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끓이는 남다른 감자탕 이야기
이정열 지음 | 성안당
희망을 끓이는 남다른 감자탕 이야기
이정열 지음
성안당 / 2017년 11월 / 285쪽 / 14,800원
나는 목숨부터 내걸었다
바닥, 그곳에서 진짜 힘이 생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께서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식사를 하시던 도중에 쓰러지셨는데 병원으로 옮기자마자 바로 숨을 거두셨다. 학교에서 연락이 오면 한달음에 달려오셔서 무릎부터 꿇으셨을 만큼 아버지는 나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셨다. 그런 아버지를 잃은 허망함이 얼마나 컸던지 나는 삶에 대한 의지마저 내려놓고 더 세차게 흔들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나는 방황의 시기를 청산하려고 군에 자원하여 입대했다. 사실은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늘 동네 공중 화장실 옆의 월세방을 전전하던 가난도 싫었고, 교도소를 들락날락하며 불안한 삶을 살던 큰형도 꼴 보기 싫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폭력에 익숙해진 못난 나 자신이 싫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나면 뭔가가 달려져 있을 것이라는 작은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기대는 결국 기대일 뿐, 현실은 전혀 달랐다. 나는 군복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지 닷새 만에 다시 쫓겨났다. “미안하다. 네가 좀 나가줘야겠다.” 작은형은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작은형이 그렇게 말했을 땐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테니 나는 별다른 반항을 하지 않았다. 큰형이 다시 교도소에 들어가는 바람에 어머니는 큰형의 아이인, 조카까지 데리고 작은형네 집에 얹혀살고 있었다. 방 두 칸의 콧구멍만 한 집에 시어머니와 어린 조카로도 모자라 장정인 시동생까지 더해지니 참다못한 형수가 폭발한 것이다.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나는 전역할 때 메고 나왔던 가방에 짐을 구겨 넣었다. “어머니, 저 나갑니다.” 나는 어머니께 큰절을 드렸다.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아도 어찌 된 일인지 짐작이 되셨는지 어머니는 말없이 눈물만 보이셨다. 어머니께 3년 안에 우리가 함께 살 집을 장만해 다시 모시러 온다는 약속을 하고는 서둘러 집을 나왔다. 호기롭게 나왔지만 역시나 늦겨울의 밤은 생각만큼 잔인했다. 바람은 매서웠고, 때마침 내리던 비는 날 선 바늘처럼 살을 콕콕 찔러댔다. 어머니가 내 손에 꼭 쥐어주신 오천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다섯 장까지 보태니 전 재산이 11,800원이 됐다. 며칠 버티기도 힘든, 적은 돈이지만 그래도 빚이 있는 것보단 낫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바닥이 시작점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생존방식이 있다. 그것이 조금은 별스러워 보이고 남달라 보여도 자신에게 최고의 에너지를 불어넣는 일이라면 다른 이의 시선 따윈 상관없다. 영국의 유명한 저술가 사무엘 스마일즈는 “역경은 죽기 살기로 노력하고 인내하도록 등을 떠밀고, 다른 때 같으면 잠자코 있었을 재능과 능력을 일깨워주는 최고의 동반자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을 반대로 해석해보기로 했다. 잠자고 있을 내 재능과 능력을 일깨우기 위해, 죽기 살기로 노력하고 인내하는 힘을 키우기 위해 기꺼이 고난과 역경에 나를 맡기기로 한 것이다.
100억 원을 벌기 위한 첫 번째 터전은 남대문시장이었다. 그곳은 도매시장답게 거액의 현찰이 오갔다. 물론 내겐 그림의 떡이었다. “자네, 장사 경험은 있나?” “그게, 중ㆍ고등학교에 다닐 때 잠깐 휴지도 팔고 당구장도 맡아서 해봤습니다.” “하여튼 도매장사 경험은 없다는 거지? 그럼 일단 일부터 배워야겠네. 그릇짐을 져야 하는데 괜찮겠어?” “네. 뭐든 시켜만 주십시오. 열심히 하겠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기도 했지만 나는 일부러라도 제일 힘든 일을 해보고 싶었다. 지게를 지고 짐을 나르는 짐꾼을 선택한 것이다. 몸이 힘들면 복잡하고 무거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질 것 같았다. 또 힘들고 험한 일을 묵묵히 견뎌내다 보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차곡차곡 쌓일 것 같았다. 진정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스스로 면벽수행을 하는 고행자처럼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남대문 시장의 제일 밑바닥으로 들어갔다.
