 전량 리콜로 승부수를 띄웠다.
나는 물세례를 받고도 허리를 굽혀 죄송하다는 말만 연신 드렸다. 그리고 그런 고객에게도 절대 허술히 하지 않고 오히려 더 철저하게 새 제품으로 교체했고, 설치 이후에도 작동이 제대로 되는지 또 다른 문제점은 발생하지 않았는지 꼼꼼하게 살폈다. 마음 한구석에는 전량 교체에 따른 손실로 회사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참담한 심정이었지만, 내가 판매한 제품에 대해서는 내가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후 손해를 감수하고 추진한 전량 리콜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되었다. 새 제품으로 교체한 후 제품 사용법이라든가 궁금한 점들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며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자 고객들의 마음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긴 기업 이미지와 고객 신뢰는 깊게 뿌리내렸다.
1970년대 초였으니 소비자들이나 업계에서 ‘리콜’이란 단어조차 잘 사용하지 않을 때였다. 그러나 코맥스는 그 시절에 전량 무상 교체를 통해 고객으로부터 신뢰를 얻으며 긍정적인 기업 이미지를 분명하게 각인시킬 수 있었다. 코맥스의 우수한 품질은 하루아침에 저절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숱한 위기를 겪으며 이뤄낸 품질 향상과 기술혁신을 통해 얻은 결과이다. 위기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것을 잘 활용하면 오히려 위기 이전보다 모든 상황이 더 좋아질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 기본으로 돌아가라 지금 우리는 인류가 이제껏 경험해본 적 없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 앞에 서 있다. 불과 몇 달 전에 세상에 퍼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개인의 건강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기업과 나라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질병 예방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의 본질적인 패러다임 변화를 예고하는 문제로 커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생활의 일상화는 이전부터 예고되어 왔던 4차 산업혁명에 의한 지능정보사회의 도래를 순식간에 앞당겨놓았고, 모든 기업은 이런 위기에 대비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커다란 변화의 파고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모든 이들이 이런 질문을 스스로 혹은 전문가에게 던지고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두 세대가 넘는 세월 동안 기업을 이끌면서 세상의 변화를 수도 없이 경험해온 내 입장에서는 변화라는 게 새로운 것이 아니다. 언제나 변화는 있어왔고 그 변화를 이겨내는 힘은 언제나 ‘기본’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닥칠 변화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과거의 방법을 답습하자는 게 아니다. 변화의 본질을 주의 깊게 통찰한 다음 그에 맞게 대처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 나는 항상 다음 3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지식의 축적으로 나만의 빅데이터를 축적해야 한다. 변화가 두려운 이유는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해야 한다. 책을 읽고 조사하고 공부하면서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시대를 알아가야 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종이책을 보라고 하면 잔소리로 치부하기 십상인데, 그래도 깊이 있는 사유를 경험하려면 전문가의 견해가 담긴 종이책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책 외에도 강의, 세미나, 멘토와의 대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변화의 본질을 익히고 공부해서 새로운 시대에 대한 나만의 빅데이터를 축적해야 한다. 그것이 축적되기 시작할 때 자신감도 쌓인다.
둘째, 관계의 공유로 나만의 네트워크를 확대해야 한다. 지식의 축적이 나의 전문성의 깊이를 만드는 작업이라면, 관계의 공유는 나의 폭을 넓혀가는 작업이다. 다가올 시대는 한 분야의 전문성만으로는 헤쳐 나가기 어렵기 때문에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한 연대를 통해 나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한마디로 광폭의 시야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최근에 융복합이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등장하면서 기업 내에서도 지식과 경험을 두루 겸비한 제너럴리스트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그런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