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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모리 가즈오의 살아가는 힘

이나모리 가즈오 지음 | 서울문화사



이나모리 가즈오의 살아가는 힘

이나모리 가즈오 지음

서울문화사 / 2018년 11월 / 252쪽 / 14,800원





지금 그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인생을 결정해나가는 것은 마음속에 품은 생각

지금까지 80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크게 깨달은 사실 한 가지가 있습니다. 마음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가 자신의 인생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를 뒷받침할 만한 일을 몇 번이나 경험했습니다. 따라서 생각이 인생을 결정한다는 것이야말로 진리 중에 진리라고 확신합니다. 우리들은 일반적으로 무언가를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이성적인 판단’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은 ‘이성적인 판단’을 넘어선, 그보다 훨씬 소중한 것입니다. 나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이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도 없으리라 믿습니다. 마음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성적과 좋은 머리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공존하는 이기심과 이타심

다음으로 생각이 싹을 틔우는 밭인 인간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내가 보기에 우리 마음은 두 가지 측면으로 이루어진 듯합니다. 첫 번째는 ‘나만 좋으면 된다’는 욕망으로 가득 찬 이기심입니다. 인간은 생명을 이어가려면 밥을 먹어야 하고, 추위를 막아줄 옷도 입어야 하고, 비바람을 피할 집도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욕망을 본능이라고 합니다만, 이런 본능을 기초로 한 ‘나만 좋으면 된다’는 이기심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지닌 또 하나의 측면은 ‘다른 사람을 돕고 싶다’는 이타심입니다. 이타심이란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의 이익을 꾀하는 마음’입니다. 사람은 누구든 이기적인 마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이타적인 마음도 가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중 어느 쪽이 자신의 마음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가’입니다. 이렇게 두 가지 마음이 항상 싸우는 상태를 인도의 저명한 시인 타고르는 자신의 시를 통해, 이타적이고 배려심 넘치는 자아가 심술궂고 화를 잘 내는 또 하나의 자아와 마음속에서 불편하게 동거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나 자신은 가능하면 상냥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아가려 하지만, 어둡고 추한 또 하나의 마음이 절대로 떨어져 나가지 않고 따라옵니다. 이 두 개의 서로 다른 자아는 하나의 마음속에 동거하고 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떨어지기 어려운 것이랍니다.

강렬한 소망을 품고 ‘생각’을 ‘신념’으로 바꾸어 결코 흔들리지 않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생각을 품는 것에 더해 또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강렬한 소망을 마음에 품고 ‘생각’을 ‘신념’으로까지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고 싶다’, ‘저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에 품게 되면 반드시 실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실현이 가능해지려면 하나의 생각을 자나 깨나 마음에 품게 될 정도로 그 소망이 강렬한 것이어야 합니다. 나는 어떤 일이든 행하기 전에 우선 ‘이렇게 하고 싶다’, ‘저렇게 하고 싶다’라는 생각부터 마음에 품습니다. 대부분은 어느 날 문득 떠오른 생각이지만, 어찌 되었든 그것을 ‘반드시 이루어보겠다’는 강렬한 소망을 품는 순간부터 그것은 ‘신념’이 됩니다. 만일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하려고 한다면, 주변 사람들이 “그게 가능할 리 없잖아?”라고 말리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결국 아무 일도 해내지 못하고 맙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이런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누가 뭐래도 난 그 일을 해내고 싶어’라는 신념을 동반한 강렬한 생각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열심히 머리를 써서 ‘과연 어떻게 하면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전략과 전술을 짭니다.