허기를 수돗물로 채워가며 그렇게 8개월 정도 일을 하던 어느 날,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과감히 짐을 쌌다. 도매시장은 이전까지 내가 경험해 봤던 세상 중에 가장 많은 돈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 돈이 아니었다. 월급쟁이 짐꾼 신세론 언저리에 머물 뿐 결코 부의 중심에 들어갈 수 없었다. 훌훌 털고 나오는데, 처음 그곳에 들어갈 때와는 달리 몸도 마음도 한결 개운했다. 이것 말고는 할 일이 없을 것 같았던 절망스런 마음은 어느새 뭐든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 삶의 가장 고달팠던 그때에 가장 힘들고 거친 밑바닥을 시작점으로 선택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죽을 것 같았던 가장 밑바닥에서, 살 수 있는 희망을 건져 올린 것이다.
가진 게 두 쪽뿐인 사람은 없다
성취하지 못한 사람들의 가장 흔한 변명 중 하나가 ‘돈이 없어서’이다. “돈이 있어야 하지, 돈이 없어서 못했어!” 정말 괜찮은 대박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그것을 실현시키지 못한 것도, 배움의 끈이 짧은 것도, 심지어 지금 행복하지 않은 것도 모두 ‘돈’ 때문이란 것이다. 물론 돈은 장점도 많고 힘도 세다. 하지만 그것이 결과를 바꾸어놓을 만큼 절대적이진 않다. 외려 돈이 없거나 부족한 것이 내 안에 꽁꽁 숨겨져 있던 돈 이외의 요소들을 끌어내기에 더 효과적이다. 나는 돈이 없었던 덕분에 ‘100억 원’이라는 목표를 세웠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땀과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감자탕을 시작으로 외식사업에 발을 담그기 전, 나는 여러 업종의 일을 경험해봤다. 남대문시장 짐꾼부터 학습지 영업사원, 목각교구판매사업, 부동산 중개업, 기획사 매니저, 신문사 영업사원, 경호원 등 전혀 관련이 없는 업종들을 오가며 내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을 배워 나갔다. 좌충우돌이긴 했지만 나는 내 앞날이 염려되거나 불안하지는 않았다. 새로운 일들을 경험할 때마다 늘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기에 오히려 내 안에 내공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서른 살을 목전에 둔 나이가 되고 보니, 이제는 내가 평생 뼈를 묻을 만한 일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제 밥그릇은 타고난다: 우연한 기회에 만난 감자탕이란 아이템은 내 인생의 궤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런데 이런 우연도 미리 준비한 사람에겐 필연이 되고, 성공의 기회가 된다. 수많은 사업 아이템 중에 유독 음식장사가 눈에 들어온 것은 배고팠던 기억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배고픔의 기억은 나에게 맛있고 푸짐한 음식에 대한 욕구를 생기게 했고, 그것은 곧 남다른 관심으로 이어졌다. 어릴 때부터 나는 맛에 대한 감각이 남달랐다. 가난한 살림에 제한적인 재료로도 어머니는 늘 꿀맛 같은 음식을 만들어주셨다. 워낙 어머니의 음식솜씨가 출중하셨던 덕분에 나는 어른이 돼서도 아주 맛있는 집이 아니고서는 맛있다는 소리를 안 할 정도로 입이 고급이 됐다. 그 덕분에 내가 맛있다고 인정한 집은 반드시 대박이 났다.
배고픔에 대한 보상, 맛에 대한 감각 외에도 내가 외식사업에 관심을 가진 것은 정직한 사업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 합리적인 가격에 내놓고, 친절과 청결을 기본으로 한다면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노력하는 만큼, 땀 흘리는 만큼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자기 밥그릇은 타고난다는 말처럼 사람은 모두 제 안에 밥 챙겨 먹을 그릇 하나씩은 타고난다. 물론 흙으로 된 그릇도 있을 테고 금으로 된 그릇도 있을 것이다. 애초에 타고난 그릇이 뭐 그리 대수일까. 진짜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무엇을 담느냐이다.
치열하게 묻고 깐깐하게 따져라
오빤 장사스타일?
많은 사람들이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탈출구처럼 장사를 선택했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이니 그 간절함이 오죽할까? 하지만 마음이 간절하다고 해서 모두가 장사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장사를 해본 사람들은 안다. 장사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성공할 순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오늘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점포를 차렸다 접었다 하며 장사를 고민한다. 언젠가부터 “회사는 전쟁터이지만 밖은 지옥이다.”라는 말이 유행한다. 생존경쟁에서 밀려났든 스스로 탈출했든 회사를 벗어나는 순간 지옥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회사 밖으로 나온 사람들의 대부분이 장사나 개인 사업 등 자영업자의 길을 걷게 된다.
국세청 자료에 의하면, 지난 2005년에서 2014년까지 10년 동안 새롭게 창업한 자영업자는 967만 5760명이었는데, 폐업을 한 사람은 10명 중 8명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자영업자의 80% 정도가 40대 이상이라는 사실이다. 20대, 30대 때는 실패도 자산이 될 수 있다. 실패의 경험을 바탕으로 방법을 달리하고 노력을 더 기울여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시간도 기회도 아직 그들의 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40대 이후의 사람들은 전부를 내걸고 달리기 때문에 한번 넘어지면 쉽게 일어서기 힘들다. 그래서 그 시작이 신중해야 한다.
나 자신부터 알라: 웃는 것이 힘든 사람 외에도 장사에 두려움이 많은 사람 역시 장사 스타일이 아니다. 무턱대고 덤비는 것도 위험하지만 지나치게 신중해서,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며, 안 될 이유만 찾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더듬이가 안 될 이유만 찾고 있는 것은 장사가 두렵기 때문이다. “기껏 차려놨는데 손님이 안 오면 어쩌죠? 장사가 잘 안돼서 돈을 다 날리면 어떡해요?” 두려움은 자신감의 부족에서 나온다.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것은 열심히 할 마음의 준비가 아직 안 돼 있다는 의미이다. 사막에 가서 우산을 파는 것은 화려한 말솜씨나 기발한 아이디어가 전부가 아니다. 그것을 뛰어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무엇보다 있어야 한다.
한편, 게으른 사람도 장사를 해서는 안 된다. 장사가 잘되든 안되든 무조건 부지런해야 한다. 점포 안팎의 청결함 유지와 정리정돈은 장사의 기본이다. 여기저기 쓰레기가 방치되고 바닥에 먼지가 굴러다니는 점포에서 판매하는 제품이 멀쩡할 리 없다. 내가 고객이라면 그런 점포에서 내어주는 음식은 절대 먹지 않을 것이다. 또 음식점을 찾는 고객들의 대부분은 배가 고픈 상태이다. 그러니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움직인다거나 여유로운 응대는 불만을 사기 십상이다. 모든 일은 눈에 보이는 즉시, 귀에 들리는 즉시 처리해야 한다. 그러려면 손발이 부지런해야 한다.
품위와 권위를 지키며 사장놀이만 하려는 사람도 장사와는 잘 맞지 않는다.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일을 열심히 돕는다 해도 점포의 주인은 엄연히 사장 본인이다. 장사는 전쟁터나 다름이 없고, 수장이 전쟁에서 늠름히 앞장서며 ‘나를 따르라’하는 것과 ‘나가 싸워라’며 병사의 등을 떠미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두 팔 걷어붙이고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도 성공을 보장하기 힘든 상황에서 그저 손가락 하나로 모든 것을 지시만 하려 한다면 직원들 역시 머지않아 마음이 떠나게 된다.
계산이 너무 빨라 당장의 이해타산부터 따지는 사람도 장사를 해선 안 된다. 이런 사람은 눈앞에선 하나를 얻고 뒤에선 열 개를 잃는다. 이익을 한 푼이라도 더 남겨보려 제품의 품질을 떨어뜨리고 저울을 눈속임하기도 한다. 게다가 살짝 금이 간 그릇 정도는 애교라며 고객의 밥상에 내놓아 불쾌감을 주기도 한다. 또한 이들은 직원은 물론 고객의 실수에도 절대 관대하지 않기에 어떻게든 돈으로 배상을 받으려 한다. 이러니 직원이든 고객이든 남아 있을 리 없다.
이 밖에도 약속을 함부로 어기는 사람, 남에게 굽힐 줄 모르는 꼿꼿한 사람 등 장사와 맞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굳이 일일이 말해주지 않아도 내가 고객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다. 어떤 점포에 갔을 때 불쾌했는지, 어떤 사장과 직원을 만났을 때 한심하고 답답했는지를 기억한다면 그 모습과 자신을 찬찬히 비교해보면 된다. 그 결과, 장사스타일이 아니라는 판단이 서면 뼛속까지 몽땅 뜯어고쳐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미련 없이 돌아서야 한다. 그게 결국엔 남는 장사다.