JAL 재건에 담긴 이타심을 기초로 한 세 가지 의의

2009년 말 나는 정부로부터 “JAL이 파산 직전이니 회장직을 맡아서 예전처럼 회복시켜주십시오.”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나는 항공업계에 대해 잘 모르고 나이도 많았기 때문에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몇 번이나 다시 요청받게 되자, 나의 인생관에 비추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인생관이란 바로 ‘세상에 도움이 되는 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행위다’였습니다. 결국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과 세 가지 의의 때문에 JAL의 재건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나이가 워낙 많은지라 일주일 내내 출근하는 것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도 아내도 모두 교토에 있기 때문에 회장직을 맡게 되면 출근하는 날엔 호텔이 머물러야 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 3일만 근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3일 정도만 출근하고 대신 월급은 받지 않겠습니다.”고 말한 뒤 JAL의 회장직을 받아들였습니다. 무너져가는 JAL을 떠맡긴 했지만, 항공업계에는 완전히 초보였습니다. 경험도 지식도 인맥도 부족했습니다. 신문이나 잡지에서는 “JAL의 재건은 누가 맡아도 어려운 일인데 기술자 출신 경영자 이나모리에게 맡겼으니 결코 잘될 리가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내가 선택을 후회하거나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JAL의 재건에는 이타심을 기초로 한 세 가지 의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의의는 일본 경제의 재생입니다. 당시 JAL은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일 뿐만 아니라 장기간 깊은 침체에 빠진 일본 경제를 상징하는 기업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JAL이 정부의 지원을 받고도 일어서지 못하고 파산하게 되면 국가 경제가 크게 흔들리는 것은 물론이고, 국민 전체가 큰 낙담에 빠져 자신감을 잃게 될 것입니다. 만일 JAL이 재건에 성공한다면 국민들은 ‘JAL도 성공했는데 일본 경제의 재생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의의는 직원들의 생계 문제입니다. 어떻게든 JAL에 남아 있는 3만 2천 명이 넘는 직원들의 일자리를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정부의 요청으로 처음 JAL에 갔을 때에는 4만 8천 명에 가까운 직원들 중 당장 1만 6천 명 정도를 그만두게 해야 할 정도로 비참한 상황이었습니다. 이것은 JAL이 도산한 직후 회사갱생법에 따라 변호사와 회계사들이 모여 세운 재건 계획 중 하나였습니다. 나는 그때 남아 있는 3만 2천 명의 직원들이라도 반드시 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 번째 의의는 국민, 즉 비행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편리한 생활 문제였습니다. 만일 JAL이 파산하면 일본에는 ANA라는 단 하나의 항공회사만 남게 됩니다. 경쟁 상대도 없이 하나의 기업이 독점하면 요금은 오르고 서비스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결코 국민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 건전하고 공정한 경쟁 조건 아래에서 여러 회사가 경쟁을 해야 좀 더 좋은 서비스와 품질, 그리고 저렴한 가격이 형성되는 법입니다. 이를 위해서라도 JAL은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이상 세 가지가 내가 판단한 JAL이 재건되어야 할 큰 의의였습니다. 이타심을 바탕으로 한 세 가지 대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 대의를 이루기 위해 JAL의 회장직을 받아들인 뒤 회사 재건에 뛰어들었습니다.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이 세 가지 대의를 전 직원에게 이해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즉, 직원들이 ‘JAL의 재건은 단순히 자신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하고 국민을 위한 일’임을 마음 깊이 깨닫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자 침체되어 있던 회사 분위기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직원들은 재건을 위해 땀 흘리고 서로 협력하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고령임에도 다들 어렵다고 피하는 JAL의 재건을 무보수로 맡아 목숨 걸고 매진하는 내 모습에 직원들이 감동하며 따라준 것은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처음엔 주 3일만 근무할 생각이었지만 주 3일에서 4일로, 4일에서 5일로 차츰 늘어났습니다. 평일 대부분을 도쿄에서 지내다 보니 80세를 눈앞에 두고 객지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잠은 호텔에서 잤고, 저녁은 편의점에서 산 주먹밥 두 개로 때우는 날도 많았습니다. 한편, 직원들은 그토록 열심히 회사 재건에 매달리는 내 모습을 보고, ‘원래 우리와는 아무 관계도 없던 이나모리 회장이 저렇게나 열심히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직원들이 새로운 생각을 품고 열심히 일하자 JAL은 파산한 지 2년 8개월 만에 다시 주식을 상장하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익을 내는 항공회사로 거듭났습니다. 나는 이 일로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일에 철학을 불어넣는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인생

어떤 철학, 즉 그 사람이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인생이 결정됩니다. 그래서 더욱 여러분에게 일과 경영에서 사고방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자신의 생각과 기업가의 사고방식이 인생과 기업의 모든 것을 어떻게 결정하는지를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사고방식을 바꾸기 전까지 불운의 연속이었던 내 인생

나는 1932년 일본 가고시마 시에서 7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당시는 전쟁 전이었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인쇄소가 잘돼서 집안 형편은 넉넉했습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은 제 운명을 크게 바꿔놓고 말았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결핵에 걸려 죽음의 갈림길에 서기도 했습니다. 밤낮으로 계속되는 폭격으로 폐허가 되어가는 가고시마의 한 귀퉁이에 덜 익은 채 말라비틀어져 가는 푸른 호리병박 같은 내가 누워 있었습니다. 정말 우울하기 그지없는 소년 시절이었습니다. 결국 우리 집도 공습을 받아 타버렸고, 가난한 생활이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학교 선생님의 권유와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가고시마대학교 공학부 응용화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했던 1955년은 한국 전쟁이 끝난 뒤 닥친 불황으로 취직난이 심각하던 시기였습니다. 갓 생겨난 지방대학을 나온 나 같은 청년이 직장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웠습니다. 대학 은사님의 소개로 겨우 교토에 있는 송전용 절연품을 만드는 회사에 취업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고 보니 전후 10년이나 지났는데도 계속 적자를 보고 있는 열악한 회사였습니다. 월급날이 되면, “미안하지만 1주일만 기다려주게.”라는 말을 듣는 게 예사였습니다. 집을 떠나와 자취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생이 더욱 크게 느껴졌습니다. 기숙사도 형편없어 찢어진 다다미가 깔린 방에 풍로와 냄비를 들여놓고 밥을 해먹으며 지내야 했습니다. 근무 환경이 이처럼 열악하다 보니 결국 다섯 명의 입사동기 중 나 혼자만 남게 되었습니다.