초심(初心)이 곧 말심(末心)
내 금고 안에는 유서가 한 장 들어 있다. 17년 전에 써둔 것이라 현재의 상황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틈날 때마다 그것을 꺼내본다. 그때의 절박하고 절실했던 마음을 잊지 않고 단단히 붙잡아두기 위해서다. 목숨을 담보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시작한 감자탕 장사였지만 17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때때로 그 마음이 흐트러지기도 하고, 흐려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유서에 적힌 한 구절 한 구절을 따라가며 그때의 간절했던 초심을 되살려낸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고 흔들리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지만, 사업을 하는 사람은 애초에 그것을 왜 시작했는지, 어떤 각오였는지를 떠올리며 그 마음을 더욱 단단히 붙잡아야 한다. 나 혼자만을 위한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초심(初心), 즉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고 꾸준히 유지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오죽하면 굳게 먹은 마음이 사흘을 못 가고 느슨하게 풀어진다는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다 나왔을까. 요즘은 3일에 한 번씩 반복해서 마음을 다지면서 작심삼일을 꾸준히 이어가는 전략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초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장치들이 필요하다. 초심을 늘 눈으로 확인하며 지켜가기 위해 글이나 사진 등으로 기록해 가까이에 두는 것도 효과가 좋다. 가훈이나 사훈 등을 글로 써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걸어두고 수시로 확인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의미이다.
초심을 지키고 목표를 이뤄냈을 때 스스로에게 포상을 하는 것도 좋다. 평소 갖고 싶었던 것을 자신에게 선물한다거나 가보고 싶었던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무엇이 되었든, 초심을 지키며 열심히 달려준 자신에게 수고했다, 대견하다며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는 것은 초심을 더욱 단단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나는 낯선 직장에 들어가 일을 배울 때도, 건강을 위해 금연을 결심할 때도 그 어떤 유혹이 와도 석 달은 꾹 참아보자며 견뎠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도 꾸준히 석 달을 하다 보면 어느새 몸과 마음이 익숙해져 습관이 된다.
진정성에 남다른 스킬을 더하라
따뜻한 시선으로 트렌드를 읽다
1인가구의 증가로 혼자서 밥을 먹거나 쇼핑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굳이 1인가구가 아니더라도 맞벌이 부부, 업무에 바쁜 직장인의 경우 동료나 친구, 가족과 시간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으니 혼자라도 당당히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쇼핑을 한다. 게다가 혼자 먹는 밥도 단순한 분식이나 패스트푸드가 아닌 보쌈, 고기, 회 등 다양한 음식으로 점점 확대되고 있다. 이제 혼밥은 비장함을 넘어 당당함, 그리고 즐거움이 됐다.
혼밥인구를 겨냥하다: 얼마 전 한 여성분이 혼자 음식점에 가서 장어를 구워 먹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갑자기 장어가 너무 먹고 싶은데 함께 갈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비록 테이블 맞은편에 누군가와 함께 온 듯이 젓가락 한 쌍을 더 올려놓긴 했지만 혼자라도 씩씩하게,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나니 내일을 잘 버텨낼 힘이 생겨났다고 한다. “혼밥, 어디까지 해봤니?”를 비교하는 ‘혼밥 레벨’이 유행이지만 이젠 그마저도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라도 당당하게,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시대인 만큼 메뉴의 한계마저도 사라졌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는 프랜차이즈 사업가들에게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남다른 감자탕’ 매장에도 혼자 식사를 하시는 분들이 많다. 면밀히 관찰하니 대략 방문 고객의 30~40% 정도가 혼자 오는 분들이었다. 편하게 식사를 하다가도 손님들이 점점 들어차면 남은 테이블의 수를 살피는 등 눈치를 보시곤 한다. 게다가 가족이나 친구,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다소 번잡하기도 하다. 혼자 조용히 식사를 즐길 그들만의 공간이 절실해 보였다.
나는 혼자 와서 한 끼 대충 때우고 가는 그저 그런 매장이 아닌, 좋아하는 음식을 편안하게, 그리고 당당하고 우아하게 즐길 수 있는 남다른 매장을 구현해내야 함을 강조했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그대로 담아내는 최고의 혼밥 매장을 구현해내기 위해 약 3개월간 시장조사를 했다. 혼밥 고객을 중심으로 하는 여러 브랜드들을 직접 체험하며, 그들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감자탕에 맞는 시스템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나갔다.