연구에 몰두했더니 인생만사가 술술 풀리기 시작

혼자 막다른 골목에 버려진 기분이 들자 문득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매일 불평만 해 봤자 소용없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사고방식’을 바꾸게 된 것입니다. 그때까지 나는 스스로 운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불평을 쏟던 동기들이 모두 떠나고 혼자 남게 되자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는 막다른 궁지에 몰린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문득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 하는 깨달음과 함께 사고방식에 180도 전환이 일어났습니다.

그 무렵 연구실 과장이 내게 “우리 회사는 송전용 전선에 쓰이는 절연체를 만들고 있지만 이 제품만으로는 언제까지 회사가 유지될지 모르겠네. 앞으로 전자제품의 시대가 열릴 거야. 고주파 절연 성능이 있는 새로운 세라믹 재료를 개발하려고 생각 중이야. 어때? 자네가 이 일을 한번 해보지 않겠나?”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나는 새로운 연구에 대한 투지가 불타올랐습니다. 그 후로는 오직 신제품 연구에 매달렸습니다. 연구에 몰두할수록 눈에 띄는 성과가 나타났고 마침내 임원들의 칭찬과 격려가 이어졌습니다.

어둡기만 했던 인생길이 마침내 좋은 방향으로 전환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약 1년 만에 ‘포스테라이트’라는 고주파 절연체를 합성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곧 마쓰시타 전기에서 내가 개발한 ‘포스테라이트’를 TV 브라운관에 넣기 위해 대량 주문을 해왔습니다. 나는 생산까지 책임지게 되었고 기울어져가던 회사가 다시 일어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는 TV가 날개 돋친 듯 팔리던 시절이라. 포스테라이트의 주문이 끝도 없이 밀려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미국으로부터 포스테라이트로 진공관을 개발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그러자 히타치 제작소가 나를 찾아와 세라믹 진공관 샘플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 요청에 감격해 즉시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그런데 이 새로운 작업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결국 어느 날 상사인 기술부장이 나를 불렀습니다. “이나모리 씨, 이 일은 자네한테는 무리야. 지금까지는 잘해왔지만 이 이상은 안될 것 같군. 다른 연구자에게 맡기기로 하지.” 결국 교토대학교 출신의 간부 연구원들이 이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회사를 나오고 말았습니다.

지식도 경험도 없는 내가 마음의 좌표축으로 정한 것

내가 그만두자 몇몇 사람이 나와 함께 사표를 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전력을 다해 연마해온 기술을 바탕으로 지인들로부터 자금을 빌려 회사를 세웠습니다. 이렇게 해서 자본금 500만 엔으로 교토 세라믹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내 나이 27살 때의 일입니다. 창업과 동시에 중졸사원 20명을 채용해 모두 28명의 직원들로 회사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직원들은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모두 내게 물어왔고 나는 그 모든 것에 대해 판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이렇게 수도 없이 다가오는 판단을 잘 하려면 마음속에 판단의 기준이 되는 좌표축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좌표축이란 자신의 사고방식 즉, 철학을 말합니다. 당시 저의 가장 큰 고민은 ‘10가지 판단 중 9가지를 옳게 내려도 1가지를 그르치면 모든 것을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판단의 기준을 어디에 두면 좋을까 고민했습니다. 당시 저에게는 판단의 근거로 삼을 지식도 경험도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부족한 지식이나 경험에 연연하지 말고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나 선생님으로부터 배워온,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근거로 모든 판단을 해나가기로 한 것입니다. 이후 나는 ‘인간으로서 무엇이 바른 길인가’를 마음의 좌표축에 놓고 이것을 기준으로 모든 판단을 내리면서 지금까지 경영에 임해왔습니다.

다이니덴덴(KDDI)이 성공한 단 한 가지 이유

나는 1984년에 통신사업자유화 정책에 발맞추어 ‘다이니덴덴’이란 기업을 세웠습니다. 이 회사는 KDD와 일본이동통신을 합병하는 등 성장을 거듭해 현재 일본에서 NTT 다음가는 통신회사 ‘KDDI’가 되었습니다. 2001년 KDDI의 매출이 3조 엔, 교세라와 합쳐 이 두 기업의 1년 매출이 4조 엔을 넘어섰습니다. 이것이 27살에 회사를 세워 지금까지 ‘인간으로서 무엇이 바른 길인가’만을 좌표축으로 삼으며 인생길을 걸어온 결과입니다. 국내외 경제학자들이나 평론가들로부터 “이나모리 씨는 뛰어난 기술자이고, 마침 세라믹이 각광받는 시대를 만나 대성공을 거두었군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시대를 잘 만난 것도 기술이 뛰어난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 사고방식, 즉 철학이 바른 것이었고, 그것을 직원들이 함께 공유해주었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철학을 가지고 그에 따라 행동하기만 한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통신사업이 자유화되기 전 일본은 통신요금이 매우 비쌌습니다. 그 때문에 누구보다 서민들이 힘들어했습니다. 나는 그것이 불만이었습니다. 한 회사가 전기통신사업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전 국민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괘씸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다이니덴덴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통신사업에 뛰어든 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무모한 모험이었습니다. 주위에서도 “이나모리 씨는 세라믹 분야에선 뛰어난 전문가지만, 전기통신기술에 대해선 잘 모르지 않나? 성공할 리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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